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린 자세로 가난한 자와 병약자들을 돌봐온 것이 여러 가지 질병의 원인’이 되었다며 더 이상의 봉사활동을 만류한 의사의 진단과 처방은 무시한 채, 테레사 수녀는 병원문을 나서자 서둘러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어린이에게 돌아가 섬김의 활동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병세가 심각했던 시기에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처럼 그냥 죽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기도 했습니다.
철저하게 낮은 곳을 향하여 살아갔던 그 모습은 예수님의 낮아짐의 진리를 몸으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낮아짐에 진리가 있고 사랑이 있고 소망이 있음을 보여 준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97년 9월 5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음으로 굽은 허리를 펼수 있게 된 것입니다.
행복을 선택하라
사과 다섯 개를 먹은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좋지 않은 것부터 먹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사람은 제일 좋은 사과부터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한 사람은 다섯 개를 먹는 동안 내내 좋은 것만 먹게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내내 나쁜 것만 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는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똑같이 다섯 개를 먹었음에도 그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행복하기로 결심하시고 행복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몸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몸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성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몸에는 지체가 있습니다. 다양한 지체가 한 몸을 이루어 연합하는 것이 참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만나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고후11:2)이기에 주님 맞이할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미장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가족(엡 2:19), 하나님의 양떼(벧전 5:3)입니다. 사랑과 치유가 깃드는 곳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곧 교회입니다. 교회로서 이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기쁨의 하나님
마틴 루터는 ‘탁상담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슬픔과 죽음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것들은 악마의 속성이다. 그리스도는 기쁨의 하나님이시기에 성서는 우리가 기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다. ’
넘치는 이 기쁨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영혼의 기쁨이 채워질 때 우리에게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 : 4)’
넘어서야 할 것들
그리스도인에게서 기쁨을 앗아 가는 것은 근심과 스트레스와 두려움입니다. 근심은 일어나지도 않은 것에 대한 터무니 없는 염려인데 근심하던 일은 보통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근심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스트레스는 우리가 변화시키거나 조정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긴장입니다. 이 경우에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입밖으로 내어놓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두려움은 위험,불행,고통이 있을 때 느끼는 무서운 불안정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본래의 모습보다 과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는 말씀으로 힘을 얻도록 해야합니다.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는 주 하나님 오늘 어떤 일이 있을지 주님은 아십니다. 주님은 그 일의 시작부터 함께 하셨으며, 모든 일이 결국에는 주님의 더 큰 영광을 이루도록 하실 것입니다. ’
‘퍽두 영광이유’
장로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원도 산비탈에서 밭을 개간하여 힘들게 살아가는 어머니께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영광일세, 영광일세’ 찬송하실 때, 그 옆에서 ‘퍽두 영광이유 퍽두 영광이여. 떼구르르 굴러 떨어지면 뼈도 못찾을 산비탈을 개간하면서 퍽두 영광이유.’히고 분노하며 화풀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넘어선 신앙의 어머니 덕분에 자신은 나중에 큰 믿음의 열매를 얻게 되었고 교회의 신실한 장로가 될 수 있었다고 감사함으로 간증하였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편하든지 고통스럽다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영광을 돌리시길 바랍니다.
기절합시다
나이도 많고 건강도 좋지 못한 할머니가 100만불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 당첨소식을 알려드리면 졸도하실 수도 있기에 고민하던 복권회사는 할머니가 출석하시는 교회의 신부님께 당첨 사실을 알려드리도록 부탁했습니다. 신부님은 할머니를 만나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럴 일이 없겠지만 할머니께서 100만불 복권에 당첨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시큰둥하게 듣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만약에 100만불 복권에 당첨되면 그 상금을 모두 신부님께 드리겠습니다. ’
그 말들 듣은 신부님이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기절할 일이지요. 아마 나라도 기절했을 겝
니다.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깨달으며 산다면 날마다 기절해야 할 것입니다. 올해의 감사절엔 기절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맛과 멋
맛과 멋의 차이는 무엇일까요?맛이 혀를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멋은 눈과 귀 그리고 풍채와 인격 전체를 마음으로 즐기는 것입니다. 여인을 보고 예쁘다고 하면 그것은 맛을 의미하고 우아하다고 하면 그것은 멋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중에는 멋을 따라 사는 사람과 맛을 따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멋은 어디에서 나타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한 자세로 받아들이며 심령 깊이 감사하는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또한 옳은 일보다 무엇인가 더 큰 덕인 관용을 지날 때에 그리스도인의 멋이 있습니다.
진정 그리스도의 맛고 멋을 지닌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러 가겠습니다.
종교개혁의 과제를 안고 한없는 고민과 근심에 쌓여 있던 마틴 루터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한가지씩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교회가 내 교회입니까? 하나님 교회입니까? 하나님 교회이지요. 이 종교개혁의 일이 내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이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저는 이만 잠자러 가겠습니다. ’ 루터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쉼을 가졌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모든 근심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기는 신앙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위기는 기회이다.
위기라는 말은 위험과 기회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위험한 파국이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기회가 된다는 말일겝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뒤에서는 바로의 애굽군대가 쫓아 오고 있었습니다.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지팡이를 홍해 위로 내어 밀자 홍해가 갈라져 육지처럼 건넜습니다.
위기의 순간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은혜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나고 있는 국가적 위기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은혜의 기회가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두려운 것
윔즈의 회의 (Bict of Worms)에서 한낱 수도사였던 마틴 루터는 교황, 고위성직자, 추기경, 황제가 듣는 앞에서 은혜로만 구원 받는다는 교리(Sola Fide)를 선포하였습니다. 엄숙하고 결연한 선언을 하기 전에 친구 수도사가 루터에게 물었습니다.
‘형제 루터여 두렵습니까?’ 루터는 이렇게 놀라운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교황과 그의 모든 추기경보다 더욱 대단하고 큰 교황인 내 자아입니다. ’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사람에게 기둥처럼 소임 받게 하시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쓰임이 필요한 기둥같은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눌 수 있는 사랑
19세에 뇌막염을 앓은 후 16년간 누워서 생활하는 분이 있습니다. 말하고 듣고 생각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앞 못 보는 전신마비 장애인이지만 자신보다 더 증증의 뇌성마비 환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자신을 위로하고, 가진 것은 발 하나뿐인 다른 환자가 그 남은 한 발로 자신에게 떠 먹여주는 밥을 먹으면서 하나님이 정하신 사랑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그 사랑을 혼자 담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벅차서 곱고도 끗끗한 영혼의 시로 자신의 사랑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 아무것도 아는 것 없고 /건강조차 없는 작은 몸이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지울 수 있는 죄악/피해갈 수 있도록 이 몸 묶어 주시고/ 외롭지 않도록 당신 느낌 주시니/(중략)/그래도 소담스레/웃을 수 있는 여유는/ 그런 사랑에 쓰여진 때문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배영희,‘나는 행복합니다.’
우리도 은총의 절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인생의 결산
33세에 백만장자, 43세에 세계 최대 기업주, 54세에 세계 유일의 억만장자가 된 록펠러는 지독한 구두쇠였습니다. 우유와 비스켓만 먹고 값싼 호텔에 들고 팁도 50센트만 놓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탈모증, 불면증에 걸려 의사가 1년 시한부 인생이라고 진단을 내리자 록펠러는 ‘ 저 세상에는 한푼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 교회나 가난한 이웃에게 도움 주기 시작했고 드디어 록펠러는 재단을 세웠습니다. 그후 불면증과 모든 병이 치료되어 54세보다 44년 더 살아서 98세까지 장수하였습니다.
재산보다는 마음의 평화, 영혼의 만족, 이웃사랑에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결산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새해의 기도
캐나다 피플스 교회의 오스왈드 목사님은 그의 38회 생일에 다음과 같이 새가지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갖게 하소서’ ‘ 주님과 항상 동행하게 하소서’ ‘이제부터는 백퍼센트 하나님께만 충성하게 하소서’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우리도 세가지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살게 하소서.’‘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게 하소서’‘우리의 심령이 가난하게 하소서’
은총으로 주신 새해를 기도로 열어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안기는 신앙
신학자 칼 바르트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는 없으나 만날 수는 있다.’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는 하나님을 믿을 때에 가능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올바로 만날 때에 가능하고, 하나님의 은총적 사랑을 깨달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관계의 신앙으로 하나님에게 안기고 하나님에게 안기고 하나님께 품기운 백성으로 (사46:3)살아가는 새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유앙겔리온
주전 490년경 페르시아의 침략을 받은 그리스는 열세였지만 마라톤 평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아테네의 군사들은 밀티 아데스 장군의 지휘아래 목숨걸고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전쟁의 소식을 가슴 조이며 기다리는 아테네 시민에게 한 시라도 빨리 승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파이디 피데즈 병사는 42.195km를 단숨에 달려 ‘승리는 우리에게 있다’는 한마디를 남겼으나 곧 숨지고 말았습니다.
