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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8. 1. 큐티
에스겔 48:1 - 22
각 지파의 몫과 거룩한 땅
관찰 :
1) 열두 지파별 땅의 지정을 시작하는 말
- 1절a. “모든 지파의 이름은 이와 같으니라"
a. 열두 지파별 땅과 성전과 부속 땅에 대한 규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b. 에스겔서의 마지막 장인 본장의 첫문장은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본장의 마지막 문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예루살렘성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끝납니다.
c. 이스라엘 각 지파의 이름이 다 열거된다는 것은 그들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회복된다는 사실, 즉 전 이스라엘에 단 하나의 지파도 예외없이 모두 회복된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d. 47:13-20에서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땅에 대한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각각의 열두 지파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면서 그들의 땅이 속할 위치를 설명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각 지파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지대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e.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존재 전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본장이 “여호와 삼마”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스라엘의 어떤 공로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소에 임재하심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며 또한 회복될 새로운 왕국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왕국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영토의 분배를 다루는 본장의 메시지가 물질적이거나 공간적 자산으로서의 땅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존재와 그 운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주어진 현재의 삶을 하나님의 이름을 중심으로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f.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대한 땅 분배와 포로기 이전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대한 땅 분배는 민 26:56에 기독된 것처럼 모두 제비뽑기를 톨해 이루어졌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포로기 이후 땅 분배 방식으로서의 제비뽑기는 그 양상이 다릅니다. 제비뽑기는 47:22나 29절에 분명하게 기록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2-7절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질 땅의 위치나 각 지파가 할당을 받을 기업으로서의 땅의 위치는 모두 하나님께서 결정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여기서 언급되는 제비뽑기는 지파별로 이미 결정된 땅을 각 가문이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수행된 제비뽑기였습니다.
g. 포로기 이전 땅 분배 방식과 포로기 이후 땅 분배 방식의 차이점은 민 26:52-55의 내용을 보면 포고기 이전에는 각 지파의 크기와 중요도에 따라 분배를 받는 땅의 크기와 위치가 결정되었는데 포로기 이후에는 각 지파가 분배 받은 땅이 모두 동일한 크기였다는 점입니다. 본장에서 언급되는 땅의 지정 규례는 포로기 이전의 과거의 이스라엘 각 지파가 본래 소유한 영토와는 거의 또는 전혀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각 지파간의 경계선을 동서를 잇는 일직선으로 만들고 각 지파의 땅의 폭을 일정하게 함으로써 특정한 지파에게 좋은 토양이 있는 땅이나 전략적 요충지를 배정하는 지리적 정치적 이해관계는 배제되어 평등하게 분배가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땅의 핵심 부분인 중앙 성소를 기준으로 하는 신학적 중요도에 있어서는 각 지파에 대한 땅 분배가 차별적으로 이루어진 부분은 존재합니다.
h.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뒤에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 재건에 앞장섰던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하나님께 드려진 땅에서 가장 가까운 북쪽과 남쪽의 땅을 각각 분배 받았습니다. 또한 장자 지파인 르우벤 지파도 유다 자파에 이어 성전을 기준으로 북쪽으로 두 번째 땅을 분배 받았고, 요셉 지파에 속하는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르우벤에 이어 북쪽의 세 번째 땅을 분배 받아 이 지파들이 갖는 중요성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리고 북쪽의 제일 변방과 남쪽의 변방에는 라엘의 시종인 빌하와 레아의 시종인 실바가 낳은 단, 아셀, 납달리, 갓 지파가 땅을 얻어 이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사의 일차적인 강조점은 각각의 부족들이 다 새 땅에서 그들에게 부여된 정단한 땅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태어나기 1세기 전에 이미 망했던 북왕국의 땅이 회복되고 북왕국의 지파들이 다 땅을 차지하게 되어 이스라엘이 완전히 회복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새 성전 북부의 일곱 지파가 차지할 땅의 지청
- 1절b. "북쪽 끝에서부터 헤들론 길을 거쳐 하맛 어귀를 지나서 다메섹 경계선에 있는 하살에논까지 곧 북쪽으로 하맛 경계선에 미치는 땅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단의 몫이요”
a. 1-7절은 새 성전 북부의 일곱 지파가 차지할 땅을 지정하는 내용이 서술되고 있습니다.
