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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과목 : 불교 예술과 미의식
교 수 : 김 치완 교수님
학 번 : 노어노문학과 200403112 박제현
《 마음의 또 다른 모습, 신성하고도 아름다운 몸 》
〔 개 요 〕
◎ 서 론
1。 주제 정리
◎ 본 론
1。 인간의 몸이란?
2。 인간의 마음이란?
3。 심신 일원론과 심신 이원론
4。 인간의 심신을 따로 볼 수 있는가?
5。 인간의 몸은 악의 근원인가?
◎ 결 론
1。 몸에 대한 이중적 잣대 (몸담론)
숙제 공지를 본 순간, 나의 대학 생활 1년 채 안된 오늘에서야 제대로 된 레포트 하나 받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때까지의 레포트는 대부분 교수님께서 주제를 정해주시고 거기에 대해서 조사를 하거나 아니면 감상문을 제출하는 것이 다 였다. 하지만 이번에 레포트는 내어주신 이미지와 글들을 보고 스스로 주제를 정해서 레포트를 쓰는 형식이었다. 쉽게 생각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귓가를 맴돌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중간고사가 끝난 순간부터 레포트 고민에 빠진 나는 그 순간부터 생각했지만 그래도 답이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다지 생소한 주제는 아니었다. 몸에 대한 주제라 다소 광범위하긴 해도 쉽게 접하고 있는 주제이고, 또 요즈음 들어 특히 누드 열풍이다 몸짱 열풍이다 해서 외관적인 면으로서 몸에 대해 많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선 레포트에 들어가기 전에 주제를 간단히 보자면
【 인간 =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존재 】라는 큰 명제에서
·심신 일원론
·심신 이원론
두 개로 나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럼 여기에 관한 나의 견해를 말해 보도록 하겠다.
인간은 심신이 하나인가? 아니면 심신이 둘이란 말인가?
자료 주신 MC Escher의 Day and Night부터 Jean Bernard Lon Foucault 그리고 동양철학부터 불교의 금강경까지 모두 뒤져봤지만 나의 생각에 있어 결론을 도출하기란 정말 어려웠다. 아주 고대시대 때부터 끊임없이 질문되어진 이 물음 또한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와 같은 질문처럼 인간의 아주 원초적인 모습에 대해서 묻고 여기에서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알아내기 위한 질문 중 하나이므로 수년동안 쉽게 대답되어지지 못했다. 나 역시 생소하지만 어떻게 보면 결코 생소하지만은 않은 이 질문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다가 나는 이러한 과제에 대한 관점이 분야별로 다르고 시대별로 달라져 왔다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교수님께서 주신 두 번 째 글에서도 나와있듯이 고대 시대 때 예를 들자면, 심신 이원론이 강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플라톤의 경우 신체는 "영혼의 감옥"이라고 칭하며 몸은 정신에 비해 열등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심신 이원론은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믿고 있는 생각이지만, 어떻게 비물질적인 마음이 물질인 몸에 영향을 주고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 원인으로서 작용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지 못하기에 직관적으로는 그럴싸하지만 경험 과학적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관점으로 과학계에서 인식되고 있다.
『1』 이처럼 심신에 대한 인식은 시대별로 변해 왔으며 이러한 점으로 볼 때 몸에 대해서 정의 내리는 것 역시 심신 일원론이냐 이원론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쉽게 말해,
일원론 적 입장에서 보면 몸이란 마음과 하나로서, 마음의 가시적인 모습 즉, 마음의 겉모습을 나타내는 것이고,
이원론 적 입장에서 본다면 몸이란 그저 겉모습, 즉 마음을 담고 있는 하나의 껍데기에 불과 할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 볼 때 몸이란 마음의 모습을 표현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나의 입장이 심신 일원론 적 입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즉, 심신 이원론적 입장처럼 그저 몸이 단순한 껍데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음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어주는 하나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즉 인간은 마음과 몸을 둘 다 지닌 존재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음에서 우러난 일을 실천하는 것은 몸이며 몸의 휴식으로서 마음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맴도는 일을 몸으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나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동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겉모습으로만 어떤 일을 행한다면 그 어느 쪽도 인간적인 모습이라 여겨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과 몸의 관계는 질료와 형상의 관계이다. 질료는 일정한 형상이 없이 표상할 수 없고 형상이 독립해서 존재할 수 없듯이, 영혼과 몸도 하나로 밖에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입장은 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과 같은 입장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마음)을 생명의 가능성을 가진 자연적인 몸의 형상이나 몸의 잠재성을 실현하는 힘으로 보았다.
§ 아리스토텔레스 - 몸과 영혼(마음)이 상관관계 속에 존재하고, 그 어느 것도 그 자체로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이처럼 마음은 몸이 없이 그 자체로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마음은 몸의 실현이다. 마음은 몸이 아니지만 몸을 떠나 따로 존재할 수 없다. 몸도 마음을 통해서만 비로소 몸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몸은 마음의 가시적인 모습인 것이다.
