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어리석은 바벨탑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강론>(2024. 9. 30. 월)(루카 9,46-50)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루카 9,46-48)”
1) ‘가장 큰 사람’은, ‘가장 높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였다는 것은, 그들 사이에 아직 서열이 정리되어
있지 않았음을 나타내고,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신 일을(마태 16,18) ‘가장 높은 사도’로
임명하신 일로는 생각하지 않았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제자들이 서열 문제로 논쟁을 한 것은 잘못한 일이지만,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가장 높은 사도’로 임명하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옳게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도’로 임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사도들을 교회의 주춧돌로 표현하는
것은(에페 2,20; 묵시 21,14) ‘예수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주춧돌은 건물의 가장 밑에서 건물을 떠받치는 돌입니다.
교회에서 사도들의 위치는 군림하고 권세를 부리는 위치가
아니라 섬기는 위치입니다(루카 22,25-26).
<흔히 교황을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세속적인 생각일 뿐이고, 교황들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종들의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지만, 그 자리가 가장 높은 자리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교황이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입니다.>
2) 여기서 ‘그들 마음속의 생각’이라는 말은, 제자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명예욕, 권력욕, 자존심 같은
것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명예욕이나 권력욕이 더 컸던
것은 아니고, 그것은 그냥 인간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래도 그 욕망은 위험한 함정입니다.
더 큰 죄로 인간들을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더 높아지고 싶어 하는 욕망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욕망대로 높아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끝없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높은 곳으로 올라가다 보면 하느님의 위치까지 가게
될 텐데, 로마 황제들처럼 스스로 자신을 신격화 하게 되면
결국 파멸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바벨탑으로
만들어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사탄은 처음에 하와를 유혹할 때에
바로 그 욕망을 자극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세 3,4-5)”
사탄의 말은, “하느님처럼 되고 싶으면 선악과를
따서 먹어라.” 라고 유혹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와가 선악과를 따서 먹은 것은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욕망은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인간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명예욕, 권력욕, 자존심 등은
바로 그 욕망에서, 즉 그 원죄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피조물이 조물주 위치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욕망은
하느님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고, 반역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바벨탑이 무너지듯이 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타이르신 것은, 그런 어리석고 허무한
욕망에서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일이기도 하고,
그들이 파멸당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3)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제자로서 나를 따르기를
원한다면, ‘나를 섬기듯이’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어린이’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를,
또는 ‘가장 작은 이’를 뜻합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려면,
그보다 더 밑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적선을 행하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아래로 내려가서’ 주님을 섬기는 것과 똑같이
‘가장 작은 이’를 섬기라는 뜻입니다.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섬길 수 없습니다.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지금 당신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낮춤’과 ‘섬김’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라는 말씀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지 말고, 낮은 자리로 가려고 노력하는
‘선의의 경쟁’을 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진심으로 ‘낮춤’과 ‘섬김’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사실 하느님 나라에는 남들보다 더 높은 사람도 없고,
남들보다 더 낮은 사람도 없습니다.
전부 다 똑같이 하느님께서 높여 주신 사람들만 있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일 자체가 ‘높아지는 일’입니다.>
만일에 자기 혼자서만 높아지고 싶다고 고집 부린다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어린이’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를,
또는 ‘가장 작은 이’를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