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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유사이래 대한 민국 최고의 국제적 히트 상품은 아마 '김치'가 아닌 듯 싶다.
지금도 어지간한 선진국에 위치한 식당에 가면 김치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올림픽 선수촌이나 주요 국제 대회의 식당에 김치가 등장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파란 눈, 노랑 머리의 외국인들이 뉴욕의 한국 식당에서 아그작거리며 총각김치를 씹어 먹는 '징한' 모습이 이젠 결코 낯설지 않다. 한국에 와 보았거나 한국을 아는 외국인들이, 아니 한국을 모른다 할지라도, '김치' 라는 단어는 상당수 알고 있다.
'김치'와 아울러 한국 발음 그대로 유명해진 또 하나의 히트 상품은 '태권도'일 것이다.
세계 오지까지 널리 퍼진 '태권도' 열풍에 노랑머리 외국인이 '차려'구령에 '차려'하고 '앞차기' 구령에 앞차기 하는 모습을 우리는 TV를 통해서도 쉽게 볼 수 있다. 142개국, 4000만명 인구가 즐기고 있는 태권도…..한마디로 자랑스럽다. 소시적에 '앞차기' 한번 안 해 본 사람 없을 정도로 우리 생활 깊숙이 뿌리 박혀 있는 '태권도'는 그 만큼 우리의 '앞가슴'을 펴게 했고 우리의 '목소리'을 우렁차게 만든 사랑스러운 스포츠 였다.
그런데, 태권도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팬들에게 누군가 물어본다.
"대한민국 남자들이여, 그리고 그 태권 소년들의 누나, 여동생, 엄마들이여.
'품세'와 '정권찌르기' 그리고 '빨간띠' '검은띠'의 차이를 정확히 아는 태권 민족이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의 태권도 선수 이름 3명만 알고 싶다"고….
………우욱…….
'정권찌르기'의 타격이 주는 고통이 이런 것일까?
정권찌르기에 가격을 당한 듯 말문이 막히며 가슴이 답답하다….
친근함에 동반하는 소홀.
익숙함에 동반하는 무감각.
태권도는 대한 민국 남자면 일생에 두번 정도 접할 정도로 친근하고 익숙하다.
태권도와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옆 동네에서 '한 따까리 한다'는 아무개가 같은 반 남학생들을 싸잡아 족칠 때, "엄마, 나도 태권도 배울래…" 하며 동네 도장문을 엄마 손잡고 열 때 이루어지며, 두번째 만남은 아마도 군대에서 기합 받아가며 굳어서 안 찢어지는 다리 찢어 올리느라, 웬수 같은 초단 자격증 한 장 따려고 별의 별 짓을 다 할 때 태권도와의 두번째 '도킹'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토록 친근하고 익숙한 태권도는 친근함과 익숙함이 자주 동반하는 '소홀'과 '무감각' 때문에, 아직도 가족들만 모인 국기원에서 '전국 대회'를 치르고 있고, 수많은 위대한 우리의 태권도 선수 이름 하나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의 한 선수의 위대함 조차 '종주국'으로서의 '당연한 인식'에 가리워져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정권찌르기 가격의 '가슴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태권도 종주국의 '야박한 평가'와 '당연한 인식'에 가리워지기에는 너무도 위대한, '우리 것' 태권도를 '아트 (art)' 수준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자 '파이팅 머신' (fighting machine) 김제경을 후추 명예의 전당 제 17호 헌액자로 소개하려 한다.
"김제경? 어디서 들어본 듯 한데… 근데 걔 김재경이야? 제경이야??" 후추 취재진이 김제경이란 인물의 자료 수집이란 숙제를 놓고 고민하던 중, 적지 않은 기존의 언론 종직자들 마저 김제경의 이름을 '김재경'으로 착각했던 기사를 목격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김제경에 대한, 아니 세계 최고의 태권도 달인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도 였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젊은 층 스포츠 팬들이 열광하는 미국 프로 농구 NBA의 종주국인 미국 애들이 '그들의 것'을 보호해주고 치켜세워주고 확산시켜주려는 노고야말로 눈물겹도록 치밀하고 효과적이다. 우리 역시 태권도는 '우리 것'이라 말하지만, 태권도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곤 개뿔 없다. 아니, 태권도에서 아는 것 또한 개뿔 없다. 세계적인 태권도 선수 이름 3명만 말해보라는 질문에 얼굴이 화끈 거리기부터 한다.
김제경… 10여년이란 세월동안 참으로 묵묵히 조용히 '우리 것'을 지켜온 장본인이다. 김제경 말고도 대한민국엔, 아니 태권도 종주국엔 뛰어난 태권도인들이 많이 있다. 실력 하나로만 보자면 우월을 점칠 수 없는 체급 별 실력자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굳이 후추가 김제경을 조명하는 이유는 그의 '무게' 때문이다 - 체급의 무게와 실력의 무게.
187cm, 86kg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김제경… 바로 이 '세계 헤비급 챔피언' 이란 말에 필자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마치, 십 수년 째 집 한칸 없이 15평 월세, 20평 전세 방으로 옮겨 다니던 40대 중반의 중학교 윤리 선생님이 드디어 100평짜리 '내 집 장만'을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가슴 후련함' ~~~~. '플라이급' '밴텀급'에 익숙해온 우리에게는 '헤비급'은 남의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복싱, 레슬링, 유도, 역도까지… 우리는 중량급 위로는 관심을 꺼야 하는 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것'이 아니기로 포기했던 '헤비급 챔피언', 그 생소한 단어의 쾌감을, 진정한 '우리 것', 태권도를 통해 속 시원히 맛보게 해 준 고마운 사람이 바로 태권도 '세계 헤비급 챔피언 - 김 제경'인 것이다.
그의 실력의 무게는 어떠한가. 세계 태권도 계 '최초의 그랜드 슬래머 (Grand Slammer)', '신기의 80여 매치 무패 행진', '돌려 후려차기의 달인'…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김제경은 세계의 기록집을 다시 써가고 있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간혹 국제 태권도 대회에서 외국 선수들이 우리 선수들을 누르고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이대로 놔뒀다간 태권도 마저 중국이다 유럽 애들에게 빼앗기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해 본 필자로서는 후추 명예의 전당에 김제경이란 이름이 올려지는 것만으로 팬들의 '태권도 무관심'을 하루 아침에 바꿔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의 위대한 챔피언,김제경 선수를 독자들에게 알리면서 이 고독한 '태권 전사'를 알지 못했던 대한 민국 '태권 소년'들과 말로만 '신토불이'를 외쳐대었던 우리의 해묵은 사과의 표시를 전하고자 이 글을 쓴다.
출전 후보 명단에 김제경이란 이름 석자 때문에 체급을 바꿔 출전하는 '기 현상'을 유도해 내는 '태권 전사' 김제경의 이름으로 후추 명예의 전당 열 일곱번째 막을 올린다.
김제경의 전설
태권도가 우리의 것이기에, 우리나라의 태권도 선수들은 오히려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태권도' 하면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나가기만 하면 당연히 금메달 따오는 종목'쯤으로 여기고 있고, 간혹 가다가 금메달을 따오지 못했을 때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종목이니 말이다.
당장 시드니 올림픽만 해도 그렇다. WTF(세계 태권도 연맹)에서, 특정 국가(당근 KOREA!!)의 금메달 싹쓸이를 방지하기 위해 각 국가 당 4체급 까지만 출전을 허용했다. 우리나라가 이번에 출전할 체급은 남자 -68, 80 Kg, 여자 - 57, -67 Kg급이다.
국내에서 아마추어 운동 선수 평생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한 전초전인 국가대표에 선발 가능한 선수는 남, 녀 약 8백여명 내외이다. 즉, 경쟁률 200대 1의 좁은 관문인 것이다(그대가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치뤘던 시험의 경쟁률과 비교해보시라). 이들은 지난 99 크로아티아 예선전, 세계 선수권 대회와 국내 선발전을 거쳐서 남은 정예 49명으로 다시 나뉘고, 이들끼리 3차례의 선발전을 거친 후(이것이 끝이 아니다), 체급당 4명씩 국가대표 후보로 발탁된다. 최후의 4인 들끼리 치열한 경쟁(세 차례의 평가전)을 펼치고 나서야, 시드니 올림픽 100일 전에 비로소 진정한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다.
김 제 경. 그는, 이런 과정을 더도 덜도 아닌 딱 10년을 반복해 왔다. 그리고 항상 국가대표로 출전, 나가는 대회 대부분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물론, 99년에 결승에서 부상으로 기권하고, 준결승에서 패한 경기도 있다).
여기 김제경이 위력적인 왼발 돌려차기와 환상적인 뒷차기로 각종 국내외 대회에서 거둔 성적이 있다. 그가 거둔 성적들도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뭐 당연히 딸 거 딴 거 아닌가'라고 폄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외국 선수들이 출전 선수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면, 헤비급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는.. 공포의 이름 김제경. 아래에, 그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부터 각종 대회에 참가했던 그의 전적이 있다. 그의 실력을 얘기하는 데에 있어서 기록말고 더 설득력 있는 것이 무엇일까? 김제경의 전적을 하나 하나 자세히 설명하려던 필자의 다부진 꿈은 김제경의 끝 없는 연승 행진으로 말미암아 깨끗이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대기업 연혁 보여주듯이 일목요연한 차트로 준비하였으니, 이제 가슴벅찬 우리 태극 전사 김제경의 전설을 차근차근 감상해 보시길 바란다. 일반인들의 갈채 없이 묵묵히 정진해온 그의 10여년간의 아무도 몰라주는 피땀 어린 노력에 갈채를 보내면서 말이다.
