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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광장 시인탐방【77】김지율의 시인과의 인터..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 얏호, 함성을 지르며,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
보라, 하늘을.
아무에게도 엿보이지 않고
아무도 엿보지 않는다.
얏호, 함성을 지르며
자유의 섬뜩한 덫을 끌며
팅! 팅! 팅!
시퍼런 용수철을
튕긴다.
-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 김지율: 선생님, 안녕하세요. 정말 무더운 여름이죠? 어떻게 지내시고 계신지 근황을 여쭙겠습니다.
□ 황인숙: 제가 여름을 무척 좋아하는데, 이번 여름은 좀 과하지 않은가 싶게 덥네요. 살림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겨울이 가장 힘든 계절이라지만, 이 더위라면 여름도 아주 힘들 거예요. 빈둥빈둥 놀아도 떳떳할 날씨인데, 서늘할 때 열심히 빈둥거려서 지금 열심히 일하고 지내고 있어요. 이상하게 칠팔월이랑 세밑에 저는 일이 많더라구요. 음, 동네 몇 군데에 낮에도 고양이밥을 주고 있는데, 다니는 동안 완전 땀범벅이 돼요. 더운 것도 더운 거지만 비둘기들 등쌀에 낮밥 셔틀을 패스하고 싶은데, 새끼고양이랑 아픈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어서 그러지도 못하고……. 가끔 카페에서 눈꽃빙수를 먹는 게 큰 낙이에요.
■ 김지율: 몇 년째 매일 같은 시간,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이 이 더위엔 정말 지치실거 같아요. 폭염이 해마다 더 심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배우가 수상소감에서 인류와 동물을 위협하는 기후변화는 현실이라고 했던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선생님 글을 읽거나 이야기(라디오)를 들으면 관계와 인연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이고 적극적일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는 어떠신지. 어릴 때는 어떤 성격이셨어요?
□ 황인숙: 글쎄요. 특별히 개방적이거나 적극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고 할까. 친구는 많은 편이에요. 한 번 닿은 인연이 길게 가는 편이고, 또 이 나이에도 새 친구가 생기기도 하니까. 마음이 헤픈 건가. 어릴 때? 순하다, 내성적이다, 고집이 세다는 말을 흔히 들었는데……글쎄요, 내가 겁 많고 비겁한 것에 수치심을 느낀 적이 종종 있었던 생각이 나네요.
■ 김지율: 맞아요. 집 없는 고양이들을 그렇게 보살피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텐데, 내성적이고 비겁한 것에 수치심을 느낀 아이였다는 말에 끄덕끄덕하게 돼요. 등단작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를 읽으면서 무척 기분이 좋아지는 시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뭔지 모를 꿈틀거리는 이상한 에너지를 느껴진다고 할까요. ‘가시덤풀 속을 누벼누벼/ 너른 들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쥐와 뛰어놀리라/ 참새 떼를 덮치리라/ 그들은 놀라 후다닥 달아나겠지/ 아하하하/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 이 시에서 자유와 야생의 ‘까망 얼룩 고양이’는 곧 시인 자신일텐데, 문단에 나오기까지 등단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 황인숙: 여느 문청처럼 등단하기까지 제 재능에 대해 크나 큰 자만심과 그에 대한 미세한 의심 사이를 오가며 지냈죠. 신춘문예를 비롯해 문단에 첫 발을 딛게 되는 데는 운도 크게 작용해요. 심사위원의 취향과 맞았다든가, 눈에 번쩍 띄는 다른 응모작이 마침 없었다든가. 제 경우 두 가지 조건이 다 갖춰졌었어요. 뒤에 듣기로는 최종심에 오르지 못했던 듯해요. 그런데 최종심 과정에서 당선작을 고르지 못하던 차에 제쳐뒀던 응모작들을 뒤적이다가 제 시가 눈에 뜨인 거죠. 사실 은사이신 오규원 선생님이 시 예닐곱 편을 추려주시고, 묶는 순서도 정해주셨거든요. 어필하기 유리하라고, 말하자면 선생님이 높은 점수를 매긴 시들을 앞세웠는데 정작 그 시들은 심사자들 눈에 뒤의 시들을 마저 다 읽을 만하지도 않게 보였던 거죠. 시를 평가하는 잣대가 다 다르잖아요. 음……물론 , 예심은 통과할 만하게 쓴 다음의 얘기죠.
■ 김지율: 네 어마 무시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네요.(웃음) 최근에 가장 많이 생각했던 단어나 ‘시적인 순간’이 있으셨다면?
