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6. 주일 큐티
요한일서 3:17 ~ 24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하는 사랑
관찰 :
1) 행함이 있어야 하는 사랑
- 17절.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a. 사도 요한은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 진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b. 영지주의자들과 같이 실천이 없어도 됨을 말하는 것은 거짓 사랑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 18절.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a.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은 진짜가 아닙니다. 공허한 것입니다.
b. “행함과 진실함으로”(έν ἔργω καί ἀλήθεια, 엔 에르고 카이 알레데이아) ‘말과 혀’에 반대되는 표현으로 ‘진실한 행동’을 가리킵니다. 사랑의 실천적 측면이 강조된 것입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 하는 한가지의 죄를 더 첨부하는 가증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 19절.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a. 즉, 누구든지 자기 자신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사랑하면, 그것으로 그 자신도 구원받을 참 성도인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가 일반인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증거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믿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증거가 되는 행위가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b. 믿는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그 형제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미에서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랑이 되는 것이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게 되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24절).
2) 그의 계명
- 20절.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a.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그 중심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b. 여기서의 “마음”(καρδία, 카르디아)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자들의 양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은 거듭난 자의 착한 양심입니다. 착한 양심은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벧전 3:21).
- 21절.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a.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려면 우리의 마음이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도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b. “담대함”(παρῥησία, 파르레시아)은 ‘파스’(πᾶς, 모든)와 ‘레오’(ῥέω, 연설)의 합성어로 ‘무엇이든지 거리낌없이 말함’이란 뜻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확신을 뜻합니다.
c. 성도가 진실히 형제를 사랑하는 경우에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인 줄로 확신하고 담대해지게 됩니다. 이것이 성도로서 다른 성도를 사랑함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받게 되는 첫 번째 복입니다.
- 22절.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a. 이것은 성도로서 다른 성도를 사랑함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받는 두 번째 복입니다. 즉, 기도의 응답을 받을 것임을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b. “구하는”(αἰτώμεν, 아이토멘)과 “받나니”(λαμβάνομεν, 람바노멘)는 모두 현제 시제입니다. 즉, 계속되는 기도와 계속되는 응답의 경험이 따를 것을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기도 응답의 조건이 아니라 성도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땅한 행위가 되는 것이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c.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으시며 하나님의 사랑받으시는 독생자로서 메시야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인정받으며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가 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 23절.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a.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계명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계명입니다.
b. 이 명령, 이 계명은 폭군이 강압적으로 찍어 누르는 율법이 아닙니다. 자발적인 순종으로 감당해야 하는 계명입니다.
c. 온 우주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우리에게 부여해주시는 계명이 우리가 자발적인 순종을 통해서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라는 말씀입니다.
d. 여기서 “계명”(ἐντολή, 엔톨레)은 단수로 사용되면서 결국 믿음과 사랑이 하나의 계명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과 사랑은 하나의 계명인 것입니다.
- 24절.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a. 성도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두 가지의 은택을 입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더불어 연합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이 그 안에, 그가 주님 안에 거하게 되는 신비를 누리게 됩니다.
b. 둘째는, 성령께서 내주 하시면서 그로 하여금 그의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심을 알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전심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렇기에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나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사랑은 말과 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합니다. 말만 번드르르 하게 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죄를 더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진실로 진리 안에, 그 생명의 빛에 거하는 자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2)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것은 한 가지로 붙어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사랑의 실천이 없는 것은 거짓이고, 주님을 믿지 않는다 하면서 사랑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거짓입니다.
3) 성도를 진실하게 사랑하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성령의 증거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을 약속으로 받게 됩니다.
4)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과의 영적 연합을 이루게 되고, 또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심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육신으로 느끼고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적용 :
1) 믿음과 사랑의 실천은 한가지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면 주님의 자녀인 형제 자매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님의 자녀인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워하기 까지 한다면 그것은 주님을 믿는 것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 내가 사랑의 실천을 해야 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생각해 봅니다.
2) 사랑을 진실되게 실천해야 진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됩니다. 이것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특별히 먼저 믿음의 가정들에게 해야 합니다(갈 6:10).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계명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랑해야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되고, 그래야 주님의 나라에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 됩니다. 오늘 나는 어떤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은혜를 누릴 것인가? 말씀을 나누는 것을 통해서? 그리고 구체적으로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