일자 |
대회명 |
상세 내용 |
1984 |
전국 어린이 태권왕 대회 |
난생 처음 참가한 태권도 대회. 동메달. |
1984 |
문화 체육부 장관기 쟁탈 어린이 태권도대회 |
첫 우승. 초등학교 6학년. |
1990.4.12 |
국가대표 1차 선발대회 |
1위. (미들급) |
1990.6.22 |
대통령기 대회 |
1위. (미들급) |
1990.8.4 |
협회장기 대회 |
1위. (미들급). 최우수상 수상. |
1990.9.29 |
대학 대항전 |
1위. (미들급) |
1991.5.25 |
대학연맹전 |
동아대 4학년으로서 출전한 대회에서 5차례의 경기 모두 승리하며 당당히 우승(이하 헤비급) |
1991.6.13 |
대통령기 대회 |
우승 |
1991.10.12 |
전국 체육대회 |
우승. |
1991.12.28 |
국가대표 최종 선발대회 |
1위. |
1992.3.12 |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 선발전 |
박종범을 판정으로 누르고 출전권 확보 |
1992 |
아시안 선수권 대회 |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진 대회. 역시 우승. |
1992. |
바르셀로나 올림픽 |
시범경기. 헤비급 우승. |
1992.11.13 |
전국 우수 태권도선수 선발대회 |
심재섭을 2-0으로 물리치고 우승. 대회 최우수 선수로 뽑힘. |
1993.8 |
세계 선수권 대회 |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대회. 우승. |
1993.9.11 |
국방장관기 쟁탈 태권도 대회 |
김현일을 4-0 판정으로 제압하고 역시 우승. 대회 최우수 선수로 뽑힘. |
1993.11.13 |
태권도 우수선수 선발전. |
김정규를 2-1로 물리치고 우승. |
1994.1.29 |
아시아 선수권 대회 |
우승. |
1994.7.22 |
세계 선수권 대회 |
우승. |
1994.3.19 |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 |
이동완, 박종범, 김정규를 연파하고 무난하게 선발됨. |
1994.10.9 |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
우승. 사상 최초로 그랜드 슬램 달성(아시아 선수권, 아시안 게임, 세계 선수권, 올림픽 우승). |
1995.3.29 |
국가대표 선발전 |
우승. |
1995.11.21 |
세계 선수권 대회 |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벌어진 대회. 8강전. 독일의 올라프 빌겐스를 7-3 판정으로 물리침. 4강전. 브라질의 루치오 실바를 앞돌려차기와 앞차기로6-0으로 물리치고 결승전 진출. 프랑스의 파스칼 장띠이(Gentil)을 앞뒤 돌려차기로, 5-1로 물리치고 당당하게 우승. |
1996.3.11 |
US 오픈 |
5게임 전승. |
1996.4.16 |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 |
무릎 부상으로 기권. 무릎에서 뼛조각이 발견, 수술. 태극마크 반납. |
1997.3.8 |
월드컵 태권도 대회 |
부상에서 복귀, 국가대표로서 다시 따낸 첫 금메달. 카이로의 대회. 월드컵이란 세계 선수권대회보다 한 단계 격이 낮은 대회로, 우리나라는 이 전까지 2진을 파견, 기술 전수와 보급에 큰 의미를 두었으나 이 대회부터 대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1진을 파견. 역시 장띠이를 돌려차기, 1-0으로 물리치고 우승. |
1997.11.23 |
세계 선수권 대회 |
홍콩에서 열림. 준결승에서 사우디의 칼리드 알도사리를 TKO로 물리치고, 결승에서 이란의 하산 아슬라니를 물리치고 우승. 세계 선수권 3연패. |
1998.3.14. |
태권도 대표 선발전. |
2라운드에서 발목 부상으로 고전했으나, 문용철을 5-3으로 물리치고 대표 선발. |
1998.5.17 |
아시아 선수권 대회 |
베트남에서 열린 대회. 결승에서 칼리드 알도사리(사우디)를 오른발 뒤후려차기와 찍어차기로 얼굴과 몸통을 공략, 2-0으로 승리. |
1998.12.11 |
방콕 아시안 게임 |
12월 5일 선수촌에서 발차기 연습 중 오른발 대퇴부 근육이 늘어나는 부상에도 불구, 진통제를 맞으며 출전하여 요르단의 카말 이브라힘을 3-1로 물리치고 우승. 2연패. |
1999.2 |
세계 선수권 대표 선발전. |
결승에서 문대성과 상대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부상을 이유로 기권. |
1999.3.24 |
코카콜라 체육대상 |
투기부문 우수 선수상 수상. |
1999.4.28 |
시드니 올림픽 대표 선발전 |
준결승에서 1-3으로 박천덕에게 패배. |
1999.7.13 |
시드니 올림픽 세계 예선 대회 |
크로아티아 포렉에서 열림. 왼쪽 허벅지 부상에도 불구, 출전을 강행. 올림픽 진출 티켓을 딴 후 장띠이와의 결승전에서는 기권. |
1999.10.12 |
전국 체육대회 |
80회 전국 체육대회에서 김정규를 맞아 우세한 경기를 펼친 끝에 우승, 울산에 첫 금메달을 안김. |
2000.4.11 |
시드니 올림픽 대표 선발 2차 평가전 |
3월말 1차 평가전 결승에서 동료 김경훈에게 패배, 2차 대회에서는 오른쪽 허벅지 뒷근육 파열로 출전하지 못하고 기권. |
태권소년 김제경
1m87, 87kg의 일급체격조건을 지닌 김제경. 이 이름이 대회 출전자 명단에 오르는 순간 세계의 태권도 선수들이 출전을 포기하거나, 도전장을 내밀면서도 몸을 사리고 공격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할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김제경은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동네 울산에서, 그것도 시커먼 남자 형제만 넷인 집안의 막내다. 아마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 따라서 혹은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를 외치며 아들 손잡고 태권도장을 찾은 엄마를 따라 하얀 도복 한번쯤 다 입어 보았겠지만, 김제경 역시 울산 병영 초등학교 시절 당시 태권도를 교기로 하고 선수 육성에 나섰던 학교 분위기에 따라 5학년 때 태권도에 입문하게 된다.
아니나다를까? 김제경 집안의 '스포츠 내력'은 좀 강했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이지만, 김제경의 할아버지는 원래 씨름을 하셨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천하장사니 백두장사니 하는 씨름대회가 없었으므로 아주 큰 씨름 대회의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방에서 '한 샅바' 하시다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시작한 운동이 스모이다. 일본의 스모는 우리나라의 씨름과 달라서 일단 요코즈나에 오르면 귀족의 대우를 받았다. 그의 할아버지도 스모계에서 꽤 성적을 거두었다. 몇 번의 상도 받았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는 이유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지금은 운동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4형제 모두 운동을 좋아하여 큰형은 축구를, 둘째 셋째 형은 육상을 했었다. 그 중에서 운동에 가장 소질이 없던 형제가 김제경이었다니.. 믿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근성'을 가장 많이 전수 받은 것이 김제경이 아닐까 싶다. 씨름이나 스모나 태권도나 지금의 사람들에게 그다지 소중히 여겨지지 않는 "전통의 정신"을 고수하며 부단히 정신 수양을 해야 하는 스포츠이고 또 프로스포츠와 달리 자기와의 싸움이 없이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서른 줄을 넘은 김제경이 그 나이가 되도록 술, 담배로 찌들어 살아 본 적이 없는 '매트 위의 모범 답안' 이었다. 그만큼 육체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자신과의 싸움'에서부터 압도해 나간 김제경이었다.
그런 그가 전국 무대에 첫 얼굴을 내민 것은 6학년 때의 '전국 어린이 태권왕 대회'였다. 처음 상경한 시골 소년 김제경은 이때 동메달을 획득하고 그의 태권도 인생의 서막을 알렸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후 김제경의 대회 성적은 그다지 눈부시지 않았다. 아니, 최장수 세계 헤비급 챔피언의 어린 유년기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초라한 성적의 연속이 더 정확한 평가다. 초등학교 때 문화부 체육부 장관기를 비롯한 중학교 소년체전에서 3위를 기록했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신인 종별 우승 한번 하는 정도가 전부였으니…
그러나 대학교 진학 후 그의 태권도 인생은 180도 새로운 길을 맞이하게 된다. 부산 동아대 2학년 때 대학부 대회에서 출전, '자기 힘으로' 미들급 우승을 하면서 처음으로 우승의 맛을 느끼게 된다. 이게 무슨 봉창이냐고? 누구는 태권도 둘이서 하냐고??
동아 대학교 2학년 대통령기 시합때였다. 세명만 이기면 종합우승이 되는 상황에서 그보다 앞의 선수가 이미 모두 우승을 한 상태였다. 이미 종합우승을 확보한 터라 나머지 선수들은 다른 학교 선수들을 위해 시합을 물려주는 것이 대학들간의 상대에 대한 배려 쯤이어서 감독에게 제의가 들어 왔다고 한다. 그때 감독이 현 동아대 감독을 맡고 있는 강우규 감독이다. 그분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경이는 아직 전적도 별로 없고 지금 시합에서 우승하지 않으면 태권도를 계속 할 수 없다’며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것이 그에게 태권도가 인생의 절반이 되어버린 시작인 것이다. 그는 그때의 기억을 이렇게 회상한다.
김제경 : 근데, 진짜 그 정말 고마운 분이요, 동아대학교 감독님께서, 저가 고등학교 때 전적도 없이 왔으니까, 진짜 촌놈이죠. 그 때 제 동기들은 다 고등학교 때 벌써 대표가 되고 했었으니까.. 그렇게 하고 있는데, 대학교 2학년 때 대통령기 시합을 나갔는데, 그 때 세 명만 우승하면 종합 우승이거든요. 그래가지고 경희대학교하고 막, 우승을 놓고 하고 있는데, 저희가 앞에 세 명이 다 우승을 해 버렸죠. 그 때 제가 미들급인데, 다른 팀에서, 결승을 저희하고 붙는 팀에서 저희더러 물려달라고 그런거에요. 동아대학교는 종합 우승 했으니까, 좀 물려주면 안되겠냐고.. 그, 이런 거 나가도 되나요 ?
후 : 저희가 알아서 편집 할께요.
김 : 근데, 그렇게 됬는데, 동아대학교 감독님이, 그 팀을 위해서 그럴 수 있는데, 감독님이 "얘는, 다른 애들은 물려달라고 하면 내가 물려줄 수 있다. 이거는 그냥, 국내 시합이니까. 그, 물려줄 수 있지만은, 그, 제경이는 아직까지 우승을 한 번도 못한 애니까, 여기서 또 물려주면은 앞으로 클 수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얘는 못 물려준다. 그래서 게임을 붙여라." 그래서 제가 이겼었거든요. 그게 계기가 되가지고, 그게 정말 감독님이 그, 선견지명이 탁 있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요
91년 전국대학 대회에서 연승행진을 시작으로 김제경은 이때부터 기록조차 헤아리기 힘든 새로운 신화를 작성함과 동시에 그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말하는 "그랜드슬래머"를 향한 먼길을 달려왔다
처음 그를 만나면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혹시 매트가 아닌 곳에서 누군가와 주먹다짐을 해본적이 있으세요…"
그러나 그를 만나는 순간 입을 다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질문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를 만나 단 한마디라도 대화를 나누어 본 사람이라면 그에게 태권도는 한낱 사람들에게 위협 하거나 금메달을 따는 데 필요한 도구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김제경은 정말 침착,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공손하고 온순하기 짝이 없고 '냄비 뚜껑' 만한 손바닥만 아니라면 도저히 체육인이라고 볼 수 없는 차분한 언행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잦은 부상, 그럼에도 불구 하고 불굴의 투혼으로 경기를 마치고 남의 부축을 받아야 할 정도였음에도 전혀 내색을 않았을 만큼 깊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태권도는 항상 들뜨게 만들고 기쁘게 만들고…때로는 좌절하게 하는 인생 그 자체다.
그것이 바로 누구도 알아 주지 않고 "대한 민국 남자라면 군대에서라도 태권도 단증 하나 쯤은 따는 것"으 로 인식되어 있고, 가족밖에 없는 경기장 이라도 매트에만 올라서면 "전사"이 되고마는 이유인 것이다.
어느 스포츠 신문의 인터뷰에서 "내 삶의 최고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자"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것이 바로 김제경의 가장 진솔한 모습이다.
후추 별책 부록 1 당신 한국 사람 맞아?
너희가 태권도를 아느냐?
김제경과 그의 태권도 인생을 논하는 데에 있어서 좀 더 깊이 있게 태권도란 종목에 대해서 모른다는 사실이 필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태권도는 어떻게 만들어진 무술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가 몇 명이나 될까? 날이면 날마다 접하는 '태권도 세계'가 아니기에, 아직도 태권도가 '평양 가무단'의 시범 쇼 (Show)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이번 계기를 통해서라도 아주 고리타분할 수도 있지만 소중한 태권도의 뿌리를 한번쯤 찾아 보기로 하자. 태권도를 '우리 것' 이라 부를 수 있는 자들만의 특권이자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체계가 잡힌 지 백년도 되지 않은 태권도는 그 탄생 배경에 대하여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조금씩 다르다. 크게 2가지의 기본 틀에서 조금씩 말이 첨삭되고 있다.
