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나의 생각과...
그 생각을 일구어낸 주옥(?)같은 글...
군데 쓰다보니 좀 길어졌넹... ^^;
반 컵의 물에 목숨거는 사람들! 케냐에서.
도로 양 옆으로 즐비한 동물들의 뼈. 만지면 바스러질 것 같은 나무와
풀. 정수리로 내리 꽃히는 태양. 그리고 그 태양 아래서 목말라 죽어가
는 사람들. 아프리카 케냐와 소말리아 국경인 와지르 지역. 5년 가뭄의
현장이다.
수 년 간 비다운 비가 오지 않는 케냐, 에티오피아, 소말리아는 이렇게
국토 전체가 불모지가 되어가고 있다. 이상 기후 엘니뇨 현상의 최대 피
해지이다. 내가 찾은 사업장은 그 목마름의 한가운데였다. 나이로비에서
경비행기로 2시간 30분, 케냐에서도 제일 낙후한 곳 중의 하나인 이곳은
인구 32만 명 대부분이 소말리인이고 이슬람교를 믿는 유목민이다.
한국 월드비전과 한국 국제협력단(KOICA)은 1995년부터 이곳에서 긴급
구호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극심한 영양 실조로 근근이 생명의 불씨를 이
어가는 아이들을 돌보는 병원과 보건소, 새 생명이 태어나는 조산원 등
도 충격적이었지만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곳은 역시 현장이었다.
마을까지 가는 길은 '물'을 두고 부족 간의 살인, 강도가 극성을 부리는
곳이라 중무장한 군인 6명이 따라 붙었다.
이곳에서 내 이름 때문에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사업장에 도착한 첫
날 현장 책임자가 나를 현지인들에게 소개할 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뛸
듯이 기뻐하며 내 손을 부여잡고는 놓지 않았다. 그러고는 자기들끼
리 '비야, 비야' 내 이름을 되새기며 또 좋아하길래 무슨 영문인가 궁금
했다. 알고 보니 소말리어로 '한'은 큰 항아리, '비야'는 물이란다. 물
한 방울이 귀한 곳에 큰 물 항아리가 왔으니 비가 내릴 거라면서 그렇게
좋아하는 거란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일은 그날 밤에 일어났다. 2년 만에 처음으로 굵은
비가 내린 것이다. 밤부터 그 다음 날 아침까지 비가 쏟아지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집 밖으로 나와 빗속에서 소리를 지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좋아했다. 바싹 마른 땅에 물 웅덩이가 생길 만큼 많은 비가 왔는데 이
들은 이것이 모두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잠시 '비야교' 교주가
된 기분이었다.
현장까지는 지프로 2시간 정도 걸린다더니 가도 가도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 끝나지 않고 길가 집들은 텅텅 비어 있었다. 가끔씩 알록달록 총천
연색 옷을 입은 여인들이 10명, 20명씩 무리를 지어 길 옆 땡볕 아래 앉
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앞에 플라스틱 물통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며
칠씩 무작정 물차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린다. 다들 염소를 한 마
리씩 데리고 있었는데, 물이 생기는 즉시 염소에게 반 컵을 주어 그 젖
을 어린이에게 먹인단다.
우리가 찾아간 마을은 월드비전이 저장용 물탱크를 만들어준 소말리아
접경 지역이다. 이곳은 물탱크 덕분에 그나마 하루에 1인당 5리터씩의
식수를 배급받는 곳으로 이 부근에서는 제일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한
다.
그러나 내 눈에는 여기도 생지옥이기는 마찬가지다.
기르던 가축은 이미 오래 전에 말라죽었고, 식량과 바꿀 가축이 없으니
먹을 것도 동이 날 수밖에. 먹을 물도 부족하니 몸을 씻지 못할 것은 뻔
한 일. 더러운 손으로 눈을 만져서 마을 사람들의 반 정도는 심한 눈병
에 걸려 있고, 그들 중 반 정도는 그대로 장님이 된다.
나무 밑에 겨우 앉아 있는 한 젊은 여자는 이미 눈동자가 다 풀려있고,
품에 안고 있는 뼈만 앙상한 아기는 입에 거품을 물고 숨을 가쁘게 들이
쉬고 있었다. 혹시 내 눈앞에서 죽는 건 아닐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
다. 주위에 모여든 동네 아이들의 하얀 이를 다 드러낸 환한 웃음에 울
컥 목이 멘다. 그들의 눈도 이미 우윳빛으로 흐려져있다.
월드비전은 이들을 위해 이동 병원을 운영하는데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이곳 눈명은 시력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뇌까지 손상시킨다고 한다. 이
모두가 물 때문이다. 그 흔하디 흔한 물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 꼼짝없이
죽어가다니,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 한 일이다.
