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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예물
민 31:48-54
48 군대의 지휘관들 곧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모세에게 나아와서
49 모세에게 말하되 당신의 종들이 이끈 군인을 계수한즉 우리 중 한 사람도 축나지 아니하였기로
50 우리 각 사람이 받은 바 금 패물 곧 발목 고리, 손목 고리, 인장 반지, 귀 고리, 목걸이들을 여호와께 헌금으로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려고 가져왔나이다
51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그들에게서 그 금으로 만든 모든 패물을 취한즉
52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여호와께 드린 거제의 금의 도합이 만 육천칠백오십 세겔이니
53 군인들이 각기 자기를 위하여 탈취한 것이니라
54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천부장과 백부장들에게서 금을 취하여 회막에 드려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을 삼았더라
민 31:48-54 / 싸움터에 나갔던 군인들을 거느렸던 천부장과 백부장 등 모든 지휘관들이 모세를 찾아와 49) 이렇게 말하였다. `어르신의 종인 저희가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을 점검해 보니 단 한 사람도 줄지 않았습니다. 50)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켜 주신 것이 너무나도 고마워 우리가 전리품으로 얻은 것 가운데에서 금으로 만든 발목고리, 팔찌, 인장반지, 귀고리, 목걸이 등을 가져왔습니다.' 51-52) 모세와 엘르아살 제사장이 지휘관들이 여호와께 감사의 예물로 가져온 금패물을 모두 모아다가 무게를 달아 보니 1만 6750세겔이었다. 53) 이 패물은 싸움터에 나갔던 장정들이 털어 온 전리품이었다. 54) 모세와 엘르아살 제사장은 지휘관들이 예물로 가져온 금을 모두 만남의 장막으로 가져와 이스라엘 백성을 기억해 주십사 하는 뜻으로 여호와께 바쳤다.
군대의 지휘관들은 전쟁에서 그 누구도 죽지 않은 사실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특별한 감사예물을 드립니다. 전쟁에 참여한 것과 피 흘린 데 따른 죄책을 여호와 앞에 속죄합니다. 광야에서 나고 자란 새 세대가 치른 첫 번째 전투는 단 하나의 인명 손실도 없이 군대 지휘관들이 하나님께 감사예물을 드리는 것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있을 가나안 정복 전쟁에 대한 밝은 전망과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누리게 될 삶에 대한 소망이 넘실거립니다.
한 사람도 축나지 아니하였기로(48-50) 미디안을 심판하는 이 전투는 새 세대의 첫 번째 전투로서, 승리를 거두기에는 적어 보이는 인원이 참여한 전투였습니다. 실전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치른 전투였기에 인명의 희생은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전원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싸우시고, 그들을 보호하셨음이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군대의 지휘관들은 하나님께 특별한 예물을 드리러 나옵니다. 출애굽 1세대는 38년 전, 지금처럼 가나안 진입을 앞둔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여 순종하는 일에 실패하고 광야에서 전부 죽었다 했습니다(민 13-14장). 그러나 출애굽 2세대는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을 신뢰하고 전투에 참여하여 한 사람도 죽지 않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 전투에서의 패배(민 14:39-45)와 미디안 족속과의 전투에서 거둔 승리가 뚜렷하게 대비되면서 가나안 정복에 대한 강력한 소망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있고 없음은 우리 삶에서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금을 취하여 회막에 드려(51-54) 하나님께 드린 감사예물은 군대의 지휘관들이 자기를 위해 탈취하고 분배할 때 내놓지 않았던 것들이었습니다(50). 그것은 내가 목숨을 걸고 수고하여 얻은 ‘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희생도 없는 전투 결과는 그들에게 이 전쟁이 자신들의 노고로 치른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적극적인 간섭과 인도, 보호 아래(수 1:5; 시 121:3-8; 사 41:10) 치른 전쟁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그들의 감사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회개이기도 했습니다. 모세와 엘르아살은 군대 지휘관들이 드린 금으로 이스라엘의 기념을 삼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의 최종 지휘관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전쟁은 군사력과 전술로 하는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써 하는 전쟁입니다. 이것을 얼마나 기억하는가에 따라 이스라엘은 승리와 패배 어느 한쪽에 서게 될 것입니다.
적용: 당신은 지금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지금 승리와 패배 중 어느 쪽에 서 있습니까?