첫째로 대한태권도협회에서 얘기하는 택견 기원설을 들 수 있다. 고구려가 국가로서의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2세기경에 고구려에는 '선배'라는 이름의 강력한 무사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선배'가 되는 이는 무리를 지어 한집에 살며 문무를 익히며 백성을 돌보며 나라에 일신을 바쳤다 한다. 그리고 무용총에는 두 사람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대련을 취하는 자세가 그려진 벽화가 남겨져 있다. 그리고 신라에는 '화랑'이라는 단체가 있어 고구려의 '선배'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석굴암의 금강역사상과 분황사의 9층 석탑의 인왕상은 현재의 태권도 자세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백제 같은 경우는 일본 서기에 백제인이 일본 무사와 맨손 대결을 벌였다는 사료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맨손 무예가 존재하였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이 통일되고 나서 3국의 무예도 차츰 통합, 계승, 발전하여 고려시대에 와서 '수박' 또는 '수박희' 라 불리는 무예로 정착이 되었다. 고려 의종 같은 이는 ' 수박희'를 즐겨 무인들의 대련을 즐겨 관람했다 하고 '오병수박희' 라 하여 집단적으로 실전 대결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조선 초기에는 화약의 발명으로 인한 새로운 무기의 출현과 숭문정책으로 인하여 무술은 예전에 비하여 천시되었으나 임진왜란과 정조 때 편찬된 '무예도보통지'의 출연으로 다시금 확산되었다 한다. 고려시대에는 택견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았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수박'이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다 조선 말기에 와서는 '택견' 이라는 말로만 사용되었다. 일제 시대에 이르러서 일본은 침략 정책의 하나로 민족 무예의 탄압을 시도하였는데 이로 인해 택견은 독립군, 광복군등이나 몇몇 사람에게만 비밀리에 개인적으로 전승되었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다시금 민족 무예를 되살리자는 취지 하에 1961년 9월 16일 대한태권도협회가 창설되고 1963년 2월 23일 대한체육회에 27번째 가맹단체로 가입되었고 1963년 10월 9일 전주에서 개최된 제 44회 전국체전에 태권도가 공식경기로 처음 참가하게 되었다. 결국 대한 태권도 협회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결국 태권도라는 것이 전통의 민족 무예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계승, 발전했다는 이론이다.
(국기 태권도 교본, 국기원 편, 오성출판사, 1993)
다른 기원설로는 김용옥 씨가 쓴 '태권도 철학의 구성 원리(1990)'라는 책에서 밝히고 있는 것이 있다. 태권도라는 것은 오키나와 지방의 가라데(唐手) 무술이 한국으로 건너와서 한국적 토대하에서 새로운 무예로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즉, 태권도의 근본이 되는 것은 가라데이기 때문에 택견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기원설의 증거 중 하나로 해방 이후 한국에는 현재 태권도의 뿌리가 되는 5개의 도장이 있는 각각 무덕, 청도, 송무, 창무, 지도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이 도장의 시작이 일본의 가라데 도장이고 사범들도 가라데를 배웠다는 것을 들고 있다. 그리고 도장 이름도 일본의 도장의 한 자씩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절도와 강함을 추구하며 일격필살을 노리는 직선적인 태권도와 부드럽고 완만하여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 패배를 인정케 하는 곡선적인 택견은 그 성격부터 달리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태권도는 전통 무예인 택견과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 택견협회 측에서는 태권도가 비록 가라데에서 시작된 무예였으나 한국으로 들어와서는 기존에 있던 택견과 다른 나라의 무예들과 합쳐져서 전혀 새로운 한국적 무예로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고려 청자가 송나라 자기의 모방에서 시작했지만 우리 민족의 창조성이 더해져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고 한국 무술의 집대성이라 하는 '무예도보통지'조차도 명의 '기효신서'나 '무비지'를 참조하여 본래 있던 한국 무술에 접목시켜 만들어 낸 것이다. 이처럼 태권도가 단순히 가라데를 원형으로 두고 있다 하여 그것을 한국의 무술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태권도가 택견은 아니지만 그것은 이미 한국적인 무술이라는 것이다.
(택견연구, 이용복 엮음, 학민사, 1995)
후추 별책 부록 1 당신 한국 사람 맞아? 태권도의 연혁
( 대한태권도협회 홈페이지 ) |
김제경이 '날고 긴다는' 그 태권도란 스포츠… 도대체 우리가 평소 알고 있던 '기왓장 부수기'와 '이단 옆차기 시범' 류의 태권도와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태권도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 태권도 관계자들은 태권도의 무엇을 보고 명실공히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까지 승격될 수 있었던 것일까? 김제경은 도대체 매트 위에서 뭘 그리도 잘 하길래 출전 대회 싹쓸이를 가능케 했던 것일까? 궁금해 진다.
태권도 경기 규칙(후추 버전 해설)
I. 득점
1. 득점 부위
가. 몸통부위 : 장골능을 기준으로 한 횡단선 이상에서 견봉을 기준으로 한 횡단선 이하 의 부위로서 손기술과 발기술의 공격이 허용된다.( 단, 호구로 보호되지 않는 등부위는 공격을 할 수 없다. ) - (마빡을 제외한 상반신 전면을 손이나 발로 디지게 갈기면 득점 되되, 보호대가 피해간 등판을 갈겼다간 득점 인정 안됨… 여기서의 '호구'란 일부 독자를 지칭하는 말이 아님.)
나. 얼굴부위 : 양 귀를 기준으로 한 종단선의 전면 얼굴부위로서 발기술의 공격만이 허용된다. (마빡은 발로만 차야 된다는 얘기)
2. 득점은 허용기술로 득점부위를 정확하고 강하게 가격한 것으로 한다. (매사가 그렇듯, 엄한 데 죽어라고 찔러 봤자 득점과는 무관…제대로 쏘라!)
3. 득점 1회는 +1점이다. (공중3회전 후, 오른발 비틀어 2단 옆차기를 목 찢어져라 큰 기합 소리와 함께 날리는 것과 그냥 톡! 한 방이나 똑같이 1점이다)
4. 득점은 전 3회전을 통산한다. (한 회에 목숨 걸지 말자)
II. 채점과 표출
1. 득점은 즉시 채점되어야 하며 채점된 점수는 즉시 표출되어야 한다.
(맞은 것도 서러운데… 코 앞에서 알려주기까지 한단다)
2. 채점은 채점기 또는 채점표에 의해 부심이 채점한다.
(주심만 속인다고 다가 아니다.)
3. 득점은 부심 2인 이상이 채점한 것을 유효득점으로 한다.
(두명 다 감동 시켜라)
III. 우세의 판정
1. 감점에 의한 동점일 경우는 득점이 많은 쪽을 전회전 우세한 것으로 간주한다.
(벨트 아래 또는 등판을 까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면, 일단 그 전에 많이 날리둬라)
2. 위 항이 아닌 동점의 경우 또는 무득점의 경우에는 주심이 전 회전을 통한 우세로 판정한다.
(이 때는 일단 공중 3회전 같은 오바가 좀 필요하다)
3. 우세의 기준은 경기의 주도권으로 한다.
('충무로 액션'이라도 배워둬라)
IV. 경기결과 판정
1. 케이오에 의한 승 : 정당한 공격에 의해 위험한 상태에 빠져 10초 이내에 경기를 계속할 수 없을 때, 또는 경과시간에 관계없이 주심의 판단으로 경기속행이 어렵다고 판단되었을 때 주심이 선언하는 승리 (원터치 원빵 승!)
2. 주심직권에 의한 승 : 주심의 판단으로나 또는 의사의 자문에 의하여 선수가 경기를 더이상 속행 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또 1분계시 이후에도 경기속행이 불가능했을 때, 또 주심의 경기속행 지시를 따르지 않을 때 선언하는 승리 (대자로 뻗긴 쪽 팔리고 그렇다고 계속 싸우려도 의사가 딴지 걸고…)
3. 판정에 의한 승 : 경기의 내용에 따른 득ㆍ감점 또는 우세판정에 따라 다득점자 또는 우세자에게 선언하는 승리 (판정승)
4. 기권에 의한 승 : 상대방 경기포기로 인하여 얻는 승리 한 선수가 부상 도는 기타 이유로 혹은 자의로 경기를 포기하였을 때 회전간 휴식을 한 후 계속 경기에 응하지 않았을 때 코치가 임의로 자기소속 선수의 열세로 더 이상 경기를 속행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경기장 내로 수건을 던졌을 때 (깨갱~~)
5. 실격에 의한 승 : 상대선수가 선수자격의 결격 또는 상실했을 때나 계체에 실격함으로써 내려지는 승리 (시합 전날 살인 미수 혐의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거나, 전날 밤 먹은 라면 두 개가 체중기를 거부할 때…)
6. 반칙에 의한 승 : 상대선수가 감점이 -3점이 되거나 또는 주심이 14조 8항에 의해 반칙패를 선언했을 때 얻어지는 승리 (경기 중 변심한 애인 생각이 나서 감정이 격해졌을 때)
V. 선수및 코치
1. 선수
가. 자격
1) 당해년도 선수등록을 필하고 심신의 결격이 없는 자 (태권도 아무나 하는 줄 알았지비?)
2) 국기원 품, 단증 소지자 (태권도의 NBA 사무국이란 소리지)
3) 위 1), 2)의 해당자로서 부별 자격요건은 다음과 같다. (호적 뒤집기, 1-2년 꿇기..등 까지는 추적할 수 없겠지만…)
가) 초등학교부 : 5, 6학년 재학 중인 자
나) 중학교부 : 중학교 재학 중인 자
다) 대학부 : 대학 재학 중인 자
라) 일반부 : 만 18세 이상인 일반인
나. 복장
1) 경기에 임하는 선수는 협회가 공인한 도복 및 보호용구를 착용하여야 한다.
(사우나 가운 변조한 뽀록 도복은 용납 안 됨!)
2) 경기에 임하는 선수는 몸통보호대, 머리보호대, 샅보대, 팔,다리보호대를
착용하여야하며, 샅보대 및 팔,다리보호대는 도복 안에 착용하여야 한다.
(태권도 그 아무리 위대한 스포츠라 하여도 하다가 죽진 말아야지)
다. 의무사항
1)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금지하는 약물을 복용하여서는 안 된다.
(뽕, 필로폰, 떨.. 말고도 금지 약물 많습니다)
2) 협회는 필요에 따라 약물복용여부를 검사하여 검사에 불응하거나 금지하는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판명되면 입상자는 등위가 박탈되며, 차위자가 그 등위를 승계한다. (소변 잘못 봤다간 인생 조진다는 얘기.. 아울러, 세상에 참 복도 많은 인간도 많고..)
2) 대회조직위는 필히 약물복용을 검사할 수 있도록 준 비해야 한다.
(화장실 설비 투자엔 인색하면 안 된다는 얘긴가? )
4) 경기규칙을 알고 지켜야 한다. (아멘..)
5) 몸을 청결히 하고 경기용구 이외의 물체를 지녀서는 안된다.
(수청 드는 각시처럼.. 구석구석 청결히 목욕 재계할 것!)
6) 일방적으로 경기장을 이탈해서는 안 된다.
(폭행 거부의 권리도 없다… 맞기 싫어도 일단 도인의 길을 걷기로 작정했다면…)
7) 대전순위를 확인하여 대기하고 호명시에는 자기 코너를 알아 경기용구를 착용하고
대전 준비를 하여야 한다. (챙길 것 챙기고 동작 뜨지 않게…)
8) 경기 중 발생한 상해 및 사망에 대하여 상대선수 또는 협회 및 경기 주최ㆍ주관단체에 책임을 묻지 못한다. 다만 고의적인 행동에 의해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과실을 범한 선수측에서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맞아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기원 고소할 생각은 마라!)
