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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 김동출 창작동화 “은총의 선물”
머리꼭지가 뜨끈뜨끈하다. 이마에 송송 땀이 맺히더니 식기도 전에 다시 솟는다. 눈꺼풀은 무겁고, 속눈썹은 서로 엉겨 붙는다. 눈을 뜨려 해도 세상이 자꾸 흔들린다. 귀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목덜미는 마치 젖은 수건을 두른 것처럼 축축하다. 숨을 들이쉬면 가슴이 뜨겁고, 내쉬면 입술이 바짝 마른다. 손끝이 저릿하고, 발끝은 이불 속에서 자꾸만 도망치려 한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이불이 닿는 것조차 따갑다.
분명 조용한 방안인데 왠지 요란스럽다. 무언가가 몸속에서 뛰어다니는 것 같다. 눈을 질끈 감으면 어두운 숲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누가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누가 안아주는 것 같기도 하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다. 아니 그 경계에 서 있는 것 같다.
한 줄기 바람이 창틈으로 스며든다. 그 바람이 뺨을 스치자, 잠시나마 숨을 돌린다. 한증막 문을 열어젖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외친다. “예수님… 성모님…”
월요일 아침 등굣길. 오늘도 집을 나선 길손이는 학교로 곧바로 가지 않고 언덕 위에 있는 ‘벽돌성당’부터 들러 예수님상 앞으로 다가서서 예수님께 아침 인사를 드립니다.
“예수님! 학교 잘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학교 다녀올 때까지 잘 계세요.” 넙죽 절한 뒤 원장 수녀님께 배운 대로 성호를 긋고 성전을 나와 바쁘게 마당으로 나옵니다. 이번에는 성당 오른쪽 뒷마당 성모 동산으로 가서 성모님께 “성모님! 길손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넙죽 절하며 성호를 긋고 바쁘게 언덕을 내려서서 학교를 향해 뛰어갑니다.
길손이가 예수님과 성모님께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인사한 지는 벌써 3년이나 되었습니다. 세 살부터 살기 바쁜 제 부모님 대신 성당에서 베드로 신부님과 데레사 수녀님의 보살핌 속에 자라난 길손이는 예수님을 할아버지로 성모님을 할머니로 신부님을 대부로 수녀님을 대모로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길손이가 오늘처럼 등교하기 전에 언덕 위 성당부터 찾게 된 까닭에는 깊은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길손이 집은 5대째 내려오는 천주교 신자 집안입니다. 길손이의 조상은 조선 시대 후기 ‘신나무 골 천주교 박해사건 (1815년, 순조 15년)으로 피난 간 한티(오늘날 ‘한티 순교 성지’)에서 1868년에 순교한 ‘이씨 성’을 가진 옹기장이였습니다. 길손이 아버지는 천주교 박해를 피해 두메산골로 들어간 조상들이 시작한 옹기장이 일을 4대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본래 고향은 강원도 원주 골이었습니다. 몇 년 동안의 박해가 끝나자 흩어져 숨어지내던 천주교 신자들은 ‘칠곡 신나무골’로 돌아와 살았습니다. 옹기를 구워 이고 지고 장날을 찾아다니며 생계를 이어오던 조상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 뒤, 길손이 부모님은 신나무골을 떠나 낙동강 변의 여러 장터를 떠돌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20여 년 전 어느 봄날, 길손이의 아버지는 자신이 빚은 옹기를 지고 이곳 장터를 지나던 중 질그릇을 만들기에 알맞은 황토를 발견했습니다. 그 산언덕에 초막과 가마를 짓고 질그릇을 빚기 시작하면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길손이는 7년 전 봄에 낙동강 주변의 H군 D면 5일 장날, 장터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길에서 낳은 귀한 자손’이라는 뜻으로 ‘길손’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길손이는 착하게 자라 마을 뒤쪽 언덕 위에 있는 하얀 벽돌 성당(이곳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벽돌성당’이라고 부름) 성모유치원에 다니면서 ‘원장 수녀님을 어머님’처럼 생각하고 ‘신부님을 아버지’처럼 따르며 바르게 자라났습니다.
