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안내>
<몽골소개> 몽골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원전 3세기경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은 강력한 유목제국을 세우기 위해 훈족을 중심으로 결합했다. 첫 몽골 연합국의 이름은 Hunnu이란 고대 몽골어로 Human이라고 쓰여졌고, 이것은 라틴어로 Humo와 영어의 Human을 연상시킨다. Hunnu 제국은 중국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 이란, 그리고 로마와도 무역 및 교류를 가졌다. 유목민에게 가장 중요한 경제적 원천은 시대를 막론하고 가축들이다. 펠트제품, 실크류, 모피류, 청동제품 및 장신구들은 실제적으로 모든 몽골문화의 원천이 Hunnu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그들의 중국문화에 끼친 거대한 영향을 엿볼 수 있다. 훈노 제국 이후 Jujian, Turkic, Uigur, Kidan과 같은 국가들이 몽골지역에 세워졌다. 대 몽골제국은 13세기 테무진(Temuujin)이 어렸을 때 테무진 아버지 예수헤이(Esuhei)가 타다르에 의해 독살당했고, 그 때문에 테무진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종족간의 기나긴 싸움에서 승리를 해 1206년에 한(Khaan)이 되었고, 새롭고 효율적인 전쟁무기를 개발했다. 1215년 그의 군대는 베이징을 점령, 1223년에는 크리미아 반도까지 이르렀다. 그 시기의 몽골의 수도는 하르허린(Khar Khurin)이었고, 그 곳은 중앙 아시아, 동유럽, 극동과의 무역 및 문화 교류의 중심지가 되었다. 왕궁에는 유럽의 건축가, 금 세공가들이 있었고 파리의 예술가, 배우, 의사, 수학자, 천문학자 등이 전 세계로부터 초빙되었다. 그 중에는 산스키르로트, 티벳의 학자들과 교황의 사제들도 있었다. 첫번째 유럽인으로는 교황의 특사 Friar John(1246년)이 있었고, 1251년에 프랑스 루이왕의 밀사인 Willwam Rubruck가 이곳을 방문했다. 많은 여행자들이 하르호린과 그곳의 불교사원, 모스크, 교회에 관해 많은 견문록을 남겼다. 징기스칸이 1127년 낙마사고로 사망하자 그의 네 아들은 계속해서 그의 제국을 확장시켰다. 1280년에 몽골 제국의 영토는 베이징에서 아드리아해까지, 시베리아에서 페르시아까지 그리고 인도의 북쪽까지 그 영토를 넓혀 징기스칸의 손자 후비리아 한은 원 왕조를 일으켰다. (1217년) 1691년 몽골은 만주제국의 정복을 당하게 되었다. 220년간 지속된 식민기간은 몽골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그러나 계속된 독립운동의 결과로 1911년 몽골 군주제가 다시 성립되었고, 1920년 몽골 국가주의자들은 러시아에 도움을 얻어 1921년 몽골 인민혁명당으로 개명, 일시적으로 국민정부를 결성했다. 게릴라와 결합한 국민군의 활동 등에 힘입어 1921년 8월 해방을 맞았으며 그 이후 7월 11일은 인민혁명 승리일로 기록되게 되었다.
<몽골의 위치>
몽골은 위도 42도 ~ 50도, 경도 88도 ~ 120도 사이에 중앙아시아의 심장부에 위치하며 북으로는 러시아와 남으로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은 155만 평방 Km, 동서길이 2400Km, 남북길이 1200Km의 타원형으로 인도 면적의 반, 한반도 면적의 7배와 같으며 아시아에서 5번째로 큰 나라이다. 전국경선의 길이는 8100Km으로 3460Km는 러시아와 4546Km는 중국과의 경계이다. 또한 이곳은 외부세계와의 교통수단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및 텐진항이 있는 내륙지역이다. 몽골의 지리는 서북쪽이 산악지방이고 국토의 10% (특히 북쪽) 가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앙부는 초지이다. 남부는 고비사막이 있고 거의 대부분은 반 사막지대를 이룬다. 평균 해발은 1527m이며, 가장 높은 산이 남쪽에 위치하는 4308m의 Nairamdal (Noyon orgil) 산이고, 가장 낮은 곳은 몽골 동쪽의 khukh 호수로 551m이다. 대부분의 강과 호수들은 (2000개 정도)은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인구와 인종>
인구밀도가 낮고 270만이 약간 넘는다.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는 100만인구가 살고 있는 올란바타르이며, 다르항(Darkhan)에 9만 명, 에르텐트(Erdenet)에 7만 명이 살고 있다. 인구 증가율은 2%정도인데 인구의 80%가 Khalkha Mongools족이고, 5%는 Darkhad족이 차지한다. 그 외에도 bayad, Buriad, Uzemchin, Durvud, Uriankhai, barga, Zahkachin, Dariganga, Torguud, Uuld, Kazakh, Tsaatan등의 소수민족들이 있다. 1990년도의 민주화로 재산과 땅의 사유화가 이루어졌고, 농촌지역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종교와 언어>
주요 종교는 불교라고 할 수 있으나 1930년 ~ 1989년 사이에 많은 사원이 파괴되어 종교가 거의 사라져 버린 상태이다. 민주화의 물결에 몽골이 일기 시작한 후, 종교는 실용화되어 갔으며 현재 사람들은 종교의 자유를 가지고 있고, 많은 사원들이 건립되었다. 공식언어는 우랄알타이(Ural Altai)어의 할흐 몽골리안이다. 러시아의 키릴문자가 1946년에 도입되었으나 최근에는 초, 중학교에서 다시금 전통 몽골어를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수 천명의 학생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있는데, 주로 서부 유럽 쪽이다. 최근 한국어에 대한 몽골인들의 열풍이 또한 일고 있다.
