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後漢) 반고(班固) 찬으로 간주되는 백호통의(白虎通義). 이론이 없지 않으나 이 백호통의(약칭 白虎通)는 후한서(後漢書) 장제기(章帝紀)와 동서 반고전(班固傳) 기록을 취신할 때는 동한 장제 때 황제가 친림(親臨)한 가운데 백호관(白虎觀)이란 곳에서 벌어진 經學 논쟁을 정리한 결과물로 간주된다.
여기서 경학 논쟁이란 이미 전한 시기부터 치열하게 전개된 금문(今文)파와 고문(古文)파의 그것을 말한다.
이 두 파는 소위 금문과 고문 사이에 같은 경전에도 자구별 차이가 극심 혹은 사소한 차이가 나는 데다, 같은 문구에 대해서도 해석의 차이를 사사건건 빚었거니와, 이런 논쟁을 해결하기 위한 학술토론이 더러 개최되기도 했으니, 그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전한 선제(宣帝) 감로(甘露) 3년에 황제가 조칙을 내려 벌어진 오경동(五經同異) 토론이라 할 수 있으니, 반고의 전한서 선제기 이 해 조에는 “詔 諸儒講五經同異, 太子傅蕭望之等平秦其議, 上親稱制臨決”이라 하고 있음이 그러한 증좌이다.
이런 토론 전통은 이미 이전에도 있었으니 전한 소제(昭帝) 6년(기원전 81)에 벌어진 소금과 철에 대한 일대 논쟁인 염철론(鹽鐵論)이 그것이며, 그 전개 과정은 염철론이란 책으로 현재에도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통은 후대에도 이어져 당대의 경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당 태종 이세민과 위징을 비롯한 신하들간에 주고 받은 문답을 정리한 정치학 토론서인 정관정요가 그것이다.
하기야 토론과 거기에서 오간 내용을 책으로 엮어 내는 전통은 그 원류를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논어(論語)와 묵자(墨子), 맹자(孟子)가 있으니, 이것들은 말할 것도 없이 공자와 묵자, 맹자로 대표되는 사람이 그 제자 혹은 당시 군국 제후와 주고 받은 문답을 정리한 것이다.
후한 장제 때 백호관에서 벌어진 오경동이 논쟁 또한 그것이 책으로 정리되거니와, 그 역할을 자임한 이가 반고이며, 그 성과물이 백호통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현존 백호통이 반고의 저작이 아니라는 급진적 주장까지 없지는 않으나, 여러 관련 기록을 종합할 때 반고가 백토관 논쟁을 정리한 백호통이라는 책을 저술했던 것만은 믿어도 좋을 듯하다. 그런 기록들을 보면 앞서 인용한 후한서 장제기 기록이 있고, 둘째 동서 반고전에서는 “天子會諸侯講論五經, 作白虎德論, 令固(=반고)撰集其事“가 그것이다.
이 백호통의에 대해 오대사 경적지는 白虎通 6권이라 하고, 구당서 경적지 또한 백호통 6권이라 하면서도 “漢章帝撰”이라 해서 황제 자신이 찬한 것으로 보았으며, 신당서 예문지에서는 “班固等白虎通義 6권”이라 해서 반고 등의 공동 집필로 간주했고,
순문총목(崇文總目에서는 “白虎通德論 10권, 後漢 班固 撰. 章帝建初四年, 詔諸儒會白虎觀, 講議五經同異, 詔集其事, 凡 40편”이라 해서 또 차이가 보이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 총목에서 말하는 白虎通德論이 앞선 시대 각종 경적지나 예문지에 등장하는 白虎通인가 하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으나, 같은 서적을 가리키고 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총목에서 40편이 된 것은 책이 아니라 내용에 따른 세부 분류에 기인한 것이다.
또한 통지(通志) 예문략에는 “白虎通 6권. 班固”라 하고, 삼영(三榮)의 군재독서지(郡齋讀書志)에서는 “白虎通德論 10권, 後漢 章帝 會群臣於白虎殿, 講論五京同異, 班固奉詔纂”이라고 했다. (이하 이에 대해서는 생략)
이 백호통은 여러 차례 변화가 있었음에 틀림이 없으니,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후대 백호통을 인용한 구절이 이런저런 서적에 인용되고 있으나, 그런 인용구절이 현존 백호통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실상 백호통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오래된 문헌일수록 더욱 두드러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표기 수단에 기인한 것이다. 흔히 종이 이전은 필기사에서 簡牘의 시대로 규정되거니와 죽간 꾸러미에 작성된 冊이란 것이 언제든 오탈결락 외에도 착간의 위험성에 심각히 노출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죽간의 시대뿐만 아니라 소위 목판본 금속활자의 시대에도 변함이 없으니, 비근한 사례로 삼국유사 왕력편을 들 수 있다. 이 왕력편 중에도 글씨가 상대적으로 작은 주석 부분에서는 이런 착간 오탈결락 현상이 더욱 심하거니와, 아예 주석 전체가 탈락되는가 하면, 글자로 뒤죽박죽 섞여 버리기도 한다. 지정마립간조 왕력편 기술 현존본은 원문이 그랬던 것이 아니라, 글자가 뒤죽박죽 착간된 현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한다.
애니웨이,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가거니와, 백호통 일문으로서 송대 類書류의 총아인 태평어람 권 516과 춘추좌씨전 昭17년 조에 인용된 정의(定義) 및 詩卷阿正義 등지에 인용된 봉선(封禪) 조 기술로 다음이 있다.
명왕(明王)이란 바로 이런 것이니라. 그것이 바로 聖人이요, 聖君이며, 聖王이며, 그것이 바로 眞君이며 진왕(眞王)이며 태평원군(太平元君) 혹은 태평도군(太平道君)이니라. 불교에서 그 유래는 찾는 것도 노력은 가상하나 설혹 明王이라는 용어가 불교 경전에 보인다 하여, 불교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나, 明王이라는 용어는 이미 불교가 무슨 코딱지인지도 모르는 시대에 聖君의 동의어로서 이미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느니.
첫댓글이 明王에 의한 통치가 바로 明治이거늘, 이런 명치라는 용어는 일본 천황의 연호로도 전용되고 있거니와, 그러니 명치란 말할 것도 없이 太平이거늘, 그것이 명명백백함은 다른 무엇다 위 백호통 일문이 일대 증좌이니라. 이제서야 문자명왕을 일명 明治好王이라 했다는 비밀이 풀리느니...
첫댓글 이 明王에 의한 통치가 바로 明治이거늘, 이런 명치라는 용어는 일본 천황의 연호로도 전용되고 있거니와, 그러니 명치란 말할 것도 없이 太平이거늘, 그것이 명명백백함은 다른 무엇다 위 백호통 일문이 일대 증좌이니라. 이제서야 문자명왕을 일명 明治好王이라 했다는 비밀이 풀리느니...
그렇다면 文咨는 무슨 개뼉다귀 같은 괴물인가?
명치가 태평이라는 의미라… 김태식 기자님 입장에서야 뻔한 지적이겠습니다만 많은 회원분들 입장에서는 좋은 것을 배워가는 계기가 될 듯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