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시/서정주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시(詩) 해설, 문태준 시인
겨울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얼음에 맨살이 달라붙듯 차갑
고 이빨은 시리다. 문득 궁금해진다.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
은 왜 한천(寒天)에 사랑의 일과 사랑의 언약과 사랑의 얼굴
을 심어 두었을까. 손바닥으로 쓸어 보아도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그곳에 왜 하필 사랑을 심어 두었을까. 매서운 새조차
“비끼어 가”는 사랑의 결기를 심어 두었을까.
생심(生心)에 대해 문득 생각해 본다. 처음으로 마음이 생
겨나는 순간을 생각해 본다. 무구한 처음을, 손이 타지 않아
서 때가 묻지 않은 처음을, 부패와 작파가 없는 처음을, 신성
한 처음을, 미당이 한천을 염두에 둔 것은 처음의 사랑과 처
음의 연민과 처음의 대비와 처음의 그 생심이 지속되기를 바
랐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심어 놨”다고 한 까닭도 생심 때문
이 아니었을까. 심는다는 것은 생육(生育)한다는 것 아닌가.
여리디여린 것, 겨우 자리 잡은 것, 막 숨결을 얻은 것, 젗니
같은 것, 이런 것이 말하자면 처음이요. 생양해야 할 것들 아
닌가. 미당은 초승달이 점점 충만한 빛으로 나아가듯 처음의
사랑 또한 지속되고 원만해지기를 기도했는지 모를 일이다.
미당의 시에는 생명 없는 것을 생장시키는 독특한 영기(靈
氣)가 서려 있다. 그는 시 (첫사랑의 詩)에서 “초등학교 3학
년 때/ 나는 열두 살이었는데요./ 우리 이쁜 여선생님을/ 너
무나 좋아해서요./ 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 그러면서 산에 가선 산돌을 주워다가/
국화밭에 놓아 두곤/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 ”라고 하지
않았던가. 산돌을 주워 와서 물을 주어 길렀듯이 이 시에서도
미당은 “고운 눈썹”을 생장시키는 재기를 보여 준다.
미당의 시에는 유계(幽界)가 있다. 그는 “무슨 꽃으로 문
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며 황홀을 노
래했지만, 그는우주의 생명을 수류(水流)와 같은 것으로 보
았다. 흘러가되 윤회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운행에서 그는
목숨 받은 이들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노래했다. 목숨 없는
것에는 목숨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 미당의 시의 최심(最深)
은 삶 너머의, 이승 이전의 유계를 돌보는 시심에 있다. 이 광
대한 요량으로 그는 현대시사에 수많은 활구(活句)를 낳았다.
첫댓글 "미당의 시에는 유계(幽界)가 있다. 그는 “무슨 꽃으로 문
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며 황홀을 노
래했지만, 그는우주의 생명을 수류(水流)와 같은 것으로 보
았다. 흘러가되 윤회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운행에서 그는
목숨 받은 이들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노래했다. 목숨 없는
것에는 목숨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 미당의 시의 최심(最深)
은 삶 너머의, 이승 이전의 유계를 돌보는 시심에 있다. 이 광
대한 요량으로 그는 현대시사에 수많은 활구(活句)를 낳았다."
서정주 시인의 시계(詩界)는 우주처럼 광대하고 심오하다.
태풍처럼 광폭하게 질주하는가 하면, 들꽃처럼 수려해지기도 하여
사람의 가슴을 혼란시키는것, 그 만큼의 격정을 불살라 준다.
잔잔한 호수의 수면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회억에 잠기게 하는 농밀한 유혹도 허다하다.
우리 현대 시사에서 이만한 시인을 과연 찾아보기나 하겠는가? 라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인간의 영혼을 사로잡고 그 심지에 불지르는 열정의 광기를 나는 좋아한다.
그 시심의 불덩이에 나의 마음을 쇳물처럼 녹이고 있으면 죽어도 좋을 황홀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