이 시대야말로 더 큰 영적능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침묵과 자기반성의 기간을 선포하고 각자의 마음을 살피고 영적능력을 공급 받기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위로부터 능력이 임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문제가 결코 해결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우쳐주고 거기에 따른 처방을 내려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십니다.
< 설 교 >
완전한 승리
민 31:48-54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는 동안 공격해 오는 적에게서 자신들을 방어할 목적으로 전투를 한 경우 있었으나 공격을 감행한 전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은 그들에게 전쟁을 할 것을 명령하셨는데, 그 이유는 발람의 사건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여인들과 음행을 범하고, 우상에 빠지게 되었을 때 이미 미디안을 진멸할 것을 말씀하신 바가 있었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전쟁을 명하신 것입니다.
"미디안인들을 박해하며 그들을 치라 이는 그들이 궤계로 너희를 박해하되 브올의 일과 미디안 족장의 딸 곧 브올의 일로 염병이 일어난 날에 죽임을 당한 그들의 자매 고스비의 사건으로 너희를 유혹하였음이니라"(민 25:17-18).
전쟁의 성격이 복수전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군대를 영솔한 장군도 여호수아가 아니라 제사장 비느하스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범죄하였을 때, 그 죄를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의 노하심을 풀어 드리기 위하여 열심을 다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가 군대를 이끌고 전선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성도들의 삶에서 죄를 정결케 하는 영적인 전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전쟁이기 때문에 죄의 원인을 제공한 발람은 이스라엘에 의하여 죽었습니다. 그리고 미디안의 남자들은 물론 남자를 안 모둔 여자들까지도 죽어야 했습니다. 죄와의 싸움은 이렇게 철저해야 합니다. 원인도 완전히 제거해야 하지만 앞으로 원인이 될만한 요소들도 완전히 발본색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이렇게 철저하게 죄의 근원을 뽑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죄의 유혹을 받게 되고 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로 끝을 맺는데 그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군대의 장관들 곧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모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고하되 당신의 종들의 영솔한 군인을 계수한즉 우리 중 한 사람도 축나지 아니하였기로"(민 31:48-49).
오늘은 이런 완전한 승리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완전 승리는 하나님의 은총
언제나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역사하시는 전쟁은 이런 완전 승리가 있는 법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상륙하여 여리고를 공격할 때도 이런 승리를 하였습니다. 여리고의 승리는 피차가 피를 흘리는 치열한 전투를 통하여 승패를 가린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런 완전한 승리를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에는 이런 큰 승리가 있는 것을 알고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둘째는 앞으로 가나안의 전쟁을 대비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는데, 그들은 40년전 12명의 정탐꾼들을 통하여 가나안 주민들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듣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가나안을 향하여 진격해야 할 입장인데, 그때 그들이 전하여 준 정보와 이것으로 인한 두려움을 떨어버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마음은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불안이 앞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과의 전쟁을 통하여 완승을 거두게 함으로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안돈시키고 사기를 진작시켜 담대하게 가나안으로 진격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간섭과 동행을 바라는 사람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은 인간의 지혜와 무력과 장비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바라며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순종을 바치는 자에게 완전한 승리를 주시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그후에도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의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여리고에서 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여리고 성을 매일 한번씩 돌라고 하셨고 마지막 날에는 일곱 번을 돌고 소리를 지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대승을 거두었는데 아간이라는 사람이 돈에 눈이 어두워 탈취한 물건을 모두 버리지를 못하고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그 결과 아이성 공격에서는 참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승리가 약속되지만 불순종하면 성도의 삶은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더욱이 성도의 삶의 현장은 마귀와 죄와의 치열한 싸움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와 싸우고 마귀와 싸우는 영적 싸움판에서 말씀을 외면하고 뜻을 거역하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뜻을 따르면서 그와 동행하고 그의 도우심을 받으면 백전백승할 수 있습니다.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이것을 가르치며 실제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승리 후의 감사
승리후의 감사는 당연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를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는 법입니다. 그러면 큰 승리 후에도 감사치를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생의 교만입니다.
교만한 인간들은 잘되면 자기가 잘나서 잘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 승리를 하면 자기의 공을 앞세우고 자기 자랑을 내세우는 것이 인생들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신앙이 매우 좋은 왕입니다. 그가 한때는 악창으로 위기사경에 이르렀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벨론에서 그가 건강해졌다는 소문을 듣고 축하사절을 보내었는데, 건강을 찾게 된 히스기야 왕은 교만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국가 기밀에 속하는 모든 것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정치역량을 자랑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39:5).