b. 단 지파의 경계선이 지중해의 한 지점에서 시작하여 하맛을 지나 이스라엘의 북방 경계선과 동방 경계선이 만나는 하살에논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c. 이 내용은 47:15-17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의 영토의 북방 경계선에 관한 내용을 다시 요약한 것입니다. 단 지파가 분배 받은 기업이 최북단에 있었으므로 단 지파의 경계선을 기록한 본 절의 내용과 이스라엘 영토의 북방 경계선을 기록한 47:15-17의 내용이 동일합니다. 즉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분배를 받은 기업들 중에서 단 지파가 분배를 받은 기업에 관한 설명이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 단 지파가 이스라엘의 나머지 열한 지파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여기서의 서술 방식이 이스라엘의 기업들 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땅을 기업으로 받을 지파부터 언급하여 점점 더 남쪽에 위치한 땅을 기업으로 받을 지파들로 옮겨가면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d. 각 지파들이 받을 땅에 대한 설명만 북쪽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지파 전 영토를 설명하면서도 북쪽 땅에서부터 시작했고 그 당음에 동쪽, 남쪽, 그리고 서쪽 땅의 순으로 설명했습니다. 바벨론 유수에서 회복된 이스라엘 지파의 기업 분배나 영토 경계선에 대한 설명이 남쪽 지파나 남쪽이 아닌 북쪽 지파나 북쪽부터 언급된 것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북쪽으로부터 내려왔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반대로 민 34:1-15에서는 애굽을 나와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땅을 나눌 때에 이스라엘의 영토에 대한 설명은 남쪽에서부터 시작하여 동쪽, 북쪽, 그리고 서쪽 순으로 이어졌습니다.
e.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족속은 스 1:5; 4:1에 기록된 것처럼 유다와 베냐민과 레위 지파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경우는 이미 B.C. 722년에 멸망했기 때문에 왕상 12:21, 23에 기록된 것처럼 유다와 베냐민 지파 일부를 제외한 북이스라엘에 속한 열 개의 지파들이 포로기 이후에 각 지파의 원형을 제대로 회복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절과 23-29절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모두 동등한 땅 분배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은 단 지파를 비롯한 바벨론 유수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대한 땅 분배를 통해 에스겔서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열두 지파의 평등 체제로 된 통일된 민족에 대한 이상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상 1-9장은 대상 2:1. 2에 기록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원형을 하나님의 천지 창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들에서도 열둘이라는 수를 강조하면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자신들의 성전 재건을 통한 이스라엘 재건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여깁니다. 느 7:7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최초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 등을 포함한 열두 명으로 기록했습니다. 또한 스 8:24은 에스라가 세운 세레바와 하사바를 포함한 그의 형제들로 이루어진 제사장을 열두 명으로 기록하며 스 6:17도 성전 봉헌식 때에 드려진 제물들 중에 숫염소 열두 마리를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정한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만 아니라 신약 성경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의 수가 열둘이었으며 심지어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가 자살하여 제자가 열한 명으로 줄자 행 1:15-16에서는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사도로 삼고 열둘이라는 제자의 수를 채우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점들을 관련해서 볼 때 각자 땅을 기업으로 받아 새 성전을 중심으로 이상 사회를 이루고 살아갈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열둘로 제시한 것은 열둘을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구속 사역의 완전함을 회복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 수로 여겨 바벨론으로부터 회복될 이스라엘 사회도 열두 지파의 원형이 회복되는 이상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할 것입니다.
f. "단“은 ‘억울함을 푸심’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라헬이 아들을 낳지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 시녀 빌하가 아을들 낳자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와 소원을 들으셨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입니다. 그런데 단 지파가 포로기 이전에 분배를 받았던 땅은 수 19:40-48에 기록된 것처럼 딤나, 에그론, 가드, 림몬 등 지중해 연안의 매우 비옥한 토지였습니다. 단 지파는 레셉과 싸워 그들의 땅을 차지하는 등 처음에는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하여 갔으나 뒤에는 삿 1:34-36에 기록된 것처럼 아모리 족속에 의해 산지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후 단 지파는 해안 지역을 포기하고 가나안 북쪽 변경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로 인해 단은 이스라엘의 북쪽의 경계지역으로 언급되어 남쪽의 브엘세바와 함께 이스라엘 전역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본 절에서도 이스라엘 지역의 가장 북단에 위치하는 것으로 언급되어 이스라엘 북쪽 경계가 되었습니다.