<몽골여행> 몽골은 5 ~ 8 월이 여행을 하기 좋은 기간으로 이곳의 수도인 올란바타르로 한국 및 동유럽, 미국, 일본, 러시아 등지에서 방문하는 관광객이 93년 관광개방 이후 매년 2배 이상 늘어나고 있다. 몽골항공(MIAT)이 성수기 때 매일 서울-올란바타르 정기편 전세기로서 운항되고 있고, 대한항공이 6월 1일부터 7월 12일 까지 월, 화, 목요일 3번, 7월 12일부터 8월 24일까지 월, 화, 목, 토, 일요일 5번 취항하고 있다. 수도와 주요지방도시 사이에는 국내선 비행기가 운항되고 있다. (올란바타르를 중심으로 choibalsan, 남고비/Omnogobi/, Murun, Khovd, Altai, Ulaangom등) 이곳에서의 투어는 트레킹코스(Dundsaihan-yol 계곡, Onon 강유역, Khatgal중심의 Khuvsgul호수유역, khovd 지역, khyrgas 호수지역), 말 혹은 낙타를 타고 떠나는 여행(남고비, 오브스), 조류탐사(khujirt, Tsagaan 호수, Khyrgas 호수, 남고비)등이 개발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스키, 낚시, 열기구, 패러글라이딩, 행글라이딩, 래프팅 등 레저스포츠도 가능하다. 기후 : 대륙성기후로 낮과 밤의 온도차가 심한 편이어서 한여름 여행 시에도 긴 팔 복장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전압 : 220v, 50Hz\ 화폐 : 1USD = 1200투그릭(tugrug)
<몽골의 의식주> 의복 - 한국의 두루마기와 비슷한 “델”과 모자(말가이), 구두(고탈)인데 소매가 긴 겉옷인 델은 남녀노소가 모두 입고 있으며 여름철에도 긴 옷을 입는 것은 건조한 기후에 햇빛이 강해 수분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삶의 지혜인 것이다. 델 속에 바지를 입는데 고대의 바지는 한국의 한복바지와 유사한다. 고탈은 독특한 양식의 구두인데 앞 쪽에 코를 세우고 뒤꿈치는 반듯한 자화 모양의 신으로 말을 탈 때 안장에 걸기 쉽게 한 것이 민족다운 발상이라 하겠다.
음식 - 몽골의 주업은 목축이나 고기를 먹는 시기는 봄과 겨울 뿐이므로 여름, 가을에는 가축의 젖으로 만든 유제품을 주식으로 하고 있으며, “보즈”라는 한국의 만두와 유사한 요리도 있고, 신선로와 같이 불냄비 음식(할롱 터거)가 있다. 야채를 거의 먹지 않았던 몽골인들은 부족한 비타민을 전차나 아이락(마유주: 말젖으로 만든 음료)을 마시며 간혹 양고기 요리시 마늘, 파, 달래 등 넣어 먹기도 한다. 마유주는 아이락의 일종으로 말 젖을 발효시켜 만드는 것으로 20 리터를 만드는데 1 주일간 가죽부대에 담아 약 3 만 번을 저어주어야 한다. 마유주는 손님을 환영하거나 제가 등 의식에 쓰이며 알코올 도수는 2- 3 도로 아주 약하고 한국의 막걸리와 같이 흰 빛이다. 호지르트(Khuijrt)라는 이 곳의 휴양소에서는 성인병을 마유주요법을 치료법으로 치료를 하기도 한다.
▣ 오츠 양고기 요리로 양 한 마리를 통째로 삶아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대접하는 요리이다. 설날(차강사르)의 전통요리이다. ▣ 수테차(우유차) 몽골 전통 유목민들은 아침에 처음 하는 일이 그날 마실 우유를 짜는 것이다. 우유는 유목민들에게 수분과 많은 비타민 그리고 지방을 섭취하도록 도와주고, 차는 면역기능과 살균작용을 돕는다. 우유와 고형 차를 넣어서 끓여 마시는 것으로 유목민들의 아침식사이기도 하다. ▣ 뽀즈 뽀즈는 한국의 만두를 생각하면 된다. 몽골의 대중적인 음식으로 손바닥만한 크기로 만들며 한국처럼 밀가루 걸을 만들고 속에는 고기를 넣는다. ▣ 버덕 몽골초원에 서식하는 타르박이나 염소를 잡아 만들며, 가죽을 벗지 않고 목 부분에 손을 넣어 뼈와 내장 고기 등을 발라내어 꺼낸 다음 다시 가죽에다 불에 달군 돌과 함께 내장과 고기 그리고 야채와 양념을 넣어서 익히면 다시 가죽도 함께 불을 지펴서 밖에서도 익힌다. ▣ 초이방 고기와 야채 그리고 국수를 뽑아서 기름을 발라 말아놓은 것과 같이 쪄서 내놓는 요리이다. 한국의 국물 없는 칼국수와 비슷하다. ▣ 아롤 우유로 만드는 대표적 먹거리, 우유를 발효시켜 요구르트를 만들어서 다시 끓인다. 덩어리가 생길 때까지 가열하여 체로 걸러서 습기를 뺀 다음 모양을 만들어서 건조시켜서 만든다. ▣ 허르헉 허르헉은 몽골전통 요리로 원래는 양을 전통방식(가슴쪽에 작은 칼집을 내서 심장의 혈관을 자른 뒤 가죽을 벗겨 고기와 피를 분리하므로 밖으로 피를 흘리지 않도록 잡는 방식)으로 잡아서 요리를 한다. 요리는 통 안에 뜨겁게 달군 돌과 감자와 약간의 소금을 넣고 밖에서 다기 불을 가열하려 조리한다. 양을 못 드시는 분들을 위하여 염소도 같은 방식으로 잡아 요리를 하기도 하며, 드실 때 입맛이 까다로운 분들은 김치와 고추장, 겨자 등을 준비하시면 맛있게 전통요리를 맛 볼 수 있다.