□ 황인숙: 최근 가장 많이, 신음처럼 혼잣말로 뱉어지는 말이 ‘아, 어떡하지?’예요. 이유는 비밀이고요. ‘시적인 순간’?……내가 시적인 것으로부터 너무 멀리, 까마득히 떨어져 있구나, 라는 걸 문득문득 깨닫는 순간, 어찌나 막막하고 비감한지, 거의 시적인 느낌이죠.
■ 김지율: ‘아, 어떡하지?’이건 제 십팔번이기도 해요. 선생님~
# 네가 사랑한 것이 이토록 추한 것임을 안다면!
아아 남자들은 모르리
벌판을 뒤흔드는
저 바람 속에 뛰어들면
가슴 위까지 치솟아 오르네
스커트 자락의 상쾌
「바람 부는 날이면」
■ 김지율: 초기의 시들이 대체적으로 발랄하고 감각적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발랄함 이면에 놓지 않는 끈이 있다면 타자에 대한 윤리적 시선이예요. 고종석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선생님의 이러한 윤리성은 연민의 주체와 객체가 위계적이지 않고 나란하며 이것이 평등인데, 이 평등은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한다고 했습니다.
□ 황인숙: ㅎㅎ, 고종석 씨가 그렇게 어려운 말을 했었나요? 말씀이 좀 어렵네요. 젊었을 때는 제일의 가치를 자유에 뒀었는데 나이 들면서 평등 쪽으로 옮겨졌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그런데 자유와 평등은 서로 받쳐주는 개념이잖아요. 평등하다는 건 자유의 몫이 평등한 걸 말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불평등에 억울해하거나 분노하는 거 아닌가? ㅎㅎ, 제가 지금 딴 소리를 하고 있죠? 김지율 씨가 제게 묻는 건 다른 얘기 같은데요.
■ 김지율: 같은 얘기인데요(웃음) 흔히 ‘연민’의 시선은 누군가를 혹은 무엇을 위계 짓는 시선이 아닌가 해요. 그래서 평등하지 못하고, 우월감을 느끼게 하지만 ‘윤리’라는 말 속에는 스스로의 존재방식을 치열하게 고민한다고 할까요. 폭력적인 시선이 아닌,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의 시에서 타자에 대한 시선과 태도는 위, 아래 없이 평등한데, 그것은 삶의 태도이면서 타자의 수용자세가 아닐까 해요.
다른 질문인데요, 특히 선생님의 시집에는 어둠과 밟음의 폭이 넓습니다. 이것은 시인의 시선과 사유의 폭이 넓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시선’에 대해 여쭤도 될까요? 위에서 말한 시선이라는 말은 곧 태도와도 비슷한 말일 텐데,
□ 황인숙: 제가 뭘 깊이 생각하고 무엇 하나를 두고 천착하고, 그러는 걸 아주 못해요. 그래서 한 시집에 들어 있는 시들이 주제가 제각각이죠. 글쎄, 시야가 넓고 사유의 폭이 넓은 거면 좋겠는데 제 방만의 소치가 아닌가 싶네요.
■ 김지율: 두 번째 시집 『슬픔이 나를 깨운다』 시인의 말을 옮기겠습니다.
‘이왕이면 가장 나다우면서도 아름다운 사진, 그것이 가능치 않다면, 나 같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사진, 나는 그런 사진을 원한다./ 나 같지, 않더라도?……/ 그래, 나의 詩가 그렇기를.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존재가 그렇기를!/ 나 같지 않더라도 아름답기만 하다면 그 사진은 나를 절멸에서 건져올리리라. / 왜냐하면, 그걸 원한 사람이 바로 나니까.’
여기서, ‘나 같지, 않더라도 아름답기만 하다면’은 어떤 의미일까요?
□ 황인숙: ‘위선은 선에 대한 악의 경배다’인가, 그 비슷한 경구를 말하고 싶네요. 저는 위선보다 위악이 싫어요. 대개의 위악은, 한 일본 만화에서 읽었는데, 노악이래요. 제 속의 악이 노출된 걸, 속은 선한데 악으로 포장한 척한다는 거죠. 그 말에 십분 동감해요. 선하려고, 아름다우려고, 노력하고 노력해도 선해지고 아름다워지기 힘든데, 제 추함과 악함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걸 솔직하다고, 진실하다고 좋게 받아들이는 건 좀……제 말이 또 중구난방이네요. 그게 제 윤리적 미감인데, 그래서 제 시가 나이브하고, 충격이라고 할 만한 걸 못 주나봐요. 아무튼 저는 그게 진상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나의 추함’을 확정짓기보다 현상적으로 확실한 아름다움을 택하겠다는, 그런 의미예요. ㅎㅎ, 그런데 정말 그런 의미일까요?