이렇게 잘 믿는 사람도 자기 자랑을 하고 싶어하고 교만해 지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출 수 있고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낮출 수 있다면 그는 세상은 정복하지 못하였을지라도 자기 자신을 정복한 위대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승리에 감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인간은 큰 승리 후에 더욱 조심할 것은 이런 때가 가장 교만한 마귀가 틈을 타기 좋은 때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도가 가옥을 구입하고 수리를 잘한 다음 목사를 초청하여 이사 예배를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몇억원대의 가옥을 구입하였고 수리비만도 1억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음식을 차린 것도 수백만원은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감사헌금도 드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축복을 받았으니 헌금도 축복에 걸맞게 드렸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헌금은 단돈 만원밖에 안되었습니다. 저는 그 감사헌금을 보면서 큰 은혜에 큰 자랑은 있어도 감사에는 인색하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감사에 인색하면 진정한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작은 은혜일지라도 크게 감사하도록 하십시다. 그런 사람만이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큰그릇이 될 수 있고, 믿음의 큰그릇이라야 은혜도 크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감사의 손님, 불평의 손님
어떤 분이 손님 대접의 비유로 감사 생활을 비유하였습니다. 손 대접을 잘하는 사람의 가정에는 손님이 늘 떠나지 않지만 손님 대접에 인색한 사람의 가정에는 손님이 없는 것처럼 감사의 손님이 왔을 때 풍성하게 대접을 잘하면 감사가 끝이지 않고 찾아오지만 감사의 손님이 모처럼 찾아왔는데도 이를 인색하게 박대하면 감사의 손님은 다시 찾아오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모님 댁에 이전에는 김치국을 먹으면서도 많은 조카들이 왔었으나 지금은 고기국을 주어도 조카들이 찾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조카들의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진정으로 감사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는 누가 찾아드는 것입니까? 불평과 원망의 손님이 찾아 오게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를 모르는 사람의 마음은 불평을 오히려 환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평은 자기의 동지인 원망을 동반하여 오고 그들은 마침내 자기들의 상관인 시험을 모시고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의 왕초는 타락입니다.
여러분! 죄와 시험과 타락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강력하게 찾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감사하지 않는 작은 틈을 엿보는 것뿐입니다.
맺는 말
이스라엘은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감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죄와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승리에 교만하지 말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랬을 때 은혜를 계속 유지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원인일 뿐입니다.
감사예물
민 31:48-54 / 구성교회
사회는 나날이 발전하는데 사람들의 모습은 점점 여유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삶은 계속해서 풍성해지는데, 우리 마음은 점점 피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하는 삶. 하나님께 받은 것보다 하나님께 요구할 것이 많은 삶. 내가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기보다는 남이 나를 웃게 만들어주길 바라는 삶이 우리를 점점 피폐하게 만들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어느 회사 사장님이 이번 달은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회사에 이익이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고 푸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어느 목사님이 그 사장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1차 목표는 직원들의 삶을 가난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요? 직원들 월급을 다 주었다면 그래도 1차 목표는 달성했으니 감사한 일 아닌가요?” 삶의 목표와 목적이 분명해야 지금 나의 삶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다만, 돈과 명예, 권력과 같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무너뜨려야 내가 만족하게 되는 일에 목표를 두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지혜와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과 전쟁을 벌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었고, 그 명령에는 미디안의 잘못을 갚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즉, 전쟁을 통해 노예와 땅, 물과 식량을 확보하거나 재물을 얻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기꺼이 전쟁의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49절에 보니 이스라엘의 군인 12,000명 중에서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말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이와 같은 상황을 자주 보고합니다(삿 7장; 삼상 14:6~15). 특히 사무엘상 14장에서 요나단이 전쟁에 나가며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 14:6)”라는 고백을 보면 전쟁에서 피해를 입지 않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미디안과의 전쟁에 참여한 군인의 숫자가 생각보다 적습니다. 12,000명도 적지 않은 숫자지만, 전쟁을 통해 얻은 전리품을 보면 120,000명이 나가 싸웠어도 될 법한 규모입니다. 적은 숫자의 군인이 이렇게 많은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린 것도 모자라 전쟁에 참여한 군인은 자발적으로 그리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립니다. 이미 1/500을 하나님께 드렸지만, 전쟁에서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것과 적은 숫자의 군인들로 대승을 거두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놀라운 은혜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의무가 아닌 기쁨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매주 드리는 예배, 매일 하는 묵상, 시시때때로 드리는 찬양과 기도조차 불평과 원망 섞인 모습으로 하나님께 드리지 말고, 책임과 의무감이 아닌 오로지 기쁨과 감사로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일어나는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승리하는 하나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념하라
민수기 32장 42-54절
미디안과의 전쟁이 끝난 후, 전쟁에 참여했던 지휘관들이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전쟁이 끝나면, 생존자들의 숫자를 정리하여 아군의 피해를 보고하는 것이 하나의 규례 였습니다. 모세를 찾아온 지휘관들은 아주 놀라운 전쟁 보고서를 그에게 제출 했습니다. 미디안 전쟁에 출전한 사람이 각 지파에서 일천 명씩 착줄 되어 총 1만 2천명이 참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진영에 돌아와 군인들의 숫자를 세어보니 한 사람도 죽지 않고 그대로 돌아왔습니다.
