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먼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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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병 창
어젯밤에는
쉴 새 없이 비가 내렸습니다
<실레노스>처럼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정처 없이 헤매어보고 싶은
그런 밤,
자꾸만 눈물겨운
참으로 눈물겨운 한갓 목숨이옵니다
두 눈의 창을 주십시오,
그리고 바라신다면
더욱 세찬 비로 내려주십시오.
길고 간 장마 같은 미열,
음습한 아픔의 멍에를 떨쳐버리고
대지를 향해 줄달음쳐 날아가고 싶은
그런 밤의 명료함이
선명한 영혼이기를 담금질하도록
부디 두 눈의 창을 열어주십시오.
계절이 바뀌면
죽음의 세계에서 돌아온다는
생명의 신,
지극히 유폐되었던 곳으로부터
대단한 의지로 보지 않고서는
소통할 수 없다는 당신이
사뭇 기다려지는 그런 밤이기도 합니다
계절이 바뀌는 문턱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별이 숨은 강물에 마음을 담아봅니다
아아, 기쁨에서 절망까지 이르는 변화가
너무나도 급격히 찾아와
정신적으로 황량한 상태에 이를 때까지
이미 별들은 강물에 떠있습니다.
끝없이 부침(浮浮)하는 영혼의 부단함
그러다가 마침내는 지상으로 추락하고 마는
우리네 가차 없는 삶이란
그렇습니다
생성이란 새로운 희망인 것이고
소멸이란 또 다른 두려움인 것을,
그래서 생성보다는 소멸을 두려워하는
영혼의 부침을
우리는
또 다른 모순이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허여(許與)된 사고(思考)의
끝없는 전이(轉移), 때로는 순리인척
때로는 억지인척 느껴지는 일상들로 점철되는
그 불가사의한 정체는
두고두고 알 길이 없습니다마는,
그 견고하리라는 믿음의 탑이
한때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다
부서져 침잠(沈潛)하는
일망무제(一望無除), 무변광대(無邊廣大) 앞에서
우리 서로는 스스로의 두려움을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될 때
더더욱 슬퍼지는 것입니다.
그 모두는 스스로에 대한 이반(離叛) 일뿐이지요.
그러나 또 하나 간교한 것은
영혼의 교통이 가능할 때
정신이 일치될 수 있음을 깊이 공감하면서
프로메태우적 영혼 앞에
빌헤름 뮐러의 시를 작곡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들으며
빗소리로 지나치는
안개를 기다려 보기도 한답니다.
그대여, 바라신다면
더욱 세찬 비로 내려주십시오
당신이 내게 있어 다시없는 것처럼
이 목숨 자꾸만 비에 젖는 내밀한 유폐(幽閉)됨도
이젠 때가 되었으니
작은 공간이나마 당신께 허락하겠습니다.
이제 하늘이 구름 되고
구름이 바다 되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날마다 조수(潮水)에 부푼 언덕에 서서
작디작은 조각배를 띄워봅니다
그리하여 해가 달로 바뀌는 산마루
길이 끝나는 그곳에서
안개 잦아드는 가슴을 열어보니
참으로 눈물겨운 찬비가 되옵니다.
그대시여
자꾸만 눈물겨운 그런 밤
참으로 눈물겨운 한갓 목숨이옵니다. 끝
< 필자. 시인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