MC Escher의 Day and Night란 그림을 보았다. Escher는 뫼비우스의 띠라는 그림으로도 유명해서 다른 그림은 본 적이 있지만 Day and Night이란 그림은 처음 접해본 것이었다.
이 그림명을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낮과 밤을 나타낸 그림이라고 보면 되겠다. 분명 하나의 그림이건만 이 그림은 마치 '마술의 집'에서 거울의 방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한다. 현실에 있을 수 없는 낮과 밤의 공존을 나타낸 것이다.
이 그림 역시 나는 낮과 밤이라는 데에 있어 그 것이 밝음과 어둠을 극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보았다. (편견일 지는 모르겠으나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낮의 밝음을 선으로 보고 밤의 어둠을 악으로 본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또 심신 일원론적 입장과 이원론적 입장에서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2』 우선 일원론적 입장을 보면 인간의 마음과 몸은 하나이므로 둘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행해지는 행동들이 단순히 선과 악으로 즉, 낮과 밤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원론적 입장을 본다면 나는 이 그림을 인간의 모습과 같다고 보았다. 단순히 이원론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몸이 단순한 껍데기에 불과한 어둠이라고 한다면 마음은 밝음이라고 생각되어 인간의 모습을 낮과 밤으로 나타낸 것으로 본 것이다.
여기에서 물을 수 있겠다. 인간의 몸은 악의 모습을 띄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단순히 껍데기라고 해서 악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가라는 것이다. 일원론적 입장에서 본다면 분명 그렇지 않다. 인간의 마음과 몸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몸이 악이라고 말한다면 그 마음 역시 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원론적의 입장에서 본다면 몸은 단순 육체이다. 몸이 악의 근원이라는 것은 몸이 원하는 욕망에 의해 (그것이 원초적이었든 아니었든) 몸이 악이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몸과 마음이 다르다고 본 플라톤의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플라톤은 정신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보다 우월하다고 본 전형적인 철학자였다.
§ 플라톤 - " 영혼(마음)은 몸과 반대되는 그 어떤 독특한 것이다. 몸은 영혼을 방해 하고
오염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몸으로부터 분리되어야 비로서 깨끗해 질 수있다."
특히 플라톤의 "죽음의 명상"은 영혼(마음)이 우위를 드러내고 있다.
플라톤의 '죽음의 명상'은 신체의 저질성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몸의 삶으로부터 생동적인 관심을 빼앗으며, 몸을 영혼과 무관한 껍질로 하락시킨다. 그것은 몸을 마치 땅의 찌꺼기와 같은 것으로 탈 정신화하며, 이 찌꺼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한다. 플라톤이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금욕적 태도 때문이었다. 즉, 몸이 욕망을 불러 일으켜 마음을 더럽힌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에는 몸 자체가 "악"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몸이 요구하는 욕망에 의해 몸 자체를 악이라고 보는 플라톤의 사상은 인간의 존재를 매우 좁게 한정시키며, 몸이나 이 세계를 죄악시하거나 경시하는 사고를 조장한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몸과 마음의 이원론은 오랫동안 서구사상, 특히 기독교 교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혼불멸의 교리, 구원을 몸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보거나 몸이나 이 세계와 무관한 순수히 정신적이고도 내세적인 것으로 보는 견해, 몸이나 지상적인 것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금욕적 태도 그리고 성(性)을 비하 억압하거나 죄악시한 것(성욕을 육체적 정욕의 죄로 규정한 것) 등은 단순히 이러한 욕망조차 나쁘게 보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욕망 자체가, 그리고 몸이 이러한 욕망을 요구한다고 해서 몸이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내가 말했듯이 몸은 마음의 모습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다만, 그 욕망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악함을 표현하고 대신했을 때 그는 나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몸 자체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성욕 등)을 요구한다고 해서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사회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들이 나쁘고, 또 저질스럽게 보여지는 편견에서 나오는 또 다른 편견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이러한 원초적 욕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바뀐다면 몸에 대한 인식 또한 바뀌지 않을까? 나는 오히려 몸을 신성시 해야하고 이러한 원초적 욕구를 충족 시켜주는 것이 곧 마음의 휴식이나 충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러한 욕구들이 악한 것일 때, (성욕을 굳이 빌어 말하자면 강간 같은 것) 그건 몸이 악한 것이라기 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러한 행동을 한 인간의 모습이 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3』이제는 이러한 몸담론에 관한 이야기는 결코 생소한 것이 아니다. 요즈음 들어 특히 더 그러한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요즘에는 누드나 몸짱 열풍이, 또 거기에 따른 몸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꾸기 위한 요가나 테라피 그리고 웰빙 열풍이 한참 붐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현 사회에서 몸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다. 이러한 때, 우리는 단순히 따라가기 보다는 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자는 의도에서의 열풍인지 아니면 날이 갈수록 외적인 미에 치중되고 있는 현 사회의 현실에서 포장되어진 또 다른 미적 차별이 아닌지 말이다.