<주거>
전통 주거 양식을 게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 파오) 일종의 천막이라 할 수 있다. 1 미터 높이의 문짝을 세우고 바드나무 장대를 방사형으로 세운 다음 양털로 만든 펠트를 감아주고 흰 광목 같은 것으로 감싸 준다. 추울 때는 서너장 둘러싸고 더울 때는 걷어 올리면 시원하게 된다. 해체와 조립에는 1 시간도 걸리지 않으며 총 무게는 250킬로그램 정도이므로 여름은 강가, 겨울은 남쪽 양지 바른 사면으로 이동하여 지낸다. 게르 안은 안방이고 침실이자 손님방이고 부엌이기도 하다. 게르의 중앙에는 화덕이 있어 겨울철에 난방을 하는데 연기는 연통으로 빠져나가고 게르 안에는 냄새, 연기가 전혀 없다. 연료로서는 가축의 분변을 이용하는데 여름 동안 잘 건조된 양, 말, 낙타, 소의 소변을 모아 두었다가 겨울철 연로로 쓰는데 화력이 아주 강하다. 한국의 제주도에서 마분을 쓰는 풍습이 유사한 것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
<몽골특산물> 차가버섯 - 차가버섯은 태초 이후 자연 그대로 보존된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산의 나라에서 신이 인간에게 주신 대자연의 선물이며, 암, 당뇨, 비만, 심장활동 등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여 주고, 여성 피부미용에 특효를 주며 피를 맑게 항 준다. 사용법이 간단하며 물을 끓인 후 섭씨 70~80도로 식히고, 식힌 물 10리터를 차가버섯티백 100g을 넣고 24시간 정도 우려나서 우려낸 물을 수시로 음용한다.
<유목생활>
유목이란 목초를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가축을 살 찌우고 예로부터의 의, 식, 주를 해결하는 것으로 유목민에 있어서의 가축과 좋은 목초지는 삶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몽골고원의 자리한 흉노는 중국과 싸워 이겨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였으나 목초지가 없는 중국 영토에서는 유목을 할 수 없다 하여 스스로 철수 한 바 있다. 고대 유목민에 있어서는 풀이 없는 땅은 땅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연의 오묘한 조화는 같은 가축들의 보이지 않은 질서에 있다. 양과 소가 풀을 뜯을 때는 소가 먼저 풀을 뜯고 양과 염소는 나중에 지나간다. 이는 소는 건성으로 풀을 뜯지만 양은 앞니로 말끔히 뜯어 먹기 때문에 양이 먼저 지난 뒤 소는 먹을 것이 없어지게 된다. 유목 전문가인 몽골의 어린이들은 천 마리의 양떼 속에 남의 양 한 마리를 구별 해 낸다고 한다. 또한 이들의 동물의 상태를 나타내는 언어도 수십 가지이다.
<몽골의 말>
몽골의 말은 한국 제주도의 조랑말처럼 다른 말에 비래 체구가 작다. 체중평균이 399kg 이므로 경마에서 보는 드브레드 종 (평균 445kg)과 비교하면 매우 작은 말이나 인내력, 지구력, 물건을 나르는 힘, 언덕이나 산을 오르는 힘은 대단하다. 몽골 말은 오른쪽 두발과 왼쪽 두발을 교대로 밟으며 달리는 주마법은 말 탄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장거리 야행에 적합하고 피로를 덜게 하는 주마법 인 것이다. 몽골에서는 세 살 때부터 말에 오르기 시작한다. 남자나 여자의 구별이 없이 말을 타면 가르치는 것은 어머니이다. 몽골인에게 있어서 말을 타는 것은 밥을 먹는 것과 같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몽골의 가축>
몽골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5종의 가축은 말, 낙타, 소, 양, 염소이다. 이중 앞3종을 “보드말(대형가축)”이라 하며, 뒤 2종을 “벅 말(소형가축)” 이라 하며, 말을 타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로 쓰이고 있으며 양은 식량으로서 전 몽골에 분포하고 있다. 낙타는 고비지방에 많으며 몽골에 있어서 이들 가축에 관련된 연령, 암수, 사역목적 등에 관련된 언어가 극히 세분되어 한국어로서는 통역이 전혀 안 될 정도로 많이 있으며 이것으로 그들의 생활 전반을 이해하는 것이다.