물론 이 나라 정부에 돈과 인력이 충분하다면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을
거다. 그러나 케냐는 GNP 330달러(우리 나라는 약 1만 달러), UN이 발표
한 인간 개발 지수는 174개국 중 139위인 나라다. 자체적으로 난민들을
돌본다는 것은 한마디로 역부족이다. 이런 곳에서도 국제 NGO의 활동이
구세주 역할을 한다. 케냐 정부가 식수와 식수 운반 트럭을 부담하면 그
나머지, 돈이 많이 드는 기름값과 운전사 인건비는 월드비전이 내서 일
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사람들에게 물울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
나 NGO 역시 돈과 인력이 있어야 이 이을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1천 원, 2천 원이 한국에서는 라면 한 그릇이 되고 좌석버스 차비가 되
고 커피 한 잔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많지 않은 돈이 아프리카에서는
그대로 물이 되고 옥수수가 되고 안약이 된다. 벼랑에 겨우 손톱만 걸친
채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생명줄이 된다.
여름과 가을 사이, 나는 케냐의 오지에서 물이 없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
들을 보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보낸 관심과 성금이 그들을 살려내고 있
는 것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우리,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일 것인가.
-한비야의 '중국견문록'中-
p.s 비야누님의 '중국견문록' 전문을 모두 잼나게 읽으면서도
사람 많은 기차간에서 눈물을 감출수 없었던 부분들이랍니다.
글을 읽고 괜히 저도 모르게 수도꼭지에 물 한방울 떨어지는게
죄짓는 듯 싶어, 세숫물도 양칫물도 꼭꼭 받아서 알뜰하게 썼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할것 같아서요. ^^* ..
캄보디아 에이즈 현장 보고서.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메콩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는 중심가의 저녁
어스름 무렵, 초등학교 5,6학년 정도의 여자 아이들이 좁은 골목 양옆에
열병식이라도 하듯 한 줄로 늘어서 있다. 뒤로 보이는 판잣집은 붉은 조
명을 밝힌, 감옥 독방보다 좁은 칸막이 방. 오토바이를 타고 온 두 남자
가 들어서니 길가에 서 있던 아이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남자들은 물
건 고르듯 한 명씩을 골라 뒷방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소녀들은 다시 재잘
거리며 손님을 기다린다. 어린이 매춘의 현장이다.
이런 어린이 매춘부 문제말고도 캄보디아에서 시급하게 풀어야 하는 문
제는 지뢰 제거, 거리에 나와 사는 어린이들, 소년병, 그리고 폭발적으
로 늘고 있는 에이즈 환자다. 내가 보고 들은 얘기를 다 옮기려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테니까 여기서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에이즈 예방 사
업과 어린이 매춘에 대해서만 말해보겠다.
정말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왜 독실한 북교 국가이자 사회주의 국
가였던 캄보디아에 에이즈 환자가 이토록 많은 걸까? 1991년에 단 한 명
으로 보고된 에이즈 환자는 7년 만인 1998년 무려 18만 5천명에 육박한
다. 인구 1백 명당 2.5명이라는 믿지 못할 통계다.
에이즈 관련 사업은 예방과 환자 돌보기로 나뉜다. 우리는 환자들을 직
접 만나보기 위해 에이즈 센터를 찾았다. 1995년 캄보디아 최초로 시작
했다는 이곳에는 에이즈 환자 75명이 의학적, 심리적 치료를 받고 있었
다.
우리를 보자 기다리고 있던 환자들이 "사바이 테?(안녕하십니까?)" 하
며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약간 숙이는 캄보디아식 인사를 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병색이 완연했다. 콜라를 내오는데 무심코 병을 따는 손과 팔
뚝을 보니 이미 얼룩덜룩 하이에나 같은 반점이 퍼져 있었다. 에이즈 환
자를 내 눈으로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병이 성행위나 약물 주사
혹은 수혈 등을 통해서만 감염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들이 따라놓은
음료수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서양식 악수를 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 모인 그룹은 여자 8명, 남자 6명. 1살짜리 아기부터 40세까지다.
아주 초기 환자 한두 사람만 빼고는 모두 깡마르고 얼굴이 숯검댕 같다.
걸터앉아 있는 것도 힘겨워 보여 무엇을 물어본다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
었다. 눈에 띄는 사람은 쟌몰이라는, 미라처럼 말라 비틀어진 18세 된
여자 환자다. 얼굴에 핏기는커녕 눈꺼풀 움직일 힘도 없어 보였다. 14세
때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하여 3년 간 소녀 매춘부로 있다가 임신을 하게
되었단다. 작년에 아이를 낳았는데 에이즈에 감염되어 5개월 전에 죽었
다. 전신이 쑤시고 견딜 수 없이 아파서 하루 빨리 죽었으면 좋겠단다.
쟌몰과 같은 경우가 캄보디아 에이즈 환자의 전형이라는 게 미국인 의사
의 설명이다. 소녀 매춘부는 전국에 약 20만명, 겨우 12세 에서 17세 사
이란다. 살기 어려운 시골에서 먹는 입 하나 줄이자고 여자 아이를 파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부모는 아이를 공장에 취직시켜 돈도 벌고 학교
도 보내준다는 말에 속는 거지만. 매춘부의 절반은 국제 인신매매단을
통해 들어온 베트남 여자 아이들이란다. 놀랍고 부끄럽게도 여기 매춘굴
의판잣집 임대업을 하고 있는 사람과 포주 중에는 한국인도 있다고 한
다.
