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을 알리는 보신각의 종소리가 울린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12개월 하고도 열흘이 지났다. 한 해를 정리하며 연초에 계획했던 목표들을 하나씩 꼽아본다. 그 많던 계획 중에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은 계획이 몇이나 있을까? 적어도 한 개 이상은 달성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 몇이나 될까?
여기 연초에 세 가지 목표를 세웠던 축구선수가 있다. 득점왕, 팀 우승, 통산 100호 골. 14개 팀의 500명이 넘는 선수 중 가장 많은 골을 넣어야만 받을 수 있는 득점왕. 14개 팀 중 단 한 팀만이 가능한 K리그 우승. 그리고 18골이 모자랐던 통산 100호골 달성. 자신의 한 시즌 최다 골인 16골을 넣어도 불가능한 수치였다. 게다가 K리그 11년차, 어느새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와 지난 시즌 부진의 기억은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그는 불가능할 것 같던 세 가지 목표를 모두 이뤄냈다. K리그 득점왕과 더불어 전기리그 우승. 그리고 챔피언결정전 1차전 결승골의 주인공이 되어 팀을 2006 K-리그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통산 득점은 100호 골을 넘어 역대 4위인 윤상철과 101골로 타이를 이뤘다. 이제 3골만 추가하면 샤샤의 3위 기록도 넘어설 수 있고 올해대로의 페이스라면 내년 통산 최다골인 김도훈의 114골 경신까지도 가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AFC챔피언스리그, 피스컵 등 새로운 과제까지 주어졌다.
데뷔 11년 만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2006 득점왕’ 우성용을 베스트11 개표행사가 있었던 12월 7일, 축구회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는 득점왕 수상 공식인터뷰와 별도로 이루어졌다.
- 득점왕 수상을 해서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감회가 새롭죠. 개인적으로 화려한 선수는 아닌데 팀이 우승을 하다보니 저한테도 개인적인 상들이 따라오는 것 뿐 입니다. 여러분들 앞에서 인터뷰도 하게 되서 기분이 새롭습니다.
- 올해 이룰 수 있는 목표는 모두 다 이룬 것 같은데, 거기에 따른 상실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작년에 성남으로 이적해 와서 부진했기 때문에 올해는 저에게 더욱 뜻 깊은 한해였습니다. 개인적인 목표로 통산 100호 골, 득점왕, 팀 우승 세 가지를 정했는데 올해 다 이뤘어요. 마지막 수원과의 2차전에서 주심 휘슬이 울리는 순간에는 굉장히 눈물 나올 듯 기뻤는데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약간 허무한 생각도 들더라구요. 짧은 이 순간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긴 여정을 달려왔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 올 해는 골 뿐만 아니라 어시스트도 공동 6위인데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더 뒀습니까?
개인적인 목표를 떠나서 작년에 플레이오프에 올라가서 울산에 역전패를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훈련을 훨씬 열심히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꼭 한 번 타고 싶었던 득점왕도 탔고 어느새 100골도 넘겼는데 축구선수라면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우선 팀이 우승하는 것이 첫 째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타이틀도 따라온거구요.
개인적으로 9년 만에 우승컵을 들었는데 감회가 새롭고 선수생활의 끝마무리에 좋은 팀에 와서 좋은 선수들과 성적을 냈다는 것에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얼마 전에 역대 득점왕 모임인 ‘황금발 클럽’에 참여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골키퍼를 보셨다구요?
예. 골키퍼는 처음이었어요. 공을 손으로 잡아야 되는데 저도 모르게 발이 먼저 나가더라구요. 처음에 골을 먹어서 선배님들께 욕도 많이 먹었는데 그나마 이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3년 만에 한국 선수가 득점왕이 되어서 초대 회장님이 많이 축하해 주시더라구요. 황금발이라는 모임이 좋은 취지를 갖고 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저도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황금발클럽에 통산 득점 기록을 갖고 계신 분들도 많을 텐데 기록 경신하지 말라는 말은 없던가요?
그런 말은 안하고 축하를 많이 해주시죠. 전부 대선배님들이고 예전에 화려했던 생활을 하신 분들이다 보니 저도 많이 생소했습니다. 특히 그런 말을 해주시더라고요. 몸 관리 잘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하라고. 가벼운 격려의 말일 수도 있지만 저한테는 정말 좋은 말인 것 같아요.
- 일단은 통산 1위 기록을 세우는 것이 먼저겠지만, 자신의 기록을 깰만한 후배로는 누굴 꼽으십니까?
일단은 김은중 선수나 이동국 선수로 내다보고 있는데 이동국 선수는 해외 진출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가장 유력한 선수는 김은중 선수 같아요. 아직 나이도 젊으니까 3~4년 안에는 충분히 깰 수 있다고 봅니다.
