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면은 빳빳한 긴장의 가시들이다
서로를 찌르며 평행으로 버티던 흰 뼈들
끓는 물이라는 투명한 재난을 통과하며
단단했던 자아의 직립을 비로소 꺾는다
엉겨 붙는 것은 굴복이 아니라 섞임이어서
찬물에 헹궈낸 가닥들은 서로의 곡선을 안고
둥근 타래 속으로 고요히 가라앉는다
길게 늘어진 그것은 누군가의 수명이거나
끊어지지 않으려 버틴 생의 안간힘
반면 튀겨진 라면의 생애는 태생부터 결속이다
마른 몸을 비틀어 서로의 목을 조른 채
떼어낼 수 없는 결핍의 문장으로 서술되지만
정작 뜨거운 시련이 냄비 속을 범람할 때
라면은 제 몸을 풀어 각자의 유영을 시작한다
단단하게 꼬여있던 약속들이
열기 앞에서 얼마나 쉽게 성근 올이 되는지
국수가 젖으면서 하나가 될 때
라면은 익으면서 기어이 타인이 된다
지금 식탁 위로 상견례의 구름이 지나간다
팽팽하던 소면의 직선이 부드러운 화음을 고르는 시간
서로의 생을 긴 올로 엮어
끊어지지 않는 허기를 나누어 가지겠다는
저 희고 긴, 지독한 결연의 예보
#박희래시
카페 게시글
시 (가~사)
삶과 결연結緣
박희래
추천 0
조회 30
26.07.28 06:20
댓글 3
다음검색
첫댓글 세심한 관찰이 놀랍네요.
감사합니다.
문우님 더욱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 시는 서로 다른 삶이 만나 하나로 스며드는 연緣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