이 희생적 공헌을 계승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마라톤입니다. 패하면 노예로 전락되고 마는 것인데 승리의 소식은 아테네 시민에게 자유와 구원을 주는 소식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을 ‘유앙겔리온’, ‘기쁜 소식’,‘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기쁜 소식 복음에 다시한번 감격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임자를 알아야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습니다. 지구 역사상 절대자를 찾는 종교가 없는 미족이나. 부족, 국가가 없습니다. 다 하나님을 찾아 가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 존 칼빈은 말하길 ‘하나님이 계심을 아는 의식은 인간의 골수까지 깊이 박혀 있어서 그것을 지워 버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차라리 천성을 바꾸는 편이 더 쉬울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개나 소도 임자를 압니다. 주인을 알아봅니다. 인간도 주인을 알아 보고 있는 것일까요?요즈음 교우들의 장례를 치루면서, 또다시 설날을 맞이하면서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름지기 자신의 임자를 알아야 합니다.
초점 맞추기
정신질환자들이 숨어서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심각하게 책을 읽고 있던 그들은 책을 덮으며 한마디씩 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다양한데 너무 나열식야’
‘이 책은 내용이 없구만. 형식만 번지르르하고…’
‘뭘 얘기 하려는지 알수가 없구만’
이때 간호사가 들어와 하는 말 ‘아니, 내 책상 위에 있던 전화번호부 도대체 누가 가져갔어요?’
초점이 맞지 않으면 사진은 흐려지고, 사이클이 맞지 않으면 라디오는 잡음만 들립니다. 그리스도인은 초점과 사이클을 하나님께 맞추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신앙은 심장박동처럼 힘차게 뛸 것입니다.
존 번연은 십자가의 은혜를 소재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하나님 아들인 당신은 당신의 겸손으로 은혜가 무엇인지 확증하셨습니다. 은혜가 당신을 비천하게 하고 모욕당하게 했습니다. 은혜가 당신으로 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죄의 짐을, 눈물의 짐을, 하나님의 저주의 짐을 지게 했습니다. 오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은혜는 당신의 모든 눈물 속에 있었습니다. 은혜는 당신의 옆구리에서 당신의 피와 함께 흘러나왔습니다. 은혜는 당신의 부드러운 입술의 모든 말씀과 함께 다가왔습니다. 은혜는 채찍으로 맞은 당신의 그 곳에서, 가시로 찔린 그 곳에서, 그리고 못 박힌 당신의 그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바로 그 곳에 진정한 은혜가 있습니다. 천사들을 경탄케 한 은혜, 죄인들을 복되게 한 은혜, 마귀들을 놀라게 한 은혜!’
이 놀라운 은혜로 우리의 생명과 신앙의 박동이 새롭게 뛰게 된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채워야 할 믿음
어거스틴은 ‘당신이 믿으려는 바를 이해하려고 하지말고, 당신이 이해하고 싶은 바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믿어야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믿어야 합니다. 과학은 이해하고 믿지만 신앙은 믿고 나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신앙는 선택과목이 아닙니다. 안 믿으면 죽고 믿으며 s사는 필수 과목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를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하셨습니다(막9:19). 믿음을 채우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가지면 영생이고 버리면 지옥입니다. 믿음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아닐까요?
긍정하는 신앙
어떤 낚시꾼이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고기를 잡으면 길이를 재어 보고는 큰 것은 버리고 작은 것은 담는 것이었습니다. 지나던 사람이 묻습니다.
‘큰 고기는 버리고 작은 고기는 담으시는데 무슨 이유이십니까?’
낚시꾼이 대답을 합니다.
‘그야, 이유가 있지요. 우리집 프라이팬으 크기가 15cm밖에 안되니까요. 15cm넘는 것은 곤란하지요’
우리는 낚시꾼을 어리석다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도 비슷하게 자신의 크기를 한정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작은 하나님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긍정하는 신앙으로 여러분의 프라이팬을 넓혀 가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는 소리
한 초대 교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건을 훔치려고 어떤 집에 몰래 기어들어가던 도둑도 집안에서 누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면 감히 들어갈 생각을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원수가 우리의 영혼을 훔치려고 우리에게 다가오다가 그 속에서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면 감히 들어오질 못한다.’
기도하는 소리가 필요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소리가 악한 영향력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평화의 도구
스위스 철학자 아미엘이 남긴 ‘일기’에 보면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마음이 변하면 태도가 변한다.
태도가 변하면 습관이 변한다.
습관이 변하면 인격이 변한다.
인격이 변하면 인생이 변한다.‘
평화의 주님이 교우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 채워짐으로 평화의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변하면 인생이 변하는 것입니다. 평화되어, 도구되어 사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늘 “잘 지냅니다. 제 인생의 최고의 날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에 그에게 ”왜 그렇소?“라고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오늘이 제가 가진 유일한 날이 아닙니까?“”오늘 편히 쉬게 하기 위해 오라고 부르시는 분이 계시기에 오늘은 제 인생의 최고의 날입니다.“
교우 여러분, 어떻게 지내십니까? 주님 안에서 생애 최고의 날을 사시기 바랍니다.
마음 다스림
인간의 모든 기관은 마음에 의해 좌우됩니다. 마음은 보고, 듣고, 걷고, 서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완고해지고, 유순해지고, 탄식하고, 두려워하고, 오만해지고, 남에게 설득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부러워하고, 탐구하고, 반성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인간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 마음속에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모실 때에 참으로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려 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참으로 자유하시길 바랍니다.
기운을 냅시다.
어떤 악마가 자기가 쓰던 무기를 팔려고 내 놓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에는 ‘팔지 않음’이란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악마의 도구를 사려고 온 사람이 물었습니다.
“이것은 왜 안 판다는 겁니까?”
“이것만은 안돼,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강력한 도구거든. 이 도구의 이름은 ‘기죽이기(discouragement)'라는 것인데 이것만 있으면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지.”
기가 죽는 것도 문제이지만 ‘기만 살아서’ 엉뚱한 일을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신앙안에서 ‘기 살리기’ 운동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보라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은 소년이 대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얘야, 너 오빠에게 피를 좀 줄 수 있겠니?”
아빠의 말에 한동안 침묵하다가 옆 침대에 드러누웠던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윽고 수술이 대성공이었을 때
“네 덕분에 오빠가 살게 되었단다.”
“정말 기뻐요, 그런데 나는 언제 죽나요?”
“죽다니?”
“피를 뽑으면 죽는 것 아닌가요?”
잠시 숙연한 침묵이 흐른 뒤 아빠가 입을 열었습니다.
“얘야, 넌 죽을 줄 알면서 오빠에게 피를 주었단 말이냐?”
“네, 전 오빠를 사랑하거든요……”
죽을 줄 알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차원
성서가 말하는 부활에는 세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오늘 우리가 축하하고 기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둘째는 종말의 그날에 있을 결정적인 부활입니다.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공중에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실 그때의 부활입니다. 이 부활에 대한 소망이 실제적인 우리 신앙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셋째는 현재 바로 지금 우리가 갖는 현재적인 중생의 부활, 거듭남의 부활입니다. 오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져서 변화받는 존재로 힘차게 살아가는 거듭남의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사랑의 반대 개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증오가 나쁜 것이긴 하지만 그의 이웃을 인격적인 ‘(너)thou'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관심은 그의 이웃을 단지 ’그것(it)',즉 하나의 사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 가운데 가장 나쁜 것은 무관심의 태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를 ‘(너)thou'로 만나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에 능력이 있고, 소망이 있고,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담긴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주를 보는 경건
사막의 교부 마카리우스(300-390A.D)를 대적하던 마귀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너에게 위대한 힘이 있어서 정복할 수가 없구나. 네가 하는 모든 것을 나도 한다. 네가 금식하지만 나도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네가 철야를 하지만 나는 아예 잠을 안 잔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네가 나를 능가하는구나.”마카리우스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마귀는 “그것은 겸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자 하는 경건한 마음을 겸손이라고 부릅니다. 자기 낮춤의 영성, 생명의 주님만 바라보는 겸손의 영성을 소유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잔소리 대신
‘말이 씨가 된다.’는 격언은 참으로 뜻이 깊습니다. 그만큼 말을 조심스럽게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말을 가리지 않고 마구하다 보면 되던 일도 안되고 늘 불화가 끊이질 않아 사람 살기가 쓴 소태맛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부모님이 가장 많이 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잔소리는 그만 두어야 합니다. 그 대신 그 만큼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그 품에서 자녀들의 미래가 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시작은 가정에서
구약성서의 시작인 창조이야기으 결론에서 하나님은 가정을 창조하셨습니다. 신약성서의 예수님은 그 첫 번째 기적을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 즉 가정을 이루는 곳에서 시작하셨습니다. 구약성서나 신약성서나 모두 가정에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과 치유가 깃드는 곳! 가정이 견고하게 서야 사회와 국가도 견고하게 서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견고하게 세우는 데 한 몫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로 여기에 어버이 주일을 지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희 망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고 있을 때 폴란드의 유대인 전용 시장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빈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서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팝니다.”
그런데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지나던 젊은이가 의아해서 묻습니다.
“노인장, 아무 것도 없지 않소?”