- 2절. “단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아셀의 몫이요”
a. 단 지파 바로 밑의 기업을 받을 지파는 아셀 지파였습니다. 창 3:12, 13을 보면 ‘기쁨’이라는 의미를 갖는 ‘아셀’에 해당하는 ‘아세르’는 레아의 시녀인 실바가 ‘갓’에 이어 두 번째로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레아는 자신의 시녀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은 사실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기뿐 자라고 부를 것이라고 하며 실바의 아들을 아셀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이 아셀이 낳은 자손들이 아셀 지파를 이루었습니다.
b. 출애굽 2세대가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 아셀 지파가 받은 땅은 수 19:24-31을 보면 갈멜산에서 베니게에 이르는 긴 띠 모양의 해안 지대였습니다. 하지만 본 절에 의하면 단 경계선 바로 아래에 위치했습니다. 지형적 요소나 기타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이러한 땅의 지정은 공평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3절. “아셀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ᄁᆞ지는 납달리의 몫이요”
a. 단, 아셀 지파에 이어 북쪽에서 세 번째 지역을 기업으로 받은 지파는 납달리 지파였습니다. 창 30:7, 8을 보면 납달리는 ‘경쟁함’이라는 의미입니다. 납달리는 라헬이 자신의 시녀 빌라를 야곱에게 보내어 낳은 아들입니다. 라헬이 자신의 언니 레아가 네 명의 아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낳지 못한 뒤에 얻은 아들이라 자신이 언니 레아와 경쟁하여 얻은 아들이라는 의미로 납달리라고 한 것입니다.
b. 수 19:34-38; 20:7을 보면 출애굽 한 뒤에 가나안 땅에서 납달리 지파가 받은 땅은 대부분이 산지였지만 하솔과 같은 견고한 성읍 열아홉 개가 속한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c. 단, 아셀, 납달리 이 세 지파는 새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될 새 이스라엘에서 최북단에 속한 땅을 분배 받았을 뿐만 아니라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을 분배받았을 때에도 가장 북단에 있던 땅을 분배받은 지파들이었습니다. 물론 단 지파의 경우 출애굽 이후 처음 기업을 분배받았을 때에는 이스라엘 영토 중 가장 비록한 곳의 하나인 지중해안의 영토를 분배받기도 했지만 아모리 족속의 공격을 피해 이스라엘 영토의 가장 북단으로 올라가 라이스를 점령한 뒤에 단이라고 이름을 고치고 자신들의 영토를 삼았습니다.
d. 가나안 정복 초기에는 빌하의 아들들이 이룬 단 지파와 달리 납달리 지파가 남북으로 이어지고 그 서편에 아셀 지파가 있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포로기 이후 기업 분배에서는 형제 지파인 단 지파와 납달리 지파 사이에 실바의 아들이 이룬 아셀 지파가 위치한 형태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새 이상 사회에서는 사로의 이해관계보다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두가 융화되고 연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 4절. “납달리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므낫세의 몫이요”
a. 창 41:50, 51을 보면 므낫세는 요셉이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에게서 낳은 두 아들들 중에서 장남입니다. ‘므낫세’(메낫쉐)는 ‘잊어버림’이라는 뜻으로 요셉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애굽의 총리로 삼으시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게 하심으로써 자신이 겪은 모든 고난을 잊게 하셨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입니다.
b. 므낫세 지파가 출애굽 이후에 받은 땅은 수 13:15-23을 보면 므낫세 지파 중에서 절반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함께 요단 동편의 기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 지파는 요단 서편 즉 사해 바다의 서북쪽 방향에 넓은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에서 받은 므낫세의 첫 번째 기업은 잇사갈과 스블론 지파의 밑에 위치했는데 잇사갈 지파와 스불론 지파의 기업이 예루살렘보다 훨씬 남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그들보다 훨씬 더 위쪽에 위치할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단, 아셀, 그리고 납달리 지파 다음에 위치하게 된 것입니다.
- 5절, “므낫세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에브라임의 몫이요”
a. 에브라임은 요셉이 낳은 둘째 아들 즉 므낫세의 동생이면서도 창 48:8-20을 보면 할아버지인 야곱으로부터 므낫세보다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의 축복대로 에브라임의 자손은 매우 번창했으며 특히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가나안을 정복하고 가나안 땅의 기업을 나누는 대위임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여호수아를 배출했습니다. 또한 모세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축복하는 내용인 신 33:17에서도 므낫세의 자손은 천천이고 에브라임의 자손은 만만이라는 내용을 통해 에브라임 지파의 번성을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호 4:17; 5:3, 5을 보면 후일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뉜 뒤에는 북이스라엘의 가장 선도적 지파가 되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대표적 표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b. 이러한 에브라임 지파는 장차 회복될 땅에서 므낫세 지파의 바로 밑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기업에 대한 묘사가 제일 북족에서 기업을 받은 단 지파 영토의 북방 한계선만 언급했을 뿐 그 이후로는 구체적인 지명을 밝히지 않고 단지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 받은 순서와 위치만 설명됩니다. 따라서 각 지파들의 경계선을 명확히 파악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전 영토의 최북방 한계선이 되는 하맛이나 스닷에서부터 시작하여 최남방 한계선이 되는 가데스 물이나 애굽 시내까지를 기준으로 잡은 뒤에 열두 지파와 거룩한 구역을 열세 등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에브라임 지파의 땅은 서편의 지중해에서 시작하여 오른편의 갈릴리 바다에 이르렀을 것으로 보입니다.
