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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나는 꾸준히 묵언의 자세로 일상의 공허함을 달래며 스치는 환자들에게도 가벼운 목례와 인사를 건네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 해져 왔고, 과부하에 걸려 자책하는 시간도 지났다. 체력을 복구하는 일상 루틴으로 킬링타임의 중심이 잡혀 왔다.
계절은 여름에서 낭만틱한 가을로 가고 있음을 먼 산 스카이라인에서 흰 구름이 떠가는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나의 주된 산책로 두류정수장이었던 공원의 우람한 느티나무 아래에서 윌리엄 프로스트를 흉내 내는 흔들의자의 환상 로망 맛도 보게 될 시간이 저 멀리 피안에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다. 인내하는 자만이 존재할 수 있다. 살아 움직여야 정의다-란 말이 옳다.
그래서 나는 폐쇄된 공간의 K城 城門을 이탈해보고 바깥 공기를 좀 마셔보는 예행 연습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비밀공간이란 내부감성과 그 외형이 주는 이미지가 어떤 것이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독자적인 로드 워킹 및 氣候 적응의 맛보기로 이쪽 구역 도시 거리를 거의 3개월 여만에 내 눈으로 스켄 해보자는 것이었고, 체험하는 일이었다.
페널티를 맞아도 그 스릴을 집행해보기로 했다. 환자는 보호자와 동행하거나 간호사, 간병인의 보호 아래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환자도 사전 조치를 제공하고 이동이 가능 함을 후일 알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고 파생’의 원인과 책임소재 향방을 제어하려는 측과 일괄 통제를 피하려는 ‘자유로움’에 있다는 내부 규범 때문일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원장님이 10층에서 E/V로 3층 아래 7층 재활 물리 치료실로 델고 갔다.
넓고 깨끗한 분위기에 침상이 잘 정돈되어 있고 탁 트인 창밖의 전망이 한 눈에 전개 되었다.
흠~ 이제 보통 사람이 사는 동네 가까이 왔군! 일종의 ‘환희’라면 그간 「자유」를 반납하고, 얼마나 등신 머저리 행세로 지나온 것인지에 대한 새삼스레 자신에 대한 轉落과 憐愍이 성큼 다가왔던 것이다.
물리치료사와 함께 하체운동 바이커 이용 주의 사항을 자세히 설명해 주며 오후 3시 이후는 자유롭게 사용하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과격하게 덤비지 말고 서서히 양질의 자세로 체력을 키워나가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스텝식의 강도 조절과 그립감도 좋아 안성맞춤이었다.
-그 전에는 각층의 물리치료 환자분들이 간병사를 대동-각종 워커바나 휠체어를 이용해 이동 시간대별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따금 원장님의 업무공간과도 가까워 프리토킹도 가졌었다.
유리벽을 두고 바깥 분위기에 더 가까이 접근해보니 넓은 도로 또는 도시철도 오버브릿지 너머 여러 간판중 ‘돼지 국밥집’ 시선이 딱 갔다. 흠-그래, 조만간 그 뜨끈한 향수를 달래 줄테니 쫌 차마(참아라)!-나를 달랬다.
바이커 페달을 밟으며 국밥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물론 이어폰은 귀에 달고 있었다. 그후 나는 토 일요일을 빼고 7층에서 운동을 했고, 첫 물리치료실을 이용하고 올라 올때 E/V이용에 혼선이 와서 오르내리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판별력에 착오를 일으키는 불안이 엄습해 멍청한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마치 머리 뚜껑 안에 모래 한 줌이 뿌려진 것 같았다.
-하여튼 10층에서 7층의 재활물리치료실까지 오르내릴 수 있는 왕복 티켙팅을 받은 것은 動線의 자세나 입원 생활의 안정도가 높다는 판단이리라. 내가 오른손 엄지를 하방으로 꺾어 간호사실 데스크에 보이면 출입문을 여닫아 주는 매뉴얼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기회로 대놓고 5차에 걸쳐 탈선헤프닝에 맛을 들여 도망자의 짜릿한 기획 신세를 체험한 것이다.
