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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조성민]
국내 최소 18만명 이상의 ‘영 케어러(young carer)’는 돌봄 및 간병, 생계활동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영 케어러는 장애, 질병, 정신건강 및 알코올 중독 등의 어려움에 처한 가족구성원을 간병하고 돌보는 18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을 말한다. 조손가정에서 고령의 조부모를 돌보거나, 장애 혹은 질환으로 부모에 대한 돌봄책임과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아동·청소년들이다.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고, 여전히 가시화되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숨겨진 집단(hidden army)’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 놓인 효자 또는 효녀로 호명되고, 칭찬이나 연민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별다른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실태조차 없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2일 발간한 <해외 영 케어러지원 제도와 시사점: 가족돌봄청소년 지원 및 고립 예방을 위한 과제>라는 주제의 ‘NARS 현안분석’에 따르면 해외 국가별 연구에서는 청소년 인구의 5~8%를 영 케어러로 추정한다. 국내 11~18세 청소년 인구 368만 4531명에 단순대입하면, 약 18만4000명에서 29만5000명을 영 케어러로 추산할 수 있다.
▲국가별 영 케어러 유병률 조사(prevalence study). 자료=국회입법조사처
*영 케어러가 얼마나 존재하는지에 대한 조사(prevalence study)는 국가별로 특정 연령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어렵다. 국가별로 청소년 조사대상의 연령 범주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략 청소년 인구의 5~8%가 영 케어러인 것으로 밝혀졌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보고서를 통해 “아동·청소년기부터 시작되는 돌봄책임으로 인해 부정적 파급효과로 이어진다”며 “장보기, 세탁, 요리, 청소 등 가사관리에서, 투약보조, 드레싱 교환 등의 간병일, 정서적으로 돌보기, 어린 동생 등·하원 및 돌봄 등 이중·삼중의 부담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기간의 가족간호와 간병은 영 케어러에게 신체적·정신적 부담과 고통을 부과하고, 교육·훈련의 기회를 제약함으로써 미래 고용 및 자립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밝혔다.
영국, 호주, 노르웨이 등 해외 국가들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영 케어러’를 법률에 명시, 지원 제도를 마련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영 케어러에 대한 인식 및 제도가 전무한 ‘무반응 국가’로 분류돼 있다는 평가다.
▲영국 노팅햄 시의회가 발행하는 영케어러 카드. 카드 앞면에는 당사자 이름과 생년월일, 유효기간, 가족 중 돌봄 대상을 표기한다. /사진=노팅햄 시의회 홈페이지
이번 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각국에서는 ▲영 케어러에 대한 간병수당 지급, ▲지원기관 운영,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영 케어러 구호 요청 창구 확대, ▲교내 프로그램 시행, ▲영 케어러 카드 발급 등의 지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최근 ‘간병살인 사건’을 계기로 가족돌봄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는 수준이다.
앞서 작년 5월 20대 청년 A(99년생)씨는 병원비 부담으로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8개월간 집에서 홀로 돌봤다. 하지만 생활고와 간병을 감담하기 어려웠던 A씨는 아버지를 의도적으로 방치, 사망케 해 1심과 2심 재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복지부는 해당 사건 발생 9개월 만인 올해 2월이 되어서야 ‘가족 돌봄 청년 지원대책 수립방안’을 발표했다. 중·고등학생부터 34세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다음 달 현황조사를 거쳐 기존 제도와 연계해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입법조사처는 “일시적 조사가 아닌 ‘청소년복지 지원법’에 영 케어러 실태조사 및 지원서비스에 대한 법률 근거를 마련해 기존의 위기지원 제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면서 “영 케어러에 대한 지원 원칙도 이들이 또래 집단과 유사한 환경 속에서 학업, 교육·훈련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영 케어러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등 구호 창구를 마련하고,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종합적인 시스템을 갖출 것과 영 케어러를 중심으로 기존의 위기지원 제도를 일제 점검해, ‘재난의료비지원제도’ 및 ‘본인부담상한제도’ 등의 실효성을 제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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