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때 배고파 빵 훔쳐… 챔피언 된 후에도 아르바이트”
“저 괜찮아요. 인터뷰할게요. 지금은 많이 가라앉았어요. 그런대로 괜찮을 거예요.” 지난 4일 오후 김주희(24·거인체육관)에게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전화 걸었을 때 그의 답변이었다. 지난 9월 12일 라이트플라이급 4대기구 통합챔프전을 치르고 났을 때의 그의 얼굴을 ‘좀 심하다’고 봤던 기자로서는 그에게 인터뷰를 하자고 말을 건네기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시쳇말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됐는데 그 얼굴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기가 솔직히 안쓰러웠다. 그런데 그는 이미 진짜 프로였다. 당당한 24세의 신세대이기도 했다. 그래서 인터뷰하기로 한 8일 오후 그가 소속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거인체육관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인터뷰를 늦춘 건 얼굴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조금은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아니 관장님께서 ‘인터뷰를 할 상황이 아니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얘기하시니까 어떤 이들은 ‘주희가 숨 넘어가냐, 얼굴 부었다고 말도 못하냐’고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때는 경기때처럼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몇 차례 인터뷰를 거절하기도 했죠. 그때 경기 끝나고 나서 저의 팅팅 부은 왼쪽 눈이 방송으로 사진으로 다 났는데 뭐가 문제겠어요. 복싱 발전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저에게 가져주는 관심 그 자체가 너무나 고마울 뿐인데요.”
그는 ‘진짜 프로’였다. 자리를 함께하자 마자 기자가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그가 알아서 줄줄이다. 마치 자신의 상품성(?)이나 복싱,특히 여자 복싱을 널리 알려야 하겠다는 사명감이 있는 듯 인터뷰에 너무나 열심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녀에게 ‘찬물’을 끼얹어 봤다.
‘얼짱 복서라고 불리던데 여자 얼굴에 상처가 나고 부으니까 아닌 것 같다.’
“얼짱이라고 불러주시니 ‘넘’ 고맙죠. 근데 그건 내가 처음 고등학생 때 데뷔하면서 나이 먹은 선배들하고 경기를 하니까 상대적으로 예쁘게 보였을 것이고, 그런대로 생각보다 잘 하니까 붙여준 것이겠죠. 요즘 얼짱은 정말 얼마나 예쁜데요. 처음에는 우리 관장님도 내가 대견해서 그러셨는지 예쁘다고 하시더니 지금은 ‘네가 무슨 얼짱이냐’며 면박을 주시기도 해요.”
내친김에 그쪽 방향으로 나가보자 싶었다.
‘그간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남자 친구도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사랑’이라는 게 없었어요. 남자 친구도 정말 없었어요. 형편이 안좋았고 운동에만 빠져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럼 결혼도 하지 않을 생각이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뿐 아니라 손사래를 쳤다. “뭔 얘기예요. 저는 꼭 결혼할 겁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싶은 게 제 꿈이기도 해요.”
그의 입에서 가정 얘기가 나온 김에 ‘호구조사’에 들어갔다. 그녀에게는 ‘양어머니’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그의 진짜 엄마에대해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아직도 부기가 가시지 않은 왼쪽 눈을 찡긋한다. 얘기하기가 별로 내키지 않은 것 같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였어요. 제가 열세 살의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아빠가 하는 일이 망가져 힘들어 하다가 아프셨는데 엄마와는 헤어졌다는 거예요. 어려서도 그랬겠지만 솔직히 별 생각이 없었어요. 엄마가 없어진(?) 것보다는 아버지의 실패로 그때부터 참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곤 그는 기자에게 되물었다. “기자님이 학교 다닐 때에는 밥을 굶었다는 친구들이 있었겠지만 1986년생인 제가 배가 고파서 슈퍼마켓에서 빵을 훔쳐먹었다는 얘기가 믿어지세요. 그런데 제가 그랬어요.” 그녀가 조금은 따지듯이 내뱉었다. 그건 범죄(?)인데….