1차〕 離脫은 용의주도하게 7층을 바로 통과해 1층 로비 옆 약국에 가서 드링크 1박스를 구입해 7층에서 운동을 하고 10층으로 느긋이 귀환해 흐뭇한 성공을 자축했다. 드링크 박스는 옆으로 슬쩍 감추고 재빨리 이동해버렸다.
동선 이탈이라고 저격한다면 “이것 봐 드링크 사러 갔다 왔습니다”라고 잔재주 준비를 했다.
가족들이 온 것도 아닌데 비타 박스가 있는 걸 본 간병사는 나의 움직임을 간파했으나 그냥 지나쳤다. 머 우짜겠노?
2차〕-10층에서 바로 1층 버튼을 눌렀는데 중간에서 환자 가족들이 몇 명 타고 내려갔다.
1층 로비는 좁고 사업용, 사무실 구조 용도로 보였지만 空室이 많은 그대로 조명도 없어 어둡고 음습했다. 드디어 건물 1층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섰다.
전형적인 막바지 여름 날씨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훅 들이닥쳐 고무망치로 앞머리에 잽을 한 방 오지게 얻어걸리는 듯했다. 그러나 머리를 두서너번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환자복 차림 그대로 스립파를 신은 체 좌우 거리를 약 5분간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어느 점포의 쇼윈도에 길죽한 바켙빵 2개를 사서 건물 안으로 신속히 뛰어 들어왔다. 7층 물리 치료실에서 바이커 페달을 밟다가 빵봉지를 들고 내 입원실로 귀환했다. 사구려 밀가루빵은 니맛도 내맛도 없어 토막을 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인근 상가는 활성화 되지 못한 거리였다.
3차〕 이제는 좀 더 멀리로 가보자 하고 E/V를 타고 버튼을 누르려는데 사복의 젊은 여성 한 분이 대뜸“환자분 어데 가세요, 혼자 외출하면 안 돼요!” 하고 퉁명스런 멘트를 날리는게 아닌가?
허걱!
“7층에 운동하러 갑니다. 물리치료실 운동!”하고 위기를 모면했다.
와우~ 간 떨어질뻔 했네- “씨발 여기도 악명 높은 KGB가 파견 나와있나? 진짜 골 때리네”
3차는 외출 이탈 실패!
근데 이 여성은 다른 층의 간호사로 혼자 움직이는 환자에게 관성적으로 한마디 던진 것이 아닌가 분석이 된다. CCTV를 분석하고 동선을 파악했다면 이유를 물어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동선 파악-사실 그 딴거 없었다. ㅋ 재밌는 구석이 있다.
4차〕 이제는 간땡이가 배 밖으로 나왔다는 얼빵한 자신감- 여차하면 K 城으로 부터 퇴거하여 집에 가겠다고 논리 무장을 하고 있었다. 10층에서 1층으로 직 강하하니 출입 로비에 우산을든 손님들이 있었고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려 빗물은 이미 人道를 적시고 있었다.
넓은 왕복 차도에는 차량들이 바쁘게 달리고 도시의 유목민들은 비를 맞거나 우산을 들고 오갔다. 나는 도심의 비열한 거리에 나선 환자다. 비를 맞으며 방향타를 잃고 서성거리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그 쫓기는 듯한 모습이 고립된 이방인임을 느낀 참담 함이었다
뒤돌아서 내가 나온 건물을 살펴보니, 출입문에만 간판명이 붙어 있고 여러 종류의 간판 속에 병원명은 가려져 있는 형상이었다. 맨 위층을 올려다보지 않으면 찾기가 혼란스러웠다.
여름의 비를 맞은 비주얼도 의미 있는 순간으로 기억한다. 비에 맞아 눅눅함을 느끼고 감기들면 안되지! 간호실에 요청해도 될 止瀉劑 한 팩을 그냥 약국에서 픽업해 7층 운동을 마치고 나의 입원실로 돌아왔다.
5차〕 사실상 돈 쓸 일이라곤 없었지만 거리 기후에 적응하고 로드워크 경험을 쌓는 것이 목적이다. 현금을 찾아보려고 인근 은행 위치를 간호 학생에게 정보를 취득해 놓았다.