그러자 노인은 가까이 오라고 하면서 그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희망을 팔고 있습니다. 나의 동포여,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십니다. ”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참 희망은 우리 주님께 있습니다.
엄지손가락 하나
미국 일리노이즈에 60세가 넘은 한 할머니는 이상한 병에 걸려 통증이 잠시도 멈추지 않았고 사지를 원하는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누구보다도 감사할 줄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손가락도 못쓰게 되고 오직 오른손 엄지손가락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 기뻐했습니다. 막대기에 두 갈래 난 포크를 묶어 두고 그것으로 안경을 쓰고 빨대로 차를 마시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성서를 읽는 형편이지만 “나는 감사할 이유가 너무 많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를 묻자 할머니는
“내 모든 죄가 용서받았어요. 대단한 은혜 아닌가요? 주님의 사랑 안에서 편안히 누워 있을 수가 있죠. 또 언젠가 저를 부르시면 기쁘게 그 길을 따라 갈 수 있구요. 엄지 하나는 쓸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할머니는 은혜와 축복과 감사를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열 손가락을 인해 감사하고 있나요?
비 결
행복한 부부는 서로 편안한 마음으로 용납합니다.
행복한 부부는 희망과 꿈을 함께 나눕니다.
행복한 부부는 고집부리지 않고 비슷하게 맞춥니다.
행복한 부부는 서로를 위해 자신이 변화되는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부부는 피차에 가장 가까운 베스트프랜드(best friend)가 되어 누구보다 좋아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쓰고 최고의 신뢰를 둡니다.
가정의 달 마지막 날에 다시 한번 적어 본 행복한 부부의 비결입니다. 부부문제는 하나님의 최대 관심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부부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전선과 전류
“여러분과 나는 바로 이러한 전선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선속으로 들어와 활동하시는 전류와 같은 분이십니다. 우리는 전류(하나님)가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밝게 하는 빛이 되도록 자신을 바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우리는 전선이 끊어져 있고 전류가 흐르지 않아 그 결과 이 세상의 어두움이 더욱 심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거룩해지고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테레사 수녀의 말입니다.
우리 가슴속에 주님의 따뜻한 사랑의 전류가 흐르도록 함으로 그 분의 뜻을 이루시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보석을 받으려면
고대 중동지방에서는 왕이 충성스런 신하나, 외국에서 온 귀한 손님에게 선물을 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 왕이 선물을 내리는 의식이 있습니다. 신하나 외국 손님이 왕에게 무릎을 끓으면 왕이 이렇게 말합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그러면 신하가 입을 엽니다. 왕은 그 입에 귀한 보석을 넣어 줍니다. 왕이 빛나는 보석을 손에 쥐고 있다가 신하에게 입을 넓게 열라고 명하면 신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황송한 마음으로 왕의 선물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왕이신 주님이 보석을 주시려고 “네 입을 넓게 열라.”고 하십니다. 채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기도의 신앙을 소유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열매
성서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다섯가지 있습니다.
먼저 성령의 열매(갈 5:22-23)입니다. 그 다음 입술의 열매인 찬양이 있습니다. (히 13:15), 셋째로는 거룩하고 성결한 삶입니다. (롬 6:22), 넷째는 선행의 열매(골 1:10)입니다. 다섯째는 전도의 열매(롬 1:13)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하나님 중심의 인생나무가 되시기 바랍니다.
들어 갈 때와 나올 때
여우 한 마리가 포도원 밖에서 서성거리며 어떻게 해서든지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울타리 틈이 너무 작아 여우는 사흘동안 단식을 하고 나서야 울타리 사이로 포도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포도를 따 먹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배가 잔뜩 불러서 포도원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소화가 되기를 기다리다가 꺼진 배를 가지고 밖으로 나오면서 혼자 중얼거립니다.
“결국 배는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같구나.”라며 배를 채우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유대인의 인생유머입니다. 올 때나 갈 때나 빈손은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 섬기는 믿음과 이웃 사랑한 영원히 남게 될 것입니다.
감사할 이유를 찾으라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그것은 질병이나 실패나 배신이나 죽음으로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이 생기지 않은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입니다. ”
유명한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의 말입니다. 감사할 이유를 발견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의 영혼은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는 ‘은혜를 깨닫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 중의 은혜를 간직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낙심하지 말 것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어느 농촌에 밭에서 밀 농사를 하면서 가난하게 사는 농부 내외가 있었습니다. 읻들의 기도는 “하나님, 남을 도우며 살게 해주세요.”였습니다. 그러나 밀밭의 소출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밀 농사가 잘되지 않아 남을 돕기는커녕 자기 식구 양식도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몇 년을이렇게 지내면서 농부내외는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을 돕고 살게 해 달라고 했는데 이게 뭡니까?”
결국 농부 내외는 밀밭을 팔고 이사를 갔습니다. 얼마 후 이 농부의 밀밭에서 유전이 개발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농부내외는 기도하고서도 낙심했고 인내하지 못했음을 후회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의심한 불신앙을 회개하였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낙심하십니까? 기도했으면 끝까지 주님을 바라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시는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왜?
아기 낙타가 엄마 낙타에게 말합니다.
‘내 눈썹은 왜 이렇게 길어요?’
‘사막의 모래 폭풍이 불 때 눈을 보호해 준단다.’
아기 낙타는 또 묻습니다.
‘내 발은 왜 이렇게 커요?’
‘사막의 모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
‘엄마 그럼 나는 왜 큰 혹을 가지고 있어요?’
‘그건 사막을 여행할 때 물을 저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란다. ’
그러자 아기 낙타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동물원에 있죠?’
낙타가 어느 곳에 있어도 낙타인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어느 곳, 어떤 형편에서도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시 기뻐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 말라
공산권 선교에 주력하던 리처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자주 감옥에 투옥되고 공산당원들에게 생명의 위협도 여러차례 받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품속에 간직한 작은 성서를 밤낮으로 읽었습니다. 그 두려움의 때에 마음을 사로잡은 말씀은 ‘두려워 말라’였습니다.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나올 때마다 밑줄을 치고 헤아려 보니 정확히 365번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범브란트목사님은 무릎을 치며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1년 365일 날마다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땅으로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
“감옥과 수도원은 환경적으로 비슷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감옥을 지옥으로 만들고 수도원을 천국으로 만드는가? 감옥에서는 하루가 불평으로 시작되는 반면, 수도원의 하루는 감사로 시작된다.
그러나 만약 수도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감사를 잃어버리면 수도원은 지옥이 되고 반대로 감옥에서 감사를 발견할 수 있다면 감옥은 곧 천국이 될 수 있다.“
어느 중세 수도사의 글입니다.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감사에 있는 것입니다. 천구과 지옥의 차이도 감사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감사함으로 지옥같은 세상도 천국으로 바뀌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섬김에 의해 결정되는 것
“결국 우리의 삶은 마지막 이 한마디의 질문 앞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삶은 섬김을 받고자 하는 삶이었습니까, 아니면 섬기고자 하는 삶이었습니까? 내 삶은 섬김을 받기 원했던 삶이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천하보다 귀한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진지하게 섬기고자 하는 섬김의 삶이었습니까? 이것으로 여러분의 삶의 질은 결정될 것입니다. ”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의 말입니다. 진지한 삶의 열매를 위해 돌이키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자유와 해방주소서
하나님께서는 ‘돈이 모든 것이다.(Money is everything)'라는 황금만능에 사로잡힌 완악한 이 민족에게 채찍을 드셨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이전에 도덕적 타락이 있었고, 도덕적 타락 그 이전에 영적인 타락이 있었음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 없이는 진정한 자유와 해방은 없습니다. 회개(metanoia)는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에서 하나님께로의 방향전환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에게 참 자유와 해방을 주실 것입니다.
‘역사와 민족의 주인이신 하나님, 이 민족에게 다시 한번 자유와 해방을 주소서’
받는 것과 주는 것
어거스투스가 출생했을 때 한 이상한 노인이 찾아와서 그 산모에게 ‘이 아이를 위해 한가지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산모는 ‘이 아이가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게 해 달라’고 소원했습니다. 그 결과 어거스투스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살지만 그는 남이 주는 사랑에 취하여 교만해지고 남을 사랑할 줄 모르게 됩니다. 말년에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비참해집니다. 늙은 어거스투스에게 이상한 노인이 다시 나타나 ‘소원을 말하라’고 하자 어거스투스는 서슴치 않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 인간이 아니라 누구나 사랑해 줄 수 있는 인간이 되게 해 달라’고 합니다.
헤르만 헤세의 ‘어거스투스’라는 단편소설입니다. 행복은 받는 것에서가 아니라 주는데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누는 사랑을 소원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착각
해질녁에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본 여우가 혼잣말을 합니다.
“내 몸 길이가 30미터나 되는데 하찮은 사자를 무서워했군.”갑자기 의기 양양해진 여우가 사자의 집에 찾아가 외칩니다. “야, 사자 나와! 다 나와!”
