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본문에서의 이방인인 룻은 시모인 나오미로 인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실제로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되었던 것일 뿐 아니라 구주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에 있어 모형과 그림자라 할 수 있는 다윗과 그의 통치한 왕국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위치의 선조라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심지어는 구속사 전체적으로도 마태복음 1장 5~6절에서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구주 예수님의 메시야 계보 중에서 그 이름이 아주 뚜렷하고 비중 있게 소개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사실은 우선은 그러한 룻을 전도했다고 볼 수 있는 나오미가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자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임을 방증하는 것이며..
실제로 구원에 참예케 된 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나 룻같이 이렇게까지 성경에 작지 않은 비중으로 소개된다든지, 무엇보다 말씀의 신앙과 그로 인한 역사들로 쓰일 수는 없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그 나오미는 구약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이 그러했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를 위시해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유월절 어린 양과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 뱀, 회막과 지성소 등과 같은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며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죄악들과 싸울 수 있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이면서 무엇보다 주야로 더욱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는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도록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함으로 정말 구원에 참예케 된 자인 것임은 물론 실질적으로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신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근원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실상 그 위치와 역할 상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주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한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인해, 곧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만 오늘날 우리들과 본질적으로는 동일하게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직접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된 자인 것일 뿐 아니라 원론적으로는 그와 같은 방법과 원리로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에서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말씀의 신앙과 함께 살아 있는 믿음으로 산 자였음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것이고, 바로 그러한 시모 나오미를 통해 룻과 같은 진정한 신앙, 참으로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기에 합당한 신앙이 가능했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구체적이면서 실질적인 면에서 다시 말씀드리면 특히 이방 모압 여인 룻은 시모가 믿는 하나님을 그 어떠한 상황들 속에서도 함께 끝까지 믿었을 뿐 아니라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시모를 공경하며 신의를 잃지 않으면서 말씀을 아름답게 실천했던 여인으로 진실한 믿음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진정 어떤 신앙을 기뻐하시고 책임지시며, 복 주시고 귀히 사용하시는지를 잘 보여 주는 예인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믿음과 그로 인한 은혜와 복과 열매들에 있어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또한 그렇게 오래 전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가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수 없고 결코 한계가 될 수 없으며..
뿐만 아니라 궁핍한 환경들이나 낙심하기 쉬운 상황들 속에서도, 더 나아가 인간적, 세상적으로 심히 약하고 어려우며 깊은 위기일 수 있는 실상과 현실들이라도 믿음에 있어, 하나님의 기쁨에 있어, 하늘의 역사와 복들에 있어, 무엇보다 살아 있는 신앙과 복음의 세계에 있어 결코 제한이나 불가능들이 될 수 없다는 사실들도 잘 보여 주는 것입니다..
동시에 믿음이라는 것이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차원인 것임이 아님을, 결코 행함과 별개인 것이 아님을, 특히 말씀의 신앙이라는 것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거나 단지 추상적으로 따르는 것도 아님을 잘 알 수 있게 하며..
바꾸어 말하면 진실한 믿음이란 삶의 자리와 관계들, 여러 모양의 상황과 결단들이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나 자신이 불리해 지고 피해를 볼 수 있거나, 게다가 세상적인 기회들이나 향락들을 잃게 될 수 있다고 해도 그 무엇보다 최우선해서 오직 말씀대로 믿고 결단하며 사모하고 실제로 실천하는 것이 믿음에 있어 참 중요하고 진정한 본질이 아닐 수 없는 것임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심지어 한 줄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고 지키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감수하고 어떤 면에서는 생명을 걸기까지 해야 할 수도 있게 되는 것임을 통찰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그와 함께 하는 그런 진실한 믿음의 결과는 그 이상으로 엄청나며 더욱 크고 놀랍다는 것을 아래 본문과 룻기 전체에서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고, 실상은 성경 전체적으로도 구석구석에서 잘 보여 주고 있는데..
어쨌든 룻은 분명 그 자신조차 짐작도, 상상도 못했을 일들을 경험케 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참으로 룻이야 말로 극심하게 어려워지고 비참할 정도로 몰락한 상황들 속에서도 당대에 있어서, 사실상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그러한 진실한 믿음과 함께, 곧 말씀대로의 살아 있는 믿음과 함께 모든 형편과 상황들, 문제와 위기들이 완전히 뒤바뀌고 역전케 되었던 것이며 말로는 다 표현 못할 최상 중에 최상이 된 것입니다..
더 실질적으로 말하면 아래 본문의 룻은 성경의 모든 곳들에 있어, 인류의 모든 역사들에 있어, 특히 메시야의 구원 사역과 복음의 세계에 있어 가장 복 있는 여인들 중 한 사람이 된 것으로 실제로 영성과 인품과 부귀의 배우자를 얻게 된 것일 뿐 아니라 다윗의 조상이 되어 민족과 신앙을 흥하게 하는 복된 통로가 되었던 것이며..
심지어는 구주 예수님의 가계, 구속사의 계보에 여인으로서 특별히 이름이 올려 지게 되었던 것이고, 그러면서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온 세상 모든 인류의 구원 역사에 있어 어떤 식으로든 사용되어진 것이며,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까지 믿음과 은혜들, 구원과 복음의 일들에 있어 깊은 은혜와 도전들이 되고, 선한 영향력과 형통의 통로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룻1:15~17)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8월 7일(수)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