VI. 체급
부별 체급 |
남자부 |
여자부 |
초등부 | ||
일반부 |
중학교부 |
일반부 |
중학교부 |
남녀공용 | |
핀급 |
~54 |
~36 |
~47 |
~36 |
~30 |
플라이급 |
54~58 |
36~40 |
47~51 |
36~39 |
30~32 |
밴텀급 |
58~62 |
40~44 |
51~55 |
39~42 |
32~34 |
페더급 |
62~67 |
44~48 |
55~59 |
42~45 |
34~36 |
라이트급 |
62~72 |
48~52 |
59~63 |
45~48 |
36~38 |
라이트웰터급 |
52~56 |
48~52 |
38~40 | ||
웰터급 |
72~78 |
56~60 |
63~67 |
52~56 |
40~43 |
라이트미들급 |
60~64 |
56~60 |
43~46 | ||
미들급 |
78~84 |
64~69 |
67~72 |
60~64 |
46~49 |
라이트헤비급 |
69~74 |
64~68 |
49~52 | ||
헤비급 |
84~ |
74~ |
72~ |
68~ |
52~ |
올림픽체급
남자부 |
여자부 |
58kg 까지 58kg 초과 68kg 까지 68kg 초과 80kg 까지 80kg 초과 |
49kg 까지 49kg 초과 57kg 까지 57kg 초과 67kg 까지 67kg 초과 |
이상으로 태권도 경기 규정을 훑어보았다. 어느 정도 투기 종목을 좋아하는 독자가 보기에 그리 까다로운 규칙은 볼 수 없다. 결국은 사람이 사람 때려 눕히는 것으로 또는 제대로 때린 것으로 승패가 좌우되는 경기이다 보니, '상식 선'에서 해결되는 규정이 대부분이다.
한가지 이 태권도 경기 규칙을 정리하면서 필자가 가장 희열을 느낀 부분은 '국기원'의 권위와 '쎔' 이다. 세상에 어느 올림픽 종목 스포츠가 대한민국에 위치한 협회의 정식 승인이다 뭐다를 받아야 출전이 가능하단 말인가? 야~ 국기원이 cool해 보인다. 갑자기 한국인이란 사실이 필자의 어깨를 으쓱하게 한다. 언젠가 태권도를 연마하는 외국인을 객지에서 만나면 꼭 외치리다. "니들 국기원 가봤어? 우씨~ 난 그 동네 매일도 갔었다니까… (윽, 그 놈의 학원의 악몽이 또…) 어쨌든, 꿇어~!!"
후추 별책 부록 2 국기에 대하여 경례!
20여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얘기다. 필자가 한참동안 미국의 '얼라'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시절, 캐빈 (Kevin) 이라는 녀석이 문득 필자를 찾아와서 건넨 말이 있었다.
"너 태권도 할 줄 아냐?"
'어랍쇼? 얘가 태권도를 다 아네? 태권도? 비록 검은 띠 실력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코흘리개 중에서 한때 도장 한번 안 찾아본 녀석 없고, 그래 후라이 좀 날려 보자.'
"그럼, 나 Black Belt였어… Korean 들은 다 Black Belt야…"
"정말? 한번 보여줘 봐.."
"기둘러 봐… 얍! 얍…"
"와우~~ 너 진짜구나!!"
기합 한번 넣어주고 찌르기 몇번 후들러 주고 나니까 이 캐빈이란 녀석의 눈 알이 휘둥그래진다. '후훗…갸륵한 영혼…' 그리고 난 뒤 교내에 소문이 쭈왁~ 퍼지기 시작하면서 어지간한 상급생들도 필자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난생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태권도의 덕을 본 셈이다. 세계 문화의 중심지라는 뉴욕에 사는 이들 조 차 코리아 (Korea) 가 정확히 어디 즈음에 위치한 줄도 잘 모르던 20여년 전에 우리의 수출품인 태권도의 세계적 위치가 바로 그랬다.
도요타, 맥도날드, 노키아, 아스피린… 한 나라를 대표하는 브랜드이자 '단어' 이다. 언젠가 우리나라 기업들도 좀 더 브랜드 가치 창출에 박차를 가해, 이런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탄생하길 바라는 마음 끝이 없다. 하지만, 현재까지 우리나라, 'Korea' 를 가장 대표적으로 세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단어들은 몇 되지 않는다. '김치' 나 '갈비'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하지만, 이 독특한 우리 음식 보다도 더 많은 국가에 침투해서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단어가 있다. 바로 '태권도 (taekwondo)' 가 그것이다. 김제경의 이름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우리나라 기자들의 수준이나, 세계적인 태권도 선수 이름 3개를 연거푸 댈 수 없는 대다수 우리 팬들의 미적지근한 관심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이크 타이슨의 결혼 경력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알고 있어도 김제경의 정확한 이름 조차 모르고 있는 우리 언론과 팬들의 현실이 서글퍼져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 필자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태권도의 세계적 위치는 높고도 자랑스러웠다. 마치 '내 놓은 자식'처럼, 정작 태권도 종주국에 살고 있는 그 누구도 그다지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쏟아주지도 않았는데, 이토록 혼자서 무럭무럭 잘 커줘서 이제 태권도는 종주국에서 보다 외국에서 더 각광을 받고 있는 스포츠가 되어버린 것이다. 무엇이 태권도를 김치 보다도 더 유명한 '한국 상품'으로 만든 것일까? 20여년 전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처럼 한국인이면 무조건 태권도와 연관시켜 버리는 것 역시 일종의 '도둑놈 심보'는 아니었는지 반성해 본다. 뭔가 태권도를 위해서 해준 것도 없는 우리들이 말이다. 우리가 빈스 카터의 '다리 사이로 풍차 돌리기 덩크슛'을 구사하는 모습을 보고 희열을 느끼고 있을 때, 지금 바다 건너 아주 작은 마을에선 '차렷! 경례!" 를 가르치며 우리 태권도를 전파하 고 있는 영웅들이 있다. 늦게나마 이 기회를 통해 그들에 대한 인사와 박수를 보내려고 한다.
세계 태권도 연맹 (WTF)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현재 태권도는 세계적으로 142개 국가에서 약 4천만명의 애호가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Made in Korea' 란 글자가 박힌 그 어떤 제품이 이 만한 세계 시장 침투율을 확보하고 있을까? UN 가입국이 188개 국이다. UN 가입국 수보다 좀 더 '전 인류적인' 제품이 미국산 코카-콜라라고 한다. 하지만, 마케팅 차원에서 볼 때 코카-콜라의 '세발의 피'도 채 못 되는 우리의 태권도는 순수히 제품력과 태권도 전도사들의 열정 하나만으로 너무나도 훌륭히 세계의 품 안에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이만한 '국위선양'이 어디 있으랴? '태권도 (taekwondo)' 라는 단어 하나만 국제적으로 알려 지는 것인가? 세계 그 어떤 나라의 크고 작은 태권도장의 한 가운데에는 우리의 자랑스런 태극기가 항상 걸려 있다. 태권도의 역사와 철학을 가르치고 동시에 지구촌 구석구석에 자리한 민족들에게까지 대한민국의 혼과 문화를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태권도이다. 여보세요, 외교통상부 나리들?? 일어나시죠??
지금 이 시간에도 이토록 집요하게 (?) 대한민국을 알리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들만 모른 채 말이다. 부족함이 없지 않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 후추 선정 태권도 민간 외교인 명단을 공개한다.
미국 |
전동석 |
LA 흑인 거주 지역에서 도장 사범. 자체 순찰대 결성하고 매주 갈비 파티주선으로 한-흑인 간의 갈등 해빙. |
사이먼, 제임스 김 |
교포 2세 영화배우 형제로 헐리웃 영화 약 30여편에 출연. 전미 각종 태권도 대회에 출전, 우승 트로피 약 500여개. | |
이준구 |
전 하원위원 내정자 밥 리빙스턴을 비롯, 워싱턴 DC 인근의 미국 정계인물 약 300여명 조련. | |
E. 시몬스 |
94년 미스 아메리카. 세계 태권도 홍보 대사로 활약. | |
카자흐 |
김병렬 |
카자흐 국가대표 코치 겸 나자르예프 대통령 경호인 |
스위스 |
최용덕 |
스위스 국가대표 코치 겸 45,000 여명의 제자 육성 |
네팔 |
유설아 |
첫 여성 네팔 국가대표 코치. 98 아시안 게임에서 은1, 동3의 빛나는 성적 기록. 네팔을 아시아 권 태권도 강국으로 조련. |
독일 |
서윤남 |
독일 전역에서 도장 운영 및 독일 일간지에 ‘태권도 조강법 칼럼’ 연재. |
캐나다 |
심도일 |
캐나다 크레티앵 총리 전담 사범 (명예 7단 획득) |
세네갈 |
박익수 |
국가대표 사범 및 국립경찰대학 교수 |
이집트 |
정기영 |
사범 및 경찰대 심사 항목 평가인, 국제 심판 |
멕시코 |
김선명 |
중남미 전역에 255여개 도장 운영, 동호인 약 60여만 명 배출. |
스페인 |
조용훈 |
카를로스 국왕의 전담 사범. 스페인이 태권도에 우호적인 입장 지키는데 결정적 기여 (바르셀로나 올림픽 시범 경기_ |
러시아 |
세르게이 가브린 |
알타이 태권도 연맹회장. 도장 10 여곳, 1,500여명 지도. |
이 외에도 너무나 많은 태권도 전도사들이 세계 각지에서 혼신을 다해 한국의 태권도를 알리고 있을 것을 안다. 하지만, 위의 명단은 후추 편집진이 주어진 시간 안에 발견한 극히 제한된 명단 임엔 분명하다. 하지만, '완벽한 명단'이 아니라고 해서, 후추가 알고 있는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마도 여태까지 '태권도 대사'에 대한 공로 인정이나 노고 치사가 소흘했던 이유 역시 '자료 또는 대상의 방대함' 이란 설득력 없는 변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의 표에서 보다시피, 각 대륙 별로 어디 한 구석이라도 우리의 태권도가 자리 매김을 하지 않은 곳이 없는 듯 싶다.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그리고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런 사실을 안 후로는 올림픽 종목에서 꼬박꼬박 '금메달' 챙겨주는 '비인기 종목'을 보고 '효자 종목'이란 말을 쓰기도 겁이 난다. 어쩌면, 가장 근본 되는 스포츠 정신인 '참여 정신'을 태권도 애호가만큼 훌륭하게 잘 실천해왔던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포츠 정신… 흔히들 애국심과 스포츠 정신을 혼돈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태권도를 통해 비춰진 애국심이야 말로 그 아무도 혼돈 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깨 닿게 된다. 그리고 왜 태권도가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국기로 불려지는지, 아니 불려야만 하는지 짐작해 본다.