그날 사자 가족은 난생 처음으로 수고하지 않고 식사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과소평가 하는 것 만큼이나 자신을 과대평가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자아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족보와 촌수
아들이 먼저 하나님을 믿고 아들의 전도로 아버지가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하늘을 날 듯 기뻐했습니다. 하루는 식사시간에 아버지께서
“야, 나도 예수 믿으니 오늘 기도는 내가 좀 하자. ”하더랍니다.
그러시라고 하자 아버지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형님이시여, 먹거리를 주셔서 고맙수.”
“하나님 형님이 뭡니까?”
아들의 질책에 “ 야, 이놈아, 너는 족보의 촌수도 모르냐> 네게 아버지뻘이면 내겐 형님이지…”
여하튼 한 영혼이 구원받아 하늘 곡간에 들여지는 추수라면 하나님은 형님소리도 반가워 하실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
행복한 결혼을 한다는 것은 ‘올바른 배우자를 찾는데’ 있다기 보다 ‘올바른 배우자가 되는데’ 있습니다.
결혼은 50%의 투자해서 되는 사업이나 장사 같은 것이 아닙니다. 행복한 결혼은 각자 자기의 100%를 기꺼이 내어 주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적당한 상태로 되는 결혼을 준비하지 않으셨습니다. 최선을 다해야만 가능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장소가 결혼을 통해 이루어진 가정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의 가정을 믿음과 사랑 위에 든든히 세워가야 하겠습니다.
먼저 올바른 관계를
방랑하던 걸인 한 명이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그는 한 기차역에서 처량한 구걸을 시작했습니다.
“한 푼만 도와주십시오.”그 때 기차에서 내리던 어떤 신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선생님, 천원만 도와주세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신사는 걸인을 와락 끌어 안는 것이 아닙니까?
걸인은 바로 그 신사의 잃어버린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내가 너를 18년 동안이나 찾았는데 이제야 만났구나. 어서 가자. 내가 너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했단다.”
자신의 전부를 주려고 준비해 온 아버지에게 겨우 천원을 구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는데 우리는 혹시 구걸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그러면 아버지의 모든 것이 바로 당신의 것이 됩니다.
누구인지
나는 도대체 누구냐?
오늘은 이런 사람이고 내일은 저런 사람일까?
어느 쪽도 꼭 같은 나일까? 사람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자기 자신 앞에서는 경멸하지 않고 못 배겨낼 소리를 하는 약한 자일까? 그렇지 않으면 아직 내 가운데 있는 것은 이미 승패가 결정된 싸움에서 승산을 잃고 퇴각하는 패전 군대와 같은 자일까?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조소한다. 내가 어떠한 자라 할지라도. 아!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나를 아십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본회퍼 목사님의 옥중서간에 나오는 시 한 토막입니다. 나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나를 다 아시는 분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성찬에 나아가며’
“우리가 주님의 거룩하신 몸을 받아 모실 적에 참으로 깊은 공경과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나이다. 성만찬의 시간에 주님께 가까이 갈 때 내가 무엇을 생각해야 마땅하리이까?
주님이 받으셔야 할 마땅한 명예를 내가 드리지 못하오나 그러면서도 주님을 경건하게 모시고자 간결한 마음으로 바랍니다. 다만 주님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낮추고 나에게 베푸신 무한하신 은혜를 찬양하는 것 말고는 더 무슨 나은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을 찬미하며 영원한 영광을 돌려드리나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신의 비천함을 생각하여 주님 앞에 나를 낮추나이다. “
토마스 아 켐피스의 ‘성찬에 나아가는 기도’입니다. 성만찬을 통해 은혜를 발견하고 찬양하고 자신을 낮추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언어의 문제
미개인과 문명인의 차이는 언어 구사 능력으로 구분합니다.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어휘가 5백 단어 미만이면 ‘미개인’이라고 합니다. 3천 단어 이상을 구사하면 ‘시민’이라고 하고 3만 단어 이상을 구사하면 ‘지성인’이라고 합니다.
단어의 개념이 명확하고 언어 구사 능력의 폭이 넓을수록 폭 넓은 생각과 깊은 의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한대로 행하십니다. ‘말대로 된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신앙인만의 성별된 언어생활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큰 교회를 이룰 것
“공주구역: 이곳 사업은 맥길박사가 맡아서 했는데 그는 시내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열심히 수고했다. 그는 자신을 헌신하는 정신으로 거의 아무도 하기를 꺼리는 것을 했다. 그는 그이 가족을 데리고 내려와서 공주의 초가에서 여름을 보냈고 그곳에 임명된 때부터 줄곧 그곳에서 전도와 의료사업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곳은 새로 사업이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에 성장의 속도는 느리다. 그러나 그의 열성적인 노력이 효과를 거두어서 이 구역에 큰 교회를 이를 것이다.“ 스웨러 감리사의 1905년 보고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큰 교회를 이룰 것’이란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고 또 성취될 것입니다.
교회 생일을 맞이하면서 초대 담임자인 윌리암 맥길박사의 헌신을 생각해 봅니다.
믿고 그냥 걷기
갓난 곰 아기가 어떻게 걸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엄마 곰에게 물어 봅니다. “엄마, 내가 걸으려면 오른 쪽 발을 먼저 디뎌야 합니까?왼쪽 발을 먼저 디뎌야 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앞 발을 함께 디뎌야 하나요? 뒷 발을 함께 디뎌야 하나요?” 엄마 곰의 말씀“생각을 너무 만히 하지 말고 그냥 걸어 보렴.”
믿음의 길이란 믿고 그냥 걷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단의 물이 갈라지고 중풍병자가 낫기도 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자가 믿는다.”는 본회퍼목사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세가지 질문
사람이 의미와 보람을 가지고 살려면 세가지 질문에 긍정적인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내가 속한 곳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나는 쓸모 있는 존재인가?”
“나는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이 세가지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 때에 살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이같은 소속감과 가치의식과 신뢰의식을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얼마든지 ‘예’가 되었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보람과 의미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실패와 성공
실패하는 10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 불평할 것을 먼저 찾으라. 놀 것만 생각하라. 좀 더 자라. 수고하길 거부하라. 적당 적당히 하루를 넘기라. 있을 때 마음껏 써라. 목표나 계획 없이 살라. 안되는 일 더 이상 하려고 하지 말라. 공상만을 즐기라. 이젠 틀렸다고 중얼거려라. ” 그리하면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결 국
“만일 하나님께서 내 멋대로 드리는 기도를 받아주셨다면 나는 거만하고 인정이 없고 밉살스러운 인간이 됐었을 것입니다. 아, 실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인간적인 소원들을 물리치시고 나의 원하는 것을 파괴하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원치 않는 길로 이끌어가시사 나로 하여금 구하지 않은 길로 가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
임종이 가까웠을 때 우찌무라 간조가 한 말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됨을 인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계획과 뜻을 생각하며 깊이 감사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해하는 사랑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0리를 걸어 본 뒤에 그 사람에 대해 말하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해하는 사랑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세워가는 사랑의 일군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데로 갔나
북한 어투로 부르는 노래 가운데 “오데로 갔나 오데로 갔나 오데가 땅굴 속에 숨었나? 하늘 위로 튕겼나? 오데가”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노래말이 빠르고 제스처가 재미있지만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래 나는 오데로 갔나?, 나는 어디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는 오데 갔는가? 나의 신앙은 오데로 갔는가? 나의 감사는 오데로 갔나? 하나님 앞에서 내 영혼은 오데로 간 것일까?”를 성찰해 봅니다.
“아담, 오데로 갔나…”“내가 여기 있나이다”고백하며 신앙의 현 주소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선택
컴퓨터 황제가 노환으로 임종이 가까웠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며 맘에 드는 곳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니터에 등장한 천국의 모습은 별반 신통한 것이 없는 반면 지옥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온갖 화초와 여인과 돈나무에는 돈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컴퓨터 황제는 주저없이 지옥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지옥에 도착해서 보니 모니터에서 본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사방이 화염에 둘러쌓여 있고 폭염과 한파가 하루에도 열두 번씩 교차하는 가운데 그곳의 사람들은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실망한 컴퓨터 황제가 하나님께 “어떻게 모니터의 모습과 실제 모습이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까?” 하고 따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웃으시면서 “그것은 데모버전(Demo-Version)이었느니라”하셨답니다.
잘 선택해야 합니다. 보이는 것만 가지고 선택했다가는 낭패하기 쉽습니다. 변함없는 하나님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교 회 는
하나님의 교회는 함께 일하고(Working together) 함께 나누고(Sharing together) 함께 성장하는 (Growing together)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독창(Solo)이 아니라 합창(Chorus)입니다. 교향악단과 같습니다. 화음이 중요합니다. 화음을 위해 각자의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교회는 비빔밥입니다. 모든 맛을 한 그릇에 담아 새로운 맛을 내는 것입니다. 새콤, 달콤, 매콤한 맛이 다 함께 어루러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우리 모두입니다.
경제 감각 테스트
외국 여행중에 골동품 가게에 들렀습니다.
거기에는 다섯가지 물건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권총, 호롱(불), 촛대, 지갑, 시계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그 선택한 물건여하에 따라 경제적인 감각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평가는 다음번 말씀의 집에서 말씀드립니다.
