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각정 앞에 ‘바위 이야기, 월곡동 돌산, 그 곳에 가면’이라는 글이 가슴을 울린다.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흔히들 말하는 억겁의 시간 동안 나는 이 자리 ‘월곡산’ 끝자락에 있었다. 너무 오래된 희미한 기억들을 제외하면 ‘역사’라 말하는 찰나의 순간 속에서 나를 세상에 알린 건, 어린 나이에 세상을 저버린 고종의 큰아들 완화군(1868~1880)을 내 안에 품으면서이다.
조선 시대 후기의 슬픈 기억을 간직한 내게 사람들은 ‘애기능터’라는 이름을 붙이고 관심을 가져 주었다.
한동안 품었던 완왕을 서오릉으로 보내고, 난 새로운 삶을 준비했다. 사람들은 소나무 숲이 우거지고 풍치가 뛰어난 내게 1966년 근린공원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붙여 주었고, 도심 속의 시원한 그늘과 서울의 전경을 감상하는 장소로 사랑받는 내게 ‘서울시 선정 우수 조망 명소’라는 별명과 함께 ‘월곡정’이라는 팔각 왕관도 씌워 주었다.
처음에 어색하고, 무겁기만 하던 단순한 왕관은 요즘 들어 나의 작은 즐거움이 되었다. 때를 가리는 건 아니지만, 특히나 바람이 선선해질 즘 왕관 한쪽의 ‘북 카페’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목소리,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난 울긋불긋 단풍 옷을 입기도 한다.
나의 하루는 고즈넉한 일상의 반복이다. 이른 아침, 밤새 앉은 이슬을 털어내며 기지개를 켤 즘이면 한 무리의 사내들이 내게로 온다. 서로 인사를 나무며 내 이마 위에 둥글게 모여 체조로 건강한 아침을 시작한다. 멀리 보이는 용마, 개운이, 천장이, 청계, 관악이, 구룡이, 우면이 등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한 친구들과도 아침 인사를 나누다 보면 분주한 하루를 시작하는 도시의 아침 경관이 보인다.
한바탕 도시의 북적임이 잦아들 즘이면 낯익은 얼굴이 하나둘 왕관 아래 그늘에 자리 잡아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고, 월곡산 둘레길을 탐방하려는 탐험가들이 잠시 내 곁에 머물며 서울 경치를 감상한다. 그렇게 짧은 오전 시간이 지나면 소나무, 참나무, 진달래 그리고 작은 야생화와 같은 숲속 친구들과 함께 따듯한 햇살을 맞으며 한가로운 낮 시간의 여유를 즐겨본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다. 숙자, 영식이, 말숙이... 어린 시절 내 품에서 뛰어 놓던 아이들이 허리는 꾸부정하게, 무릎을 토닥이며 날 찾아온다. 내 이마에 줄지어 자라는 풀처럼 주름살 진 얼굴의 그 아이들을 위해 난 낮 동안 따듯한 햇살에 데워 놓은 자리 한 켠을 준비한다. 넓고 평평한 내 왼쪽 볼에서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식을 먹고 이야기 나누고, 편안하게 누워 본다. 약간 볼록한 오른쪽 볼에 걸터 앉은 아이들은 내 콧등에 등을 기대고 먼 산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기도 한다. 오른쪽 볼 아래로 ‘데크로드’라는 나뭇길을 따라 내려간 아이들은 숲으로 둘러싸인 너른 터에서 올록볼록한 내 입술을 보며 또 다른 풍경 속에서 명상을 즐기기도 한다.
도시의 열기가 식어가는 저녁 시간이면 난 또 다른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이 수놓은 경관을 담으러 사진기를 들고 찾는 아이들,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산책을 나온 아이들, 드라마 주인공처럼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그렇게 오늘도 하루의 켜가 쌓인다.
또 다른 영겁의 시간이 흐르고, 찰나의 순간에 세상은 변하겠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또 하루의 켜를 위해 오늘도 난 월곡산의 한 자락에 서 있다.”(원본 그대로 인용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