길손이 부모님이 장마당을 돌며 옹기그릇을 파는 옹기장수인 것을 잘 아는 마을 사람들은, 어린 길손이가 하는 짓이 너무 귀엽고 착한지라 간혹 잔치 떡이나 성당 행사를 치르고 남은 음식이나 간식거리가 생기면 길손이 먹이라고 원장 수녀님께 전해 줄 정도였습니다. 이렇듯 길손이는 마을 어른들의 깊은 관심 속에서 자랐습니다. 늘 바쁜 일상에 쫓겨 길손이를 챙길 여유가 없던 부모님도 크게 걱정하지 않을 정도였지요. 그래서인지, 길손이는 마을 사람들이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올해로 길손이는 여덟 살되었지만 세 살에 이미 ‘야고보’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뒤로 매주 토요일 오후 초·중등부 학생 미사에서 형들과 함께 복사 역할을 야무지게 해내고 있습니다. 올해 2월에는 벽돌성당 부설 성모유치원을 졸업했고, 3월에는 금빛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했습니다.
지난 3월 3주 월요일에 원장 수녀님은 초대장 한 장을 받았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금빛초등학교에서 「2018학년도 교육과정 설명회」와 ‘수업 공개’가 있으니, 부모님께서는 바쁘신 중이라도 꼭 참석하셔서 열심히 공부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라나는 아이들이 희망을 품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해 달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이었습니다. 그 초대장은 원래 길손이 부모님이 받아야 할 것이었지만, 길손이가 대신 원장 수녀님께 보여드렸습니다. 마침 그날은 ‘고성 장날’이라 부모님은 장터에 나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길손이는 ‘그날 하루만 엄마가 되어 함께 참석해 달라’며 수녀님께 부탁드린 것이었습니다.
길손이는 오늘도 평소처럼 성당에 들러 예수님께 아침 인사를 드립니다. “예수님! 길손이 학교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 학교에서 ‘교육과정 설명회’가 열리고, 학부모님과 함께 공부하는 날이에요. 그러니까 꼭 우리 성당 원장 수녀님을 학교에 보내 주세요. 아셨죠?” 그렇게 부탁을 드린 뒤, 성모 동산의 성모님께도 같은 인사를 올리고는 달음박질쳐 교실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길손이 담임 선생님이 처음으로 학부모님 앞에 인사드리는 날이라 그런지, 평소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화장도 하고 옷도 예쁘게 차려입은 채 교탁에 앉아 컴퓨터와 TV를 켜고 공개 수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길손이도 짝꿍 한별이와 함께 1교시 국어 수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리 공부가 도통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 길손이는 화장실을 다녀온 뒤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중얼거립니다.
“예수님, 성모님! 우리 원장 수녀님을 학교로 빨리 보내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자, 거짓말처럼 교실에 원장 수녀님이 서 계셨습니다. 조금 전 ‘교육과정 설명회’가 열리는 강당에 갔을 때는 안 계셨던 수녀님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죠.
길손이는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제 부탁을 들어주셨구나!’ 하고 생각하며 너무도 기뻐했습니다.
원장 수녀님은 바쁜 부활절 준비로 망설이셨지만, 결국 공개수업 시간에 맞춰 길손이의 교실을 찾아오셨습니다. 길손이가 다니는 학교는 1학년 신입생이 열 명도 안 되는 작은 농촌학교라,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님도 7~8명뿐이었습니다. 그중에는 할머니 두 분과 다문화 가정의 어머니 두 분도 계셨습니다.
올해 J 교육대학교를 졸업한 담임 선생님은 수업 준비를 마친 뒤, 참석한 부모님을 한 분 한 분 아이들에게 소개했습니다.