이 세상의 제물은 가지고 갈 수 없지만 먼저 보낼 수는 있습니다. 제물을 이웃 위해 사랑으로 사용하는 것이 먼저 보내는 것입니다.
재물을 먼저 하나님 나라에 보내는 성탄의 절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혜로운 경제 감각
외국 여행중에 골동품 가게에 들어가서 무엇을 선택하셨습니까?
권총, 호롱(불), 촛대, 지갑, 시계 중에 하나를 택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권총을 택한 사람은 모험투자형으로 수입이 많지만 지출도 많은 경우입니다. 호롱(불)을 택한 사람은 이상주의자형으로 재테크 할 때에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사람입니다. 촛대를 택한 경우는 낭비형으로 유희욕구가 강하며 쇼핑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지갑을 택한 경우는 지혜로운 경제인형으로 절약하지만 쓸데 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시계를 택하신 분은 자린고비형으로 절약정신이 투철하지만 써야 할 때 쓸 줄 모르는 신중답답형 입니다.
어떤 부류에 자신이 속하는가를 점검하시고 1999년 새해에는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지혜로운 경제생활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첫 마음
사흘이 멀다하고 까치 부부는 부부싸움과 말다툼을 합니다. 남편까치는 말하길 ‘우리 둥지에 불평 귀신이 붙어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아내까치는 맞장구를 치며 지혜있는 산까치에게 물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낼 비방을 가르쳐 주십시오.”
산까치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기쁠 때에 ‘까치까치’하지요. 마찬가지로 불평할 때도 ‘까치까치’하지요. 기쁨과 불평이 한 입에서 나오는데 문제는 ‘나’한테 있는 것이지요. 다만 기쁨은 첫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반해 불평은 묵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틀던 첫 마음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러면 새지평이 열릴 것입니다. ”
산까치의 말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첫 마음은 회복하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첫마음
어린 두 아이가 인형 하나를 놓고 심하게 다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엄마는 인형을 창 밖으로 휙 내던지고 나서 서로 양보하며 사는 것과 서로 나누면서 사는 것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이만큼 가르쳤으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녁때가 되었는데 두 아이는 창 밖으로 빵을 내던지고 있었습니다.
말보다 행동이 더 영향력 있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는 새해가 되게 하옵소서.”
뜻을 알아야
버스에서 정신없이 졸던 사람이 화들짝 놀라서 눈을 뜨고 옆사람을 찌르며 물었습니다. “여기가 어디죠?" 옆사람이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옆구리“
이런 경우를 이중교류 또는 교차교류라고 정신의학에서 말합니다. 더 받을 줄 알았던 품군은 한 데나리온을 주는 주인의 마음을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항상 주인의 마음을 아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행복의 이유
지독한 구두쇠에게 친구가 주먹을 쥔채 물었습니다.
“ 이 주먹이 이대로 영영 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나?”
“그야 병신이지”
이번에는 주먹을 펴보이며 물었습니다.
“이 손이 다시는 쥐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나!”
"그 것도 병신이지.“
“그 두가지를 잘 이해한다면 자네는 행복한 부자가 될텐데 말야!”
친구의 말을 새겨들은 구두쇠는 행복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행복한 이유는 어디에 있나요? 뭔가를 소유했을 때 인가요? 아니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인가요?
진정 행복한 이유를 발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보는 것
꿀벌은 로얄제리가 보배이고 노루는 배꼽이 보배이며 곰은 쓸개가 보배라고 합니다. 사슴은 뿔이 보배이고 호랑이는 기죽이 보배이며 그리스도인은 믿음이 보배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느냐 물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무엇을 보며 살고 있습니까? 자신에게 질문하고 조용히 하나님께 대답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독후감
아무 책이나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어린이 한 명이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독후감을 써서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 혼이 나고 벌을 서게 되었습니다.
“‘전화번호부’를 읽고나서, 책이 너무 두껍다.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면 나열식이다. 종이 질이 안 좋다. 뺄셈이 전부 틀린다.“
어쩌면 이 어린이가 천국의 주인공이 아닐까요? 성장하고 성숙하다는 것은 어쩌면 물드는 것 아닐까요? 여하튼 ‘하나님 나라의 어린이같이 순수함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흉내라도 내라
황희 정승이 추수결과를 시찰 중에 젊은이가 노파를 끌어 안고 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연을 물으니
“이분은 저희 어머니온데 병환이 위중하오나 약값이 없어서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으니 하늘이 원망스러워 이럽니다. ”
“정말 하늘이 낸 효자로다.” 황희 정승은 아랫사람을 시켜 돈을 주고 용한 의원을 소개하여 치료토록 하였습니다.
며칠 수 사람만 다를 뿐이지 똑 같은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어찌된 영문을 알아보니 황희 정승의 행한 일이 장안에 소문이 났고 소문난 불효자가 돈이 탐나서 그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황희 정승은 혼을 내지 않고 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거짓으로라도 효도하다 보면 진짜 효자가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른 공경의 모양이라도 여기 저기서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새로운 창조
신학자 폴 틸리히는 말하길“날더러 우리 시대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통틀어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바울 사도처럼 그것은 ‘새로운 창조’라고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마음으로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열어감으로 새 피조물, 새 존재, 새 것의 삶을 살아가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친절과 선행
한 때 전 미국에 열풍을 일으켰던 운동이 있습니다. 자동차는 물론 담 벼락, 유리창 등 거리 곳곳에 붙어 있던 이 운동의 슬로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때로 너의 인생에서 엉뚱한 친절과 정신 나간 선행을 실천해 보라.”
힘들고 어렵더라도 친절과 선행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친절과 선행을 베풀자는 이 운동이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시작되어야 하겠습니다.
문제의 해답이 성서
어느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다음 주일 올 때에 시편 155편을 읽어 오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 주일 목사님이 시편 155편을 읽어 온 분들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정말 순종 잘 하는 교인입니다.(? ? ?).
그러나 시편은 아무리 읽어도 150편까지만 있습니다.
성서의 말씀을 열심히 읽음으로 우리가 지닌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대신 죽으신 예수님
선교 훈련을 마치고 사명감에 불타 임지로 향하던 선교사가 배가 침몰하여 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허우적거리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구명 조끼를 건네면서 최초이자 마지막인 설교를 했습니다.
“할머니, 나중에 구출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이 말을 전하세요. 내가 할머니 대신으로 죽고 내 생명을 할머니에게 드리는 것처럼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하여 죽으신 분을 믿으면 영원히 삽니다.”
구출 받은 그 할머니는 가는 곳마다 “예수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그 청년 얘기가 그 분이 나를 위해서 그 청년처럼 죽었다고 합니다.”라고 전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사랑 때문에 생명을 얻었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사순절(Lent)
교회의 2천년 전통에 의하면 사순절은 부활절 전 40일간(주일 제외)으로 부활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참회하고 경건 훈련을 하는 기간으로 지켰습니다. 이 기간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금식, 세례 받기 위한 훈련, 기도, 겸손한 생활, 희생적 자선을 통하여 자기부정과 참회를 계속하는 기간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잃어버린 자들,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우리 주님을 심령에 더 깊이 모시는 절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값을 치름
도벽이 있는 딸을 위해 그 아버지는 백화점 측에 모든 대금을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자신은 들키지 않고 도둑질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그 죄의 값을 그 아버지가 다 갚아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 딸은 도벽을 씻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죄의 값을 치루시기 위해 十字架의 길을 걸어가시는 우리 주님의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일간 볼 수 있다면
헬렌 켈러는 ‘3일 동안만 본다면’ 이라는 책에서 그녀는 3일 동안 눈을 뜰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들을 기록했습니다. “첫째 날, 눈뜨는 순간 나를 끈질긴 사랑과 성실로 이끌어준 ‘설리반’ 선생님을 볼 것이며, 친구들의 모습과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를 보고 싶고 둘째 날에는 메트로폴리탄 안에 진열된 역사의 작품들을 감상하며, 미술관에 가서는 유명한 화가들의 화폭들을 감상하며 예술의 신비를 만끽하고 마지막 셋째 날에는 극장으로 가서 오페라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영화관에서 공연되는 명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겠다. 그러다 밤이 되면 쇼 윈도위에 진열된 예쁜 상품들을 쳐다보며 집으로 돌아오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다시 영워한 암흑속으로 눈이 감겨질 때 나는 하나님께 3일 동안의 귀중한 경험과 기회를 감사하면서 고요히 눈을 감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어두움을 헤치고 승리한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아침을 맞이한 것입니다. 승리의 아침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자랑할 것
30대 나이, 대학 80년대 학번, 60년대에 출생 한 사람들을 386세대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젊음을 수혈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참신한 세상을 꿈꾸고자 하는 것입니다.