시중은행 2개가 거의 비슷한 거리에 있음을 간파하고 실행에 옮겼다.
바로 1층으로 다운해 나서니 후끈거리는 자욱한 열기의 날씨가 사람 잡아먹을 태세였다. 바로 오른쪽으로 꺽어 주민에게 물으니 곧장 조금 가면 00은행이 있다고 했다.
낯선 거리를 환자복에 스리퍼 차림으로 허겁지겁 약100여 Μ를 걸어가 갈래길 차도의 건널목을 건너가보니 방향을 잘못 잡아 은행 뒷문이었다. 택도 없이 위험한 펜스를 넘어볼까 하다가 급히 돌아가 몇 계단 올라 ATM기에 당도했다. 카드를 넣고 리딩을하는 순간 秘番이 망각 되어 살짝 맛이 가버려 숨 고르기를 한차례 한 후 재빨리 수첩을 꺼내 들고 확인!
무사히 현금 수령 완료-은행을 나와 달리지는 못하고, ‘에라이 될되로 돼뿌라’ 하며 느긋이 걸어 입원실 건물 A/V에 올라 재활 물리 치료실에 기 들어간다. 바이커 페달을 밟으며 환상적 연주 야마다(山田)기타곡을 들으며 안전감을 회복해 복귀했다. 작은 일에도 인간의 병환 심성은 현실 환경에 나약해지는 것이 상정인 모양이다. 방황의 離脫 成功에 머든지(?) 행동하면 돼내! 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간은 나의 편으로 기울었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참, 사람 사는 게 아니다. 시간이란 풍화의 황무지를 헤매는 행렬들은 장야의 나그네들이다.
걷기에 매진하는 환자분들은 그리 많지 않다. 환자복을 입지 않고 일반 간편복을 입은 몸집이 큰 70대의 여성 한 분이 5시 기상 전에 일어나 워크바를 밀며 걷기를 열심히 하는 분도 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은 지팡이를 짚고 발빠르게 걷기를 시도하다 간호사로부터 심한 제지를 받기도 한다.
연이어 나와 Q(율부리너)가 걷기에 출동한다. Q씨는 최근 퇴원했다가 다시 입원한 여성분의 뒤를 어김없이 졸졸 따라다니며 흥미를 제공한다. “왜 자꼬 따라다녀?” 라고 돌아서 항의를 해도 묘한 자연성을 본다. 그렇다고 무슨 연유가 개입한 것도 아닌 잠간의 혼돈일 뿐이다.
식사 후엔 소파에 7-80대 여성분들이 여럿 앉아 짧은 대화들을 나누는 가운데 휠체어를 굴리는 분, 안전 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레 이동하는 분, 워크바 박스에서 무언가 간식을 꺼내 먹는 분, 무언가 잃어버린 듯 멍한 표정 등 각종 미스터리 病原에 따른 흐름이 있다.
나는 긴 소파의 끄트머리에 앉아 무신(무슨) 靈的 성취라도 하는 양 요가 자세로 개폼 잡고 앉아 그 분위기에 섞이지는 않는다. 무슨 대화를 이어갈 내용이 없는 지병, 비밀공간인 가정사, 개인사들은 서로 언급하지 않는 불문율로 굳어져 있었다.
내가 앉은 맞은편 병실에 입원한 지 몇일 되지 않은 여성 한 분은 자지라 지듯 “아이고 아파~ 아이고 내 죽는 데이~”라고 숨넘어 가듯 고함을 치며 몸을 사리는데 간호사가 접근해 환자복만 만져도 아예 노터치 방어막을 치는데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달려 온 가족이 달래며 애를 태우는 모습이- 슬픔의 轉移를 목도하게 한다. 그러한 상황이 다반사로 波紋化되어 있다. 우리를 매우 슬프게 하지만 구원의 신이 治癒의 손길을 화끈하게 내밀어 주는 것도 아니다. 주사를 맞으려면 맞아야지!
