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깨고 나서야 저녁도 먹지 않고 잠이 들은 것을 알았다.
원기형과 술을 마시고 새벽에 일어나 본 영화다.
일본 멜로 영화는 달콤하다. 마치 일본인들이 단 음식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
러브레터 같은 영화다.
우유부단한 성격에 주체성이 없어 남에게 휘둘려 버리는 시노는 마사키의 설득에 못 이겨 그와 사귀고 있다. 한편 그녀는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미츠와도 만나고 있다. 그러다 시노는 결국 모든 사실을 마사키에게 들켜버린다. 하지만 마사키는 그녀와 헤어지는 대신 두고두고 괴롭히면서 관계를 이어나간다. 시노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고 마사키에게 말을 전하려던 날 마사키는 문득 그녀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렇게나 바라던 이별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아픈 시노는 친척네 맨션에 월세를 내고 들어가기로 한다. 새로운 지역, 새로운 집, 새로운 아르바이트로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하고 싶은 시노. 옆집 사람이자, 새로운 아르바이트 장소인 비디오 대여점의 점장 스기와라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함께 동거하는 여자친구가 있는 그이지만 시노는 뛰는 심장을 감출 길이 없다.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으로 시노는 스기와라에게 마음을 전한다. 스기와라는 시노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곤란하면서도 그런 그녀가 싫지 않다.
스기와라와 시노의 관계는 모든 것이 어그러지기 시작할 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는 기적 같은 타이밍을 보여준다. 하지만 제대로 정리 되지 않은 지난 사랑이 이들의 관계를 셋이 하는 연애로 만들어 버린다. 어쩌면 각자의 외로움을 달래려는 대용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스기와라와 시노는 삐걱인다. 그들의 흘려보낸 다른 연애들처럼. 되풀이되는 패턴 속에서 서로를 놓을 수 없는 그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다시 또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야할까. 시노와 스기와라의 사랑은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 생각하는 모범생들의 연애와는 당연히 거리가 멀다. 타인의 연인을 빼앗았다는 비난 또한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순간의 감정만으로도 행복한 연애를 꿈꾸지 말라는 법이 있나. 해피엔딩이 영원하다는 기약이 없는 세상에서 말이다. 조지 아사쿠라가 주목하는 지점도 바로 그 것이다. 지금의 사랑, 함께 있으면 세상 따위야 멸망해도 좋을 정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