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계수하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4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각 지파별로 20세 이상으로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남자의 수를 집계하라고 명령하신다. 20세 이상이라 함은 더이상 부모의 양육을 필요로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행할 수 있는 성인의 연령 기준을 의미한다. 싸움에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비단 국방의 의무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일정한 의무와 책임을 질 수 있는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을 갖춰야 함을 의미한다. 여자가 아닌 남자의 수를 세어야 하는 것은, 가정이나 사회가 감당해야 할 위기나 위험이나 과제들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우선적으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백성들에게 지시하신 것은 건강한 신체와 올바른 정신을 갖춘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의 수를 계수하라는 것이었다. 이를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인 남자의 수만 세었다고 해서 여자나 아이들이나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을 낮은 자들로 취급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가치를 따라 나누신 것이 아니라 다만 분담해야 할 역할에 따라 분류하신 것 뿐이다.
아담과 하와는 성장 없이 성인으로 지어졌다. 그 이후에는 아기로 태어나서 아담과 하와를 비롯한 부모의 양육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창세기에서는 언제를 성인으로 보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 가인과 아벨은 아마도 아담과 하와로부터 성인이라는 표를 받은 후에 여호와께 각자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떠난 후 아담은 103세에 셋을 낳았으므로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린 때는 아마도 1백세가 되지 않은 나이였을 것이다. 이후 노아 시대까지 초고대인들은 거의 1천년에 육박하는 연령을 살았는데 몇 세 부터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수 백 살에 누구를 낳고 낳고 라는 언급이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 나이에 낳은 자녀가 첫 아이인지도 불분명하다. 노아의 홍수 이후로는 (기후 변화 요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인간의 수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져서 오늘날 인류와 비슷하거나 좀 더 많은 정도가 되었다. 이삭은 40세에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에서도 40세 정도에 아내들을 맞아들였다. 야곱은 40세에 외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면서 가급적 빨리 라헬과 결혼하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서 7년이 지난 47세에 두 아내를 맞아들인다. 요셉은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애굽 제사장의 딸과 결혼한다. 이처럼 아담 이후로부터 요셉 까지는 제사나 혼인 등으로 성인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연령을 추정할 뿐이다.
여호와께서 성인 연령으로 지정하신 20세는 경험적으로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효하다. 문명 사회에서는 대체로 이 나이부터 성인으로 취급하였고 문명을 접하지 않은 원시 사회에서도 이 나이를 넘어서까지 성인식을 미루지는 않는다. 이는 생리학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동기에서 바로 성인기로 넘어가지 않고 그 중간에 소위 사춘기 시절이 있어서 신체와 정신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사춘기 시기에는 부모 조차도 조심스러울만큼 한껏 예민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럭비공과도 같아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이런 상태로 수 년 간 지낸 후에 신체적으로는 성장을 완성하게 되고 정신적으로는 푹풍이 지나간 후의 잠잠함 처럼 진정되고 성숙해지기는데 그 연령이 대체로 20세 정도인 것이다. 그래서 어느 사회건 20세가 되면 과도기적인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잘 통과했다는 의미로 드디어 성인으로 대우해 주는 것이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그동안 부모나 사회로부터 허락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자유롭게 누릴 권리와 권한이 확대되는 것과 동시에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건장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을 가진 성인은 그만큼 외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춘만큼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좀 더 많은 사회적 의무를 감당할 책임이 있다. 여호와께서 싸움에 임할 성인 남자를 계수하라 하신 것은 자기들보다 더 연약한 그릇인 여성들과 어린 자들과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래서 가정의 대소사는 가장인 아버지를 필두로 해서 아들들이 먼저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고 국방의 의무도 우선적으로 남성들에게 지우는 것이다. 이는 여성들을 전적으로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결정과 책임이 우선적으로 남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교회도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로 마귀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20세 이상의 성도들이 많아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쓰임받을만한 장성한 성도들은 점점 줄어가고 보호받아야 할 고연령 신자들만이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젊은 성인 신자들이 급감하고 있는 교회 상황을 타개해보고자 갈렙이 85세에 정복전쟁에 나선 일화를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여호와께서 섭리하신 특별한 기사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보편적으로는 적용할 수 없다. 설령 갈렙은 지도자이기 때문에 85세라는 고령에도 싸움에 나설 수 있었다 치더라도 실제로 전투를 담당한 자들은 20세 이상의 젊은 남성들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교회에 20세 이상의 젊은 신자들이 없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봤을 때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다. 만약에 그런 고령화 된 교회가 진정으로 회생하기를 원한다면 대다수를 차지하는 고령자 교인들이 스스로 누리던 교회에서의 권리들을 내려놓고 젊은이들과 교회 학교를 위해서 여생을 바친다는 각오로 헌신하는 수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