- 역대 101골의 득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이 있다면요?
부산에 있을 때인데 2001년이었어요. 안양 LG와 경기였는데 3-1로 지고 있다가 제가 한 골을 넣고 3-2까지 따라 붙었어요. 시간이 다 된 상황에서 헤딩 골을 넣었는데 넣는 순간 공중에서 수비수와 걸려 넘어지면서 목을 다쳤어요. 떨어지면서 몸이 돌아갔기 때문에 골이 들어간 것도 결국은 못 봤거든요. 그래서 그 골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시 저희가 비겨주면서 성남이 그 해 우승을 했어요. 성남하고 안양LG가 1위 싸움 중이었는데 저희가 비겨줘서 결국은 성남이 우승을 할 수 있었죠.
- 2001년, 2002년에는 연속 득점 2위를 했고 올해 득점왕을 했는데, 개인적으로 전성기는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제가 부산 시절이었던 2000년, 2001년이 나름대로 전성기라면 전성기였어요. 그 때가 골도 최고 많이 넣었고 2003년, 2004년 포항으로 팀을 옮기고 나서도 꾸준히 해온 것 같아요. 작년에 무릎도 수술하고 몸이 좋지 않아서 힘든 한 해였습니다. 사람이 힘들면 그만큼 여러 가지 생각도 들기 때문에 올 해 같은 경우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다보니 운도 많이 따라준 것 같습니다.
- 그 때 부산에 좋은 선수도 정말 많았잖아요?
선배들도 많고 후배들도 좋은 선수가 많았어요. 그 때 시기가 참 힘들었고 부산에 있으면서 어느 정도 나이를 먹다보니 28~29에 축구에 눈을 뜨지 않았나 생각을 해요. 부산시절에 이게 축구라는 걸 새삼 느낀 것 같아요. 2003년에 포항으로 이적을 했는데 매스컴도 그렇고 제가 포항에 이동국 선수 밑에 2인자라고 얘기를 했어요. 결코 그건 아닌데. 동국이는 상무에서 제대해서 오는 것이고 저는 이미 2년을 소화해서 이동국선수의 자리를 제가 메꿔 준 것인데... 팀도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렸는데 그렇게 기사가 나오면 속이 많이 상했어요.
이동국 선수하고도 개인적으로는 친해요. 제대하기 전에도 통화하면서 같이 발 한 번 맞춰보자고. 기다리세요, 그런 식으로 통화도 하고 그랬는데.
- 올해는 우승까지 거뒀지만 지난해 플레이오프에는 김도훈 코치와 모따의 부상이 겹쳐 직접 경기에 뛰고도 역전패를 당해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작년에 골은 못 넣었지만 어시스트는 했어요. 어떻게 보면 그 때부터가 저한테는 기회라면 기회였지요. 모따 선수가 있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 홈에서 역전패를 당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지요.
- 부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지난 시즌 부진의 이유로 원톱으로의 적응이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제가 다른 팀에 있을 때는 투톱을 많이 봤었습니다. 원톱이라는 포지션 특성상 포스트 플레이가 주가 되고 몸싸움을 많이 해줘야 되는데 제가 몸싸움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올해는 김도훈 선생님께서 은퇴를 하시고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원톱으로서의 노하우도 가르쳐주셔서 제 스타일도 많이 바뀐 것 같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스크린이나 골 넣는 법 등 배울 것도 많습니다.
- 96년도 애틀란타 올림픽 시절에는 사이드로도 많이 움직이지 않았습니까?