후추 노컷 인터뷰 - 김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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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역시 체격이 좋으시군요. 보통 다른 선수 같은 경우, 저희가 인터뷰하러 가서 볼 때요, 항상 뭐 예를 들어, 기골이 장대하시다던가, 할아버님이, 아니면 어머님이 체격이 좋으시다던가 그런 분들이 계셨던 것 같은데요, 혹시 부모님이 어떻게 ? 농사일 하신다고 그러시던데, 혹시 운동 그런거 하셨습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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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은, 고모님이 두 분 계시는데, 아버님이 아들 한 분, 외아들 밖에 안 계시고 하니까, 운동을 안 시키신 거죠. 저, 다 선배님이세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아버님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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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요 ? 동아대까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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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동아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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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아버님은, 뭘,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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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동대 법대 나오셔가지고, 군대를 잘못 가 가지고, 거기서 일반 병으로 스물 아홉에 끌려 갔죠. 일반병으로. 안갈라고 하다가, 할아버님이 막 빼줄려고 하셨는데, 뭐, 안되가지고, 일반 병으로, 나이가 되니까 어쩔 수 없이.. 갔다가, 거기서 나이가 많으니까, 하도 그, 때리는 사람들한테, 선배들한테 하도 그걸 당해가지고 장교 시험을 치셨더라구요. 또, 거기서. 3사관학교 장교 시험을 쳐가지고, 3사관학교 제대 하시고 이제 평생을, 그냥 쭉 오래 하시는 바람에 사회 생활을 전혀 못하시는 거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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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세요 ? 아… 아직 현역에 계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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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가지고.. 아니요. 대위 달고 제대 하셔가지고, 진급도 안되고 하시니까. 뭐, 육사나 ROTC 출신 같이 진급이 안되니까. 나오셔가지고, 뭐 또, 잘 안 풀리신거죠, 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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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김제경 선수 어렸을 때 키는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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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좀, 작았.. 작았어요. 중학교 때까지 키가 안자라더라구요. 체중 빼고 하니까. 그러다 고등학교 때 운동 그만둔다고, 한 1년 쉬면서 십 몇 cm가 막 자라가지고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그만 둘뻔한.. 그, 둘뻔한 기회가 한 두 , 세 번 정도 있었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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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때, 저는 형제로 자랐거든요. 저하고 제 동생이 있는데, 둘만 해도 집안이 어수선하고 난리치고 막 그러는데, 형제 네 분 계시면 어렸을 때 좀 막 그러셨을 거 같은데.. 아수라장 아니셨어요 ?^^ 어떠셨습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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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뭐, 일단 여자가 없으니까, 집에. 누나나 여동생이나 이렇게 없으니까. 그런데 그런 건 별로 못 느꼈어요. 아들만 원래, 이제 다른 집도 다 그런 줄 알았어요. 아들만 넷 있으면. 근데 다른 집들도 그런 줄 알았는데.. 근데, 첫째 형은 나이 차이가 그렇게 안나는데, 그 덩치가 워낙 좋아가지고 큰 형 한테는, 장남한테는 덤비지를 못하고, 둘째 형은.. 둘째 형은 혼자 이제 좀 성격이 되게 쾌활하거든요. 세째하고 저하고, 편먹고 둘째 형하고 많이 싸웠죠. 그래서.. 셋째 형하고 되게 친했죠. 어릴 때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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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시작하시게 된게요.. 보니까 병영 초등학교 5학년 때, 초등학교 교기가 태권도셨다고.. 그래가지고 시작하신 겁니까, 아니면 부모님이나 형제 분들이 권하셔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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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교기도 태권도였는데요, 그때 이제, 그 때 그 사범님이 초등학교 때 선수를 뽑았어요. 일부러. 선수를 키울라고. 뭐, 반에서 싸움 제일 잘하는.. 육상 10등안에 드는 애들. 이렇게 해가지고, 그 선생님이 와서 선발을 했어요. 그때는. 당시에. 운동장 막 체력 테스트하고. 뭐 이렇게 토끼뜀 하고. 그래가지고 그 때는 선발이 되었죠. 제가. 그 당시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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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때 태권도 안하셨을 때 싸움에 소질이 좀 있으셨군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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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싸움은 전혀 못했어요. 싸움은 전혀 못했는데, 키가 제일 컸고, 초등학교 때는, 키도 컸었고.. 육상도 했었거든요. 그 때는. 학교 대항 육상 시합 막 나가고 했었으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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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요즘도 집이 계속 울산이십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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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부모님 다 거기 계십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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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집에 가끔 가십니까 ? 한 달에 몇 번 정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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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한 달이 아니고, 1년에 한 두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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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서울에서는, 여기서 잠시 퇴촌해서 나가시면 어디 가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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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거의 잘 안나가죠. 잠깐 외출했다가 들어와서 있던지, 아니면 저희 팀이 저기 숙소가 용인에 있거든요. 민속촌 그 쪽. 에스원 소속이니까. 거기 숙소에 가 있든, 가서 쉬든지, 아니면 친구들 잠깐 만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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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낙으로 사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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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그래도 뭐 친구들이 이제, 전에는 친구들하고 소주도 한 잔 하고 그러는데, 지금은 결혼을, 친구들이 다 결혼을 했으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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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안하셨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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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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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선수들이 결혼 빨리 하시잖아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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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프로 종목하고 틀려가지고, 저희가. 아마추어 경기다 보니까. 결혼을 빨리 한 선수들이 없어요. 예. 태권도 같은 경우에는 그렇더라구요. 대표 선수를 한다고 하면, 뭐, 이렇게 결혼해가지고는 대표 생활을 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게 잘 안되더라구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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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김제경 선수 하면, 태권도 하고 딱 연관 지어가지고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태권도를 딱 빼놓구, 딱 생각을 해보셨을 때, 저기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어떤 모습에 제일 만족하시고, 뭐 할 때 제일 행복하십니까 ? 일반 자연인으로 돌아가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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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인으로 돌아갔을 때, 음, 계속 운동만 해오니까 태권도 말고도 제가 조기축구회 들어가서 운동을 하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하고 많이 접해볼라고, 일요일날 같은 경우에 조기 축구 가서 공도 차고 하는데, 뭐 공도 좀 못차는 편은 아니니까, 일요일 되가지고 주전으로 막 뛰고 그러니까, 그것도 좋고. 그런 일도 있고, 작년에 저기 대학원 수업 받으면서 스킨 스쿠버하는 선배를 알아가지고, 그 사람도 태권도 하는 선밴데, 이제 스킨 스쿠버를 배웠어요. 동해안하고 서해안 쪽으로 몇 번 들어갔다 나왔는데, 되게 좋더라구요. 예. 완전히 뭐, 제가 이걸, '스킨 스쿠버란 걸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하게 되니까 바닷 속 이렇게 들어가 있는 거도 신기하고, 그 때 참 재밌더라구요. 태권도 말고 다른 쪽으로 하다보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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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거 말고 다른 취미는 없으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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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거 말고요 ? 음악 듣고, 낚시 하는 거도 좋아하고요. 고기는 많이 못 낚아도. 낚시 하는거. 앉아 있는거. 음악도 듣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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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태권도 말고 다른 투기 종목은 안 배워보셨습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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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해 볼 그게 없었어요. 계속 특기생으로 올라와 버리니까. 중학교 올라갈 때도 특기생, 고등학교 갈 때도 특기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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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한 번 이렇게 해봐주시겠어요 ? 너무 크다.. 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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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길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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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사진을 찍어야죠. 사진 좀 찍어요. 사람의 손이 아니다^^ 한 번 쫙 펴보세요. 이걸로 한 대 맞으면, 정말 볼기 맞는 거 같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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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잘 안 써요. 주먹을 쓰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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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한 번만 쥐어 보실래요 ? 아이, 때릴 때 처럼. 사진 한 방.. 우와.. 정말 제대로 한 방 맞으면.. 죽겠다.. 아.. 복귀해야죠^^ 이제.. 저희가 자료를 찾다 보니까, 역도의 김태현 선수랑 핸드볼의 백상서 선수랑 친하다고 그렇게 나오더라구요. 자주 만나시고, 정말 친한 사이이십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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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죠. 친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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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친하게 되었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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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상서, 백상서하고는 상무 있으면서 잘 알게 됬었고요, 그 때는 왜 그랬냐면, 저희 동기가 많았어요. 그 당시에 제가 상무 있을 때는, 92년, 3년 군대 시절에는 그 때 부터는 동기들이 많으니까, 아는 사람하고는 친하고.. 그 때 태현이 같은 경우에는 이렇게 선수촌에 있어도, 얼굴은 계속 봤어요. 몇 년 동안 얼굴을 계속 봐도, 잘, 인사만 이렇게 하고, 잘 안친하게 되더라구요. 다른 레슬링이나 유도나 친한 애들 많으니까. 그랬다가 나이가 자꾸 들어가면서, 저희 동기들 다 그만두게 되고.. 아시안 게임 같은 경우에는, 98년에는 저희 동기가 딱 세 명이더라구요. 그렇게.. 태현이하고 상서하고 저하고.. 세 명이, 딱 이제 88학번이 세 명 밖에 안 남으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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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학번이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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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제가 하나 늦게 되어있어요. 빨리 되있어가지고, 호적이 늦게 되어있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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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 나이는 몇이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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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둘이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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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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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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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안간다.. 제가 68년생이거든요. 저는 지금, 아니 작년에, 이렇게 운동하라 그랬으면 자살했을 거에요. 자살^^. 우와. 음.. 이 때 까지 한 이십년 동안 태권도 계속 해오셨는데요, 사실 저희가 태권도 생각해보면, 외국에 나가가지고 탁 태권도 폼 잡으면, 외국인들 도망가고.. 그렇게 무술로서의 태권도도 좀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직접 지금 김제경 선수 같은 경우에는 운동을, 스포츠로서 하고 계신데, 무술의 태권도와 스포츠로서의 태권도가 어떻게 다른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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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무도로서.. 거의 어떤 분들은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올림픽에 태권도가 안 들어가는게 더 좋았을 수도 있다.". 스포츠로서는 많이 알려졌지만, 그 전에 태권도가 인기가 막 좋았잖아요. 외국에서. 근데 스포츠로 들어가면서 막 그 이제 무도, 선수 생활 안하시고 하는 분들이 그, 외국에서는 무도로서 한국 사람들을 이렇게 막 신성시하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스포츠로서 외국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하고 게임을 뛰면서 막 이기고, 전적을 쌓고 하니까 우습게 보인다 이거죠. 자기네들도 이제, 뭐 한국 사람 없어도 자기들끼리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까, 한국 사람들도 처음에는 코치를 썼다가, 이제는 막 '우리도 할 수 있으니까, 왜 외국 사람들에게 비싼 돈 주고 하느냐..' 이런 식으로 막, 그렇게 이야기가 나오나봐요. 그러니까 그런 차이도 있는데, 제 생각에는, 지금도 그런데 미국이나 그런 곳에서는, 이런 쪽에서는 무도 태권도로서 막, 신격화되면서, 한국을 알리는 데 그만한 게 없거든요. 예. 그 다음에 스포츠로서 이제 많이 알려졌으니까 올림픽에 또 이번에 들어가고, 내년에, 다음 대회에도, 다음 대회에도 이제 영구적으로 채택 되어 가지고 그게, 두 가지가 무도와 스포츠가 좀 그게 갖춰지면은, 정말, 그 좋을거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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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만큼 국위선양하는 종목 없잖아요. 사실. 민간인 차원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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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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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생활인들 사이에서, 뭐 우리나라 축구 선수들이 가가지고 외국 애들 축굴 가리키겠어요, 아니면.. 뭐 태권도 만한 게 없다고 저희는 확신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김제경 선수를 취재할라고 그랬던 거에요. 근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볼 때는, 뭐 외국 나가보면 태권도 하는 도인이다, 사범이다 이러면 양놈들 완전 픽픽 쓰러지잖아요. 정말 사람이 아닌 것처럼, 너무나 열광하구, 좋아하구 이러는데, 존중해주고 이러는데 국내에선 '나 운동한다'. '무슨 운동하냐 ?' '태권도한다' 이러면 좀 다르죠 ? 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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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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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가 좀 다르죠. 