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 잔혹사는 어제 봤습니다. 왠지 "친구"와 비슷할 것 같아서 미루고 있다가 봤지요. 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친구"와 다르다고 하더라구요. 전 "친구"를 보고 너무 두사람 위주 이야기고 폭력성만 강하게 남았거든요. 하지만 말죽거리는 여러 인물들이 기웃거렸습니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78년도 이야기지요. 유신정권시절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아래 한 님이 쓴 것처럼 권상우가 학교를 떠나며 한 말이 가장 마음에 남지요. 마음이 찡하고 나한테 하는 소리 같고 그랬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많이 썼구나 하는 걸 알았습니다.
제목에서도 말죽거리. 영화에 딱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말죽거리.
부잣집 아들이 햄버거(이름이 기억안납니다.)한테 잡지를 살 때 이정진이 와서 사지 말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때 부잣집 아들이 치즈를 주며 가지요. 전 처음에 이 장면을 보고 '그 당시에 치즈가 있었나 감독이 잘못 잡은 거 아냐?'하는 생각했어요. 80년대 후반이 되서야 치즈를 봤는데 78년에도 그런게 있었나 해서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치즈를 먹던 아이가 있었어요. 노란색에 네모난 것을 맛있다고 먹는 아이를 보고 이상하다 생각했고 저도 좀 먹어보다가 토한 기억이 있어요. 그때 부잣집 아이는 이상한 것도 먹는구나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은연중에 부잣집 아들인 것을 나타낸 것이지요. 서울에 부잣집 아들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수업시간 볼펜에 머리를 찍혀 나갈 때 한 선생님의 행동을 보고 높은 사람의 자식이라는 걸 알았지요.
또 교실 뒤 환경판에 "이사장님묘 벌초~"하며 써 있는 걸 봤습니다. 요 글 하나로도 얼마나 잘못된 사립학교 인가를 나타냈더라구요. 이소룡을 좋아해서 남자 아이들끼리 교실에서 노는 모습. 주먹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요즘 쓰지 않는 욕을 하는 것도 정말 그 때 모습을 잘 드러냈지요.
권상우의 혀 짧은 목소리와 소심해 보이는 모습도 잘 맞아 떨어졌어요. 좋아하는 여자친구 앞에서 하는 행동들, 거울 앞에서 '옥상으로 올라와'하며 말투를 연습하는 모습, 운동하는 모습들. 권상우 아버지로 나오는 사람도 딱 맞는 배역이다 싶어요. 운동하는 모습이며 겉으론 강해보이지만 속은 여린 사람의 모습을 드러냈잖아요. 권상우하고도 비슷한 모습이라 가족인 게 자연스럽구요.
권력에 따르는 사람들 이야기도 드러나있지요. 선도부와 학교 선생님의 결탁, 이정진과 함께 있다 선도부에 붙은 햄버거. 장학사가 온다고 우열반을 했다가 갑자기 다시 정리하는 학교의 모습.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지요. 장학사가 나왔다고 해서 바뀌어지는 것도 없어요. 또 자기 자식의 모습은 보지 못 하고 권상우만 나무라는 어머니모습은 한쪽면만 바라보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전에 "두사부일체"에서도 사립학교의 문제점을 드러냈지요. 한 조직의 두목이 학교로 들어오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나타낸 반면 이 영화는 보다 현실에 가깝게 나타내서 좀 더 마음에 남습니다.
우리 사회 전체 큰 틀. 구조의 문제. 감독은 그걸 말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린 그랬지 하며 향수를 떠올리기 보다 아직도 그런 문제들이 남아있는 것을 생각해야겠어요.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서서히 몸을 움직여야지요. 권상우가 <절권도의 길>을 보며 스스로 몸을 만든 것처럼 말입니다. 또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폭력에 길들여져서 나도 모르게 쓰지는 않는지 그런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