■ 김지율: 가령 이런 말씀, ‘솔직’이란 옷을 입고 삿됨과 속됨과 추함과 비천함을 발산할 것인가, 내 시가 최소한 세상에 악취를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신 말씀일거 같은데, ‘위선이란 악이 덕에 바치는 찬사’라는 라로슈푸코의 말을 언급한 의도 속에도 그런 의미가 느껴져요.
빼고 싶어도 뺄 수 없는 질문입니다, 등단작도 그렇고 대부분의 시집에서 고양이 이야기가 많습니다. ‘캣맘’, ‘세 고양이(란아, 보꼬 , 명랑이)의 엄마’, ‘길고양이의 대모’, ‘고양이 시인’등으로 불립니다. ‘고양이들이 사라진 동네는 사람의 영혼이 텅 빈 동네’(「고양이를 부탁해」)라거나 식당에서 먹다 남은 생선이나 고기를 가방에 챙겨 넣으며 고양이들이 먹을 걸 생각하면 흐뭇해진다고 하셨어요. 고양이를 언제부터 키우셨는지, 고양이에 대한 슬프고 재미있는 ‘별짓’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아요.
□ 황인숙: 아, 고양이! 세 고양이랑 집에서 함께 산지는 10년 남짓이에요. 얘들을 비롯해서, 고양이들에 대한 사연이 대하수기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아요. ‘오늘도 무사히!’를 뇌이고 다닌답니다. 고양이 얘기로만 한나절을 보낼 수도 있지만, 이 자리에서 하기에는 그렇죠, 뭐. 제가 비를 엄청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비 오는 게 아주 싫어요. 비도 오긴 와야 하니까, 정 비가 오려면 새벽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오전 열시에서 오후 한시 사이에 왔으면 좋겠어요. 저랑 고양이들 편하게요.
네가 사랑한 것이
이토록 추한 것임을 안다면!
나를 아연하게 하는 것, 절망감과 분노로 나 자신을 물어뜯고 싶게 하는 건, 이 공포스러운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내가 추함을 멈출 수 없다는 것.
‘추함이 내 본질’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참이건 아니건 그 말은 자기 사면의 도구로 쓰일 것이기에.
詩가 나를 정화해주기를, 그래서 네게 주는 것이 조금이나마 더 가치 있는 것이 되기를!
나를 구원해주기를!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시인의 말
■ 김지율: 고백하자면, 시를 처음 공부할 때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시집 뒤의 표사를 몇 번씩 읽고 필사를 했어요. 나를 아연하게, 절망감과 분노로 물어뜯고 싶게 하는, 공포스러움과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추함’이 ‘내 본질’이라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의문이 생겼었어요. 어떤 것이 ‘추함’인지, 과연 시가 우리를 정화해주고 구원해줄 수 있을지, 혹 그 의미가 무엇인지?
□ 황인숙: 그냥 짧게 대답하자면, 시를 포함한 모든 글에는 어떤 미화작용이 있어서, 그 작자의 추함을 감추기 쉽다는 것이겠죠. 이걸 길게 얘기하자면 끝이 없을 텐데. 아무튼 사람은 자기가 쓴 글만큼 아름다워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 열이 활활 나는 삶의 손바닥으로,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아아아, 니! 아니다!
이건 삶이 아니야.
아, 날것이여.
날것. 날것. 날것들이여.
나를 두들겨, 깨뜨려,
내 안의 날것을, 아직 그런 것이 있다면,
깨워다오.
이 허위인 삶을
쪼고, 쪼고, 물어뜯어다오.
그런데, 어디 있는가, 날것들이여.
내 뭉실한 삶이
거친 이를 가진 입이 되어
쩍 벌어진다.
질겅질겅 씹고 싶은 날것들이여.
꿀꺽 삼키고 싶은 날것들이여.
꿀꺽꿀꺽 삼켜 구토하고
배 앓고 싶은 날것들이여.
열이 활활 나는 삶의 손바닥으로
나를 후려쳐다오. 날것들!
「열이 활활 나는 삶의 손바닥으로」
■ 김지율: 여섯 권의 시집 표지의 캐리커처에도 드러나지만 긴 파마머리를 오랫동안 지켜온(?)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혹시 다른 헤어스타일을 생각해보신 적 없으세요? (웃음) 산문 『목소리의 무늬』에도 생활방식을 바꿔 보고 싶어서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소설가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 황인숙: 그러게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보는 사람들이 지겹겠네요. 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제 수줍음 때문일 거예요. 바뀐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한 어색함? 확실히 제 나이에는 이 머리가 별나기는 할 텐데....쪽을 질 수도 없고 참...올리고 다닐까?