보는 시선도 좀 다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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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많이 틀리더라구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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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틀려요 ? 그거 직접 체험해 보신적 있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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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항상 체험을 하죠. 근데, 교육이 그렇게 된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어릴 때만 하는 운동이라는.. 고거만 딱 인식이 되어 있으니까.. 누구하고 손님들하고 만나도, '태권도 했다'이러면, '몇 단이냐 ?', 제가 '5단이다'이러면, '어, 나도 1단이다, 2단이다.'고.. 이제.. 나도 옛날에 태권도 했는데.. 그렇게 쉽게 생각을 하시더라구요. 그래 이제, 깊숙히는 모르시고 품세하고 어렸을 때 조금 이렇게 했던 것 가지고, 이제 완전히 너무 쉽게 생각해버리니까. 다 아는 것 처럼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그래서 의견 차이가 좀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태권도는 그냥, 음 쉬운 운동, 그냥 그렇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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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이 태권도 못하는 거는, '태권도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하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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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너무 쉽게들 생각하시더라구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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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땐 어떠세요 ? 기분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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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뭐, 어쩔 수 없죠. 지금 이렇게 확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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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바에는, '내가 다른 운동 하고 싶다' 이런 생각 하신 적 없으세요 ? 이렇게까지 죽어라고 고생해가지고, 나이 서른 둘 때까지 운동했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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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은 들어 봤어요. 제가 만약에 프로 종목을 다른 거 했으면, 그래도 좀 더 달랐지 않았을까.. 이런. 부모님들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시거든요. 근데 뭐, 또 그러더라구요. 친구들은. "야, 니가 태권도 했으니까 그정도 했지^^ 딴 거 했으면 못 했을 거라고." 후회는 없습니다. 태권도 한 거 |
후추 노컷 인터뷰 - 김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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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찾아보다 보니까, 국민학교 6학년 때 전국 어린이 태권왕 대회 나가셔가지고 준우승 하신 걸로 되어 있던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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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동메달 땄습니다. 근데 그게 나와 있어요 ? 전적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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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로 정리된 것도 없고, 태권도는요.. 저희 한 번씩 이렇게 취재할라 그러면 신문 한, 15년, 20년 전 것까지 다 뒤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 만들어가지고. 인물에 대해서 뭐 알아야지 물어볼 것도 만들고 그렇게 나오잖아요. 공부 좀 하고.. 예. 저희 공부 많이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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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근데 그게 잘, 모르거든요. 지방에서 인제, 어릴 때 운동 막 시작해가지고. 근데 전적 정리서 이렇게 떼 봐도, 고등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나오지, 초등학교, 중학교, 소년 체전 뛰고 한 거는 잘 없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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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도 떼어 볼 수 있습니까 ? 증명서도 떼어서 나왔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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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대한 태권도 협회, 그 제가 인제 이름하고 생년월일 이런거 딱 내면은, 그 전적 증명서가 나와요. 저에 대한. 전적 증명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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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떼 보신 적 있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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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는 일부러 안 봅니다. 전적 증명서. 하하. 예. 그거 보면 더 부담되고, 그래가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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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워낙 잘하셨으니까 그런 거 봐도 부담되지, 못하는 사람이 그거보면 '좀 더 분발해야겠다' 이런 생각 들지 않겠어요 ?^^ 근데, 최초로 우승하신 대회는 무슨 대회십니까 ? 어릴 때부터 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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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문화 체육부 장관기라고 있었거든요. 그 때 우승 했었죠. 그 때는 태권도에 대해서 모르고, 사범님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그렇게 막 뛰고.. 그 때 태권왕하고, 문화체육부 장관기 우승하고, 그리고는 초등학교 졸업해서 이제 중학교 올라와서는 뭐, 소년 체전에서 3등하고.. 성적이 좀, 늘 그랬죠. 고등학교 때도 못하고 있다가, 신인 종별 한 번 우승하고 대학 올라가고. 그때도 대학은 뭐, 좀 있다 나오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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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좀 있다 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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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대학 올라갔다가 대학교 2학년 때 이제 제가, 제 힘으로 그, 우승을 한 번 했었죠. 그 때부터 좀, '아, 이거구나.'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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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미들급이셨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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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미들급으로 우승하고, 3학년, 4학년 때도 우승하는 걸 맛보게 되었죠. 그 때부터. 그러다가 대학교 4학년 졸업 하면서 대표가 됬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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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대학교, 뭐 고등학교하고 대학교 1, 2학년 때 까지는 사실, 좀 그저 그렇다가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우승을 맛보게 된 계기가 뭐였죠 ? 연습을 두 배로 하셨어요, 아니면 누구에게 결정적인 지도를 받으신 거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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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진짜 그 정말 고마운 분이요, 동아대학교 감독님께서, 저가 고등학교 때 전적도 없이 왔으니까, 진짜 촌놈이죠. 그 때 제 동기들은 다 고등학교 때 벌써 대표가 되고 했었으니까.. 그렇게 하고 있는데, 대학교 2학년 때 대통령기 시합을 나갔는데, 그 때 세 명만 우승하면 종합 우승이거든요. 그래가지고 경희대학교하고 막, 우승을 놓고 하고 있는데, 저희가 앞에 세 명이 다 우승을 해 버렸죠. 그 때 제가 미들급인데, 다른 팀에서, 결승을 저희하고 붙는 팀에서 저희더러 물려달라고 그런거에요. 동아대학교는 종합 우승 했으니까, 좀 물려주면 안되겠냐고.. 그, 이런 거 나가도 되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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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알아서 편집 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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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렇게 됬는데, 동아대학교 감독님이, 그 팀을 위해서 그럴 수 있는데, 감독님이 '얘는, 다른 애들은 물려달라고 하면 내가 물려줄 수 있다. 이거는 그냥, 국내 시합이니까. 그, 물려줄 수 있지만은, 그, 제경이는 아직까지 우승을 한 번도 못한 애니까, 여기서 또 물려주면은 앞으로 클 수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얘는 못 물려준다. 그래서 게임을 붙여라." 그래서 제가 이겼었거든요. 그게 계기가 되가지고, 그게 정말 감독님이 그, 선견지명이 탁 있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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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시면 선수 생활 하시면서 제일 기억나시는 지도자 분은 역시 동아대 감독님이십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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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그런 것 같애요. 김운규 감독님. 운자, 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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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현역에 계십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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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동아대학교, 아직도 제자들 지도하고 계시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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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기록을 찾다보니까요, 정말 화려하신 전적을 가지고 계시던데, 그게 기사마다 조금씩 틀리더라구요. 91년부터 26개 대회를 싹쓸이 우승하셨고, 나가시는 대회마다. 그래가지고 그런 연승 기록 같은 게 64연승이란 말도 있고 120연승이란 말도 있는 데 혹시 정확한 기록을 아십니까 ? 최근까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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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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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희가 그거 하나는 정확하게 써 줘야 되는게, 최소한 '김제경 100연승은 했다.', '110연승 했다' 이정도는 저희가, 근데 그걸 기사를 아무리 뒤져 봐도, 100연승 까지 나왔었나, 하여튼 확실하게 누가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정확한 기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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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제가 그 계속 이렇게 뛰다가 그 국방부 장관기 시합이라고, 상무에 있었거든요. 근데, 그 때, 전적 증명서 제가 이렇게 한 번 떼어 보면은, 2등 짜리가 하나 있어요. 중간에. 그게, 저하고 상무에 같은 팀에 있는 선순데, 결승에서 제가 물려 줬었거든요. 근데, 중간에 2등 짜리가 하나 있으니까 협회에서도, " 너 2등 짜리가 하나 있다." 이래가지고, 그 때부터 제가 안 보게 되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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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가 몇 승인지는 혹시 아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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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가.. 음.. 잘 모르겠습니다. 진짜로. 한 팔십 몇 승 되는 거 같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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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몇 년 도였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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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94년도였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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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그럽게 이기셨구나.. 진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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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도였을거에요. 3년도였나 ? |
후추 노컷 인터뷰 - 김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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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사진 보니까 깁스한 소년이 발 탁 내미니까, 거기 싸인해주시는 사진을 봤는데요, 그 때 경기 경험 같은 거 좀 이야기 해주시면 안될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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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 때가 제일 좋았던 거 같애요. 선수생활 할 때, 그런 기분 느껴본 게 드물 거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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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분이셨는데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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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뭐든지 다 좋았어요. 그냥, 뭐 운동할 때도 좋았고, 항상 들떠 있었던 것 같아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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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란 것 때문에 그러신 거 아닌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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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거도 있고, 또, 그 때 뭐, 처음 그 때 농구 드림팀이 결성되가지고, 마이클 조단하고.. 개회식장에서도 보고, 그랬는데, 근데 이제, 이야기 듣는 소문에는, 농구가 제일 먼저 표가 매진되었고, 두번째로 태권도가 빨리 매진되었다고 그러더라구요. 스페인에서 태권도가 그렇게 인기가 좋았다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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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국왕이 그렇게 태권도를 좋아한다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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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런 이야기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관중도 꽉 찼고, 그 때는 또, 경기를 제가 평소보다 실력도, 기술 발휘가 더 잘되가지고, 보는 사람마다, "야, 너 잘 뛰더라." 이렇게 이야기를 해 주니까, 거기에 또 기분이 좋아가지고.. 근데, 스페인 있을 때까지는 좋았어요. 근데 한국 오니까, 시범 종목과 정식 종목의 차이가 확 나니까, 뭐, 그런 데서. 그 때는 우승하고 왔으니까 그런 거 못 느꼈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하니까 좀 그런 게 있더라구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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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란타 올림픽 때도 시범경기였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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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그 때는 완전히 빠졌습니다. 그 때는 완전히 빠지고, 88년하고 92년 시범경기에 두 번 들어갈 수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 이제, 96년도에 빠졌다가 이번에 정식 종목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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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진짜 이번에야말로 그, 바르셀로나의 한을 푸셔야 될텐데.. 정말 솔직한 심정이, 해두 너무 오래하셨잖아요. 태권도. 발길질 너무 오래하셨잖아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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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오래 했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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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제,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나보다, 나만큼 훌륭한 후배가 나타나서 하게 되면, 후배가 나가도 미련 없다.' 이런 심정이세요, 아니면 '이렇게 오래 했는데, 그래도 그, 바르셀로나 시범 종목의 한을 풀어야겠다.' 이런 마음이 앞서세요 ? 몇 대 몇 정도 되세요 ? 기분이 ? 둘다 좀 드시겠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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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다 예. 그런 건 있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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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으로 놓자면, 몇 대 몇 정도 ? 