날개도 보고 미드필더도 보고 그랬어요. 그 때 당시는 수비형 쪽으로 많이 봤었는데 (최)용수형이 없으면 포워드도 봤어요. 그 때 이후부터 스토퍼도 한 번 봤었고 여러 포지션을 경험했죠. 어떻게 보면 그래서 저한테 2인자라는 수식어가 자꾸 따라붙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프로에 11년 동안 있으면서 성공했다면 성공한거고 꾸준히 해왔다고 자부하는데 매스컴에 2인자라는 말이 자꾸 나오면 속은 상하죠. 다행히 이 기회에 그걸 벗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전기리그가 끝나고 용병들이 대거 교체되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전기리그에는 성적이 좋았는데 후기리그부터 두두가 나가고 성적이 좋지 않으면서 감독 선생님도 그렇고 저희들도 그렇고 정규리그 우승팀 징크스가 몇 년 동안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조바심이 생겼어요. 용병들이 새로 영입되었는데 후기리그 동안 발을 맞춰간다고 해도 그 분위기가 플레이오프까지 연결될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네 게임 동안 계속 이기다가 비기고 지는 상황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구요. 그런데 저희가 수원에 열세였기 때문에 모든 매스컴이나 사람들이 수원이 이길 것이라고 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감독 선생님도 그렇고 저희들도 그렇고 오히려 상대가 수원이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이따마르 선수가 영입된 후에 많은 우려가 있었는데 팀에 잘 적응 한 것 같나요? 본인과의 호흡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이따마르 선수가 전남, 포항, 수원을 거쳐서 저희 팀에 왔는데 다혈질에 자기플레이밖에 못하는 선수라고 알려져 있어요. 저희 팀 같은 경우 가장 강조하는 것이 조직력과 협동심이고 감독 선생님이 그런 부분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따마르 선수가 자신의 플레이를 다른 팀에 있을 때보다는 버리지 않았나. 그래서 그나마 융합이 되서 우승하는데 보탬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이따마르 선수나 저는 한 포지션에 있는 선수인기 때문에 동시에 출격할 때는 아무래도 서로가 겹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 선생님도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은 주문을 하셨고 처음에는 같이 맞추면서 경기를 뛰었는데 그럼에도 중복이 많이 되다보니까 나중에는 한 번씩, 번갈아가면서 출전을 한 것 같아요.
- 미디어데이 행사 때 김학범 감독이 플레이오프에 초점을 두고 있다, 팀 분위기는 좋다고 말을 했는데 실제로 분위기가 좋았나요?
아무래도 게임이란건 기왕이면 이기는 것이 좋겠지요. 감독 선생님은 플레이오프에 초점을 맞췄다고 해도 선수입장으로서 솔직히 썩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후기를 거쳐서 플레이오프에 맞춰간다고 했으니까 저희도 나름대로 분위기를 다시 띄우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침체된 분위기도 아니고 오히려 그래서 우승을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해요. 담담한 분위기에서.
ⓒ 정선녀
- 잠시 가족이야기를 해보죠. 딸의 몸이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상 받을 때마다 이야기가 계속 나오네요. 이제는 집사람이나 저나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만 처음에는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지금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해준다고 생각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병이라는 것이 완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큰 수술은 다 끝났고 정기적으로 검사만 받는 단계니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 올 시즌 득점왕과 우승에 무엇보다 가족들이 많이 기뻐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집사람이 가장 힘들어했어요. 저 때문에도 그렇고 둘째 애 때문에도 많이 울고 속상해했는데 제가 마지막에 잘 되서 집사람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 키는 어렸을 적부터 컸나요? 포워드 포지션은 그 때부터 보기 시작한 것입니까?
다른 사람보다는 크긴 했지만 고등학교 올라가서 갑자기 키가 커서 처음에는 놀랬어요. 1년에 20cm가 자라니까. 지금까지 고등학교 키인 것 같아요.(웃음)
대학교 까지는 계속 포워드만 봤었거든요. 올림픽대표 당시에 비쇼베츠 감독이 키 큰 사람들을 선호해서 다른 쪽 자리도 많이 넣어준 것 같아요.
- 강릉농고와 강릉상고의 정기전 열기가 매년 뜨겁다고 들었는데, 강릉농고 시절에는 맞대결에서 이겼나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두 번을 했는데 두 번다 진 것 같아요. 3학년 때는 대통령배 시합이랑 겹쳐서 못했는데 1, 2학년 때 2번을 해서 다 진 것 같아요. 가끔 얘기 들어보면 요즘은 농고가 이긴다고 하더라구요. 지금은 강릉상고가 강릉제일고로 바뀌었는데 매년 경기를 갖는걸 보면 라이벌이긴 라이벌인 것 같아요.
-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선수와 발을 맞춰봤을 텐데 어느 선수와 호흡이 가장 잘 맞나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선수는 없어요. 김상식 선수나 김두현 선수는 제가 다른 팀에 있을 때 대표 팀에서 만난 적이 있고 작년을 거치면서 적응을 했기 때문에 올해 들어서는 서로 주문하는 부분도 많아졌습니다. 두현이가 저한테 어시스트를 많이 해줘서 올해 골을 많이 넣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선수나 팀뿐만 아니라 여러 감독을 거쳤을 텐데, 가장 스타일상 잘 맞는 감독이 있었나요?
선수가 지도자와 잘 맞는 다기보다는 그 지도자를 따라간다는 자체가 오히려 맞는 말이겠지요. 올해의 저를 만들어주신 분이 김학범 감독님이기 때문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학범 감독은 어떤 분인가요? 흔히 공부하는 감독이라고 알려져 있잖아요.