- 6절. “에브라임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르우벤의 몫이요”
a. 레아가 야곱으로부터 낳은 첫째 아들인 르우벤의 자손들은 이스라엘의 장자 지파였습니다. “르부벤”(레우벤)은 ‘보다’라는 뜻의 동사 ‘라아’와 ‘아들’이라는 뜻의 명사 ‘뻔’이 결합된 형태로 ‘보라 아들이라’라는 의미입니다. 레아는 남편이 첫 번째 부인인 자신보다 둘째 부인이자 동생인 라헬을 사랑하는 사실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다 자신이 첫 아들을 낳게 되자 하나님께서 자신의 괴로움을 돌아보셔서 아들을 주셨다는 의미로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b. 르우벤이 창 35:22에서 서모인 빌하와 통간했을 뿐만 아니라 동생 요셉이 다른 형제들에 의해 팔려갈 때에도 장자로서 그런 비극적 사건을 통제하지 못하는 등 장자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장자의 위상은 후일 요셉에게 넘어가고 장자의 혈통은 유다에게도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서 바벨론 포수 이후의 기업 분배에 있어서도 유다 지파가 성전이 있는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진 거룩한 땅과 바로 연접한 북쪽에 위치했고, 르우벤 지파는 유다 지파 다음에 위치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 7절. “르우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유다의 몫이요”
a. 유다 지파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족속에게 주어진 영토 중에서 중앙의 하나님께 거룩한 예물로 드려진 구역을 중심으로 북쪽에 위치한 일곱 지파들 중에서 북쪽으로부터 계수할 때에 가장 마지막에 해당하는 위치이자 동시에 거룩한 구역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기업을 받아 거룩한 땅과 경계선을 맞대었습니다.
b. 유다는 야곱의 첫 번째 부인 레아가 낳은 네 번째 아들이었지만 그는 창 49:8-12에 기록된 야곱의 축복에 의해 메시야가 태어날 지파로 예언되었습니다. 이 예언대로 유다 지파에서 태어난 그리스도의 선조가 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비록 다윗의 손자 르호보암 시대에 나라가 둘로 나뉘었지만 남유다는 예루살렘 성전을 북이스라엘에게 빼앗기지 않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정통성을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c. 유다 지파는 베냐민 지파와 레위 지파와 함께 B.C. 722년에 멸망한 북이스라엘에 뒤이어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지자들의 말처럼 바벨론으로 끌려 갔고 에스겔이 기록한 본서의 내용을 처음 대하는 일차 독자인 포로 공동체를 구성했습니다. 에스겔서는 바벨론으로부터 회복되어 약속의 땅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재건할 핵심 세력이자 메시야가 오실 지파인 유다 지파를 하나님께 거룩한 예물로 드릴 땅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줄 것이라고 약속함으로써 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회복될 유다 지파가 성전 구역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에 그들의 기업을 얻을 것이라는 내용은 여호수아 15장에 기록된 것처럼 성전이었던 예루살렘 성읍이 유다 지파의 기업 안에 있었던 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d. 포로기 이후의 새 성전은 별도의 땅을 얻음으로써 유다 지파로부터 독립되었지만 새 성전의 거룩한 지역은 유다 지파의 지역과 맞붙어 경계를 이룸으로써 유다 지파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강조된 것입니다. 유다 지파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인해 유명무실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자손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버린 북부 열 지파와 달리 비록 당시에는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39:21-29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이스라엘로 돌아와 새로운 이스라엘을 재건해야 할 실질적인 책임을 지는 지파였습니다.
3) 여호와께 구별된 예물로 드려야 할 새 성전 부지와 제사장과 왕의 땅 등의 지정
- 8절. “유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너비는 이만 오천 척이요 길이는 다른 몫의 동쪽에서 서쪽ᄁᆞ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a. 예물로 드리는 땅의 너비가 본 절에서는 이만 오천 척으로 나와 있고 계속되는 9절에서는 일만 척으로 나와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예물로 드리는 땅이 북쪽에서부터 레위인을 위한 땅, 제사장을 위한 땅, 그리고 성읍 부지로 각각 구별되어 있는데서 오는 차이 때문입니다.
b. 레위인을 위한 땅의 너비가 각각 일만 척이고 제사장을 위한 땅도 일만 척이며 성읍 부지는 오천 척입니다. 각 땅의 너비는 이렇게 각각 다르지만 땅의 길이는 모두 이만 오천 척입니다. 즉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는 땅은 길이가 동일한 가로로 긴 세 개의 직사각형이 모여 하나의 정사각형의 모양을 이루었습니다.