-반백의 머리가 적당히 섞인 포니테일 머리 묶음을 한 예순 대 여성 한 분은 항상 단정한 환자복 자세로 걷기를 하고 혼자만의 독백처럼 無言劇을 연출해 보이는가 하면 팔을 들어 미소지으며 춤사위를 보인다. 누군가 추임새를 넣어주는 데 난해한 병세를 보이는 듯도 하다.
이따금 창밖 도시철도 차량이 오가는 모습을 처량히 내다보는 여인의 뒷모습에서 인간의 悲哀를 느낀다. 추억이 정상 기억으로 돌아온 한때는 다정한 엄마였고 아내였을 터인데-황혼 인생극장 스테이지에 애끓는 연민으로 던져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음악이 없다면 인생이 잘못된 것이란 말을 입증하듯 저쪽 코너 병상에서 두어 명의 노랫소리가 제법 요란하게 들리더니 뚝 그친다. 무언가 아쉬운 하소연의 노래 리듬들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선 정서적 프로그램이 콧구멍 만큼도 없다는 것이 환자들의 상태가 거기에 이르지 못한 不動力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얀 병상의 파리한 모습의 고령층들은 병상에서 假死 수면시간을 보내는 길밖에 도리 없다.
理髮을 하는 날이다. 남녀 12여 명이 신청했었다. 남녀 이발사 2명이 복도 한쪽에 의자를 놓고 순번 쪽지대로 진행된다. 소파에 앉거나 휠체어에 앉아 간호 학생이 도움을 준다. 늙으나 젊으나 헤어스타일에 관심은 있고 각 호실 간병사가 환자분의 마음을 짚어준다.
이발사가 남다른 감성으로 환자를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도 매우 보기 좋은 풍경이다.
나는 1차 기회를 패싱하고 귀밑 흰머리가 거추장스러워 마지막으로 컷팅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간호실 코너를 돌아갈 때- 평소 눈인사를 건넨 여성 2분이 인근 소파에서 웃음의 멘트를 해준다.
“회장님! 오늘 이발해 놓으니까 이쁘네요?”
“머 늙은기 이쁠 택이있습니까?”하며 미소로 답하며 머리를 박박 쓰다듬었다.
우야다가 회장님소리를 듣게 됐는지 희한한 일이다.
그 여성분이 어느 날 고급 쥘부채 한 개를 주는데 너무 황송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깊게 한 기억이 새롭다! 이미 작은 부채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천장에 붙은 에어컨 영향으로 마스크를 하고 의자를 갖다 놓고 낙상의 위험을 감수하며 冷氣의 날개를 투명테이프로 틀어막는 짓을 겁 없이 벌였다. 환자 개인마다 온도를 수용하는 자세가 다르기 때문이다.
낙상하면 그길로 골로 간다. 온도 차의 곤욕을 치르고 있었던 터라 그 쥘부채를 유용하게 활용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부채에 그려진 간결한 수묵화와 여백의 미학적 글씨를 해석하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다.
-여성 병실 라인 04호 앞 의자에 늘상 앉아 신문을 보거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사회 정치 논평을 보고 한숨을 내리 쉬기도 한다. 그 병실을 관리하는 긴머리 간병사가 얼마나 불편했으면 출입문을 닫았다 열었다 하는 순간을 반복했으랴!
나는 나의 병실에 붙어 있기가 싫었다.
그리고 병실 앞 소파도 여성병실 라인으로 옮겨져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업무 흐름에 관심이 딸려가는 것은 새로운 변화를 지켜보려는 인간 심리작동 때문이기도 하겠지만-가족들과 면회로 오가는 모습, 병실의 동정, 간호사님들의 환자 리드 활동을 보고 느낀다. 필요시 그 자리에서 혈압, 당뇨, 체온 체킹을 마친다. 나의 경우 종래는 시간을 죽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워크바를 이용해 움직이는 중년들의 모습과 가냘픈 몸매로 빨리 걸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가는 절박한 할머니들, 간호사의 제지를 받고 실랑이를 벌리는 모습에서 생애 대한 애착은 무한의 애원에 가깝다.