“모르셨어요. 제가 처음 챔피언을 했을 때 잡지인가 어디하고 인터뷰할 때 솔직히 불었는데…. 제가 챔피언이 되고 나서 그 슈퍼마켓에가서 예전에 훔쳤던 빵값을 돌려드렸어요. 물론 주인 아저씨는 그런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지만요.”
그의 아버지가 IMF 외환위기 여파로 하던 일을 잃고 엄마와도 헤어졌을 때가 중학교 1학년때였다고 한다. 그는 그때도 운동이 좋아 학교에서 육상부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한창때이고 운동을 해서인지 학교에서 주는 간식을 먹고 나서도 배가 고팠고, 절대적 후원 아래 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다고 한다.
그의 표정이 너무 쓸쓸했다. 그래서 얼른 얘기를 돌려 그 스스로 자신의 절대적 후원자라고 표현한 다섯 살 터울의 언니 얘기로 옮아갔다. 먼저 얘기를 돌리려 ‘얼짱말고도 독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얘기하니까 자연스레 그의 언니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예 알아요. 저 보고 독종이라고들 하는데 ‘진짜’ 독종은 우리 언니예요. 물론 좋은 뜻에서요. 나에 대한 사랑도 그렇지만 자신의 관리나 모든 것이 그래요. 내가 중학교 2학년때 육상을 그만두고 침울해했을 때 복싱을 권하고 관비(권투도장 입관료 및 훈련비)를 대준 것도 언니예요. 자기는 그때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요. 그러곤 언니는 아버지가 아프셔서 실직 상태에 있을 때도 아르바이트로 휴학을 밥먹 듯이 하면서도 끝내 대학을 졸업하더니 지금은 아는 분과 함께 뉴욕에서 사업을 할 정도가 됐어요. 대단하지는 않아요. 아직도 언니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어요. 다섯 살 차이라서 말을 놓기도 하고 어쩔 때는 막말을 하며 함부로 대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엄마’와 같은 존재죠.”
정말 얘기를 바꿔 이제부터는 경기 이야기, 복싱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그의 표정도 금세 밝아졌다.
‘그날(9월12일 통합챔프전)은 너무 힘든 경기를 한 것 같다. 예전과 달리 힘들어 보이기도 했고.’
“맞아요. 궁합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날은 진짜 여러가지 면에서 궁합이 안 맞은 경기였어요. 우선은 스타일이 저와는 전혀 다른 선수였고요. 그 선수는 약게 치고 빠지는 스타일이었거든요. 제가 조금 당한 편이죠. 물론 그러니까 더 오기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리고 경기 시간에 맞춰 컨디션을 조절했던 것도 엉망이 돼 버렸어요. 챔피언전 이전에 오프닝 게임으로 4라운드, 8라운드 경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그날은 앞선 오픈 경기들이 1, 2회에 KO로 끝나버린 거예요. 그러니 저의 챔피언전이 40∼50분이나 당겨질 수밖에 없었고요. 저의 세컨(코치)을 봐 주시는 관장님도 앞서 우리 체육관 소속 선수를 봐 주시느라 이리저리 정신 없이 뛰어 다니셨고…. 어떻게 보면 방송 사고죠. 그런 상황에서 허둥지둥 링에 올라간데다 상대의 경기 스타일 때문에 경기도 잘 풀리지 않고. 사실은 최악이었어요.”
이제 6개 복싱기구를 정복했으면 복싱으로서는 할 만큼은 다한건데 ‘권투에서 새로운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복싱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싶어요. 제가 아직 WBC(세계복싱평의회) 챔피언이 남았거든요. 일본 선수가 그 타이틀을 갖고 있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그와의 매치가 성사되려면 몇 억원의 스폰서십(후원)이 붙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즈음 우리 복싱 인기나 사정을 보면 좀 힘들 것 같기도 하고요.”