c. 이러한 구조에서 본 절은 너비와 길이가 모두 이만 오천 척씩인 정사각형의 구역을 묘사하는 내용이고 9절은 이 정사각형 중에서도 가운데 부분인 제사장을 위해 구별된 땅을 묘사한 내용입니다. 좁은 의미에서는 9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성전이 위치한 제사장을 위한 땅만 거룩한 예물로 드려진 땅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본 절에 기록된 레위인의 땅과 속된 땅을 포함하는 너비와 길이가 모두 이만 오천 척이 되는 땅도 거룩한 예물로 드려진 땅으로 볼 수 있습니다.
d. 여기서의 “성소”는 47장에서는 죽은 바다를 살리고 가나안 땅을 기름지게 하는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는 장소로 묘사되었습니다. 이러한 성소는 중앙에 있어야 한다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실 성소는 북으로 이스라엘의 일곱 지파와 남으로 다섯 지파 사이의 한 중앙에 위치한 거룩한 구역에 있었고, 거룩한 구역 안에서도 북으로 레위인의 기업에 속한 땅과 남으로 성읍 부지 사이의 한 중앙에 있는 제사장을 위한 구역에 속했습니다. 또한 거룩한 제사장을 위한 구역에서도 한 중앙에 성소가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위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회복된 이스라엘이 중앙에 위치한 성소를 중심한 삶을 살아야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소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한 성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회복될 새 왕국이 철저히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신정 국가가 될 것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9절. “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이라”
a. 제사장들을 위한 땅을 분배하는 일과 관련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라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업으로서의 영토 분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땅의 물질적 가치가 아닌 공평과 드림이라는 신학적 주제라는 점이 담겨져 있습니다.
b. 이스라엘이 멸망한 원인들 중의 하나는 33:12-14. 18, 19; 45:9에 기록된 것처럼 땅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서의 기업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물질적 탐욕만을 체우기 위해 이웃에게 불의를 행하고 그들의 땅과 재물을 취한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한 불의를 행하여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제대로 드리지 않거나 하나님꽈 함께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땅과 성전 부지를 포함한 제사장을 위한 땅을 분배하는 내용이면서도 ‘몫’이나 ‘예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본서의 일차 독자인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유다 공동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루라도 빨리 바벨론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하고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조상의 기업을 회복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서는 유다 공동체에게 각 지파들에게 주어질 기업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고 단지 성전을 중심으로 각 지파들이 일정한 분량의 땅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만을 알려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이 일곱 지파에 대한 땅 분배와 제사장을 위한 땅을 분배하는 내용을 다루는 1-12절에서 땅이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c. 하나님께서 예물로 삼을 땅의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고 너비는 만 척이라고 한 본 절의 내용은 8절에서 예물로 드릴 땅의 너비가 이만 오천 척이라는 내용과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8절은 거룩한 땅의 전체 너비 즉 제사장을 위한 땅과 레위인을 위한 땅과 성읍 부지 땅의 너비를 모두 더한 것이고 본 절은 10절에 언급된 것처험 제사장을 위한 땅의 너비만 언급한 것입니다.
- 10절. “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북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요 서쪽으로 너비는 만 척이요 동쪽으로 너비가 만 척이요 남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라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a. 9절에 이어 제사장을 위한 구역에 대한 설명입니다. 여기서는 그 우역의 크기가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b. 제사장을 위한 구역의 북쪽 경계선의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쪽 경계선의 길이도 동일하게 이만 오천 척이어씁니다. 그리고 서쪽과 동쪽 경계선의 거리도 각각 일만 척이라고 자세하게 기록되었습니다. 45:3에서는 제사장을 위한 땅이 직사각형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라고 하고 너비가 만 척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했는데 본 절에서는 이 땅의 동서남북의 모든 길이를 더욱 상세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c. 제사장을 위한 땅의 사방 경계선의 거리를 모두 언급한 목적은 그 땅의 한 가운데 있는 성소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을 위해 드려진 땅의 한 중앙이라는 성전의 위치가 갖는 지리적 중심성은 성전의 역할과 관련해서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룰 나라의 통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 11절. “이 땅을 사독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될 때에 레위 사람이 그릇된 것처럼 그릇되지 아니하였느니라”
a. 제사장에게 돌릴 땅의 사용과 관리 모두 제사장이 맡아야 했고, 제사장 중에서도 오직 사독 계열의 제사장만이 맡을 수 있었습니다.
b.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한 레위인들에게 땅을 전혀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성소가 있는 거룩한 땅을 사용하거나 관리하지 못하게 했을 뿐 레위인을 위한 땅은 별도로 이 땅의 북쪽에 동일한 면적으로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 12절. “땅의 예물 중에서 그들이 예물을 받을지니 레위인의 접경지에 관한 가장 거룩한 예물이니라”
a. 제사장에게 돌릴 땅의 위상과 가치에 대한 설명입니다.