386세대 그 자체가 자랑이거나 희망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되어 있으면, 386세대, 297세대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계산해 보니 저는 475세대인 것 같습니다. 여하튼 우리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마음껏 그 분을 자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드온의 300명 군사
3만 2천명이 기드온을 따라 나섰지만 두려워 떠는 자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자 이만 이천명이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은 남은 일만명도 너무 많다고 하시면서 물가에서 물먹는 모습으로 300명 군사를 뽑으셨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피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훈련을 피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300명의 군사는 구경하지 않고 참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일을 위해 준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5실링이 있고 하나님이 계시다면
테레사 수녀는 자신의 재산이 5실링(약 4백원)밖에 없을 때 새 고아원을 지으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테레사 수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5실링만으로는 나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러나 5실링이 있고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가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5실링이 있고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에겐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요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가난! 이것이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어린이 속에
요한 트레보니우스는 맨발의 까르멜 수도원의 원장이었습니다. 당시의 교사는 모자를 벗지 않는 것이 관례였는데 그는 수업시간에 반드시 모자를 벗고 학생들 앞에 섰습니다.
그 이유는 그 어린이 속에 있는 총독이나 대신, 학자, 교사에게 공경을 표하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그들 속에서 하나님의 일꾼이 나오리라 믿고 기도하고 존경했던 것입니다.
사실 그들 중에서 종교개혁자 마틴루터가 나왔습니다. 어린이속에 하나님의 일꾼이 숨어 있음을 깨닫는 어린이 주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효도하는 법
심방 중에 어느 집사님 댁에서 본 글귀입니다. 너무도 옳은 이야기이기에 옮겼습니다.
효도하는 법
1. 사람이 늙으면 잔소리가 많아진다. 그러나 모두 받아들이라. 경험 많은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 중에서 그른 것이 없다.
2. 노인은 노여움을 쉽게 탄다. 늙으면 몸과 마음이 약해져서 사람들이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처럼 느낀다. 의지하는 것은 오직 자식 뿐이다. 자식마저 노여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3. 늙으면 갖고 싶은 것도 많다. 가능한 한 자식은 수익금을 부모에게 맡기고 타서 써라. 노인은 소유욕만 강할 뿐 그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4. 나이가 들면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구해드려라. 노인들은 경제적 부담되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5. 노인의 몸은 항상 가렵다. 아들과 며느리가 부모의 등을 손으로 자주 긁어 드려라. 반드시 효자 효부 소리를 들을 것이다.
어버이 주일에 구체적인 효도법을 익히고 실천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술로 가구를 만드는 분
가산을 술로 탕진하고 가구마저 팔았던 노인이 회개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에게 한 친구가 따지듯 물었습니다.
“아니 그래. 자네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를 정말 믿지 못한단 말인가?”
그러자 그 술꾼 개종자는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여보게 친구, 나는 무식해서 물이니 포도주니 하는 이야기는 잘 몰라.”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지. 내 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셔서 소주를 몽땅 가구로 바꾸셨단 말일세! 이것이 내게는 기적이라네.“
술로 가구를 만드신 주님(?)이십니다. 그 노인에게는.
성령이 오심은
자기의 소유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재료를 가지고 만들었든지(make or create) 아니면 돈을 주고 산 경우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악한 세력에게 팔려갔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죄의 값을 치루시고 다시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로 구속하기 위해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심은 참 주인을 찾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승리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 들일 수 있는 평정을 주시고
내 힘으로 고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이 두가지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입니다.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키는 힘과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받아들이는 용납의 마음을 구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적 전투
우스개입니다. 고추장과 된장이 만나면 계속 싸웠습니다. 그러나 항상 된장이
패배하는 것입니다. 매운맛 때문일 겝니다. 어느 날 된장이 마음 크게 먹고 하나님께 찾아가서 “저를 싸움 잘하는 된장으로 만들어 주세요.” 며칠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정성이 갸륵하여 하나님께서 “잠시만 기다려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된장은 무엇으로 변했을까요?
‘쌈장’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악한 세력과 싸우는 ‘쌈장(?)’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복은 자네가 받았네.”
폭력배 두목이었던 김익두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러 높은 산길을 가다가
술취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시비를 걸면서 김익두 목사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매를 다 맞고 난 김익두 목사님이 “형님, 다 때렸소?”“그래 다 때렸다 왜?”
그 때 김목사님이 정색을 하면서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라고 하였답니다. 그 사람이 뭔 소린가 하자 “내가 김익두다”말했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싹싹 사람에게 김목사님은 “예수 믿기 전이라면 당신은 여기서 죽었을 걸세.”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아서 목숨을 건지게 된 것이네. 그러니 나를 따라 오게.“
나중에 그 사람은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라보고 살기
어는 청년이 길에서 100불짜리 지폐를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신이 나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 후에는 땅만 내려다보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가 10년동안 주운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29,000개의 단추, 54,000개의 핀, 돈 12불 그리고 구부정한 어깨, 굽어진 허리’가 전부였습니다. 그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요?
‘찬란한 햇빛과 별들의 반짝임, 길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 가로수의 싱싱한 잎새, 푸른 하늘, 사는 맛’입니다.
땅만 내려다 보고 살아가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고 종말이 가깝다는 사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자각을 가지고 보다 더 진지하게 신선하게 살아가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같은 주님의 자녀
우리나라 휴전선과는 달리 미국 시애틀과 캐나다 뱅쿠버 사이 경계선에는 무장한 군인이나 철조망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쪽 저쪽을 자유롭게 왕래합니다. 굳이 경계선을 찾는다면 문이 하나 서 있는데 그 문위에는 “우리는 같은 어머니의 후손이다.(We are of the same mother)"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은 어머니의 후손이라는 자각, 한 주님의 자녀라는 자각이 하나되는 비결입니다. 성령안에서 하나가 되는 민족, 하나가 되는 교회, 하나가 되는 가정과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느 성자의 기도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감사할 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주신 이’도 ‘가져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 커서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오 주님이시여. 모든 은혜를 내게 풍성히 주셨으니 이제 한 가지를 더 주시되 감사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어느 성자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감사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발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
그리스도인은 “잘해보라”는 비꼬는 말, “난 모르겠다”는 책임 회피의 말, “그건 해도 안된다”는 소극적인 말, “네가 뭘 아느냐”는 무시의 말, “바빠서 못한다”는 핑계의 말, “이 정도면 괜찮다”는 타협의 말, “다음에 하자”고 미루는 말, “해보나 마나”라는 포기의 말, “이제 그만 두자”는 의지를 꺽는 말 등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기쁨, 감사, 기도, 찬양이 담긴 말로 살아야 합니다.
7년은 더 산다.
영국 일간 신문 더 타임즈(The Times) 99년 7월 3일자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교회의 예배에 최소한 매주 한 차례 참여하는 사람의 평균 수명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7년이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의료설문조사에 응한 2만7천명중 이후 사망한 2천명을 대상으로 20세된 사람을 기준으로 예배에 매주 출석한 사람의 평균 수명이 82세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75세였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날을 지키면 7년은 더 산다는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님의 날을 성수함으로 형통의 축복, 회복의 축복, 존귀히 여김 받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입으로 시인하면
대전 쪽에 나가면 “이 목사님, 감사합니다. 저희 교회에 공주제일감리교회 다니던 아무개가 출석하는데 제일교회에서 어떻게 가르치셨는지 가장 모범적인 신자입니다.”라는 인사를 받으면 아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이 몰려옵니다. 원래 그런 줄은 알지만 입으로 시인하는 소리를 들으니 더욱 기쁘고 감사한 것입니다.
“내 자녀들이 진리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 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요한3서 : 1장 4절)“
입으로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고, 입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시인하고, 입으로 주시는 축복을 고백하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과 보장과 부요함을 주십니다.
“나 맞아”
한 꼬마가 엄마에게 말하길 “엄마, 나 맞아? 엄마, 나 맞아?”하고 묻더랍니다.
그러자 엄마가 “그래, 맞다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계속해서 이 아이는 “엄마, 나 정말 맞아?”라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정말 그렇다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꼬마가 하는 말이 “그런데 왜 애들은 나보고 너래?”하고 묻더랍니다.
자기 정체성을 잃은 이 시대의 젊은이를 상징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의 사역은 먼저 부르시는 일(call out)이었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삭개오를 부르시고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부름을 받는다는 것은 귀한 축복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부르신 자들에게 권능을 주시고 강하게 하시는 일(call up)을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사역은 보내시는 것(call into)입니다. 가서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파송하여 보내심을 깨닫고 보냄 받은 제자로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함께 기뻐하기
광야에서 경건하게 수도하는 수도사의 순례길에 마귀가 뒤따라 가며 유혹합니다. 예쁜 여인의 모습으로, 돈과 명예로 유혹하지만 수도사는 끔찍도 안합니다.
마지막으로 마귀는 길을 막고 “당신의 사촌이 땅을 샀습니다. 당신의 동생이 알렉산드리아 주교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하자 수도사의 안색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심을 없애고 길에서 함께 기뻐해주는 친구의 기쁨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지녀야 하는 중심
어느 신문기자가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암 부쓰(William Booth)에게 “다가오는 미래에 가장 큰 위험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윌리암 부쓰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중생없는 용서를 말하는 것과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기독교는 중생의 종교이며 그리스도 중심의 종교입니다. 중심과 축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교회가 지녔던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을 새롭게 붙들어야 겠습니다.