<종교 라마교>
한국 사람들은 라마교(Lama 교)라고 부르는 것은 불교의 한가지로 그리스도교가 아닌 가톨릭, 신교 등으로 구분되는 것과 같다. 라마란 티벳말로 뛰어난 사람, 최상자를 뜻하며 보통 사람보다 위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즉, 사원 내에서 가장 덕이 높은 존경을 많이 받는 스님에 대한 경칭인 것이다. 자신들을 라마교라 칭하지 않고 “불타의 종교” 또는 “전통의 종교”라 칭하며, 불, 법, 승보다는 살아있는 부처로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덕이 높은 개인 스승인 라마를 숭배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라마 중에서도 특별한 고승을 “활불”이라 하며 “달라이라마”는 활불 중에서도 최고의 활불이다. 티벳인들은 달라이 라마를 관음보살의 회신으로 믿고 있으며 달라이라마와 나란히 서는 판첸라마는 아미타불의 권화라고 믿고 있다. 또한 달라이 라마는 황제 어거데이가(Ogodei)가 중국을 평정하고 티벳을 침공하려 할 때 티벳의 고승 파스파를 초청한 적이 있는데 이 때 교리에 감명을 받아 국교로서 발전하게 되었다.
<몽골의 명절> 나담(Naadam)-축제
나담축제는 몽골 최대의 축제이다. ‘나담’이라는 말은 축제, 혹은 놀이라는 말이다. 2000년 전에 첫 국가 훈노를 건설하여 머돈 샤뉴가 왕이 되었을 때 몽골인들은 씨름, 경마, 활쏘기 등 3가지 경기를 하고 큰 축제를 지내고 있었다. 본 전통이 전승되어 현 몽골 민족의 큰 명절인 나담이 되었다. 원래 8월에 시행되었으나 1921년 국민 혁명이 성공하여 7월 11 일에 몽골을 세계적으로 선포한 후 이날을 기념하여 매년 7월 11일부터 3일간 나담 명절날을 즐기게 되었다. 나담 때면 몽골의 모든 가게와 관공서 등이 공휴일로 문을 닫으며, 몽골인들은 이날을 위해 1년을 손 모아 기다린다고 할 정도이다. 그 동안 시골에서 못 봤던 친지들과 가족들이 올란바타르로 올라와 서로 마유주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휴가를 보내게 된다. 올란바타르에서 마찬가지로 각 시골마다 작은 나담이라는 나담행사가 간헐적으로 열리게 되는데 이 또한 재미있는 볼거리이다.
씨름
몽골의 씨름은 경기장이 따로 있다. 씨름경기 방법이나 승패를 판정하는 것은 한국씨름, 일본스모와 유사하다. 버흐(몽골씨름)는 한국, 일본과 다은 점은 특유의 씨름복장이다. 현란한 색상과 무늬를 자랑하는 “고탈”이라는 가죽반장화와 반바지”쇼닥”을 입고 상의로 “죠닥”이라는 조끼를 입는데 아주 화려하다. 선수가 입장을 할 때 모자라 쓰고 매처럼 춤을 추면서 입장한다. 우승자에게 “아르슬랑(사자)”, 2 위는 “ 자앙(코끼리)”, 3 위는 “나칭(매)”라는 칭호를 주며 대단한 영광으로 주위의 존경을 받는다.
경마 6 ~ 12 살이 아이들이 경마를 타고 먼 길에 경기하는 것이 몽골 경마 경기의 특징이다. 나담 한 달 전에 경마를 선택하여 준비를 시작한다. 경마의 나이에 따라 거리가 정해져 있다. 6살 말이 30Km, 5 살 말이 28Km, 4 살 말이 20Km, 종마 28Km, 조랑말이 10Km에 경기한다. 맨 처음의 5마리 경마를 승리 1했다고 칭호를 준다.
활쏘기
달리는 말 위에서 활 쏘아 표적을 맞추는 것이 가능한가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한국의 선조인 고구려 벽화에 보면 달리는 말에서 호랑이를 향해 쏘는 그림이 있듯이 몽골인의 활은 세계를 제패하게 된 것이다. 징기스칸의 시절은 군인은 활을 잘 쏘아야 했으며, 다른 부족과 전쟁 시 적군이 쏜 화살이 징기스칸의 목을 맞혔는데 싸움 끝난 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징기스칸의 포로가 자기를 쏜 병사가 자수를 하자 죽이지 아니하고 가까이 두어 전사로 썼던 것은 그만큼 활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독립기념일이나 나담 축제 기간에 활 쏘기 시합이 있는데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 가능하며, 여성이나 어린이는 나이에 따라 과녁의 거리를 달리한다. 남성의 경우 75m, 여성의 경우 60m이며, 과녁은 직경과 높이가 각8m인 원통형 가족과녁을 사용하여 우승자에게 메르겡이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존경한다. |
<올란바타르-Ulaanbaatar (붉은 영웅)>
몽골의 수도가 경제, 문화, 교육 등의 중심지이고 인구는 약 87만 명이며 비공식 유동인구를 포함하면 1백만 이상 거주하고 있고, 면적은 1.358㎢이며 총 몽골 인구의 1/3이 수도인 올란바타르에 살고 있다. 시의 상징은 항가리드(KhanGarid)이며 이 항가리드(KhanGarid)는 용을 잡아먹고 산다는 전설상의 새들의 왕이다. 1639 년 할흐족 부족장 투쉐이트항(Tusheet Khan) Gombodorj 쉐레트차간호수 주변에 유목도시를 건설하고 도시명을 어르거(Orgoo-궁궐이라는 뜻)라고 명명함. 이후 몽골의 수도는 어르헝, 톨, 셀렝그 강 유역을 20여 차례나 이동하면서 도시명도 수 차례 개정되었다. 1778년 현재의 위치에 정착하면서 도시명을 이흐 후레(Ukh khuree- 큰 도시라는 뜻)로 변경했다. 1924년 인민혁명이 달성된 후 전국인민 대표자 회의에서 몽골인민 공화국이 선포되고 도시명도 혁명 영웅인 수흐바타르(Sukhbaatar)를 기념하여 올란바타르라고 개명했다. 남방 성산보그드산을 위시한 4 개의 산에 의해 분지로 둘러 싸여져 있으며 톨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해발 1351m, 7월 평균기온17도, 연강수량270mm 중 대부분이 여름에 비가 온다.
