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에세이>
랩소디 (Rhapsody)
최 병 창
그대여,
땅과 하늘에서 내어 민 두 손이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그림이 있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는 땅의 손과
구원을 하려는 하늘의 손은
안타까이 맞닿을 것 같으면도
잡히지 않는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구원을 받으려고 내어 민 저의 손
구원을 해 주어야 할 당신의 손은
이렇듯
안타까운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대여,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벨을 죽인 형 카인의 피 묻은 손이나
적에게 능욕되기 전 아내를 쳐 죽인
고올인처럼,
처자(妻子)를 쳐 죽인 계백의 손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딴 이브의 손을
이브의 욕망이 실성거리는 손의 만가(輓歌)만큼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마는,
손꼽아 기다리는 이 손이
숫자를 헤아리기 위해 손가락을 꼽고 펼 때
저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의 손을 사뿐히 밀어내던 당신의
무명지 손가락에서
아라세. 떠오 처럼 하르램 꽃밭에 일찍 핀
네 잎의 꽃 향을 맡았습니다 마는
손이 잘린 키네레의 비너스를 보고는
그만 저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로뎅의 손 조각을 보고
울고 싶도록 가슴이 저리었습니다 마는
오랜 잡지 속 오드리 헵번의 왼손을 보곤
저는
정말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대여,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되었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습니까
제가 만일 알라딘의 램프라도 있다면
마술사에게 진하고 긴
그림자를 말아 오라 하겠습니다
영원히 짜지지 않는 페넬로페의 직물처럼
풀리듯 하면서 다시 짜지고
짜지듯 하면서 다시 풀리는 유유한
기다림의 손,
행여 어리석은 목동
나르시스처럼 흐르는 물속에 비친
자기의 모습에 시간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죽어버렸다는 나르시스의 수선화처럼,
바람이 소리 없이 지나갈 때
우리도 자취 없이 만날 때라는
시인 홍사용처럼,
그대여 손은 손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신을 닮은 손을. - 끝 -
< 필자. 시인. 문학평론가. >
* 랩소디 : 형식이 비교적 자유로운 환상적인 기악곡, 광시곡(狂詩曲)
* 하르렘(Haarlem: 네덜란드 서부에 있는 도시로 튤립, 히야신스의 대 산지임.
* 키레네(Cyrene): 리비아 아랍공화국 북동쪽 키레나이카의 지중해에 면한 도시로 기원전
7세기 그리스 식민지로서 건설되었고, 쾌락을 선(善)의 목적으로
아리스티프스가 키레네학파를 세웠으며 쾌락의 도시임.
* 패널로페(Penelope):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의 아내로 남편이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여
귀국할 때까지 20년간 많은 귀족들이 구혼을 하였으나
직물을 짜며 정절을 지켜 열녀의 귀감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기다림의 상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