유럽 등 외국에서 섹스 관광을 오는 '정신병자'들은 그래도 에이즈는 무
서운지 점점 더 어린아이들을 찾고 있다. 성 겸험이 없는 어린애를 단돈
4백 달러에 사서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놀다 버리면 이 아이들은 고스란
히 소녀 매춘부가 되는 거다. 이런 아이 중에는 심지어 8살짜리 '베이
비'도 있다.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태국이나 필리핀 등에서는 50대의 서
양 남자가 중학생 정도의 현지 여자 아이들을 끼고(?) 다니는 것을 흔하
게 보는데 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자들을 'paid girlfriend(돈 주
고 산 여자 친구)'라고 부른다.
이 어린이, 소녀 매춘부의 99%가 에이즈 보균자이기 때문에 여기에 드나
드는 현지 남자들 역시 모두 감염되었다고 봐도 좋다. 이들은 콘돔을 사
용하지 않고, 에이즈도 감기나 몸살 혹은 다른 가벼운 성병처럼 걸리면
쉽게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에이즈가 이토록 급속히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방 사업장까지 제 발로 걸어올 수 있는 사람들은 나은 편이
다. 에이즈 환자는 몸에 면역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라면 간
단히 나을 병에도 치명적이다. 말기에는 감기나 설사 같은 병으로도 죽
는데 발병 후 5년 이상을 살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는 죽음을 앞둔 말기 에이즈 환자들의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런
환자들은 월드비전 소속 간호사들이 병세에 따라 일주일에 2~3번, 방문
관찰을 한다고 한다. 비 때문에 진흙탕이 되어버린 비포장도로를 지나
허름한 집으로 들어갔다.
나무로 지은 이층집 아래에서 평상을 놓고 곁방살이를 하고 있는 미콩
(35세). 그이에게는 3살, 5살 된 아이가 있다. 지뢰 작업반이던 남편이
에이즈로 죽은 후 길거리 청소 등으로 연명하던 중 끼니를 이을 길이 없
어 피를 팔러 갔다가 보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몹쓸 병을 옮긴 남편도 원망하고 착실한 불교 신자인 자신에
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신세 한탄도 했지만 두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꼭 살고 싶단다. 몸이 쑤시고 위가 아파서 잠도 잘 수 없을만큼 고통스
럽지만, 3살짜리 아이가 설사와 심한 탈수로 괴로워하는 것은 차마 눈뜨
고 볼 수 없다며 눈물을 훔친다. 하지만 미콩의 남은 삶은 3개월 남짓이
다.
"에이즈가 죽는 병인 줄 정말 몰랐어요."
두 번째로 찾은 37세의 남자 환자가 말꼬리를 흐린다. 잔잔한 미소가 얼
굴에 밴 스마일 보이다. 국경에서 군인으로 근무하던 중 말라리아에 걸
려 피 검사를 받다가 감염된 사실을 알았다는데, 그때까지 에이즈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한다.
한 집안에 딸과 사위, 아들과 며느리가 몽땅 에이즈에 걸려 죽고, 남은
친손주, 외손주 5명을 혼자 키우고 있는 할머니도 만났다. 빵장사를 해
서 근근이 살아가는데 동네 사람들은 이 집 빵을 절대로 사먹지 않기 때
문에 아주 멀리 장사를 나가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벌써 증상이 나타나 14살 남자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마르고 힘이 없었다. 간호사에 따르면 그 5명의 손자들
중 단 1명만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았단다.
문제는 캄보디아의 에이즈 문제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에이즈는 지금 이 시간에도 대륙을 넘나들며 맹위를
떨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의 현실은 참혹하기까지 하다. 한 예로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15~45세 사이의 주민 가운데 약 20%가 에이즈에 감염되
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에이즈를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
법이 없으니 에이즈 진단은 곧 사망 통지일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각국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캄보디
아만 보더라도 프랑스 식민지배와 전쟁, 그리고 '킬링필드'라는 대학살
의 소용돌이에서 이제 겨우 빠져나왔다.
GNP 3백 달러 미만의 이 나라에서 정부는 손을 쓰고 싶지만 돈도 인력
도 없다. 그러면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치료법이 없으니
더 이상의 감염을 막는 것이 최선이다. 단 7년 만에 환자수가 18만 배로
불어난 것은 순전히 그 병에 대해 무지해서이다. 이렇게 만연한 에이즈
가 갖가지 경로를 통해 우리 나라 등 주변 국가로 퍼지는 것은 시간 문
제다.
정부가 힘을 쓸 수 없는 이런 곳에서는 정부 일을 대신하는 비정부기구
들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그러나 이들 NGO 역시 돈과 인력이 있어야 일
을 할 수 있다. 우리, 언제까지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한비야의 '중국견문록'中-
p.s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버려진 땅의 현실은 훨씬 참혹하죠...?
하지만 버려진 땅의 주인은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바로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