b. 제사장의 땅은 8절에서 설명한 길이와 너비가 모두 이만 오천 척인 거룩한 지역에서도 다시 구별된 가장 거룩한 지역이었으므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땅이었습니다. 본 절에서 성전이 그 중앙에 있는 제사장에게 속한 땅을 ‘가장 거룩한(코데쉬 카다쉽)’ 예물이라고 표현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예물로 주어진 땅에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실 것임을 강하게 부각시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c. 새롭게 회복될 땅에서 선민들이 땅을 분배받은 뒤에 그 땅의 중심에 있는 지극히 거룩한 성전에서 지극히 거룩한 제물을 받으시는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13절. “제사장의 경계선을 따라 레위 사람의 몫을 주되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으로 할지니 이 구역의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가 각기 만 척이라”
a. 본 절과 14절은 레위인들에게 줄 땅에 관한 내용입니다. 13절은 레위인들에게 줄 땅의 위치와 면적을 기술하고 14절은 땅의 성격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b. 레위인의 땅은 중앙에 위치한 제사장을 위한 땅의 북쪽에 주어졌고 면적은 제사장의 땅과 동일하게 너비가 일만 척이고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었습니다. 이렇게 레위인의 땅이 제사장의 땅과 동일한 면적에 경계선을 마주하고 있었지만 그 땅의 중요성은 세가지 측면에서 제사장의 땅만 못했습니다. 우선 땅의 면적을 묘사하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제사장의 땅은 동서남북 사방 경계선 각각의 거리를 자세하게 기록했지만 레위인의 땅은 너비와 길이만 기록했습니다. 두 번째는 제사장의 땅에 관한 내용은 9-12절에 네 절로 기록되었고, 레위인의 땅에 관한 내용은 13, 14절의 두 절 밖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사장의 땅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다는 내용이 8, 10절에 두 번이나 기록되어 강조되었지만 레위인의 땅에는 땅을 사고 팔 수 없으며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 못한다는 내용만 기록되었습니다. 이렇게 차별적으로 기록된 이유는 레위인들이 성전에서 행한 우상 숭배의 죄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레위인의 땅 역시 거룩한 땅이지만 하나님이 임재하신 성소가 있는 제사장의 땅이야말로 가장 거룩한 땅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표현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14절. “그들이 그 땅을 팔지도 못하며 바꾸지도 못하며 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라”
a. 레위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다른 사람의 땅과 바꿀 수 없었습니다.
b. 레위인들이 자신의 기업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없다는 조항은 일반인들의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레 25:23-25을 보면 일반인이 경우에 가난과 같은 불가항력적 상황에서는 일시적으로 땅을 팔 수도 있었습니다. 이는 레위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레위인의 경우에도 레 25:32-34을 보면 레위인 성읍의 가옥을 팔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부득이 한 이유로 판 경우에도 돈이 다시 생기면 그 돈을 지불하고 소유권을 찾아와야 했고 그의 능력이 계속 미치지 못한다면 친척이라도 대신 돈을 지불해 주어 되찾아야 했으며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희년이 되면 원래 소유주에게 되돌아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 절에서 레위인은 절대로 땅을 팔 수 없다고 규정할 뿐만 아니라 바꿀 수도 없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레위인에게 할당된 이 땅이 하나님의 중앙 성소를 둘러싼 거룩한 땅으로서 그 거룩함이 훼손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이 레위인이 둘러싸고 있는 중앙 성소의 거룩함이 절대로 지켜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c. 하나님께서 돈을 받고 땅을 파는 경우만이 아니고 땅을 물물교환하거나 무상으로 기증하는 경우까지 금지하신 의도는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의해 돈을 얻으려고 하나님께서 주신 땅까지 매매하는 그릇된 행동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레위 지파가 땅을 잃고 생계 걱정을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 15절. “이 이만 오천 척 다음으로 너비 오천 척은 속된 땅으로 구분하여 성읍을 세우며 거주하는 곳과 전원을 삼되 성읍이 그 중앙에 있게 할지니”
a. 15-19절은 속된 땅과 그 땅 안에 지어진 성읍에 관한 내용입니다. 본 절은 속된 땅과 성읍의 전체적 규모에 관한 설명이고, 속된 땅의 길이와 너비에 관한 내용입니다.
b. 제사장의 땅과 레위인의 땅과 속된 땅을 모두 합하면 길이와 너비가 모두 이만 오천 척이므로 본 절의 이만 오천 척은 길이로 볼 수도 있고 너비로 볼 수도 있습니다.
c. 속된 땅의 용도는 먼저 성읍을 세우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에 이어지는 그리고 “거주하는 곳”입니다. 이 표현은 적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어용 진지 역할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말론적 평화 시대의 행복과 번영을 누릴 터전으로서의 주거 공간을 위해 세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d. "전원을 삼되“는 17절에 기록된 것처럼 성읍의 사방으로 둘러 만들어진 이백오십 척씩의 ”들“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이 들은 먹을 양식을 재배하는 농지, 가축들을 키우는 목초지 등으로 사용하는 곳이었습니다.