선생님은 평소 원장 수녀님과 길손이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원장 수녀님께서 참석하셨습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길손이 얼굴에는 금세 웃음꽃이 피었고 어깨도 으쓱해졌습니다.
시작종이 울리자 ‘바른생활’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칠판에 오늘의 학습 주제를 적고, 공부 순서와 방법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취동기를 높이기 위해 몇 명을 차례로 앞으로 불러내어
“너의 꿈은 무엇이니?”, “왜 그런 꿈을 가지게 되었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하,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참 좋은 생각이다. 앞으로 기대가 되네.”하고 따뜻하게 반응해 주셔서 수업 분위기가 한층 밝아지고, 아이들도 즐겁고 신이 났습니다.
마침내 길손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제 꿈은 신부님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부님과 원장 수녀님은 엄마, 아빠보다 저를 더 잘 이해해 주시고, 항상 친절하고 사랑으로 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꼭 신부님이 되어, 우리 신부님처럼 맛있는 간식도 많이 주고 선물도 많이 하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길손이는 더듬거리지 않고 또렷하게 발표했고, 아이들과 어머님들은 “잘했어, 잘했어!” 하며 칭찬과 함께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공개수업은 성공적이었고, 수업을 마친 담임 선생님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잠깐 수업을 참관하신 교장 선생님도 “엄지척!”을 하며 흐뭇하게 나가셨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어머님들은 아이들에게 “참 잘했다!”라며 딸기와 찐빵을 간식으로 나눠 주었습니다.
공개수업을 마치고 온 길손이는 그날 밤부터 머리에 열이 펄펄 나면서 온몸에 빨간 점이 솟아오르고 팔다리가 쑤시고 아파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길손이 부모님은 처음에는 대수롭잖게 생각했는데 하루가 지나자, 헛소리를 해대며 며칠 동안 심하게 앓았습니다. 온몸이 아프고 힘이 빠져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길손이가 이렇게 심하게 아픈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습니다.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예수님과 성모마리아 님께 인사드릴 수 없었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성당을 드나들던 길손이의 발길이 어느 날부터 뚝 끊기자, 신부님과 원장 수녀님은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던 중 ‘야고보 길손이가 몹시 아프다’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듣고, 모든 신자와 함께 길손이의 병이 낫기를 바라며 예수님과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어느 날 행정복지센터에 들렀던 길에, 신부님은 보건지소의 공중보건 의사 선생님을 차에 태워 길손이 집으로 직접 모셔 왔습니다. 젊은 의사 선생님은 길손이의 몸 상태를 살펴본 뒤 ‘수두’라고 진단하며 말했습니다. “다행히 수두 예방접종을 받았으니 열흘 정도만 고생하면 괜찮아질 거예요. 물집에 생긴 딱지를 떼면 흉터가 남을 수 있으니 절대 만지지 마세요.” 그렇게 주사를 놓고 돌아간 뒤, 길손이는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꿈속에서 누군가가 마구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길손아, 야고보야! 아직도 자고 있느냐? 이제 다 나았으니 얼른 일어나거라.” 거룩한 목소리에 놀란 길손이는 눈을 번쩍 떴습니다.그 순간, 방문을 막 나서는 낯익은 뒷모습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모습은 헛것이 아니었습니다. 길손이를 걱정해 찾아오신 성모님이셨습니다. 그것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예수님과 성모님께 인사를 드려 온 길손이의 정성에 감동하신 두 분께서 길손이에게 내려주신 보답의 선물이자 은총의 기적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방 안은 조용했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길손이 머리맡에는 삼베 밥보자기로 덮인 개다리 밥상이 놓여 있었지요.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상을 보자, 뱃속에서 ‘꼬르륵’ 하고 배고픈 소리가 났습니다. 길손이는 얼른 밥보자기를 들춰보았고, 그 순간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힌 쪽지 한 장이 툭 떨어졌습니다. 아픈 길손이를 혼자 두고 장터에 나가며 어머니가 남긴 편지였습니다. 아들의 공책 한 장을 찢어, 연필심에 침을 묻혀 꾹꾹 눌러 쓴 그 쪽지에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길손아, 엄마가 차려놓은 밥 먹고, 어서 일어나거라! 사랑한다. 엄마가.’