대전료, 즉 돈 얘기가 나오자 그녀가 다시 말을 흐렸다. 그러나 말 나온 김에 대전료와 조금은 펴졌을 요즘의 생활을 물었다. 그녀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잘 아시잖아요. 예전에 복싱이 국민스포츠로 불렸을 때하고 지금의 사정을요. 그래도 저는 챔피언이 되면 조금은 목돈을 만지는가 싶었어요. 그런데 후원 자체가 없으니까 프로모터와 관장님도 매치(경기)를 성사시키기가 힘들어요. 솔직히 복싱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무섭고 힘든 것은 경기에서 매 맞는 것이 아니라, 대전이 잡히지 않는 거예요. 이번 통합타이틀의 경우도 8번이나 연기됐다가 치른 거예요. 한번씩 경기가 연기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대미지(충격)를 받게 되죠. 경기에 맞춰 힘들게 체중을 조절했던 것이 수포로 돌아감은 물론, 또다시 기약없는 훈련과 생활을 해야한다는 점에서 ‘왜 복싱을 선택했나’하는 회의가 들곤 하죠.”
‘그래도 이번 통합전의 파이트머니(대전료)가 5000만원은 됐다고 들었다’고 되물었다.
“그거 어디서 들으셨어요. 우리 관장님의 몫 가운데 절반을 저에게 주시더라도 제가 2000만원쯤 돼요. 관장님과 프로모터의 몫은 저의 절반에 절반쯤 될거고요. 그러면 계산이 나오잖아요. 요즘 복싱 챔피언 파이트머니가 그쯤 돼요. 그것도 연봉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앞으로 한 6개월 이상은 대전이 없을 것 같은데….”
그녀는 챔피언이 된 후에도 여러차례 아르바이트를 했었다고 한다. ‘예전이면 모를까 챔피언이 된 후에는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서 아르바이트하기가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했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기자님은 제가 링에 서 있을 때의 모습과 지금 머리를 풀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을 때 같은 사람으로 알아보시겠어요”라고 되묻는다. 그렇다. 그러고 보니 링에서의 챔피언 김주희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냥 앳되고, 발랄한 아직은 ‘소녀’였다.
“저라고 뭐 조금 큰 돈을 받게 되면 사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없겠어요. 제가 얼마나 꾸미기를 좋아하는데요. 저 프로에 데뷔하면서 ‘레게 머리’ 한 것 아시잖아요. 평소에 봐 뒀던 재킷도 대전이 끝나고 목돈을 받았을 때 막상 사려고 갔다가 가격표를 보면 요양원에 계신 아빠 병원비가 생각나서 사지 못하게 돼요. 아직은 경기하고 생활하는 게 ‘쪼끔은’ 힘들어요.”
‘맞다. 효녀 복서라고 불린 것도 봤다’고 다시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그렇게 부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얘기고요. 아버지가 아프신데 병원으로 모시고 수발을 하는 것은 자식으로선 당연한 것 아닌가요. 남들은 그렇게 하지 않나요. 그냥 아버지가 조금 아프셔서 병원에 계신다는 것까지만 이야기할게요.”
<자료 : 문화일보(인터뷰 = 박광재 체육부장)> |
출처: 두리번 원문보기 글쓴이: haj4062
첫댓글 효녀 인데다가.....흠,,, 이뿌네.....
교회는 다니나요?
교인 이라도 일단 주먹은 조심해야 겠지요...
그녀가..믿음을 완성 할때까지는,,,
절대 마음을 놓아서는 안되 겠지요....
김주희선수에 대하여 처음 얘기들은것은 MBC라디오<박혜진이 만난사람>이라는 방송에서 였습니다,
지난11월3일에 공무원(5급 승진대상자)300여명을 놓고한 눈물의 강의이후
1일 50여건,11월8일 현재 200여건의 강의 요청이 있다고 합니다.
파이트머니와는 비교도 할수 없는 큰 돈도 벌수 있을듯~~~~
표면에 나타난것보다도
그의 내면의 삶의 자세와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합니다.
인터뷰를 들으며 큰 감동을 느껴
관련기사를 옮겨 보았습니다.
전에 시합하는걸 봤어요..의외로 가날픈 몸매던데요
뭐던 하나만 잘 하면 되지요 우리네가 다 살아가는 방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