■ 김지율: (웃음) 저도 고등학교 때 정말 짧은 숏 컷을 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요즘 다시 해볼까 생각중이예요. 덥기도 하구요. 시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황인숙: 운율? 진부하죠? 전언 자체가 운율을 담고 있는 경우도 있지요. 심급을 흔든다고 할까. 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독자의 마음이 흔들리게 하면 좋겠어요. 요사스럽게건 순정하게건.
■ 김지율: 자주 듣는 음악이나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으실거 같아요
□ 황인숙: 엣날에는 영화 ‘에덴의 동쪽’ 주제가를 즐겨 불렀었어요. 자주 듣는 음악이라.....달리아 라비의 ‘러브 송’이랑 또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 레나드 코헨 노래도 즐겨 듣고,,.글쎄요...1960년대와 70년대 칸초네 좋아해요. 잡다하게 좋아해서...
■ 김지율: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까요. 시 속에는 숨을 수 있지만 산문은 그 사람 그대로 드러난다고 했던 이성복 선생님의 말이 기억납니다. 시집을 읽을 때는 선생님이 까칠하시고 어려울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산문집을 읽으면서 편견이었다는 걸 느꼈어요. 솔직하고 따뜻한 느낌의 글들이 그대로 전해졌다고 할까요. 어떤 시인들은 산문을 기피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시의 신비감(?)을 깨지 않으려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선생님께서는 산문을 시만큼 많이 쓰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 황인숙: 산문이라기보다 잡문인데, 예, 어떤 산문은 시 못지않은 즐거움을 느끼면서 써요.
산문을 많이 쓰면 말을 경제적으로, 명료하게 사용하는 훈련이 되는 듯해요. 사고를 길게 논리적으로 끌고 나가는 힘도 생기는 듯 하고요. 제게는 시 쓰기에 도움이 돼요. 붙어 앉아 달려들어야 쓸 텐데, 지레 질려서 살살 피해 다니곤 했지요. 이제 닥치면 뭐라도 만들 자신이 붙으니까……. 그렇지만 아까 말씀드렸듯, 시는 물론이고 산문조차도 사람을 곧이곧대로 드러내지는 못하죠. 예외는 있겠지만. 제 시를 읽고 왜 저를 까칠할 거라 생각하셨을까요? 저는 아마도 까칠한 사람이 아니에요. ㅎㅎ,
# 강가에서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은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골몰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강」
■ 김지율: 아마 이 「강」은 많은 시인과 독자들이 좋아하는 시가 아닐까 해요. 저도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한 대 맞은 거 같았어요. 대개 시는 어떨 때 쓰시고, 퇴고의 과정은 어떠신지,
□ 황인숙: 아주 오래 전에는 즉흥적으로 썼는데요, 언제부턴가 잘하면 시가 되겠다 싶은 생각이 떠오르거나, 시적으로 구성할 만한 상황에 놓이면 메모를 해요. 책을 읽다가 혹은 라디오를 듣다가, 어떤 말 한 마디, 어떤 낱말 하나가 이상하게 마음에 파장을 일으킬 때가 있어요. 그것도 메모해요. 대개의 경우 그 메모들 중 하나를 골라 갖고 놀죠. 귀 기울이고 만지작거리고. 정작 시를 쓰고 퇴고하는 시간은 짧은 편이에요.
■ 김지율: 문득 떠오르는 생각, 선생님의 시에서는 무언가를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놓기 위해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무얼까요?
□ 황인숙: 그래요? 제 시 중에서 실의에 빠지고 체념에 찬 시들을 떠올리셨나 보네요. 기죽은 시들을.
■ 김지율: 무언가를 모으고, 관계를 맺고 ‘내 것’이라고 틀을 만들어 소유하기보다 자유가 많이 느껴지는 혹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상처주기보다 상처 받는 것을 택한다고 할까요. 뭐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다음 질문입니다. ‘같이 밥 먹자는 사람이 없다는 건 외로운 일’이죠. 인기 많으신 선생님은 그럴 일이 없겠지만 때로는 ‘숨바꼭질을 하다가 마지막 술래가 되어 해 저문 공터에 혼자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어느 산문에서 읽었어요. 지금 선생님에게 이 ‘혼자’의 의미는 무엇인지,
□ 황인숙: 꽤 오래 전에 쓴 산문이에요. 아직 젊고 외로울 기력이 있을 때. 한 친구가 장가간다는 말을 듣고 그런 기분이 들었었죠. 왠지 그 친구를 딴 세계에 빼앗기는 기분? 지금은 우선 ‘혼자’도 아니고, 외로울 시간이 없네요. 외로움도 사치인 팔자여라~.