궂은일 들을 해내는 간병사들은 대부분 조선족 분인 것으로 파악이 된다. 국내인들은 그 일들을 감당해 내지 못할 선입감이 지배하는 것도 나는 큰 오해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나의 주목을 끈 긴머리 간병사는 간호사 실 건너편 병실의 장기 입원 여성분을 함께 관리하는 모양인데, 그 70대 여성분은 간호실과의 소통에도 약간의 장애가 있는지 소소한 일에도 개입하려는 자세에 거부감이 보이고, 긴머리 간병사에게도 부담이 되는 모양세를 보이긴 해 왔으나 그녀는 이를 잘 극복하고 인내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같은 간병사 사이에서도 시간차 커피, 치킨 타임에서 약간 돌리는 듯하였지만 업무 수행의 자세가 좋아 보였다. 조용한 시간대 내가 드링크 몇 병을 비닐봉지에 말아 그녀에게 응원한다며 건네주었더니, 얼마 후 특이하고 따뜻한 茶 한잔을 맛보게 되었는데 그 맛과 향기가 아직도 입가에 스며 있는 듯하다.
나는 낯선 그녀의 앞날이 밝았으면 한다.
그리고 내 앞을 워커바를 밀고 왕래하는 여성 한 분은 환자복을 단정히 입고 식사시간 전후에 대용식인지 간식용인지 자주 인스탄트 쌀국수에 뜨거운 물을 받으려 간호실 앞에 가면 간호사나 간병사들이 그녀를 돕고 이뻐해 주는 모습이 가슴 찡하게 다가왔다.
이따금 소파 곁에 와서 멍하니 앉아있는 자세며 짧은 머리 흑백 두발이 적당히 섞여 품위 있는 인상에 제니퍼 엘의 정서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풍겼다.
대화를 한번 나눠보고 싶었으나 難聽에 치매의 영향이 아닌가 유추되어 포기했다. 맥락을 짚지 못하는 노령이 무슨 환상을 가진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타인선의 불행에 보내는 값싼 휴머니즘 정도의 사려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나도 그노무 쌀국수가 어떤가 싶어 사 오라고 해서 먹어보니 맛깔이 괜찮았는데 속이 불편해 간식에서 제외되었다.
병실 1개를 단독 활용하는 60대 중반의 한 여성은 매우 여윈 모습으로 한국인 여간병사 1분의 간병을 받고 있었는데, 가족애가 대단해 그 젊은 자제분이 간병사와 교대로 휠체어를 몰고 운동을 시키는 모습이 모범을 보였다. 오히려 그 중년 간병사의 피로한 모습이 동정이 갔다. 삶은 참 이래저래 누구에게나 苦痛을 짊어지고 가게하고 있는 것.
자! 이제 하체운동에 탄력이 붙을 즈음 물리치료실을 오르내린 시간도 제법 흘렀다.
나의 안쪽 빈 병상에 새 환자분이 들어왔다. 그 역시 변화된 환경에 정신이 빠진 듯하며 불안한 침묵 자세다.
식사도 잘하지 못하고 밤잠도 설치며 이따금 가족과의 통화만 하고 누워지낸다. 입원시킨 그 아들분이 몇 차례 오갔다. 근데 잘 보이지 않던 의사분이 병세를 설명하는듯했고 가족 일원과도 음악 관련 활동 친분이 있음을 알리는듯했다. 그리고 몇일 후 침대에서 병실 조명을 피해 신문지를 길게 얼굴을 덮고 가수면상태에 있었는데, 아들분이 와서 아버지와 몇가지 부동산 처분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부동산 비즈니스엔 안테나를 세우는 나로선 그 내용들이 자연스레 귀속에 전해져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모두 정리해야 한다는 설득에 이해가 가고 환자분도 동의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법무사와 함께 승용차로 G시의 병원에 있는 어머니에게 가서 방향을 정하자는 흐름이었던 것 같다. 그 이튿날인가 가족들이 면회를 와서 위로와 위안의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바깥 의자에 앉은 여학생 2명과 짧은 대화를 나눈 것이 퍽이나 기억에 남겨진다.