짧은 편지를 단숨에 읽은 길손이는 눈이 둥그레졌습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편지를 남겨두셨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길손이 아버지가 통영장에서 사 온 개다리소반 위에는, 꾹꾹 눌러 담은 하얀 쌀밥과 시래기 된장국, 그리고 길손이가 좋아하는 자반고등어 한 마리가 정성스럽게 차려져 있었습니다. 배가 몹시 고팠던 길손이는 식사 전에 얼른 기도를 드리고, 하얀 쌀밥 위에 짭조름한 자반고등어 살을 발라 얹어 된장국과 함께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식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 그날은 마침 부활절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짹짹거리는 참새 소리가 눈부신 햇살 속에 정겹게 들려오는 아침입니다.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아침 종소리가 감골마을을 은은하게 감싸 안습니다.
길손이는 두 손을 모아 성당을 향해, 원장 수녀님께 배운 아침기도를 조용히 바칩니다.
가느다란 헛소리가 들려오는 낌새를 느낀 어머니는 부엌에서 아침을 짓다 말고 얼른 방으로 달려와 길손이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세상모르고 얼마나 잤는지, 길손이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벽시계는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창틈으로 비쳐드는 햇살에 기분이 상쾌해졌습니다.
언제 아팠나 싶을 정도로 기운이 되살아났고, 거울에 비춰본 겨드랑이와 몸통의 붉은 반점도 흉터 하나 없이 깨끗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길손이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착한 우리 아들 야고보에게 큰 은총을 내려주셨구나!”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조용히 기도드렸습니다.
“예수님, 성모님! 우리 아들 야고보를 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기도를 마친 어머니는 부활절 날 원장 데레사 수녀님이 챙겨주신 삶은 달걀을 길손이 앞에 불쑥 내놓았습니다.
그다음 날부터 길손이 야고보는 다시 예전처럼 벽돌 성당을 드나들며 학교를 오가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두 손을 모아 성당을 향해 인사드립니다.
“예수님, 성모님! 길손이 오늘 학교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예수님, 성모님! 길손이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 오늘 하루도 저를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꾸벅…!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 행정복지센터를 지나면, 우체국 뒤편으로 길손이가 다니는 금빛초등학교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햇살에 반짝이는 교문 너머, 교무실 앞 국기대에서는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이며 마치 길손이를 향해 “어서 와!” 하고 손짓하는 듯합니다.
며칠 동안 수두로 앓아 누웠던 길손이는, 다시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기쁨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책가방 끈을 꼭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집니다.
학교 담벼락에 그려진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반갑게 인사하듯 눈에 들어오고,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길손이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집니다.
교문 앞에 다다르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길손이다!” 하고 외치며 달려옵니다.
길손이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친구들을 맞으며, “나 이제 다 나았어!” 하고 씩씩하게 인사를 건넵니다.
친구들의 따뜻한 눈빛과 웃음소리에, 긴장했던 길손이의 마음은 어느새 눈 녹듯이 포근해졌습니다.
2018년 4월 개암 김동출 지음

첫댓글 따뜻하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김봉균 선생님 감사합니다.
시, 수필, 동화까지 영역을 넓히는 시인님의 왕성한 창작력이 건강의 지름길이라서 쌍수들어 환영합니다.
귀한 동화에 미소로 응원합니다.
길손이와 함께........
감사합니다. 2018년 어느 날 써 두었던 원고를 다시 꺼내 수정하였습니다.
어느 날 성당 "쁘레시디움" 주회에서 "성체조배"에 대한 쉬운 예를 어느 형제가 쉽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일테면 길손이가 아침 저녁 에수님과 성모님께 인사드리는 것이 바로 "성체조배"라는 말을 듣고 이 글을 착안하게 되었던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