- 16절. “그 크기는 북쪽도 사천오백 척이요 남쪽도 사천오백 척이요 동쪽도 사천오백 척이요 서쪽도 사천오백 척이며”
a. 들의 면적을 포함한 성읍의 총 너비는 오천 척이 되어 속된 땅의 전체 너비와 일치했습니다. 또한 성읍의 서쪽과 동쪽에도 각각 이백 오십 척의 들이 있었으므로 이 면적을 포함한 성읍의 길이도 오천 척이 되었습니다.
b. 속된 땅의 총 너비가 이만 오천 척이었고 오천 척 너비의 성읍이 한 중앙에 있었으므로 동편과 서편의 나머지 땅의 너비는 18절에 기록된 것처럼 각각 일만 척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속된 땅은 너비가 오천 척이고 길이가 일만 척인 두 개의 직사각형 땅 사이에 너비와 길이가 오천 척인 하나의 정사각형의 구역으로 구분될 수 있었고 그 중에 가운데 있는 정사각형에 해당하는 부분이 들을 포함한 성읍이었습니다.
- 17절. “그 성읍의 들은 북쪽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남쪽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동쪽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서쪽으로 이백오십 척이며”
a. 이백 오십 척의 너비인 들이 성읍을 동서남북 사방으로 두르고 있는 형태를 취하는 구조였습니다.
b. "들"(미그라쉬)은 15절에서 “전원”으로 번역된 단어로 성읍의 가축들을 키우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18절. “예물을 삼아 거룩히 구별할 땅과 연접하여 남아 있는 땅의 길이는 동쪽으로 만 척이요 서쪽으로 만 척이라 곧 예물을 삼아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연접하였으며 그 땅의 소산을 성읍에서 일하는 자의 양식을 삼을지라”
a. 속된 땅 중에서 그 땅의 한 가운데 있는 성읍과 그 성읍을 사방으로 둘러싼 들을 제외한 좌우에 남아 있는 땅의 면적과 용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b. 남겨진 땅이 거룩한 땅 즉 제사장의 땅과 경계선을 맞대고 있다는 점을 두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속된 땅과 그 중앙에 있는 성읍 전체가 이 거룩한 땅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땅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 땅 중앙에 성소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장차 회복될 이스라엘 왕국이 철저히 하나님을 중심한 신정국가가 될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 19절.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그 성읍에서 일하는 자는 그 땅을 경작할지니라”
a.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선발된 사람들이 속된 땅의 성읍 기지에서 일했으므로 그들은 성읍 기지의 좌우편에 있는 남아 있는 땅에서 자신들의 양식을 생산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b. 성읍에서 일하는 자는 그 성읍에 거주하는 일반 노동자 계층을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그들은 각 지파로부터 선발되어 와서 성읍에 거주했을 뿐만 아니라 성읍 안에서도 자신들에게 할당된 직무를 수행하였고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서 성읍 기지 양편에 있는 남겨진 땅에서 양식을 재배하는 일도 했습니다. 이들은 왕국 전체를 다스리는 주요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 20절. “그런즉 예물로 드리는 땅의 합계는 길이도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오 이만 오천 척이라 너희가 거룩히 구별하여 드릴 땅은 성읍의 기지와 합하여 네모 반듯할 것이니라”
a. 예물로 드리는 땅의 총 면적과 그 땅 안에 포함된 성읍 기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물로 드리는 땅의 총 면적에 대해서는 수미쌍관 구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b. 8절은 너비와 길이가 모두 이만 오천 척인 예물로 드리는 땅의 총 면적을 밝히되 성소를 강조하고 본 절은 동일한 너비와 길이를 갖는 예물로 드리는 땅의 총 면적을 밝히되 성읍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c. 성소가 8절에 이어 9-12절에서 강조되고 성읍이 20절과 15-19절에서 반복해서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성소와 성읍은 거룩한 예물로 드려진 땅에 관한 8-20절에서만 아니라 새로 지어진 성전의 구조와 이스라엘 지파의 기업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47, 48장의 핵심 내용입니다. 성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 제사를 받으시며 성읍은 하나님께서 왕을 통해 백성들을 다스리시는 곳입니다. 이러한 성소와 성읍에 대한 언급은 궁극적으로 새 이스라엘에서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될 것이며 하나님 안에서의 완전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 21절.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은 땅은 군주에게 돌릴지니 곧 거룩하게 구별할 땅의 동쪽을 향한 그 경계선 앞 이만 오천 척과 서쪽을 향한 그 경계선 앞 이만 오천 척이라 다른 몫들과 연접한 땅이니 이것을 군주에게 돌릴 것이며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성전의 성소가 그 중앙에 있으리라”
a. 예물로 구별한 땅 중 거룩한 정방형 땅 좌우편이 왕을 위한 기업으로 할당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b. 거듭 제시되는 거룩하게 구별할 땅은 20절에 나오는 길이와 너비가 모두 이만 오천 척인 땅을 의미합니다.