미디안과의 전쟁 규모를 감안해 보면, 동네 주민들 싸움도 아니고 한 민족이 또 다른 민족을 대항하여 싸운 커다란 전쟁입니다. 이 거대한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사가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는 말로 표현 할 수 가 없습니다. 적군이 쏜 화살에 한 사람도 죽지 않은 것이고, 적군의 칼에 쓰러진 사람도 단 한 사람도 없던 것이죠. 모세에게 이 소식을 전하는 이스라엘의 지휘관들도 몹시 흥분해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그 어느 민족이 민족을 대항하여 싸우는 전쟁을 일으키고 한 사람의 군사도 잃지 않고 승리를 얻은 적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다는 증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승리를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것이죠.
이에 전쟁에 참여하였던 지휘관들 곧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다 나와서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헌물을 드렸습니다. 어떤 것들을 드렸을까요? 50절 보십시오. “(민 31:50) 우리 각 사람의 얻은바 금 패물 곧 발목고리, 손목고리, 인장반지, 귀고리, 팔고리들을 여호와의 예물로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려고 가져왔나이다” 각각 귀금속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귀금속은 고가로 판매 됩니다. 따라서 지휘관들이 하나님께 자신들의 목숨을 지켜주시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귀하고 값진 예물을 드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가지고 온 예물의 양도 상당 했습니다. 52절 보십시오. “(민 31:52)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여호와께 드린 거제의 금의 도합이 일만 육천칠백오십 세겔이니” 금의 양이 1만 6750세겔 입니다. 이게 어느 정도 양인가 하면 금이 148kg (326 파운드) 입니다. 제가 어제 금 시세 확인해 보니까 오늘날로 따지면 약 7.2M 달라 입니다. 48절에 보시면 지금 예물을 드리러 온 사람들은 지휘관들 즉 천부장과 백부장들 입니다. 군인들이 총 1만 2천명이 참석 했습니까 천부장 12명 백부장 120명 그리고 다른 지휘관들 숫자까지 합치면 대략 140-150명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평균적으로 하나님께 드린 예물의 값이 약 $50,000 불 정도 됩니다. 지난 2015년 미국 중산층 일년 수입이 약 $56,000 정도 측정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 오늘날로 말하면 한 해 연봉을 하나님께 바친 셈이죠. 그런데 이것은 오늘날의 시세로 계산한 것일 뿐, 사실 당시의 금과 은의 가치로 계산해 보면 이것은 훨씬 더 많은 가치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53절 보십시오. “(민 31:53) 군인들이 각기 자기를 위하여 탈취한 것이라” 본래 지휘관들이 하나님께 드린 예물은 군인들이 각각 자기 이익을 위하여 미디안 사람들로부터 탈취한 전리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본래 이 금과 귀중품들은 나중에 팔아서 자기 가족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쓰려고 가지고 온 것이죠.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와서 보니, 이 전쟁에서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승리했다는 사실 앞에 어쩌면 이들은 온 몸에 소름이 끼쳤을지도 모릅니다. “아, 내가 참석한 전쟁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거룩한 전쟁이었구나?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이 사실을 깨닫게 된 지휘관들이 자신들을 위해 가지고 왔던 탈취품들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며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습이 어쩌면 이 지휘관들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전쟁터와 같은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지고, 조금이라도 더 많이 쌓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토록 치열했던 지나온 이민 생활을 돌아보며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할 수 있는 이유, 이렇게까지 살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나와 함께 하시고 나와 내 가정에 은혜 베풀어주신 하나님이셨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깨달음 속에서, 신자는 여태까지 그토록 피 땀 흘려 쌓아온 재물이 사실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죠. 여태까지는 재물이 인생의 목적이었는데, 신앙의 눈을 뜨고 보니까 그 보다 더 귀한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 합니다. “주님, 제가 가진 것 다 주의 것 입니다. 주님 여기 있습니다. 주님 받으시옵소서.”
