가시와 형극
최금진
세상에 보람된 일이란 없어서 땅에서 형극이 자라는 것이다
망해가는 나라에 조각배를 타고 찔레가 건너오고
화형식 속에서 죽어간 장미의 일족들이 망명을 해 오고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었다는 시인의 방에 겨울 고드름은 돋고
뿔은 송아지 머리통 속에 분노를 길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어제 떠난 그대가 오늘 돌이 되어 언덕에서 구르고
지구라는 커다란 바위를 들어 올릴 힘이 없어서 땅에서 가시가 자라는 것이다
가시가 험담과 욕설을 하며 땅을 후벼파고 나오는 소리
온몸에 터럭을 세워 남자처럼 고함을 지르는 소리
사랑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꽃을 심고
꽃밭을 모아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 섬에 상납하고
그러면서도 우리 얼굴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얼굴은 아름다워지고
얼굴이 얼굴을 그리워하는 힘으로, 땅에서 형극이 자라는 것이다
죽어서도 머리카락이 돋고, 손톱이 돋고, 이빨은 그대로 남아
우리 사는 세상에 가시가 땅을 뚫고 올라오는 것이다
보복을 하듯이, 이번 생에 오지 않을 것들에 복수를 하듯이
최금진
2001년 창작과비평 제1회 신인시인상 수상. 시집으로 새들의 역사,
황금을 찾아서,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과 산문집 나무 위에 새긴 이름이 있음.
2008년 제1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등. 동국대, 한양대 등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