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8일(주)
* 시작 기도
주님...
바울 시대 고린도 교회에 형제라 일컫는 자들 중에 음행과 탐욕과 우상을 숭배하거나 모욕하고 술 취하여 사람들을 속여 빼앗는 자들이 허다하였습니다.
그런 자들과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강권합니다(고전 5장).
그런데 오늘 이 시대에도 그런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목사요 선교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내가 그렇습니다.
나야 말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런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자요 주의 공의로 심판 받아 마땅한 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요나의 무덤에 나도 주님과 함께 들어가 그 안에서 장사되게 하소서.
인간적인 생각으로 장사되는 것은 끔찍한 것이요 더 이상 소망이 없어 보이지만, 거기에 진정한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무덤이야 소망이 아닌 절망이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장사됨은 새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는 진정한 소망이오니 공동체와 함께 예배하는 주일 아침에 이 소망 가운데 서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할 때 공명심과 자기 의를 드러내도록 하였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시험에 넘어지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오늘 아버지께 예배하는 이 날이 영광을 드러내는 날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막 15:1-15
제목 : 역사적 사실(히스토리에)에서 해석된 의미 역사(게쉬크테)로 나아가다.
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6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 나의 묵상
베드로는 재판장인 가야바의 집 뜰까지 와서 예수님의 심문과정을 지쳐보고 있다.
그러던 중 여종과 하급관리들이 너도 예수와 함께 있던 자라고 추궁하자 그는 이를 부인하되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다.
그는 자신의 결백을 확증하고자 자기 자신을 저주하는 맹세까지 하였다.
그렇게 하자 닭 울음소리가 들리고 그는 주님이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였다.
한편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이송되어 심문을 받으신다(1-5절).
새벽에 산헤드린 공회원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이 서로 의논한 후에 예수를 결박하여 사형집행권이 있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준다(헬, 파라디도미).
빌라도는 예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자 예수께서 너의 말이 옳다 하고 인정하셨다.
대제사장들이 그 외에 여러 가지 죄목으로 예수를 고소하였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너는 지금 많은 죄목으로 고소를 당하고 있는데 왜 아무 변론이 없느냐고 물으며 예수의 변론을 촉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한 마디도 변명하지 않자 빌라도가 기이하게 여겼다.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알고 그의 석방을 돕고자 시도한다(6-10절).
로마 통치하에 있는 예루살렘에서는 명절에 백성의 요구에 따라 죄수 하나를 석방해 주는 전례가 있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광복절 특별사면 같은 것이다.
당시의 명절은 유월절이었기 때문에 유월절 특별사면에 해당한다.
그 때 민란을 꾸미고 살인을 하여 감옥에 갇힌 바라바라는 죄수도 있었다.
백성들은 빌라도에게 전례대로 특사를 내어주기를 요청한다.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자신에게 넘긴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예수를 석방할 것을 무리들에게 제의한다.
하지만 유대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사주를 받은 군중들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요구한다(11-15절).
대제사장들의 사주를 받은 무리들은 예수가 아닌 바라바의 석방을 요구한다.
이에 빌라도 왈, 그렇다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예수를 어떻게 처리하기를 원하는지 무리에게 묻는다.
그 때 무리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빌라도가 무리에게 도대체 예수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재차 묻는다.
이에 광분한 무리들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다.
빌라도는 무리들의 요구에 영합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군병들에게 넘겨준다(헬, 파라디도미).
이는 무리들의 소요를 막기 위함이었다.
가룟 유다는 어둠 속에서 함께 온 산헤드린 공회로부터 파송되어 온 무리들에게 예수를 넘겨주었다.
그들을 가리켜 일명 성전경비대라고 하는데 이들은 대제사장에게 예수를 넘긴다.
그리고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를 넘긴다.
급기야 빌라도는 예수를 군병들에게 넘겨준다.