총인구의 거의 3분의 1이 여기에 모여 살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50%가 집중되어 있고 전력소모는 전국의 75%이다. 특별시로서 시내에는 고층의 빌딩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전통가옥인 게르에서 아파트로 이사하는 인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1990년 민주혁명이래 꾸준히 발전해 왔으며, 1993년부터 관광이 개방되어 세계적으로 이목을 집중 받고 있는 처녀지이기도 하다. 국영 호텔의 우수한 시설과 식사 등은 외국 관광객에게 조금도 불편을 주지 않으며, 종업원의 영어 실력도 우수하다. 비행기에서 내려보는 올란바타르는 초원의 중간에 떠 있는 섬 같이 보이며 근교에는 전통가옥인 게르가 보이고 시내북쪽으로 콘크리트 건물들이 보이며 서쪽 공장지대 굴뚝에는 연기가 나고 있다. 공항은 시내에서 40분 거리로 시내까지 가는 데는 초원으로 연결되어 있어 양이랑 말이 가까이 다가 갈수록 건물, 차, 사람이 많아진다. 시의 중심은 몽골 최대의 백화점인 국립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평화(엔흐타이방-Enkhtaiban)의 거리 주위에 우체국, 각국의 대사관, 수흐바타르(Sukhbaatar)광장, 국립극장, 드라마센터, 바양골(bayangol)호텔 등이 있다.
<자이승 전망대>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남쪽으로 3Km지점의 언덕이 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전망대이며 자이산 언덕인데 기념비는 1971년도에 세워지고 언덕 입구에는 “소련사의 기억은 하늘의 태양처럼 영원하고, 대지를 태우는 불처럼 신성하다.” 라고 기재되어 있으며 정상의 광장에는 몽-소 우호친선의 상징물이 초형되어 있다. 양군병사가 일제와 나치의 깃발을 밟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올라바타르 시내 전체가 잘 보인다. 몽골은 1938년, 1945년 2 차례 러시아와 연합하여 일본의 침공을 막아냈다. 이때에 많은 일본인 포로들을 생포하여 도로건설과 건축 공사에 강제노동을 시켰다. 정부종합청사의 뒤쪽 건물과 1999년에 철수한 북한대사관 건물 등은 이때의 일본군 포로들이 지었다. 이때 사망한 일본인들의 묘지가 시 외곽에 따로 마련되어 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전쟁 중이던 우방 러시아네 식량으로 쓸 가축과 짐을 나를 말 등을 대량으로 지원하였다. 이 승전 전망대는 올란바타르시가 동서로 한눈에 들어오는 지역이다.
<초이진 라마교사원> 1904년 완성된 이 사원은 1942년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현재 불교와 관련된 실크탱화, 목재 및 청동불상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몽골 최고의 조각가 자느바자르(Zanabazar)의 불상조각품이 다량전시 되어 있다.
<수흐바타르(Sukhbaatar)광장> 수도 심장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21년 올른바타르 중심인 이곳 광장에서 수흐바타르 장군이 중국으로부터 몽골의독립을 선언한 기념으로 수흐바타르 장군상을 세운 정부종합청사 광장이다. 이곳에서는 각종 국가 행사들이 개최된다.
<몽골전통공연> 몽골전통공연은 참이란 탈춤과, 흐미라는 목청으로 고음과 저음으로 연주하는 것, 그리고 마두금으로 연주하는 음악등이 있다. 이중 Tsuki라는 공연장을 주제로 전통음악을 사용하여 무용으로 공연을 한다.
<참-탈춤> 매년 9월 초 올란바타르 Dashchoiling 공연에는 죽음의 신인 담딘초이즈, 여성의 수호신 쉬리데비, 재물의 신 겅거르와 남스라이, 날씨의 신 등이 등장해 무게 있는 공연을 펼친다.