한국에 올해 나이 일흔 아홉의 ‘서부덕’이란 이름의 할머님이 한 분 계십니다. 이 분은 어린 시절 가난한 집에 시집와 평생 강원도에서 고등어와 명태를 팔며 생활하셨어요. 부산으로 이사 가서는 김밥 장사 핫도그 장사 하며 또 살았습니다.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50년 동안 장사하며 살다 보니 얼굴에는 주름이 하나 둘 늘어나고 손은 거칠게 변했습니다. 할머니가 일흔 일곱 살 때 평생 어렵게 모은 돈이 9천만원이 수중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 돈을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가 이 분은 자신의 고향이자 현 거주지인 전라남도 보성군에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해 써달라고 하며 8천만원을 기부 했어요. 평생 한 번도 장학금을 전달해 본적이 없어서 어떻게 돈을 줘야하는지 몰라서 보따리 장사 답게 현금을 보따리에다가 꽁꽁 싸서 담당 공무원에게 전달한거죠. “옛날에 없이 살아서 제대로 못 배운 게 한이 됐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그리고 자신은 더 이상 줄 것이 없지만 당장 내일 죽어도 마음이 편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할 일을 다 해서 여한이 없다는 거에요.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며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가진 것이 많아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넓어야 나눌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가장 많이 찬양하고 감사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받은 것이 좁쌀 같이 작은 은혜라 할지라도 큰 산과 같이 감사 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지휘관들 하나님께 예물 드리지 않았으면, 그 값비싼 금,은 귀중품 다 팔아서 아마 평생 호위호식하며 잘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그들에게 그러한 삶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삶이 그들이 바라던 삶의 전부는 아니었어요. 이 지휘관들에게는 자신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 하나님께 귀한 것을 드리며, 그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휘관들의 헌물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전쟁에서 큰 승리를 주신 기념하는 기념물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최근에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무엇입니까? 사랑은 표현하기 전까지 진짜 사랑일수 없듯이, 감사도 표현하기 전까지 진짜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온전히 기억하며 그 은혜를 기념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 그리고 헌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우리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우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적인 전리품을 얻은 이스라엘인
민수기 31:25-54
추석명절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오늘 분문인 31장 후반부는 이스라엘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얻은 많은 전리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얻은 경제적 전리품
하나님께서는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얻은 물건들과 사로잡은 사람들을 계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절반은 전쟁에 나갔던 12000명의 군인들에게 주고, 그 절반은 이스라엘 회중에게 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전리품을 세어보니 양이 육십칠만 오천마리/소가 칠만 이천마리/나귀가 육만 천마리 그리고 여자가 삼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엄청나죠? 그리고 이 중 절반을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산수를 좀 해야 하는데요. 그 반을 따지면 양이 삼십삼만 칠천 오백마리/소가 삼만 육천 마리 나귀가 삼만 오백 마리/사람이 만 육천 명이었습니다. 이걸 만 이천명이 나눴으니 양만 해도 일인당 약 28마리 소와 나귀가 2마리 반 정도씩 사람은 1.3명씩 전리품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엄청나죠? 하도 궁금해서 네이버 사전을 근거로 금액을 계산해 봤습니다. 양을 이십만원으로 계산하고 소와 나귀를 200만원으로 계산한다고 치고 사람을 500만원으로 계산한다고 치면 전쟁에 참가한 사람마다 최소한 2000만원 이상은 배분을 받았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32절을 보니 ‘그 탈취물 곧 군인들의 다른 탈취물 외에’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 이렇게 공식적으로 집계한 물품 말고도 개인적으로 취한 탈취물이 더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미디안 다섯 명의 왕을 죽이고 그들이 다스리는 성읍들을 모두 불살랐습니다. 다 일일이 확인하고 값비싼 것들을 모두 차지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차지한 전리품은 아주 아주 많은 양일겁니다. 요건 뒤에 가서 다시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한 이후 전쟁다운 전쟁에서 승리한 첫 번째 승리였습니다. 앞으로 많고 많은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이스라엘은 금방이라도 엄청난 부자가 될 것 같은 그런 기대감을 갖게하는 그런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군인들이 가져간 절반을 제외하고 나머지 절반을 이스라엘 회중들에게 나눠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나머지를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눈 전리품 중에서 군인들이 받은 몫의 500분의 1일을 하나님의 몫으로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고 회중들이 받은 몫의 50분의 1을 레위인에게 주었습니다.
