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 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휴정(1520~1604)과 '사명당' '사명대사로'알려진 유정(1544~1610)은 조선 중기의 유명한 승려입니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관계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31세 나이에 경기도 광주 봉은사(지금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주지로 추대됐던 사명당이 그 자리를 사양한 뒤. 묘향산 보현사(지금의 북한 평안북도 향산군)에 있는 서산대사를 찾아가 제자가 됐다고 해요.
사명당이 서산대사와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도 마치 설화처럼 전해집니다. 이미 사명당이 자신을 찾아올 것을 내다본 서산대사는 다른 제자에게 사명당을 마중 나가도록 해 사명당이 놀랐다고 합니다. 절에 도착한 사명당은 새 한 마리를 손에 쥐고 서산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스님, 제가 이 새를 죽이겠습니까, 아니면 살리겠습니까?" 마침 서산대사는 방에서 나오려고 한 발을 방 밖으로 빼놓은 상태였는데, 이 질문을 이렇게 맞받아 쳤다고 해요. "내가 방 밖으로 나가겠습니까, 아니면 들어가겠습니까?" 사명당이 대답을 못 하자 서산대사가 말을 이었습니다. "스님이 어찌 살생을 하겠습니까! 새는 놓아 주시겠죠.' 서산대사는 사명당이 새를 죽일지 살릴지는 다른 사람이 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질문한 사명당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걸 일깨워준거죠.
서산대사의 공력( 부처의 가르침대로 행하고 마음을 닦아 얻은 힘)이 자신보다 높다는 사실을 직접 만나 확인한 사명당은 서산대사의 제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과 제자 모두 승병(승려들로 조직된 군대)을 모아 일본군과 싸웠습니다. 이른바 '호국 불교'의 모습을 제대로 보인 것이죠. 사명당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외교관 역할을 했는데요. 일본에 건너가 협상 끝에 조선인 포로 3500여 명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주1) 일본에 건너가 협상 끝에 조선인 포로 3500여 명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 사명당과 함께 건너가 공을 세운이가 있으니 전계신(全繼信)입니다. 이 공로로 그는 경상도 우후(慶尙道 虞侯)에 제수되었다. 그는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