<자연사박물관> 원래의 이름은 국립중앙박물관이었으나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 1998년 자연사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시물도 기타 잡다한 것들은 다른 박물관으로 이전하고 자연에 관련된 전시물들만 따로 보관 전시하게 되었다. 1924년 개관한 박물관은 몽골의 자연에 관한 풍부한 전시물이 보존되어 있다. 코너는 크게 3개로 되어 있는데 자연과학코너에는 산악지대, 초원지대, 사막지대에 서식하는 동, 식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2층에는 고비사막에서 발굴된 공룡뼈 등 고생대의 유물과 운석을 전시하고 있다. 고고학 코너에는 고대로부터의 석기에서부터 몽골인의 민속에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간단사>
간단사는 올란바타르와 그 역사를 같이 하고 있다. 원래 올란바타르의 이름은 “이흐 후레(Ikh Khuree)”라고 했었다. 이 뜻은 큰 울타리, 큰 도시라는 것으로 바로 간단사의 담장을 주의로 사람들이 몰려 살기 시작하자 명명된 것이다. 원래 수도인 하르허롬이 청에 의하여 폐허가 되어 현재 올란바타르로 천도를 하여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가 옮겨졌다. 이에 따라 간단사가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에 의하여 큰 발전을 하게 되었다. 청의 지배 이후 라마교가 국교가 되면서 함께 발전한 간단사는 교육, 의료, 문화의 중심지가 되며 국민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간단사는 원래 올란바타르 시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제 5대 벅드 왕 때인 1838년에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1838년 제 5활불(제 5 벅드왕)에 의해 티벳불교사원으로 그좌 정권기에는 사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지만 1940년부터 다시 회복하였으며, 1970년에 종교대학이 병설되고 더욱이 최근 개혁 이후 민족문화의 재흥운동을 일으켜 티벳 불교의 재평가와 사원의 재건, 문화재의 보호, 수복운동의 중심적 존재이기도 하다. 사원 내의 26m 높은 잔라이삭 불상이 위치하며 처음에 제 8벅드 왕님의 시력이 나빠졌을 때 회복하기를 상징하여 눈의 불상으로 맥지드 잔라이삭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최초의 잔라이삭 불상이 1938년에 없어졌으며 1996년에 몽골인들의 증여금으로 재건했다.
<만츠쉬르 사원(Manzshir Monsetry)>
만츠쉬르 사원은 울란바타르에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거리에 있는 복드 산에 위치해 있으며 5월에서 10월까지 개방된다. 방문자는 산의 경사진 숲에서 하이킹, 초원의 만발한 야생화의 변화 무썽한 색의 향연, 만츠쉬르 사원의 폐허에서 옛 영화의 향수, 승마, 국립역사박물관 관람 등을 즐길 수 있다. 가을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8세기부터 내려오는 타즘이라 불리 우는 몽골불교 전통 가면 춤을 즐길 수 있다. 만츠쉬르 사원 근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운드르도브 리조트가 있는데 여행자들은 그곳에서 몽골전통가옥인 게르에서 숙박할 수 있다. 근방은 몽골의 전형적인 초원지대이며 이곳에서 승마를 쉽게 즐길 수 있다. 또 만츠쉬르 사원의 폐허를 통해 몽골제국의 옛 영화를 느낄 수 있다.
<테렐지(국립공원)>
수도인 올란바타르에서 북동쪽으로 7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관광의 명소이다. 기암괴석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외국인은 물론 몽골현지인들도 여름이면 자주 찾는 곳이다. 맑은 공기와 밤하늘의 별은 이곳의 자랑거리이며 특히 몽골의 전통음식인 허르헉(뜨겁게 달군 돌을 이용하여 양고기로 하는 몽고의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외국인들을 위한 모든 편의 시설이 완비되어 있으며 몽골의 전통가옥인 게르에서 일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승마는 시간당 약 3-5% 이고 두 시간 정도를 타면 이 근처의 아름다운 경치를 돌아볼 수 있다. 말을 타지 못 탄다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몽골 현지인들이 앞에서 말을 끌어주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말이 알아서 간다. 게르 이용료는 하루에 약 15-30$이고 식사는 포함된 가격이 아니다. 개인이 차량을 대여해서 가려면 우선 돈이 많이 든다. 따라서 여행사를 통하면 손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역사 박물관>
역사박물관은 1971년 혁명 50주년 기념으로 혁명박물관이 건립되었다. 90년 이후 사회주의 붕괴로 인하여 혁명의 중요도가 상실되자 1991년 5월에 이 혁명 박물관을 민속박물관으로 전면 개편하였다. 91년부터 93년까지는 수리를 하였고 1911년 벅드 왕정 이후부터의 역사에 관련된 물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원래 이 박물관에는 2개의 민속전시관이 있었다. 그러다가 1997년 10월에 폐관이 되고 98년 6월 2일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전시물을 전시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 박물관에는 30,000여 품목을 전시하고 있다. 이 물품들은 고고학, 종교, 역사, 민속 등의 민중의 삶과 관련된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 스웨덴, 노르웨이, 이탈리아, 한국, 일본 그리고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전시를 하였으며 향후 외국의 여러나라와 공동으로 협력하여 사업을 추진할 목적을 가지고 있다.
<벅드(Bogd)왕궁 박물관>
17세기부터 혁명까지 몽골을 다스렸던 승전들의 궁전 1대부터 8대까지 있었으며 이들의 겨울 궁전이다. 궁전이라기 보다는 이들의 신분 자체가 라마승이었기에 라마사원이라고 해야 올바를 것이다. 러시아 왕이 지어준 서양식 2층 목조건물이 있고 이 안에는 왕과 왕비가 사용했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층의 한 전시실에는 8대 벅드왕의 즉위를 축하하여 군주들과 이웃나라의 왕이 선물한 몽골에서 서식하지 않고 있는 희귀한 동물 박재들이 전시되어 있다.
