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장 13절을 보면 그제야 아브라함은 한 숫양이 수풀에 걸려있는 걸 봅니다. 하갈이 사막에서 샘을 발견한 것과 비슷하죠. 직전까지는 보지 못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선 발견한 겁니다.”
“그러네요.”
“아브라함은 그 양을 잡아서 준비된 제단 위에서 제물로 바쳤습니다. 사막에 샘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고, 숫양이 그때 갑자기 수풀에 걸린 것도 아닐 텐데요. 그전까지는 그들의 눈에 샘이든 양이든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고선 그게 맞다고 우기는 게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준비하시고, 사람은 사건을 겪고 나서야 그 준비하신 걸 깨닫는 존재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 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라는 뜻입니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게, 13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라고 했습니다.
이게 바로 ‘대속’(代贖)입니다.
대신 대가를 치르는 거지요. 예전에 설명했는데 기억나시죠?”
“예.”
어림잡아 십 개월 동안 이 단어를 수십 번은 쓴 것 같다. 성경 이야기를 하는 목적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냐는 것이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해주신 게 바로 ‘대속’입니다.
사람이 타락해서 하나님이 되려고 했기에 하나님과 단절되는 죽음을 맛보았고, 결국 육신도 죽고, 영혼도 지옥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단절되는 죽음을 겪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그 대가를 치러주셨지요.
예수님은 ‘대속’하셨고, 사람은 ‘구속’(救贖) 또는 ‘구원’(救援)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향해 ‘네 씨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네 씨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셨어요. 여기서 ‘네 씨’는 단순히 외아들 이삭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신약성경 로마서에 보면 여기서의 ‘씨’는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나와요. 그런데 예수님은 성읍을 빼앗고 성문을 차지한 적이 없으시거든요. 그러면 여기 나오는 ‘대적’은 누구일까요?”
“사단이요.”
“맞습니다. 그럼 ‘대적의 성문’은 사단이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문이겠지요. 그 문을 예수님이 빼앗는다는 건 지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민족이 구원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지요.” “이 모든 일이 지나간 다음 아브라함과 이삭이 종 둘과 나귀를 남겨뒀던 곳으로 돌아와서 같이 사라가 기다리고 있는 브엘세바로 돌아갔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여기서 끝나는데요.
이삭은 죽지 않았으니 해피엔딩인 것 같습니다만 저는 ‘이후에 그들이 어떻게 살았을까’가 참 궁금합니다.”
“뭐가 궁금하세요?”
“첫째는 ‘이삭이 집에 돌아와서 엄마인 사라에게 자기가 당한 일을 이야기했을까?’
둘째는 ‘이삭은 아버지가 자기를 칼로 죽이려 들었는데 트라우마 없이 잘 지낼 수 있었을까?’입니다.”
비신자분을 소개하신 분이 말했다.
“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듣고 보니 그러네요. 목사님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세요?”
“내가 이 사건을 당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게 ‘하나님이 양을 준비해주셨다’라는 은혜로운 간증으로 끝날 사건인가 말입니다. 기독교를 옹호하는 마음으로 성경의 내용이면 뭐든 좋게 생각하려는 입장이 아니라 이 성경을 같이 읽어나가는 비신자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면 단순한 해피엔딩은 아니란 겁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일에는 모두 명암이 있잖아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니까 무조건 밝은 쪽만 보지 말고, 그들이 실제로 겪어야 했을 어두운 부분도 보자는 거죠. 왜냐면 우리는 명암을 겪으며 살고 있으니까요. 밝은 이야기만 듣다가 어두운 일이 생기면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이런 일은 왜 생기는 거지?’라며 계속 찝찝할 수 있잖아요.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해피엔딩을 부러워하지만 성경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면 그들도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해피엔딩이기만 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늘 본향인 천국을 그리워했다고 하지요.
삶이 해피엔딩이면 굳이 천국을 그토록 그리워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믿음의 행보를 하면서도 여전히 삶의 문제와 씨름하며 천국을 사모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리얼 라이프’입니다.”
– 대화로 푸는 성경, 강신욱ㅡ
† 말씀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이사야 43장 1~2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 로마서 4장 18~21절
† 기도
삶의 여러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그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 천국을 사모하며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늘 본향인 천국을 소망하며 이 땅의 삶의 문제들을 주님을 신뢰함으로 승리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첫댓글 고난이 없으면 우리는 천국을 사모하지 않는 죄성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고난예찬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