한 여학생은 카나다에서 왔는데 아버지가 교수이고, 건강한 검은 머리 미모의 글래머로 한국어 듣기를 어려워했다, 한 여학생은 울나라 고교생으로 짧은 바지를 입은 사커(soccer) 선수로 건강미가 철철 넘쳐흐르는 피부와 체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쨌거나 서로 간의 대화로 속닥거리는 모습이 신기하고 혈육이란 선하고 찐한 것 -정말로 청춘은 아름다워!
가족들과 헤어질 때 힘들어하는 환자분이 카나다에서 온 혈육의 손을 말없이 꼭 잡아주는 순간을 보니 동세대 인간의 생애가 너무 처량하고 황량해 가슴이 저미어 왔다.
이틀 후에 그 환자분은 G시의 병원으로 이원해 옮긴다며 떠났다.
- 그 병상에 다시 70대 후반 K씨가 왔다. 체격이 크고 밀어버린 머리에 등산모를 눌러쓰고 혼자 입원 수속을 마치고 들어온 분이 있었다. 움직임은 느리지만 이동에 큰 지장은 없어 보였고 대화가 이뤄질 수가 있어 다행이었다. 첫 분위기가 침울하고 모두가 쥐 죽은 듯 수면에 침몰하여 쥐뿔만한 반응도 없으니 은근히 불안에 포획된 모양이었다.
그의 묻는 말에 이곳 생활 시스템을 비판적 시각에서 말해주고 적응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의 설명을 반갑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처지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그는 C병원에서 췌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해왔으나 癌의 전이가 빨라 生을 포기했으며 가정사로 부인과도 이혼했다고 털어놨다. 큰아이가 바쁜 서울 생활로 자주 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진즉 초등교 동문이란 중년여성 한 분이 문병 겸 퇴원 이후 병간호를 위한 의견 조율을 위해 드나들었으나 계획에 차질이 있는 모양이었다. 방문 간호업무를 본다는 그녀는 매우 적극적이었으나 K씨는 주택에서의 생활에 자신감이 흔들려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신중히 판단하라는 멘트를 줄 수밖에 없었다.
再生이 먼 兵苦란 결코 자유의지대로 진행되지 못하니까. 그는 매 식사마다 죽을 몇 숟갈 섭취하나 젓갈류를 숨겨 즐기며 빵 종류와 드링크류를 주야로 먹는데 놀랐다.
잠을 설치며 밤사이에 옷을 벗어젖히고 침대 펜스를 올리지도 않고 비스듬히 누워 부지불식간에 밤 여우의 울음소리 같은 숨결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영혼 이탈의 순간이 아닌가 두려움을 주었다.
야근 간호사도 불안한 신경을 세우며 주목하고 있었다. 아침 기상을 하고 이따금 義齒가 없다고 합죽이가 된 얼굴로 간병사에게 쓰레기로 버린게 아닌지 하소연을 해댄다. 병상 관리를 어지럽게 한 결과 의치를 어디에 둔 것인지 갈피를 못 잡은 것이다.
-라운딩중의 원장님은 그의 퉁퉁 부어오른 양발등을 만지며 ‘우리 큰 얼라’ 라고 죠크를 던지며 자신의 병과 싸우며 간식을 자제하고, 쓸데없이 아무 드링크를 먹어대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마이동풍이다. 다소의 친화력을 보였으나 냉장고의 나의 간식을 요구하고, 실내조명과 TV 소음 때문에 한바탕 소동 비난을 했으나 서로를 이해하기로 낙착!
간병인에게 개인 용무를 부탁하거나 너무 저자세로 대하지 말고 자존감을 지키라고 조언을 했드니 고맙다고 답했다.
병든 인생 말년은 사실 어느 누구나 자재력을 잃고 거지 같은 꼴이 된다. 자신들의 존엄은 풀어져 흩어져 버린다.
그렇다. 내 몸이 나의 감옥이 되어 슬픈 운명을 맞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내 영혼의 상처는 크다. 轉禍爲福-그곳은 망각의 강이 아니라 끝이라 믿었든 순간의 방향을 바꾸는 지점이었다.
나는 가족이 택한 퇴원 날짜를 7일간 늦추었다. 가을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오기를 바랬다.
퇴원 전날-나는 작은 情의 감사 표시를 여러분에게 했다.