8대 자신이 이러한 것들에 매우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기타 우리의 관심을 끄는 전시물은 몽골 중앙지역의 영주가 벅드왕에게 선물한 150마리 눈표범 가죽으로 만든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가 있고 왕과 왕비가 입었던 진주로 수를 놓은 의복이 있다. 또한 7채의 불당이 있고 그 안에는 여러가지 라마교에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달람 휴양지>
바양골 헨티산의 그림 같은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국제 어린이센터는 몽골리아의 수도 울란바타르 북서쪽으로 약 30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여름철의 온도는 15˚-25˚ 이다. 이곳은 야외활동을 즐기기에 적절한 환경을 갖고 잇다. 아름다운 자연과 신선한 공기는 휴양지로서 손색이 없고, 침엽수림과 초원은 하이킹 및 말타기에 적합하다. 통나무로 지은 안락한 가족형 숙박시설과 단체 수련단을 위한 유스호스텔이 있으며, 식사는 양식과 몽골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이용할 수 있다.
가족단위로 아이들과 방문하면 다양한 스포츠 및 민속놀이를 즐기고 미리 신청하면 몽골 유소년 민속 공연단의 화려한 공연도 즐길 수 있다. 겨울철에는 타 지역에 비해 눈이 많은 편이여서 스키 및 썰매타기를 즐길 수 있다. 울란바타르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고 도로사정도 양호한 편이여서 아이들뿐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나들이에 적합한 곳이다.
<멍그 메리트(Mungun morit)>
멍그메리트는 울란바타르에서 동쪽으로 약 19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은말이 있는 곳” 이라는 뜻을 가진 이 곳은 한국의 면 단위와 같은 작은 솜이다. 이곳은 아직 많은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나, 몽골인들도 감탄하는 산과 강, 들판이 평화롭게 이루어진 곳이다. 38km 정도 떨어진 “보르항 할똥” 이라는 산은 칭시칸 가족이 자신을 죽이려는 암살자를 피해 오랫동안 숨어 지내던 곳으로 유명하다. 헤를렝 강 상류를 끼고 위치한 캠프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낚시, 사냥지로 유명한 곳이다. 관람 포인트는 약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사슴벽화와 보르항할똥 산이다. 낚시와 사냥을 즐기시려는 분들에게는 최적의 장소이다.
<하르호린(Kharkhorin)>
하르호린은 몽골의 옛 수도로 울란바타르에서 서쪽으로 약 4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하르호린까지는 도로가 포장이 되어 있어 자동차로 약 5~6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청나라의 침공으로 완전히 폐허들만이 남아있었으나 1586년 티벳의 건축양식을 본 뜬 라마사원 (에르덴죠사원-Erdene zuu khiid)이 지어졌다. 양쪽의 길이가 400m 나 되는 이 사원은 몽골 라마교의 중심지로 만 여명의 라마승들이 생활하고 있었으며, 몽골라마의 생불인 잔바자르(Wanabazar)의 유품과 사리가 소장 되어 있다. 1930년 민족주의 말살정책에 의하여 폐쇄되었다가 관광객을 위해 현재 다시 개장을 한 상태이다. 앞으로 2050년의 몽골의 수도를 울란바타르에서 이 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관람 포인트는 엘센타사르하이(모래산), 에르덴죠 사원, 거북바위, 남근상, 헤를렝 강 등이 있다.
<몽골엘스 (엘싱타슬하)> - 바얀고비 바얀고비로 알려진 곳의 원지명. 사막캠프가 발달되어 있으며, 주변에 만투하이 여제 기념비, 이흐몽골산(생불 잔바자르의 출가탑), 함빈사원, 오아시스(야자수는 없다.) 등의 볼거리가 있다. 바얀고비로 불리지만 사막이라고 하기보다는 초지에 가깝고, 근처에 사막 끝자락의 모래언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어기노르 (아르항가이)> 울란바트로에서 350km. 몽골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최고의 여름 휴양지중 하나이다. 몽골의 스위스라 불리우며 해발 2414 m 위에 아름다운 호수가 펼쳐진다. 2개의 게르 리조트가 있으며, 아름다운 대자연과 함께 승마, 낚시, 산림욕, 보트타기가 가능하다. 거리는 멀지만 일단 어기노르에 도착하면 호수와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에 모두가 감동한다.
<호스타이(Hustain Nuur)>
올란바타르 남서쪽 100km에 위치하고 있으며 9만ha의 광대한 자연보호구역이다. 최근에 외국인 관광객에게 다시 개방되었으며 세계에세 유일하게 야생마를 관찰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초원 외에도 가까이에 사막의 일부분인 모래둔덕도 관광할 수 있다.
<고비사막>
지평선까지 펼쳐진 모래사막, 하늘과 지평선 사이로의 색다른 노을과 일출. Gobi 란 뜻은 몽골말로 “사람과 동물이 살지 않은 황폐한 땅” 이란 뜻이다. 몽골 전 국토의 41.6%를 차지하는 고비사막은 일반적인 내륙의 모래사막이 아닌 스텝지형으로 만들어진 사막이다. 스텝지형이란 모래와 낮은 목초가 공존하는 곳을 말한다. 고비사막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 중 주로 관광객과 여행자들이 찾는 곳을 남고비 사막이며, 그레이트 국립공원은 세계에서 제일 넓은 자연 동물공원으로 유명하다. 사막희귀 동물인 눈표범, 고비큰곰, 고비독수리 등을 비롯한 52종의 포유류, 15종의 파충류, 1종의 양서류, 106종의 조류 등이 서식하며, 식용을 비롯한 400여 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고비사막여행의 포인트는 넓은 스텝사막의 풍경과 한 여름에 어름이 얼어있는 계곡인 율린암(Yoliin Am), 세계최대 공룡화석 발굴지인 바얀작(Bayanzag), 바람에 따라 옮겨 다니는 모래언덕이 있다. 또 많은 공룡화석의 관람도 여행포인트이다.