■ 김지율: 아직도 아이스크림 ‘체리주빌레’ 좋아하세요? (웃음)
□ 황인숙: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하는 이름이죠? 워낙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요. 체리주빌레 먹어본지 오래네요.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가 본지도 오래고. 요즘은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어요. 동네 잡화점에서 파는 거요. 원 플라스 원일 때 많이 사 쟁여두는데 금방 없어져요. ‘체리주빌레’는 미국시민인 조카를 그리는 수필이에요. 10여 년 전 그 애가 서울 다니러왔을 때 둘이 대학로에 있는 베스킨라빈스에 종종 갔었거든요. 그 애는 꼭 체리주빌레를 먹었죠. 그 전에 봤을 때는 ‘꼴통’ 꼬마였는데, 우수에 찬 소년이 돼 있었어요. 그 애는 한국어를 못하고 저는 영어를 못하니 말이 통하지 않았죠. 번갈아 무슨 말을 꺼내려다가 말고, 말고 하면서 눈을 마주치며 웃기나 했죠. 아이스크림을 핥으면서요. 좀 안타까웠지만 불편하지는 않았어요. 애틋한 정이 퐁퐁 솟구쳤죠. 아, 체리주빌레 먹고 싶다.
■ 김지율: 아직 해보지 않았지만,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으세요?
황인숙: 고양이밥 돌리는 일꾼 두기. 한 달에 100만 원 주면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토요일이랑 일요일은 제가 맡고 그 이가 쉬는 거예요. 이루기 힘든 꿈이죠.
■ 김지율: 아, 그건 저에게도 슬픈 일이네요. 후배들이나 시 쓰는 문청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나 영화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 황인숙: 책? 너무 많은데....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는 장석주 시인의 산문집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랑 차이자위안의 <독서인간>이 생각나네요. 둘 다 강추! 영화는 근래 본 영화가 없어서......<비틀즈의 에잇 데이스 어 위크> 좋았고요. <피아니스트 셰이모의 뉴욕소네트> 권하고 싶네요.
■ 김지율: 근데, 핸드폰이 없으시면 불편하지 않으세요?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 황인숙: 그냥 싫어요. ㅎㅎ
■ 김지율: 그러게요. ㅎㅎ 저도 그럴 때가 많아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용산에 살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용산은 우리 역사에서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던 장소이고,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곳입니다. 서울이지만 서울과 또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는 용산이라는 장소가 선생님 삶과 시에 아주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 황인숙: 용산사태……기가 막히지요……. 그 동네는 여기서 좀 떨어져 있어요. 용산이 꽤 넓은 구역이에요. 제가 사는 동네는 남산 서쪽 자락에 있어요. 6.25전쟁 멈췄을 때부터 살아온 북한 출신 토박이 어르신들이 아직 강건하게 동네를 지키고 계시죠. 그리고 몇 년 새, 살림이나 직업을 함께 하는 청년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어요. 서민 주거지로는 드물게 시내 한복판에 남아 있는 동네여서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처음 여기 살던 30여 년 전에도 재개발 소문이 돌았는데, 전설에 의하면 그 훨씬 전에도 재개발 소문이 있었대요. 영영 재개발 안 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여기가 진짜 원조 서울이라고 생각해요. 강남이나 그런 데는 포스트서울? 일그러진 서울이에요. 아, 제가 ‘여기’라 하는 곳은 용산이 아니라 용산구 쪽 남산, 하고도 해방촌이에요.
■ 김지율: 진짜 서울이라는 말이 와 닿아요. 그리고 저는 ‘용산 사태’라는 말을 아직 입에 담지 못하겠어요. 정말 죄송해서요. 아까 하신 말씀 중에 무조건 담장을 허무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그냥 그대로 본래 역할을 하게 두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그냥 그런 생각, 때로는 경계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생각, 그 경계에서 누군가는 또 한참 더 고민할 것이고 또 무언가를 한없이 기다릴 것 같아요. 긴 시간 솔직한 답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운 여름 잘 지내시고 건강하세요. 여름 견디느라 고생하는 고양이들도~ 모두 안녕^^
[출처] 시인광장 시인탐방【77】김지율의 시인과의 인터뷰[8]‘리스본行 야간열차’를 타고, 황인숙 시인과의 인터뷰 ■ 대담: 김지율(시인,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웹진 시인광장 2016년 11월호[통호 제91호]|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