주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왜 선악과를 따 먹었느냐?”고 물으시자 아담은 “저는 제 주관대로 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에덴 동산에서 나가 줘야겠다.”고 하시자 “왜요?”하고 아담이 묻습니다. “나도 내 주관대로 하느니라”이것이 하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 주관대로 살고 있는 것입니까? 풍성한 결실의 절기에 진정한 주관자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재 일만 생각하고 내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발등의 불만 끌뿐 허리를 쭉펴고 앞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항상 미래만 생각하고 꿈만 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백마탄 기사만 나타나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생각하며 그 미래를 현재에 가져와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날이 있음을 알고 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현재화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바지와 저고리
미국 남북전쟁 당시 한 남자가 남과 북의 경계선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남군과 북군을 다 지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이 치열해지자 그는 고민 끝에 바지는 남군의 것으로 저고리는 북군의 것을 입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남군이나 북군이 자기를 살려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전쟁이 한참 벌어지는데 나갔더니 북군은 그의 남군 바지에 총을 쏘고 남군은 그의 북군 저고리에 총을 쏘아 대더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옷을 입어야 합니까?
택함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옷
뚱뚱한 손님에게는 “어머나, 듬직하시다”라고 말하고 빼빼마른 손님에게는 “참날씬하시다”라고 칭찬하고 키큰 손님에게는 “훤칠하십니다.” 키작은 손님에게는
“아담하십니다.”말합니다.
이 모든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뭐라고 할까요?
“언니들! 모두 개성있다.”
옷가게 종업원의 말입니다. 우리의 사이즈가 어떠하든지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신앙인에게는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신앙인에게는 어울리는 옷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의 권면과 같이 자비와 겸손과 인내의 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스무명
미국의 대부흥사였던 무디 목사님은 “교회 부흥의 방법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고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자기 영혼의 문제를 매일 5분씩만 진실하게 생각하고 기도하는 사람 스무명이 교회에 있다면 그 교회는 틀림없이 부흥할 것입니다. ”
그 스무명에 당신의 이름이 있습니까?
말리지 마십시오.
광야를 여행하던 사람이 낙타와 함께 야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행객은 천막안에서 잠을 자고 낙타는 그 주변에서 잠을 잤습니다. 밤에 갑자기 낙타가 머리를 천막안으로 쑥 들이밀더니 ‘주인님, 추워서 그러니까 머리만 천막안에 넣고 자도록 해 주세요.’ 했습니다. 승낙한 후 낙타가 조금만 더 목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요청했습니다. 불쌍해서 주인은 그것도 허락했습니다.
한참 잠을 자는데 갑자기 몸이 추워서 깨어보니 주인은 천막밖으로 밀려나고 낙타가 천막안에서 잠을 자고 있더랍니다. 불신앙의 세력은 조금씩 조금씩 밀려오는 것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큰 믿음 큰 능력으로 단호하게 불신앙을 물리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핵심
성도 여러분, 기독교 신앙의 핵심묻혀 있는 그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여 그것을 반짝이도록 닦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지음 받았음을 깨닫는 결정적인 시간을 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여러분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형상을 본따서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여러분들의 가슴속 깊숙한 곳에 만드십시오.
참신앙의 표지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떤 사람의 신앙이 진짜 신앙인지. 가짜 신앙인지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이 들고 다니는 때묻은 성경입니까? 기도할 때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까? 참 신앙의 표지는 때묻은 성경책도, 떨리는 목소리의
기도도 아닙니다.
참신앙의 표지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의 신앙으로 무장하는 교우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만족의 비결
미국 최대의 감리교회 목사인 찰스 알렌은 인간의 만족하게 사는 비결을 다섯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을 족하게 여겨라.” “현재의 적은 소득이라도 조금씩 저축하라.”
“꿈과 모험을 잊지 말라.”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친구를 사귀라.”
“최선을 다하면 항상 길이 열리는 것을 믿으라.”
참만족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느냐 하는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마음 자세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자족함으로 감사하고 감사함으로 자족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제조업자
기차 여행을 하던 노만 빈센트 필 박사의 맞은 편에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승차하자마자 계속 원망과 불평입니다. 좌석이 불편하다, 시트가 더럽다, 식사가 형편없다, 냉방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쉴새없이
불평을 해대는 것입니다.
목적지에 거의 다 왔을 때쯤 되어 인사를 교환하게 되었는데 남편이 자신은 변호사라고 하며 자기 아내는 “제조업자”라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가 “무엇을 제조하십니까? 어떤 물건을 제조하시나요?” 그러자 그 남편의 대답이 “제 아내는 불평을 제조하는 제조업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무슨 제조업자 입니까? 항상 범사에 차원 높은 감사를 제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날을 생각하라
미국의 유명한 가수이며 방송인인 에디 칸토는 정신없이 성공을 향해 질주하던 전형적인 미국 청년이었으나 “너무 빨리 달리지 말아라. 주변의 경치를 하나도 못보고 지나간다.” 하는 어머니의 짧은 편지를 읽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자신의 수첩에 네가지 질문을 적어 놓고 한 평생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인생의 참다운 보물을 추구하고 있는가? 이웃에게 어떻게 공헌할 것인가?
그날이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계산 날이 다가옵니다. 그날에 “잘하였도다.”
칭찬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누가 누리든지”
노인이 나무를 심고 있었습니다. 한 청년이 지나가다가 이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연세로 봐서는 결코 그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실 수 없을 텐데요.”
노인이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 다른 사람이 심어 놓은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이 있었네. 나는 지금 다른 사람들이 태어났을 때를 위하여 이 나무를 심고 있네.”
우리는 남이 심어 놓은 나무를 즐거워하고, 우리 뒤에 오는 사람들은 우리가 심어 놓은 나무를 보면서 즐거워 할 것입니다. 내가 누리지 못한 수고의 결과는
다른 사람이 누릴 것입니다. “주 안에서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마음의 종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천국이면 어디 살아도 천국입니다. 마음이 지옥이면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도 지옥입니다. 마음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삶을 삽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모든 것이 즐겁고, 마음이 크면 크게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입니다.
마음은 마음을 창조하신 하나님 품안에 안기울 때 회복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회복하고 새천년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소망 예수그리스도
2000년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우리는 무언가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적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많은 축제와 프로그램은 진행되겠지만 진정한 삶의 목적을 잃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공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일이 정말 의미있는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절대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채우시지 않으면 공허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 목적상실, 공허함이 가득한 세기말에도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달려온 길
숨가쁘고 힘들게 달려 왔지만 부족함과 아쉬움과 부끄럽게 살아온 한 해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달려야 하는 신앙의 경주자들입니다.
커밍 워크(Cumming Walk)는 인생의 성공적 달리기를 위해 목적(goal)이 분명해야 하고, 지식(konwledge)과 기술(technique)이 있어야 하고 올바른 자세와 태도(attitude)를 지녀야 한다고 했습니다. 삶과 신앙의 태도를 점검하고 새해를 향해 달음질 하시기 바랍니다.
결심하십시오
신앙생활은 결심하는 순간부터 바로 서 갑니다.
새해에는 결심하십시오.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심하십시오.
주의 일에 힘쓰기로 결심하십시오.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배려하기로 결심하십시오.
주님을 우리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기로 결심하십시오.
범사에 감사하기로 결심하십시오.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로 결심하십시오.
마음의 지성소에서 기도하기로 결심하십시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전도하기로 결심하십시오.
오늘의 결심은 과거를 정리하는 것이며 현재를 타개하는 것이며
미래를 열어가는 것입니다.
욕망과 비젼
욕망과 비젼은 다릅니다. 욕망은 내 욕심을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젼은 1)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2)인간의 삶을 올바르게 하는데 공헌하고, 3)영혼을 구원하는 것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새해에는 내 욕심만 채우는 욕망으로 설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더 큰 비젼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큰 신앙
원대한 신앙인이 되십시오. 작은 신앙은 여러분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큰 신앙은 천국을 여러분의 영혼속으로 이끌어 갖다줄 것입니다.
큰 신앙은 나 자신의 능력과 힘을 의지하고 않고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는 비록 약하나 주 예수는 강하다’ 진정으로 큰 믿음은 자기사랑, 자신을 의지하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참된 인생
토마스 카알라일은 “희망이란 무엇인가? 마치 무지개를 잡으려는 어린아이요, 생명이란 무엇인가? 해가 쨍쨍나는 바다 위에서 녹아드는 얼음조각과 같은 것이며, 사람이란 무엇인가? 부질없이 다투고 싸우고 골내는 어린아이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참 의미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톨스토이의 말처럼 “인생의 참된 목적은 영원한 생명,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는 ”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모시고
당신 자신을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내가 왜 불쌍하냐구요?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화를 찾지 못하고 헛된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이지요.
당신의 마음이 이 세상의 물질적인 욕심으로 채워져 있는 한 불쌍한 존재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예수님을 모십시오. 영접하세요. 그러면 무엇에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권리입니다.