다혈질이라면 다혈질인 선생님인데 올해는 많이 자제를 하신 것 같아요. 물론 부드러울 때는 한 없이 부드러운 분이구요. 제가 보기에는 무엇보다도 축구에 대한 열정이 프로에 있으면서 만나본 지도자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해요. 매스컴에서 공부하는 지도자라고 많이 나오는데 늘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세요. 분석력이 정말 좋으시구요. 다른 팀 선수, 다른 팀 컬러를 조목조목 잘 짚어주셔서 저희가 경기에 들어가면 그대로 들어맞아요. 직접 부딪혀보는 저희들보다도 다른 팀 선수를 더 잘 아는 것 같아요.
- 내년에 AFC챔피언스리그, 피스컵 등 많은 대회를 치르게 될 텐데 어떤 대회에 중점을 둘 것인가요? 모든 대회를 소화하기에 무리가 따르지는 않을까요?
대회가 많으면 좋은 것이지만 선수들한테는 무리가 생길 수도 있죠. 감독 선생님하고 구단이 잘 의논을 해서 선수수급을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우승컵을 다 들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이고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서 감독 선생님이 어떤 대회를 잡겠다는 말씀을 할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피스컵을 들고 싶어요. 지난해에 성남에 와서 피스컵을 경험해봤는데 좋은 선수들도 많이 참가하고 저희 팀과 연관도 되어있는 대회이기 때문에 기왕이면 그런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 전력보강을 한다면 어느 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감독선생님하고 최근에 인터뷰를 같이 다니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까 수비보다는 공격과 미드필더 쪽을 수급하시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용병은 세 선수 모두 계속 가나요?) 저희 팀 용병은 계약 기간이 남아있어서 같이 가고 국내선수 쪽으로 수급을 할 것 같습니다. (특별히 같이 뛰고 싶은 선수가 있나요?) 이천수 선수나 정경호 선수 같이 빠른 선수가 오면 아무래도 저한테는 도움이 되겠죠.
- 성남입장으로서는 2004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당한 대패를 만회하는 것도 중요해 보입니다.
아무래도 한 번 쓴맛을 본 대회이기 때문에 올해 전북이 우승을 한 것처럼 저희도 기왕이면 우승해서 세계 유명 클럽과 시합도 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삼았으면 해요.
어제 시상식에서 최진철 형님을 만났는데 오늘 일본 들어가신다고 하더라구요. 기왕이면 이겨서 바르셀로나하고 해보라고, 좋겠다고 했는데 기왕이면 이겨서 바르셀로나하고 경기하면 좋겠어요. 저희도 구경도 하구요. 전북이 바르셀로나하고 붙어보면 우리나라 리그의 수준이 어느 정도 나올 수 있으니까 저희도 경기를 보면 느끼는 것이 있을 것 같아요. 전북 선수들이 행운아라면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 2년 정도 더 선수생활을 하겠다는 인터뷰를 봤는데 올해 컨디션을 감안했을 때 더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까?
그 때 가면 제가 더 뛰고 싶어도 못 뛰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아직까지는 더 현역생활을 하고 싶고 김도훈 코치님이 갖고 계신 114골이라는 기록을 우승과 더불어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 선수시절의 김현석 코치, 김주성 위원처럼 수비로 전향해서 더 뛸 수 있는 방법도 있는데요.
그렇게 되면 아마 후배들한테 욕먹을 거예요.(웃음) 제가 여태껏 포워드로 왔기 때문에 그 포지션으로 은퇴를 하고 싶어요. 통산 득점 기록을 깨면 K-리그에 제 이름이 남지 않겠나 생각을 합니다.
- 은퇴 후에는 어떤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무래도 제가 여태껏 해온 것이 축구니까 이쪽 길로 들어설 것 같은데, 만약 들어선다고 하면 저는 유소년 선수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제가 어릴 때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축구를 했는데 아이들이 자유롭게 축구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유럽처럼 늘 공을 옆에 가지고 다닐 정도로 해야지만 아이들이 점점 크면서 더 좋은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올해가 11년차니 내년에 12년 차로 접어드네요. 하지만 처음부터 변하지 않은 한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화려한 선수가 되기보다는 나중에도 K리그에 우성용이라는 선수가 있었구나를 알 수 있게 이름 석 자를 남기는 것이에요. 지금처럼 늘 꾸준히 노력해서 K리그에 우성용이라는 이름을 남기고 싶습니다.
K-리그 명예기자 홍재의
첫댓글 우성용만 보면 김도훈이 생각나네...ㅠㅠ
국대 유니폼 입은 모습은.. 저번에 아시안컵 예선 때 몇번 본 것 밖에 기억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