내가 해야된다, 아니면 후배한테 물려줘야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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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98년 아시안 게임 끝나고, 다리 부상을 당한 상태여서, 시합을 끝내고 나서 은퇴를 생각을 했었어요. 그 때. '아, 이제 그만, 다리 다치고 했으니까 그만 해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지금까지 왔는데, 이제 2년도 안 남았는데..좀 더 해 봐도 되겠다' 그렇게 마음 먹었을 때는 거의 100%였죠. 시드니 가야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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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가야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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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시드니까지 100%였는데, 자꾸 지나면서, 작년에 티켓 따러 크로아티아 가서 또 다치고, 그래서 한 50%로, '아, 이건 욕심같다.' 내가 이런, 이제 몸도 안 좋고, 체력도 떨어지고 이러니까. 욕심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후배들도, 실력 좋은 후배들 자꾸 나오고 하니까. 프로테지가 좀 낮아졌죠. 시드니 가는 쪽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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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얼마 전에, 또 다치셨잖아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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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또 다쳤어요. 다리 근육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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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제는 어떻게, 나가실 수는 있으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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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제가 3차 대회 우승을 하고, 1차, 2차 우승한 선수들과 3명이서 또 리그전을 해서, 제가 이제 제일 안 좋은 상황인데, 나갈 길은 있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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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신문에선 못 간다고 나왔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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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1, 2차 전 때, 1, 2차를 같이 할 때는, 그 때 KBS 그 기자님도 오시고 해 가지고, 그 때는 은퇴를 생각하는 걸로 이야길 했었어요. 그 때는 다리 부상도 심해가지고.. 그 때는 뭐, 다른 거 생각이 안들더라구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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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어디가 아프신건데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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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 뒤쪽 대퇴부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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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햄스트링인가(Hamstri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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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햄스트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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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트링 맞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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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차고 땡기고 하던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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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고질병이던데.. 쉽게 안 낫던데.. 생각보다. 그때 진단으로는 8주 정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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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8주. 저희 삼성 스포츠단, 그 안박사님이라고 계시거든요. 그 분이, 이제 몸 상태를 보시더니. 그렇게. 통증을 없앨 수는 있는데, 그 이후에 운동을 또 시작한 다음에 또 다칠 수 있다 그거죠. 저번에 98년도에도 그러고, 작년에 그러고, 올해 초에 또 이러니까, 그 뭐, 장담을 못 하시는 거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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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러면, 이제 1주 남았잖아요. 마지막 3차가. 그러면 지금 상황에선, 마지막 1주일 한 번 죽기살기로 해봐야 되는거 아니에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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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래서, 물리치료 받고^^ 운동도 하고.. 어차피 뭐, 마음은 편해요. 일단. 1차, 2차 졌기 때문에. 일단 포기를 했기 때문에, 마음은 편하고, 제가 3차 지더라도, 그냥 깨끗하게, 그냥 최선을 다해서 뛰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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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예전에 그랬던 것 처럼, "시드니 올림픽 100% 가겠다" 이런 건 아니시겠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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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저는 아니죠. 예. 지금 그렇게 될 수가 없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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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3차대회에서 시드니까지 갈라면, 몇 번을 이겨야, 몇 매치를 이겨야 하는 겁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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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3차전에서 두 게임 뛰고, 두 게임 다 이겨가지고 우승을 하고, 세 명이.. 두 게임 더 뛰어야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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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총 네 게임 더 이기시면.. 그걸 하루에 치르나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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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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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야.. 거의 힘들.. 아니, 힘들다는 이야긴 할 수 없겠고.. 힘드시겠다, 진짜… 죄송한 질문일지도 모르는데요, 부상 이런 걸 입으셨잖습니까. 근데 계속 진통제 맞으면서 출전하시고.. 제가, 운동은 안 해봤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진짜 무리수를 둬 가면서 그렇게 출전을 강행하시고 그런 것 같은데, 그런 것 때문에 지금.. 혹시 그 때 그러지 않았다면.. 뭐 그런 생각은 안해보셨습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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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 때는. 진통제를 안 맞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구요, 그 뭐 아시안 게임이라는건, 저나 국가한테 큰 시합이니까. 그, 국가적으로도 메달이 포함되는 거니까. 그 포기할 수 있는 거도 아니고, 그 때는 죽기살기로.. '무조건 그렇게 해야 된다.' 예. 그랬죠. 그 때는, 거기는 무조건 해야되는 거였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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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도 되었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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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아니요. 해야되죠. 제가, 저 자신이 국제대회에서는 그래도 다 할라고 마음먹어가지고 다 했으니까. 이제, 작년 같은 경우에는, 3등 안에만 입상하면 올림픽 티켓을 따니까, 따고 나서 포기를 했었죠. 결승은. 안 뛰겠다. 그렇게. |
후추 노컷 인터뷰 - 김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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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았습니다. 부상 좀 많이 당하셨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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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많이 당했죠. 시합 때마다 다쳤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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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어디 다치셨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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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도 인대 늘어나고,무릎도 94년도에 뼈 수술도 하고 오른쪽 무릎도 인대가 늘어나고 허벅지 햄스트링 안좋고.. 부상은 엄청나게 많이 입었죠. 근데, 한번 딱, 이건 우스개 소리인데.. 장마철에 집에서 잠을 잔 적이 있었어요, 낮잠을 이렇게 자는데 손발이 막 저리는 거예요.. 손 같은 데도 막 부어 오르고 그게 다 부상 후유증인데 이게 딱 자는데, 장마철되면 기압이 낮아지니까 신경통도 막 생기고 그러잖아요. 그게 발가락 손가락 발 끝 손 끝 마디마디가 쑤시기 시작하는데, 아유, 그때는 막 눈물이 나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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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 어떻게 가실려구 그러세요. 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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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번 그런 적이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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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시절에 동아대학교 진학했을 때 배경 좀 말씀해 주세요… 고등학교시절하고 대학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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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좀 긴데 사연이.. 좀 간단히 말씀드릴께요.. 제가 고등학교 때 출전한 경기가 없으니까 계속 조금씩 조금씩 연습만하다가 그 전국체전 대표 선발전을 경남에서 할 때 제가 거기 선발이 되어가지고 경남 종합체전 합숙을 했거든요. 합숙하면서, 약 한2달간 합숙 하면서 전국체전을 제일 중요시 생각하는데, 그 예비시합을 절 출전시켜 줬어요. 거기 나가서 제가 우승을 했어요. 그게 제게 처음이자 마지막 금메달이었죠. 가을에 추계 종별이라 그래서 그때는 선수들도 출전을 잘 안 하는 시합이었어요.그거 우승하고 전국체전 갔는데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동기인데 제가 졌어요. 그 때 예선 탈락하고 시합이 끝나고 다 해산해 가지고 집에 와 있는데 대학이 가고 싶더라구요. 대학생활도 해보고 싶고, 대학교 가서 운동도 열심히 해보고 싶고. 그래가지고 뭐 아는 대학에.. 태권도부가 있는 대학이면 이쪽, 저쪽 전부 찾아다니면서 원서를 냈지요. 원서를 내면서 교수님 찾아다니면서 '좀 넣어주십시오.' 그랬더니 교수님들이 전적이 없으니까 못 받아주시는 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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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대학들이라면 한체대같은데 말씀하시는 거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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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좋은 대학은 못가고 명함도 못 내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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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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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야기하긴 좀 그런데.. 이야기해도 모르셔요. 그분들도 그 때 왔었던 사람이 저 인줄도 모르시고.. 그렇게 찾아다니고, 부모님도 지방대학 같은 경우는 같이 찾아다니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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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토탈 몇 군데 찾아다니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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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군데 갔지요. 그런데 전부 안되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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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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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을 다니려고. 제가 자격증이 있으니까, 공고를 다녔거든요…. 그러고 있는데 전국제전 합숙할 때 코치님이 그 때 절 아주 잘 봐주셨어요. 그리고 '동아대학교라는 곳에 한 번 가보지 않겠느냐' 그러시고, 제가 그렇게 큰 대학에서 저를 어떡해 알고 뽑냐구 의심하면서 가봤더니 다음주부터 짐싸가지고 오라구 그러시더라구요.. 알고 봤더니 우리 학년에 스카우트 순위 1순위에 있었던 친구가 있었어요.. 웰터급이라고 저하고 같은 체급이었는데 그 사람은 대학교 일학년 때부터 전적이 화려한 선수였는데 동아대학교를 가기로 이제 약속을 다 해놓고 거의 11월 달에 가야 되는데 진로를 바꿔 가지고 한국체대에 가게 된거지요. 그 선수가 빠지는 바람에 자리가 있는데.. 찾아보니까 또 선수가 없는 거에요. 전부 대학진학 다 되있고, 그 때 코치님이 저를 소개를 시켜줘 가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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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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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게 됐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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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같은 경우는 제가 생각할 땐 좀 아이러닉한데, 우리가 볼 땐 태권도에 대한 지지가 좀 더 높아야 할 것 같은데, 실제 보면은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니여서 그럴지 몰라도..유도 같은 경우에 유도 선수들이 훨씬 더 지명도가 높고 많이 알려졌잖아요. 유도 선수들 보고 부러웠던 점이나 이런거 없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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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런건 없었구요.지금 같은 경우는 올림픽이 정식 종목이 됐으니까 또 TV나 방송 봐도 지금은 홍보도 많이 되고 하니까 좋더라구요. 그게. 또 그것이 태권도 선수들에게도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고.. 또 지금은 태권도가 부각이 많이 되고 있고 하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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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금 외국나가면 난리던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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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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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가 패셔너블한것처럼 뉴욕이나 LA 가보면… 패션도시 잖아요.. 그런데서는 태권도를 한다는 것이 유행을 앞서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운동이다라는 인식이 있으니까 정말 아주 말 그대로 멋장이들이 하는 운동이다라고 인식하고 있거든요.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참, 여자친구 있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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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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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예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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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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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안 쓸게요.솔직히 말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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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 나이가 몇인데 여자친구가 있습니까, 결혼할 여자가 있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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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결혼은 어떤 여자랑 하고 싶으신지……저도 아직 못 갔어요. 괜찮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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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근데 젊었을때야, 지금은 살이 빠져가지고 얼굴도 길고 그런데 92년 그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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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참 잘 나가던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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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지금은 자꾸 눈이 낮아지는거죠.. 