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꽃향기 속에서(427) – 노루귀(안양 수리산)
노루귀
2024년 3월 8일(금), 안양 수리산
엊그제 다녀온 안양 수리산을 다시 찾았다.
날이 무척 쌀쌀했다.
그래도 수리산 노루귀는 나를 반겼다.
안도현의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2003, 태동출판사)에서 시문 몇 개를 골라 함께 올린다.
한 아이가 돌을 던져 놓고
돌이 채 강에 닿기도 전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던
돌 같던 첫사랑도 저러했으리
그로부터 너무 멀리 왔거나
그로부터 너무 멀리 가지 못했다
—— 이홍섭, 「달맞이꽃」 전문
여자가 액세서리를 하나씩 버리면
왜 이렇게 예뻐지는 걸까.
나이로 씻긴 당신의 몸은
가없는 하늘을 금속.
겉모양새도 남의 눈치도 안 보는
이 깨끗한 한 덩어리의 생명은
살아서 꿈틀대며 거침없이 상승한다.
여자가 여자다워 진다는 것은
이러한 세월의 수업 때문일까.
고요히 서 있는 당신은
진정 신의 빚으신 것 같구나.
때때로 속으로 깜짝깜짝 놀랄 만큼
점점 예뻐지는 당신.
—— 다까무라 고오다로, 「점점 예뻐지는 당신」 전문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 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 만씩 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파서죽껏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 정양, 「토막말」 전문
그래요. 우리는 그렇게 용광로처럼 사랑했지만 한번도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어요. 너무 깊이 사랑하면
이미 그런 단어 따위는 흩어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듯해요. 이미 몸속에서 동작으로 말이 만들어져 버려요
문득 바라보다가 슬쩍 같이 웃으면 그게 어느 말보다도 더 강렬하고 뚜렷하죠. 나라도 그랬을 거예요 난 그가 그리
울 때마다 그 백지를 들여다보곤 했어요. 언어로 정리되지 않은 아니, 언어로 정리되기를 거부하는 그 어떤 마음.
—— 한창훈의 소설, 「먼 곳에서 온 사람 중에서」 중에서
사랑 속에는 말보다는 오히려 침묵이 더 많이 있다.
사랑의 여신 아포로디테는 바다 속에서 나왔다. 그 바다는 침묵이다. 아포로디테는 또한 달의 여신이기도 하다.
달은 그 금실의 그물을 지상으로 내려뜨려 밤의 침묵을 잡아 올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은 침묵을 증가시킨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 가운데에서는 침묵이 커져 간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은 다만 침묵이 귀로 들릴 수 있도록
이바지할 뿐이다. 말함으로써 침묵을 증가시키는 것은, 그것은 오직 사랑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 막스 피카트르의 산문, 『침묵의 세계』 중에서
첫댓글 노루귀도 바도봐도 예쁩니다.
구경 잘 했습니다.
꽃을 보시는 형님 입가의 미소가 보이는 듯 합니다.
여기서 아는 일본시를 보네요.
<점점 예뻐지는 당신 (다카무라 고타로)> 원문은 이렇습니다.
あなたはだんだんきれいになる
* 高村光太郎
をんなが附属品をだんだん棄てると
どうしてこんなにきれいになるのか
年で洗はれたあなたのからだは 無辺際を飛ぶ天の金属。
見えも外聞もてんで歯のたたない
中身ばかりの清冽(せいれつ)な生きものが
生きて動いてさつさつと意欲する。
をんながをんなを取りもどすのは
かうした世紀の修業によるのか。
あなたが黙つて立つてゐると
まことに神の造りしものだ。
時時内心おどろくほど
あなたはだんだんきれいになる。
흔히 시는 그 나라 그 시대의 언어로 읽을 때 정확한 의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저로서는 막연합니다만 번역 시라도 이해하려고 합니다.^^
노루귀는 야생화 중에서 제일 예쁜 꽃이네요...봐도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만화방창하기 전에 노루귀가 꽃을 피워서 그럴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