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黑風令 제2권 제13장 아버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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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야(墨夜).
조각달(片月)마저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 숲 속의 밤은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웠다.
헌데 산새들마저 잠들어 칙칙한 귀기(鬼氣)가 감도는 산중턱에서
고요한 정적을 깨고 두런두런 말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저 사람이 틀림없다고?"
"그래. 금문세가에서 서찰을 가져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황보노야
께서는 황궁무림의 최강 고수들로 구성된 즙포사신대의 감시를 받
고 있다고 했어."
어둠 속에서 환우령의 두 눈이 싸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옆에 서 있는 산처럼 거대한 체구의 소년(少年)이 몸을 웅크
리고 있었다.
토민가 중턱에 살고 있는 백정의 아들 황노산(黃老山)이었다.
비록 백정이라고는 하나 노산의 할아버지 황노인은 소시장(牛市
場) 최고의 거물인 천하 백정들의 대부(大父)격이었다.
"제길…… 저 드넓은 연무장 한 가운데 굵은 쇠사슬로 사지가 묶
여 있는 사람이 바로 황보란 말이지!"
황노산은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산중턱에서 내려다 보자니 절벽처럼 높은 자금성(紫禁城)의 성벽
너머로 전체가 청강대리석(靑剛大理石)으로 포장된 넓은 광장이
눈에 띄였다.
그곳은 자금성의 북동쪽에 위치한 황궁금위군들의 연무장(鍊武場)
이었다.
그 중앙은 커다란 횃불 백여 개가 주위를 대낮처럼 밝히고 있었
다. 그리고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머리가 산발된 노인 한 사
람이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단순히 노인 뿐이 아니었다.
네 명의 흑포인(黑袍人).
황보의 몸을 결박한 굵은 쇠사슬의 한 자락씩을 움켜쥐고 시선은
황보에게 모은 채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나뉘어 태산처럼 버티고
있었다.
문득 환우령의 입에서 상처 입은 늑대처럼 툴툴 메마른 음성이 흘
렀다.
"빌어먹을…… 날씨도 점점 추워지는데 노인네가 저 무슨 청승이
람."
환우령은 애꿎은 나뭇가지만 자꾸 꺾고 있었다.
이때였다. 황노산의 커다란 입술을 비집고 둔중한 음성이 흘렀다.
"우령아, 네가 비록 황보노야의 아들이지만 다시 한 번 그분의 험
담을 입에 담으면 용서하지 않을거야."
"뭐라구?"
환우령은 화를 내려다 말고 문득 황노산의 표정이 평소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보처럼 우직하여 늘 웃는 얼굴에 하잘 것 없는 벌레 한 마리 조
차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 황노산이 아닌가?
헌데 그가 지금처럼 험악한 표정을 짓는 것을 환우령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환우령은 천천히 시선을 허공에 던지며 씁쓸하게 웃었다.
"후후……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집에 있는 재물이란 재물은 있
는대로 긁어가지고 나가 술과 도박에 탕진하고는 다음 날 아침이
면 술국 끓여 달라고 발로 채이는 나의 고충을…… 크크…… 나는
굶기 싫어서라도 남의 집 담장을 넘어야 했지."
듣는 사람의 가슴을 찌르르하게 저미는 자조적인 음성이었다.
그러나 황노산의 얼굴은 여전히 험악하게 굳어 있었다.
"바보같은 소리! 정말로 황보노야를 모르고 있는 사람은 우령이
너다."
"후훗……! 너 사람 웃길 줄도 아는구나."
"……!"
"익은 밥 먹고 쉰소리 그만해."
이때 황노산의 입에서 불을 토하듯 격렬한 음성이 흘렀다.
"잘 들어둬! 황보노야께서 그렇게 술(酒)을 좋아하시면서도 제일
싸구려인 여아홍(如兒紅) 이외에 다른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또한……"
"……?"
"수십 년 동안 중원 전역의 도박장을 전전했으나 황보노야와 도박
을 해서 은자 한 푼이라도 따간 사람은 천하에 아무도 없다는 것
을."
환우령은 웃었다. 그것은 분명 비웃음이었다.
"헛소리 하지마! 황보에 대해서 아들인 나보다 잘 아는 척 떠들지
말란 말이다."
일순 황노산의 입에서 침중한 음성이 흘렀다.
"나는 워낙 무식해서 누구를 존경하는 따위를 할 줄 모른다. 하지
만 삼 년 전 할아버지로부터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분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존경?"
"우령이 너도 빈민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천세야황(天世夜皇)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겠지?"
"중원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 중에 천세야황의 신화를 모르는
사람은 죽은 시체 뿐이라면 그 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문득 황노산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시선으로 환우령을 주시했다.
"그 천세야황의 본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니?"
"몰라."
"그림자 없는 밤의 황제(皇帝), 천세야황의 본명은 바로 환유담
(環柔潭) 어른이시다."
황노산의 입에서 환유담이라는 이름이 흘러나온 순간, 환우령은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휘청거렸다.
돌연 환우령은 황노산의 멱살을 와락 움켜쥐었다.
"노산이 너! 지금 나를 속이고 있는 거지!"
"……"
"왜 대답을 못하고 있는 거냐! 큭큭…… 그래, 술주정뱅이에 도박
에 미친 황보가 천세야황일 리가 없지."
그렇다. 환유담이라는 이름은 바로 환우령의 아버지 황보의 본명
인 것이다.
황노산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황보노야가 바로 천세야황이라는 말은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이
야기니까 틀림없는 사실이야. 할아버지와 황보노야 두 분은 너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친구(親舊)셨다는 것을 너도 알
고 있잖아."
환우령의 짙은 검미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그런 사실을 왜 이제야 말하는거지!"
황노산의 얼굴에 곤혹한 표정이 스쳤다.
"황보노야께서 사람들에게 신신당부 하셨데. 우령이 너에게는 절
대 비밀로 해달라고…… 그저 평범한 아버지로 남아 있고 싶다고
하시면서……"
일순 황노산의 멱살을 움켜 쥔 환우령의 양손이 맥없이 축 처졌
다.
"그래, 그래…… 자금별부에 갇힌 황보에게 만두를 전해주라던 권
노인도, 홍등가의 화월랑도, 금문세가의 노가주도 심지어…… 접
객랑 수란 누이도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어……"
"……"
"아들인 나만 말이야!"
분노인가? 격동인가?
걷잡을 수 없는 전율의 소용돌이가 환우령의 전신을 폭풍처럼 휘
감고 있었다.
"빌어먹을…… 천세야황이든, 만세야황이든 상관없어. 내겐 그저
황보일 뿐이야."
여태까지 황보에게 무례하게 대해온 것을 후회하는 것일까?
아니면 지난 십 구 년 간 자신에게 철저하게 과거를 숨겨온 황보
에 대한 반항인지도 모른다.
환우령은 오늘따라 유난히 춥다고 생각했다.
첫댓글 감사
감사
잘보구 갑니다/.
즐감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즐감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
철저하게 숨겼군
감사~~
즐감
이제야알았나
즐독
감사합니다
즐겁게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시류(時流)를 역행하는 자(者)는 강(强)하다.
그러나 흐름에 몸을 맡겨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자는 더욱 무섭지."
감사합니다.
감사...
잘 보고 갑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