c. 군주에게 땅을 분배하는 이유는 45:8에 기록된 것처럼 왕들이 다시는 부를 얻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22절. “그런즉 군주에게 돌려 그에게 속할 땅은 레위 사람의 기업 좌우편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이며 유다 지경과 베냐민 지경 사이에 있을지니라”
a. 군주에게 속한 땅의 위치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 땅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이에 있는 땅 중에서 한 가운데 있는 길이와 너비가 이만 오천 척인 거룩한 예물로 드리는 땅을 제외한 양편의 땅이었습니다. 즉 군주에게 속한 땅은 동편과 서편 두 곳에 위치한 땅이었습니다.
b. 동편과 서편의 군주에게 속한 땅의 북쪽 경계선은 모두 유다 지파의 땅과 맞닿았고 남쪽 경계선은 모두 베냐민 지파의 땅과 맞닿았습니다. 그리고 동편에 있는 군주의 땅의 서쪽 경계선은 거룩한 예물로 드리는 땅의 동쪽 경계선과 맞닿았고 군주의 땅의 동쪽 경계선은 요단강과 맞닿았습니다. 또한 서편에 있는 군주의 땅의 동쪽 경계선은 거룩한 예물로 드리는 땅의 서쪽 경계선과 맞달았고 서쪽 경계선은 지중해의 해안선과 동일했습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새 성전이 세워지는 새 이스라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세워지는 성전과 새 이스라엘의 영토를 열두 지파가 나누어서 차지하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새 성전이 세워지는 곳은 예루살렘 성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정하시는 곳이었고,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것이기에 거룩하고 거룩한 지성소가 되는 곳이었습니다.
2) 시오니즘과 예루살렘 회복 운동을 하는 이들은 새 하나님 나라의 수도가 예루살렘이 될 것이라 말하고 그곳에서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서의 마지막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하나님의 임재에 달린 것이지 기존의 어떤 장소, 심지어 예루살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서의 마지막 즈음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약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모두 동일하게 공평하게 땅을 분배한 것도 포로 이전의 땅 분배와 다릅니다. 그리고 이 땅 배정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 구속을 완성하시고 승천하신 뒤에 다시 오셔서 이루실 일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지고 여호와 신앙에 대한 부흥일 에스라를 위시하여 일어나지만 에스겔이 여기서 말하는 것과 같은 문자적인 새 성전과 새 이스라엘이 세워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3)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새 이스라엘의 지극히 거룩함과 그 거룩함으로 나라를 이루시며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거룩하심입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인간이 할 수 없으며 모든 삶의 중심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이 이 땅에 오시어 성도들과 교회의 중심에 계시고 교통하심으로 가능하게 되는 일입니다. 땅의 개념, 백성의 개념, 주권의 개념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되고 완성이 되어 국민, 영토, 주권이 새로워진 새 하나님 나라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적용 :
1) 에스겔서의 끝물에 와서 매우 긴 본문과 본문 묵상이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에스겔서 전체의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알려주셨기 때문에 에스겔 마지막 장에서의 논지가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중앙에 모시고 거룩한 제사와 거룩한 삶의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가 완성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성령님이 내주하심으로 그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심으로 진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 성의 온전하고 온전한 예배, 거룩하고 거룩한 예배를 드림으로 그 위대한 성취를 보게 될 것입니다.
2) 역사속에서 성취되지 않은 땅을 소유함에 대한 비전이 이 땅에서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성취될 것을 기대하는 믿음이 에스겔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 공동체에 주어졌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에스겔의 증언을 통해서, 천사의 가르침을 통해서, 순종으로 감당한 에스겔의 메시지를 통해서 드러났고, 그것이 믿어지고 이해되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일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삼마를 향한 여정이 이제 거의 다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3) 어머님의 96번째 생신입니다. 태안에서 가족들이 같이 모입니다. 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데 말씀을 전하고 특송하고자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