사복으로 딱 갈아입고 새끼댕이(넥타이)까지 메고 아들과 그 10층 문을 나설 때 손 흔들어준 스텝과 간병사 환자분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입원 환자분들에게 하늘의 가호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구조적인 대 사회적 이슈로 장기 병환에 시달리는 모든 가정의 평온에 관심을 집중해 줘야 할 것이다.
K城! 그곳은 나의 주거지와도 멀지 않은 「K요양병원(Senior Hospital)」이란 곳이었다.
124일간은 시간은 갔다. 그러나 忘却은 아니다.
그간 문병 지원과 시간을 할에 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뒤늦게나마 계절 여행에서 돌아와 준 작은 주머니의 샤먼 ‘符籍’을 잘 간수하기로 했다.
-두서없는 스케치 ‘인생극장’ 엔딩에 니체(Nietzsche)의 명문을 빛바랜 깃발의 思惟로 대신합니다.
『인간은 더러운 강물이다』
감사합니다. 拜
End-

첫댓글 넉 달 남짓, 마음도 몸도 생으로 고생했음다. 좌우지간 안 간것 비하면 까짓것 암것도 아니지요.
'참, 사람 사는 게 아니다. 시간이란 풍화의 황무지를 헤매는 행렬들은 장야의 나그네들이다.'
맘에 드는 말씀이네요. 이제 남은 일은 본전 뽑는 일이죠. 열심히 합시다. ㅎㅎㅎ. 부산넘
오늘 가을 날씨가 최고입니다.
어디에서나- 그 풍광이 삶의 에너지에 축복을 더해주는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 뒤안길의 고단한 삶들- 거의가 노령!
우리들 세대는 지금 당장 건강이 최고의 가치로 느끼는 순간 들입니다.
세월감에 우야둔동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현장감 넘치는 자전적 논픽션 작품
잘 읽었습니다.
대단한 필력 ㅡ 감동입니다.
드디어 '쇼생크 탈출'이 아닌
퇴원을 하시고 건강 회복이 많이
되신듯 하여 축하드립니다.
환절기 건강 조심하입시더.
Panama샘 감사합니다.
김선자 님!
항상 사려깊고 다감한 응원을 주어서 감사 합니다.
참으로 좋은 계절입니다.
몇일전 모임에서 안부를 물어 봤습니다. 건강하시길!
이따금 사려깊은 멘트에, 저는 상당히 호전된 일상을 맛보고 있습니다.
가정에 평화를!
고맙습니다. ^-^
끔찍했던 124일 간의 지옥을 탈출 아닌 퇴원을 하게 되어 축하 드립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panama님 특유의 표현 법으로 묘사해 주셔서 조마조마 가슴 조리며 걱정했었습니다.
귀한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과 삶 그리고 긴 세월 동행해 준 남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은 시간들 자신의 육체를 사랑하면서^^
김능자 님!
저는 요즘, ' 젊음의 광장" or '광코'란 거리를 스쳐 두류공원(옛날-수도정수장)에 자주 가걸랑요.
광코거리는 젊은이들의 먹거리 골목의 메카로 유명합니다. 보통 저녁 8시경부터 고기굽는 냄새가 나기시작, 대충 세벽녁까지 불야성을 이루죠.
근데요, 여기 아침에 가보면 "담배꽁초"가 거의 거리의 추상화로 보입니다.
최근, 담배는 하지 않아 왔지만, 친근감이 가슴에 와닿았어요. 젊음도 한때인대-
그래서, 젊은이들의 氣를 쫌 받아 볼라꼬(?)갑니다.ㅋㅋㅋ !
저가 그곳에 투하 된것은 하늘의 시련이라고 수용합니다.
그러나 그곳에 다시는가고 싶지 않아요.
가정의 구성원이 서로 건강하고 아끼는 것이 백년해로-진정으로 축복입이다.
예년이면 캐롤송이 지금쯤 거리를 메우는 풍경이었는데-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panama 그럼요. 그럼요. 젊은이들과 어울리세요.
뇌는 비우고 마음은 태양으로 채우십시요.
사랑합니다. 후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