나는 이러한 것이 몸에 대한 이중적 잣대라고 본다. 인간의 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나타내는 겉모습으로서, 또 인간의 순수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놓고 그 이면에는 자본주의적 상업성을 결합시켜서 한없이 몸을 단순히 인간의 껍데기로 타락시켜버리는 것이 아닌지를 말이다. 안타깝게도 현 사회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후자에 가까운 듯하다. 예를 들어 몸짱 열풍을 보자. 처음에는 단순히 자신의 몸을 잘 가꾼 사람들을 칭하는 용어로 쓰이다가 이제는 그걸 넘어서 너도 나도 몸짱 열풍이다 보니 이제는 미적 용어의 일부가 되어 몸짱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이상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이 말이 결코 자신을 가꾸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두들 고가의 헬스클럽에 다니려 하고, 인스턴트를 피해 유기농을 찾고 있으며, 남들처럼 되려고 한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어 가꾸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로 누드 열풍을 보자. 몸의 아름다운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말 그대로 벗는 것이다. 성의 개방화라는 좋은 말로 포장되어 나와서는 내부에서는 좀 더 많이 벗고, 좀 더 파격적인 것을 추구하여 더 많이 소비되어지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잣대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아주 근본적인 이유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몸을 마음을 나타내는 하나라고 보지 않고, 몸 자체로만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데에서 몸을 신성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경시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이에 따라 몸을 현 사회의 자본적 특성과 연관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마음과 몸이 하나인 것이 아니라, 몸이 마음을 지배해버리는 현상이 오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명목 하에 점차 몸에 속박 당해 거기에 노예처럼 얽매여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나 역시 이러한 열풍에 한참 빠져있었던 듯 하다. 단순히 건강미를 위한다는 핑계로 나 역시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말 그대로 웰빙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몸을 가꾼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몸을 가꾸는 것이 곧 마음을 가꾸는 것이면 괜찮은데, 그게 아니라 몸만 가꾸고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에 한참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춘자라는 가수의 "가슴이 예뻐야 여자"라는 노래가 있다. 참 현 사회의 이면적인 면을 잘 꼬집어 표현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가슴이 예쁜 여자라는 말은 언어유희를 잘 이용했다고 볼 수 있겠다. 육체적 미로도 볼 수 있고, 마음씨가 고운 여자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노래의 실질적 가사는 후자를 말하고 있지만, 전자 쪽에 더 비중을 두는 현 사회를 정확하게 꼬집고 있다.
인식을 바꾸어야 이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성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서 아름다운 우리의 몸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적인 교육을 받을 때부터, 몸의 신성성에 대해서 몸과 마음을 하나라는 점에 대해 깨우쳐 주고 올바르게 인도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가깝게는 아름다운 우리의 몸을 올바르게 배우는 데에서부터 멀게는 이러한 몸의 자본주의화, 그리고 성범죄와 같은 광범위한 사회의 문제점까지 하나씩 해결해 나갈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에 대해 그리고 인간을 이루는 몸과 마음에 대한 이론들과 거기에 따른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이제는 길고 긴 나의 몸에 대한 생각을 마무리 지어보려고 한다. 나의 경우, 두 가지 입장을 골고루 지지하는 편이지만, 나의 생각을 이리 저리 정리해 본 결과, 심신일원론 즉,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이론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심신이원론을 지지하건 심신일원론을 지지하건 간에 우리가 밝혀야 할 것은 마음의 자리가(심신일원론), 또는 마음과 몸의 상호작용 자리가(심신이원론) 몸의 어디인가, 그리고 마음과 몸은 어떤 관계가 있는 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솔직히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참에 많은 깊은 생각을 해본 것 같다. 이러한 계기를 마련해 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이제는 나부터 나의 몸을 신성하게 여기고 마음과 몸을 함께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첫댓글 [4]자신의 생각에 대한 견해를 잘 밝히셨고 많은 조사를 통한 자신의 주장을 잘 뒷받침 하셨습 니다..아주 인상적인 답변이군요.. 정말 잘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4] 정말 깊이있게 생각하셨나봐요..표현의 정리도 잘 되어있구요...좋은글 잘 읽었습니다..수고하셨어요~~
[4] 많은 조사와 자료를 바탕으로 주제를 전개하셨네요ㅡ 명확한 주제도 있을뿐더러 본인의 견해도 아주 잘 정리해서 서술하신 것 같아요ㅡ 잘 읽었습니다ㅡ 수고하셨어요^^
[4] 짜임새있는 글이었습니다....수고하셨습니다^^
[0] 좋은 평가 받으셨네요 좀 더 일찍 내셨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