이 모든 과정들은 가룟 유다로부터 시작되어 성전경비대와 대제사장 그리고 빌라도와 군병들에 이르기까지 예수를 넘긴 순서이다.
이렇게 팔아넘기거나 자기들의 이권을 위하여 넘기는 것을 일컬어 헬라어로 ‘파라디도미’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과정을 거치고 이권을 챙기는 복잡한 순서라 할지라도 이는 그저 역사적 사실일 뿐이다.
이처럼 예수님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로마의 군병들에게 인계되는 과정은 세상 어느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는 fact이다.
이런 사실은 로마의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었고 그들이 못을 박아 죽였다.
이 세상의 논리로 치자면 예수를 죽인 자는 가룟 유다, 성전경비대, 대제사장, 빌라도 그리고 로마 군병들이다.
하지만 이를 아무리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해도 거기에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적 사실을 말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해석된 역사(게쉬크테)를 보아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죄의 시간’과 ‘은총의 시간’을 지나간 ‘사실 역사’(히스토리에)와 ‘해석된 의미 역사’(게쉬크테)로 구분하였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죄의 시간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 과거는 지나갔다!
죄의 시간은 과거이고, 은총의 시간은 현재이다.
물론 그리스도인이 은총의 시간을 산다고 해서 과거의 죄가 없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던 죄의 시간은 그대로 남아있다.
다만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죄의 시간이 은총의 시간으로 바뀐 것이다.
변하지 않는 죄의 시간은 “히스토리에”(사실 역사)이고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존재가 된 은총의 시간은 “게쉬테”(해석된 의미 역사)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과거는 실재하나 더 이상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과거이다.
가룟 유다로부터 시작되어 로마 군병에 의해서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과거에 지나간 하나의 사실 역사인 것이다.
그것이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게쉬크테’로써 해석된 의미 역사가 되어야 한다.
이는 곧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준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이는 내가 죄인 중에 괴수이며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할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며 여기에 생명이 있다.
(롬 4:25) 예수는 우리(내)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나)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또한 무엇보다 복음 중에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뛰어 넘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십자가에 파라디도미 한 것이다.
(행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이는 가장 처절한 죽음이다.
차라리 아버지 당신의 죽는 것이 낫지 아들을 죽이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를 지신 것과 똑같다.
아들의 죽음은 곧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말이다.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신비이다.
나는 그동안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는 그저 가룟 유다만을 탓하였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만을 탓하였다.
그러나 내가 바로 가룟 유다요 아담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십자가에 죽어야 할 자임을 심령 깊이 깨달았다.
그리고 복음에 따라 나를 우리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다.
또한 우리 주님의 무덤에 나도 함께 장사되어 연합한다.
나의 생명은 바로 주님과 연합된 그 무덤에서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신분이 바뀌고 해석된 의미 역사 안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죄인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여 나는 오늘도 나의 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자기부인을 통하여 주님이 주시는 새 생명의 열매를 맺기 원한다.
내가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하고 하나님을 감동시킨다 해도 그것은 내가 맺는 열매가 아니다.
나를 통하여 주님이 이루시는 열매이다.
예수께서 은혜의 왕노릇을 하심으로 나에게 열매를 맺으신다.
비록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며 주님의 무덤에 함께 장사되면서 나를 부인하는 열매야말로 진정한 열매임을 믿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신앙생활에서 ‘나’라는 단어가 빠지게 하옵소서.
내가 아니라 오직 예수가 이루시는 삶이 되기 원합니다.
지금까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도 아닌 것처럼 행해왔던 나의 거짓되고 음흉한 모습은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힐 자라는 증거입니다.
그런 나를 주의 공의로 심판하시어 죽여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무덤에 함께 장사되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그 자리에서 새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아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대로 살기 원합니다.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준 이유는 나의 의와 교만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런 나의 의와 교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리하여 진실로 내 안에 오직 예수로 가득 채워지게 하소서.
진실로 겸손한 자, 온유한 자 되어 예수의 열매로 가득 채우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