눈도 낮아지고 (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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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들은 빨리 가라고 안하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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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집에서는 막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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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다 가셨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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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형들은 전부 가셔 가지고 조카들 전부 둘씩 데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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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모이면 아주 한 식구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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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주 정신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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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들도 태권도 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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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아직 4살, 5살 그래가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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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종목 선수 중에서 잘못 빠지면 어깨들로 건달들로 빠지는 일도 많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유도했다, 태권도 했다' 그러면은 일단 선량한 사람이라도 일단은 선입관을 가지고 보게 되잖아요.. 그건 참 잘못하는 건데, 일반인들이 볼 때…. 그거는 그쪽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개개인에 따라서 좀 다르겠지만, 나머지 사회가 잘못하는 건 없나요 ? 태권도인으로서 볼 때, 예를 들어 일반인들이 이렇게 뭐 배려를 해 준다던지.. 좀 다른 환경 속에서 운동하는 선수들을 선도하고 그랬더라면, 그런거요. 주위에서도 솔직히 아는 분들 한 두 명 있을 꺼 아니에요, 그렇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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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요. 그게 보면은 학교 체육이 잘못되었다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외국 같은 경우에는 보면은 자기 수업시간 공부할거 다하고, 운동은 다음에 자기 여가시간에 하는게, 자기가 좋아서 하는게 보통인데. 세계 선수권대회 나가보면은 친한 이집트 선수인데 그런 선수들은 의사활동을 하고 있어요. 의사하면서 그냥 태권도를 하는 거예요. 그렇고 어떤 애들은, 이태리 애들은 다 경찰이예요. 경찰직업 가지고 있으면서 태권도를 하는거예요. 국가대표가 되서 나오고 그런거 보면은 정말 부럽더라구요… 독일에 있는 사범님 제자 같은 경우에는 변호사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태권도하고 뭐 그렇게 하더라구요. 공부도 할 꺼 다하면서,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의 무조건 성적위주죠.. 엘리트 체육으로 운동아니면은 다른 거는 그냥 전혀 신경 쓸 수도 없으니까요… 그냥 눈만 뜨면 운동이니까.. 그러니까 운동이 없어졌을 때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진짜 솔직히, 제가 만약 대학 못 갔다 그래도 그럴 수 밖에 없을 거예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럴 수 밖에 없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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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게 아직도 그렇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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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직도 그렇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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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경선수 학교다닐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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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죠. 그게 고등학교 때 해가지고 대학을 진학하면 또 틀려요. 대학을 진학하면은 자기가 국가대표를 할 마음이 있고 그러면은 공부보다는 운동에 신경을 써 가지고 운동에 더 매진하고 그러는데, 대학을 가면 운동을 못했던 선수들은, 좀 실력이 부족한 선수들은 공부쪽으로 전환을 해가지고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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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대학을 위한 공부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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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따라가기 힘들어도 나는 전공분야가 있으니까, 태권도를 했으면은, 난 태권도를 했으니까 이론하고 실전을 겸비해 가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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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학에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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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만 하면 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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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요. 되려 대학 같은 경우는 따라가기가 괜찮아도 고등학교 같은 경우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 종합적으로 공부해야하니까, 운동만 하다가 수업 들으려면 힘들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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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릴때부터… 그런데 다른 종목도 그렇더라구요. 태권도 뿐만이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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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유독 투기 선수들은, 대학은 안가고, 학교에 스카우트도 안되고, 국가대표 안되고 이럴 것 같으면, 해놓은 공부는 없지, 할 건 없지, 취직하려고 돌아다녀 보면은 뾰족히 할 일은 없으니까 하는 수 없이 그 쪽으로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복싱도 그렇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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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유의 선배들도 그쪽 길로 가 있고 그렇게 따라갈 수 밖에 없어요. 경찰시험을 본다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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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때는 무슨 공부 하셨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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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지요. 대학원때는 석사과정 체육학과인데 체육전공시험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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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왓장 몇 장 정도 깨실 수 있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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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안 해봤습니다. 격파는 저희는 안해요. 연습도 안 할 뿐더러 뭐 기왓장 해보면은 몇 장 깰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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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태권도 하면 그런거 다 하는 줄 알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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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나와서 시범보일 때 나무 들고 다하잖아요. 근데 시범만 따로 전문으로 하는 시범단이 따로 있어요. 그건 선수 출신들이, 제가 만약 '시범단을 하고싶다' 그러면은 선수생활은 뒤로하고 시범단에 맞는 연습을 해야지요. '태권도 한마당' 이라고 태권도 시합이 있어요. 제가 상무 코치할 때인데 태권도 한마당에 선수들을 데리고 감독님이 갔는데 선수들이 출전한 번 해보자그랬대요. 그래서 출전을 한 번 했어요. 88체육관에서 할 때인데 거기서 발격파왕, 그 송판 두꺼운거 있잖아요. 그걸 7장, 8장인가 저희 선수가 깨 가지고… 일등해가지고…. 근데 선수했던 사람들이 잘 해요. 품세도, 아홉명이 해가지고, 품세왕 해가지고 상도 받고 상무 있을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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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경 선수도 제대로 하면 기왓장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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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연습은 해야 되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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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볼 때는 한 20장 정도는 거뜬히 깨지않을까 싶은데요.아닌가요 ? 그건 택도 없이 많은 숫자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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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그건 요령이 있어야 되요. 그것만 또 단련하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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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시구나.. 김제경이라는 사람이 나중에 후배 태권도 선수들에게 어떤 식으로 기억되었음 좋겠어요 ? '김제경'이라고 누가 비석에다가 딱 쓴다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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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에다가..음…그냥 그 뭐 저는 뭐 태권도 발전을 중량급이..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야 니가 중량급 뛰면서 발차기 경량급처럼 차고 니가 기술을 그렇게 한 단계 올려 놓았다" 그 말 들을 때가, 제일 그래도.. 저로 인해서 변화가 왔다는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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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중요하지요! 제일 소중한 평가인 것 같아요. 그냥 김제경선수 개인적으로 취재하자고 마음 먹었던 이유도, 솔직한 얘기로 저 잘 몰랐어요.잘 몰랐는데.. 김제경 그리고 괄호하고 헤비급이라는 말에 전 완전히 맛이 간거지요. 대한민국 격투기종목에 헤비급이란 것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사실 헤비급이라면 마이클 타이슨이나 외국애들한테 어울릴만한 스포츠고 우리는 죄다 경량급,탐색전만 죽어라고 하다가 마는 그런 쪽으로만 해야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선수가 이렇게 헤비급으로 장악하고 있다는 말에 이건 정말 기사감이다 그렇게 생각이 들었거든요 |
단어 연상 게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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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합만 잘 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대회 4연패 했다는 그것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저도 인제 정구현 선배랑 이야기도 많이 해보고 자문도 많이 구하고 하거든요. 그랬는데 주변에서 인제, 평가는 자신이 하는 것도 맞지만 주변에서 하는 것도 맞거든요. 맞을 수도 있거든요. 이야기 들어보면은 뭐 술 담배 안하고 그때 다방, 카페도 아니고, 다방에서 만나면은 커피는 안 마시고 우유 ….마시고 뭐, 완전 프로였지요. 완전히 프로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저 나름대로 '야, 나도 프론데 프로가 이래선 되겠냐' 그래서 몸 관리도 하고 하는데 그 선배 같은 경우는 그 시절에 실업팀도 변변하게 없던 그 시절에 그렇게 몸관리를 하면서 뭐 일반 체육관에서 혼자 몸 관리를 했던 때도 있다더라구요. 그렇게 혼자 밥해 먹고 몸 관리를 했다는 것이.. | |||
긴 시간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PILOGUE
태권도만 알았지, 김제경이란 인물에 대해선 많이 아는 게 없었다. 아니, 어쩌면 태권도도 제대로 몰랐다. 그저 '난 한국인이니까 태권도는 우리 거야..' 정도?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태권도 선수 이름 3명을 댈 수 없는 필자의 무지에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스포츠 웹진 편집진이란 작자들이 태권도 선수 한명쯤에 대해선 누구에게라도 시원하게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 2주 전 어느 신문 기사에서 '김제경 시드니행 좌절' 이란 머릿기사를 보았다. '김제경?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그가 태권도 선수라는 사실이 더욱 필자를 끌어당겼다. 그가 헤비급 선수라는 사실에 모든 게 정리 되었다. 그렇게 후추 명예의 전당 제 17호 헌액자는 김제경으로 낙찰되었던 것이다.
글을 다 써놓고 보니 본의 아니게 김제경이란 인물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태권도란 스포츠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추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분명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했다. 동네 태권도장 창틀 사이로 세나오는 꼬마들의 "태권!!' 기합 소리 그 이상으로 태권도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소중한 스포츠였지만, 너무나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김제경의 실력, 그 하나라도 제대로 이해하려면 태권도란 스포츠가 도무지 어떻게 스포츠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었다. 김제경을 성룡 영화에 나오던 '무술가' 란 칭호보다는 코마네치, 루가니스, 전이경과 같은 '순수 체육인' 대열에 올리고 싶은 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태권도 선수 김제경을 말 하면서 그가 평생동안 몸 담고 있었던 종목에 대한 문화성 그리고 국제성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도 없었다. 그 만큼 그는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 상품의 쓸쓸한 파수꾼이었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말이다.
김제경… 필자가 만나 본 많은 스포츠 인 중에서도 가장 매력 있는 친구 중에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그에게선 투기 종목 선수에 대한 통념을 부숴버리는 온순한 향기가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김제경이 후추 명예의 전당 한 자리를 꿰차게 된 사실이 더 없이 기쁘고 자랑스럽다. 쿠바 출신 복서 펠릭스 사본 (크루저 급), 일본 출신 유도인 야마시타 (무제한 급) 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몇 안 되는 투기 종목 '장수 챔피언'의 명성을 앞세워 말이다. 말이 10년 이상 군림한 왕좌지, 어찌 보면 '다치기 위해' 시합에 나간다고도 볼 수 있는 투기 종목에서 10년이 넘는 세월을 한결 같이 최고의 자리를 빛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어디 말 만큼 쉬운 얘기란 말인가? 김제경이란 이름 앞에 '경량급 챔피언' 이란 타이틀 붙었더라면 그의 선정을 다시 한번 고려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경량급 챔피언의 가치가 평범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만큼 '헤비급' 챔피언은 우리 눈에 낯설었기 때문이다. 비록 태권도라는 '토종 종목'에서 였지만, 토종 아니라 토종 할아버지라도 그렇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헤비급 챔피언…' 이 얼마나 듣기도 좋고 기분 삼삼해 지는 소리란 말인가 ??
'한국인이라서 태권도 잘 하는' 사실이 이젠 약발이 떨어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김제경 같은 전설적인 체육인을 만인에게 알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제 김제경의 모습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는 28일 벌어지는 시드니 올림픽 대표 선발 최종전에서 그는 손 아래 후배들을 상대로 세판을 내리 이기지 않으면 시드니의 행 티켓이 말 그대로 날라가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비록 '시드니의 꿈'을 접어야 한다손 치더라도 지난 십 수년 동안 그가 보여준 그만의 '태권도 세계'는 변동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시드니 선발전과 무관하게 그를 명예의 전당에 부르기로 한다. 태권도 종주국의 민족으로서 뾰족히 해 준 것이 없었다는 사실이 미안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너무나도 훌륭하고 대견스럽게 태권도를, 아니 대한민국을 세계 만방에 알려준 사실이 고마워서 그를 후추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다른 '신'들 옆에 한자리를 마련한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과 견주어 본 다면 너무나도 초라하고 외로운 태권도인의 길이었지만, 김제경의 기합 소리만큼은 그 어떤 고독과 쓸쓸함 마저 다 비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의학을 공부하고, 한의사가 되어, 보람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정규대학교로 입학하십시오.
비정규 대학교 한의대로 입학하면 평생 고생합니다.
요즘은 하도 비정규대학이 정규 한의대인양, 홍보를 하고는 통에 한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후회막급한 경솔한 판단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엄격한 잣대로 정규 한의대인가 아닌가를 잰다고 불평을 하는 비정규 미국 한의대를 고려하여 다음 5 가지 기준 중 한 가지라도 해당되면 비정규 한의대라고 부르지는 않겠습니다.
1. 연방정부 혹은 주정부 산하 교육국에서 인가된(Accredited)학교인가?
(단지 민간단체에서 한의학 프로그램을 인가받은 것은 전혀 이 기준에 해당되지 않음)
2. 정부에서 의료보험 지급을 허용하는 닥터면허 한의사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있는가?
3. 유네스코에 정규대학교로 등재되어 있는가?
4. 세계보건기구(WHO)에 의대 (한의대 포함)로 대학명단에 등재되어 있는가?
5. 미국 의사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대학으로 검색이 되는가? ( https://imed.faimer.org)
<<< 주의 >>>
지금 당장 미국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내의 무수한 한의대) 이름을 가지고 검색해 보십시오.
만약 보이지 않는다면 비정규 한의대입니다.
한국 한의대, 중국 중의대, SCU대학교 내의 센츄럴대학은
모두 이 기준에 검색이 되는 정규대학교 내의 한의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