농사에 성공하려면 몇가지 기본적인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땅이 좋아야 하고 둘째는 종자가 좋아야 합니다. 아무리 수고는 하여도 종자가 나쁘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셋째는 정성어린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식물도 정성을 먹고 큰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적당한 수분과 햇빛 그리고 바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적인 축복으로 생각됩니다.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만나질 때에 성공적인 농사가 되는 것입니다.
새천년에는 좋은 밭, 좋은 결실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행복의 조건
한 청년이 행복의 조건을 기록했습니다.
건강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어 ‘건강’이라고 적었습니다.
주고 받는 사랑이 있어야 행복할 것 같아 ‘사랑’이라고 썼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할 것 같아 ‘돈’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 노트를 본 노인 한분이 말씀하십니다. “한가지는 빠졌네.”
그 한 가지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행복의 조건입니다.
천국의 높은 자리
랍비 요시아가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요시아야, 너는 천국에 가면 ‘레네스’라는 푸줏간 주인 곁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유대인이 제일 멸시하는 사람이 푸줏간 주인이기에 요시아는 꿈에서 깨어나서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 말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자 그는 ‘레네스’라는 사람을 수소문해서 불렀습니다. 그러나 ‘레네스’는 오지 않았습니다.
또 기분이 상했지만 직접 찾아가서 ‘왜 오지 않았는가?’를 물으니 “제 노모님이 병석에 누워 계셔서 갈 수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요시아는 꿈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천국에는 부모님을 귀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은 곳에 두신다는 것입니다.부모님을 귀히 여기심으로 천국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겸손이란
“겸손이란 마음의 고요함이다. 그것은 탐욕이 없는 상태이며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해로운 일에 과민 반응하지 않는 것이며, 칭찬을 받거나 멸시를 받아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겸손 그것은 세상 살아가는 일이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조용히 하나님 앞에 무릅 꿇고 기도함으로써 침묵의 바다와도 같은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마음이다.
사람이 겸손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은총의 보금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
앤드류 머레이의 말입니다.
은총의 보금자리인 겸손을 소유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언어
월남 이상재(1850~1927)선생님께서 손자의 배재학당 졸업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졸업 축사를 하는데, 총독과 도지사 대리로 나온 조선인 두 명이 모두 축사를 일본어로 하였으나, 월남 선생님은 단상에 올라 “학생 여러분, 조선말 들으실 줄 아시오? 나는 일본말을 몰라서 조선말로 하겠소.” 그리고는 우리말로 축사를 했습니다. 일본말로 축사를 대독했던 두 사람은 무색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언어는 그 사람의 인격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 사람의 사상과 사람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말을 해야합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언어 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느 의사의 고백
빈센트 필 목사가 어느 의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의사로 살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의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인생을 변하 시켰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10%밖에 없는 매우 허약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간호사들이 수술 준비를 하는 사이에 나는 수술대 위에 있는 소녀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그 때 그 소녀는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저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합니다. 지금 기도해도 괜찮겠지요?’라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은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나는 평소에 주님을 잊고 살아왔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나는 오히려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소녀에게 말했고 그 소녀는 ‘사랑이 많으신 우리의 목자 예수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오늘밤 당신의 소녀 이 어린양을 지켜주세요. 그리고 예수님, 의사선생님에게도 축복을 주세요. 그분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소녀의 기도야말로 나를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나는 그 때 간호사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돌아서서 난생 처음 눈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 하느님, 저를 용서하여 주시고 이 소녀의 생명을 구하게 하소서!’ 결국 그 소녀는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
놀라운 변화를 고백한 의사와 같이 주님 안에서 참으로 변화 받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3/12)
이빨빠진 호랑이
옛날 한 나그네가 산길을 넘어가다가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팔 하나 주면 안 잡아 먹겠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 팔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나그네는 팔을 주었습니다. 다음 고개에서는 다리를 주었습니다. 마침내 다음 고개에서 호랑이는 무력해진 나그네를 한입에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나는 늙어 이빨과 발톱이 없어진 호랑이었다네. 자네가 만약 맞서 싸웠다면 나는 힘도 못쓰고 도망갔을텐데・・・”
고난이나 문제가 ‘이빨빠진 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성도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믿고 고난을 넘어서는 사순절 기도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2000.3/26)
기관사 하나님
나치 독일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테리 붐은 자신의 수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기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가 어두워졌다고 해서 당신은 기차표를 찢어 버리거나 기차에서 뛰어내리지는 않겠지요. 조용히 앉아 기관사를 믿고 있는 것이 최선책일 것입니다. ”
우리는 가끔 어둡고 답답한 터널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터널은 암시적이고 반드시 통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기관사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이 터널을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꼭 하나님을 의지 하십시오.
(4/2)
오래되고 새로운 복음
영국의 시인 테니슨(A.Tennyson)이 시골길을 걷다가 정말 행복한 얼굴로 열심히 일하는 중년 부인을 만났습니다. 신기하게 생각한 테니슨이 물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좋은 소식이 있으셨나 봅니다?” 그 부인은 미소를 띠며 “선생님, 저는 한 가지 소식밖에 모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테니슨도 맞장구를 치며 말합니다. “부인, 그것은 오래된 소식이자 항상 새로운 소식이며, 정말 좋은 소식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에게 전해진 주님의 부활 소식을 마음껏 찬양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활주일 2000. 4/23)
감당할 몫
“십대들은 머지않아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발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이 우리의 몫입니다. 부모로서 어른으로 매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집에 들어온 자녀를 웃음으로 맞이한다.” “자녀의 행동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기억해 본다.” “자녀에게 긍정적인 뭔가를 늘 말해 주도록 한다.” “학교 가방이나 도시락 가방에 사랑이 쪽지를 넣어 둔다.” “부모로서 서로 사랑하라. 건강한 가족은 청소년 자녀를 안심시킨다.” “청소년 자녀의 사생활을 존중하라. 합법적인 이유없이 기웃거리는 것은 절대 안된다.”
새 세기를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6/4)
똑같은 형상
제 백일 사진과 아들의 백일 사진을 놓고 보면 정말 똑같습니다. 그 옆에 제 아내의 백일사진을 갖다 놓아도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습니까? 보면 볼수록
“붕어빵”입니다. 모양만 닮는 것이 아니라 성품, 성격도 닮습니다.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것까지도 닮습니다. 자식이 부모 닮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닮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겐 바랄게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보내신 소식
본 교회 남정관 원로 장로님이 보내신 소식입니다. 남장로님은 올해 100세이십니다. 현재 뉴욕에 거주하고 계신데 월요일에는 피켓들고 가두 전도하시고 목요일에는 도자기 공예를 하시고 금요일에는 노인복지회관에 나가서 많은 노인들과 친교하시고 여전히 강건하게 지내신답니다. 우리 교회 교우 여러분 모두를 사랑한다고 하시면서 문안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한 노후를 우리에게 보여주심에 감사드리며 기도로 교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로 이 세상에 보내졌기에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며 사는 것
헬라인은 “너 자신을 알라”가르쳤고, 불교는 “너 자신을 무(無)로 하라” 가
르쳤고 유교는 “너 자신을 닦으라”고 가르쳤고, 금욕주의는 “너 자신을 죽이라”
고 가르쳤으나, 기독교는 “너 자신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 지셨으니 이미 얻은 구원에 감사하며 축하하며 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축하하며, 감사하며, 사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참으로 감사하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버려두지 않고 함께 하심
리빙스턴 선교사가 아프리카 정글 속의 고독과 싸우다가 고국인 영국에 돌아와 글라스고우 대학에서 강연하였습니다. 한 학생이 질문합니다.
“그렇게 고생스럽고 고독한 환경속에서 어떻게 16년간이나 살수 있었습니까?” 리빙스턴 선교사는 서슴치 않고 대답하길 “우리 주님의 두마디 약속이 나로 하여금 신음이나 불평대신 찬송을 부르며 승리하게 하였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않겠다(요14:18)’는 말씀과 ‘내가 세상 끝날때까지 항상 너와 함께 있으리라(마28:20)’는 말씀입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과 동행함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용서가 길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더 빨리 잊어버리고 더 많이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남의 과오를 오래 기억할수록 기억하는 그 자신은 불행해집니다. 공평한 세상, 살만한 세상은 용서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에게는 죄인과 의인을 갈라놓으려는 심리가 있고 자신을 의인쪽에 두려는 버릇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연약하고 허물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의 드라마를 용서로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방법만이 미움을 버리게 하고 싸움을 끝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 거기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구원 드라마를 보시기 바랍니다.
잔치에 참여하라
'성서로 돌아가자(Back to the Bible!)'는 구절을 적어 놓은 스리랑카의 기독교는 생명을 되찾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현대인들은 ‘소비하고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고 에릭 프롬이 말했습니다. 이같은 물질 중심의 세상에서 참 구원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성서로 돌아가 거기서 예수님을 생명으로 만나야겠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잔치에 초대하시고 있습니다. 그 초대가 우리의 구원임을 깨닫고 잔치에 참여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