수고하고 목숨을 건 군인들에게 더 많은 혜택과 적은 부담을 주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여기에 숨어 있습니다. 이 방식대로 이스라엘에서는 대대로 전리품을 분배하는 규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제안하신 참 합당하고 세밀한 계산 방식입니다.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전리품을 나눠 줌으로써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을 격려하고 다음번에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만한 처리방법이었습니다. 또 전쟁에 참가한 군인들만 나눠준 것이 아니라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여 준 후방에 있는 회중들을 위해서도 전리품을 나눠 줌으로써 전쟁은 모든 지파 모든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한 마음으로 치러내는 것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에 모든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과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만족을 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 일을 잘 처리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둘째,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얻은 영적 전리품
그리고 나서 군대의 지휘관들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여호와 앞에 감사 제물을 드립니다. 전쟁에 나간 이스라엘 사람들을 조사해 봤더니 한 사람도 상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적 같은 일 아닙니까? 최소한 10만명 이상의 군인들과의 전쟁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만 이천명이 전부입니다. 이게 싸움이 됐겠습니까? 불가능한 싸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주셨고 이에 수 많은 금은보화와 짐승들과 포로들까지 전리품으로 안겨 주셨습니다. 이에 전쟁에 참여한 지휘관들이 대표로 하나님께 감사예물을 드리는 장면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가지고 온 예물의 무게가 금이 모두 만 육천칠백오십 세겔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무게로 환산하면 금이 160K 정도 됩니다. 1돈이 3.75G이 20만원이라고 치면 42667돈 정도 됩니다. 이걸 계산하면 현재 가치로 85억정도 됩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드린 헌금만 85억원 이었다는 겁니다. 왜요? 이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 전쟁이 자기들이 잘해서 이긴 전쟁이 아니라는 걸요? 어떻게 알았을까요? 자기들이 한 게 없거든요. 1인당 10명이나 되는 전문적인 군인들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했으니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 큰 금액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헌금드릴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헌금으로만 이렇게 많은 금액을 드렸다면 그렇다면 이들이 대체 얼마나 많은 전리품을 나눠 가졌을까요? 어떤 학자들은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얻은 경제적 이익이 1000억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진짜 얻은 전리품은 물질적인 건 만이 아닙니다. 성도님들 물질이 없어 기도할 때 또는 질병을 놓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합니까? 그러나 그 감사와 행복은 하나님께서 돈을 주셨기에 건강케 하셨기에 드리는 일차적인 감사함보다는 “내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는 것이 더 큰 감사와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랑 관계”가 있기에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나의 필요를 채워주셨다는 것을 통해 앞으로도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어려울 때 마다 나를 도와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기도응답의 유익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전쟁에 나간 군인들이 미디안이라는 엄청난 적을 만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전쟁에 참여했지만 하나님이 앞장써서 싸워주시는 모습을 보고 그 강한 미디안이 멸망을 당하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이스라엘 군인들. 하나님의 일 하심 앞에 영광과 찬송과 경배를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집으로 돌아와서 “잘 했어 여보” “잘했어 아빠 멋쪄요!” 라고 하는 가족들의 칭찬과 격려에 “아니야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안했어 하나님이 다 하신거야” 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분명히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지금 전리품을 풍성하게 나눈 것에 감사하고 즐거워 한 것이 아니라 “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구나” “아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구나.” “아 순종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구나” 라는 아주 중요한 영적 전리품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 또 나가서 전쟁할 거야 하나님의 명령 앞에 두려워 하지 않고 나아갈꺼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걸 또 볼 거야 라고 다짐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얻게 된 진짜 ‘영적인 전리품’이 아닐까요? 바라옵기는 우리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만을 바라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교통하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함께 교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고 섬기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