달란자드가드(Dalanzadgad) 몽골의 수도에서 차량으로만 하루 정도, 항공으로는 1시간 반 정도의 거리의 달란자드가드는 고비여행을 준비하기 위한 중심도시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몽골 전체의 낙타 중 1/4 정도를 기르고 있다.
달란자드가드(Dalanzadgad )에서 매년 1월에서 2월 사이에 열리는 축제로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약 18km 정도의 스텝사막을 횡단하는 낙타 경주가 있다. 율린암(Yoliin Am) 고비사막의 중앙에 있는 계곡으로 달란자드가드에서 약 4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 고 있으며, 한 여름에도 두꺼운 얼음이 얼어있다.
<고르방사이항(Gurban Saikhan)국립공원> 달란자드가드에서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이 지역은 동에서 서쪽으로 약 380km 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포함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동, 서쪽으로 약 380.knm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포함한 지역이다. 이 공원 안에 는 양한 형태의 바위, 모래언덕, 사막평원, 오아시스 등 여러 자연 경관을 지니고 있는 공원이다.
<헝거르 엥스(Khongor els)>
헝거르 엘스는 모래산으로서 몽골 내에서 가장 큰 모래산이다. 규모는 해발 800m 에 위치하고 200km의 폭, 그리고 길이가 185km 최대높이가 72m가 넘는 엄청난 양의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산이다. 가장 높은 모래정상은 산막의 북서쪽 코너에 있다.
<흡수골 호수 (Khuvsgul nuur)>
몽골의 흡수골 호수는 몽골 최북단에 위치한 호수이며, 호수크기(길이: 135km, 폭: 30km)는 몽골에서 가장 큰 크기 이다. 흡수골은 깊이가 262m로 중앙아시아권에서 바이칼 호수 다음으로 깊고, 세계적으로는 14번째 민물수원지이 다. 울란바타르에서 약 70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항공으로 1시간 50분, 차량으로는 하루 이상이 소요되며, 몽골 인들도 80% 이상이 가보지 못한 미지의 여행지이다.
수평선이 보이는 호수, 인간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듯한 자연 과 우뚝 솟은 타이가수림, 순록과 야크를 키우는 원주민들이 마치 별천지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도 로가 산악 비포장도로라 험하고, 7월부터 8월 중순경 까지만 캠프가 개방된다.
<무릉(Murun)> 강이라는 의미의 무릉은 흡수골로 들어가는 여행자들이 대부분 거쳐가는 도시이다. 몽골항공에서 울란바타르 국내선을 운항한다. 흡수골까지는 차량으로 약 250km 정도를 짚차로 이동해야 한다.
<하얀산>
하트갈에서 서부 호수가로 약 40km 정도 들어가면 특이하고 이색적인 하얀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과거 러시아인들이 광산개발을 위해 만들어 놓은 도로와 광산 채굴을 위해 산을 벗겨놓아 산들이 희게 보인다.
<차탕족>
몽골말로 순록부족이라고 불리는 이 사람들은 작은 부락을 이루며 살고 있다. 샤머니즘에 근거한 조상들의 삶의 문화를 유지하여 살고 있고, 모피로 만들어 사용하는 가옥 “티피”는 인디언의 원뿔형 천막과 흡사하다.
<하트갈(Khatgal)> 하트갈을 흡수골 호수의 남쪽에 위치한 호수 주변도시 중에는 가장 큰 도시이다. 이곳의 공항은 올란바타르로부터 몽골항공과 ‘에어로 몽골리아’ 라는 몽골 민간항공 회사를 이용하여 항공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야크> 소과에 딸린 짐승으로 소를 닮았으나 어깨가 불룩하게 나왔고, 갈비뼈가 1쌍 더 많다. 소보다 덩치가 크며 몸 아래에는 검거나 갈색의 긴 털이 나있다.
<칭히르(Tsenkher)>
하르호린(Kharkhorin) 에서 약 130km 떨어진 칭히르(Tsenkher)가 있는 아르항가이 (Arkhangai) 지역은 온천지대로 유명하다. 울란바타르에서 차량으로 바로 가는 시간은 거의 10시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보통 호르노고비나 바양 고비를 하룻밤을 묵고 가거나 하르호린까지 항공을 이용할 수 있다. 하르호린 투어에 약간의 식상함을 느낀다면 좋 은 여행코스이다. 이곳은 온천원수가 직접 땅에서 흘러나와 원수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며 일본과 몽골인이 합작하여 건축한 리조트가 있다. 온천 주위로 둘러싸인 타이가 숲림과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며 천연 노천온천을 즐 기는 것은 가히 몽골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항공> 울란바타르시에 국제공항이 하나 있고, 각 도마다 공항이 있는데 활주로가 있는 공항은 8개이다. 울란바타르 국제공항을 통해 중국, 러시아, 한국과 정기 직항로가 열려 있고, 독일, 홍콩, 싱가포르 등으로 가끔 전세기가 운행된다. 국내선을 프로펠러 쌍발기가 주종이며, 각 도의 도청 소재지로 매주 2~3회 운행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