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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땅의 경계
민 34:1-15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
3 너희 남쪽은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니 너희의 남쪽 경계는 동쪽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4 돌아서 아그랍빔 언덕 남쪽에 이르고 신을 지나 가데스바네아 남쪽에 이르고 또 하살아달을 지나 아스몬에 이르고
5 아스몬에서 돌아서 애굽 시내를 지나 바다까지 이르느니라
6 서쪽 경계는 대해가 경계가 되나니 이는 너희의 서쪽 경계니라
7 북쪽 경계는 이러하니 대해에서부터 호르 산까지 그어라
8 호르 산에서 그어 하맛 어귀에 이르러 스닷에 이르고
9 그 경계가 또 시브론을 지나 하살에난에 이르나니 이는 너희의 북쪽 경계니라
10 너희의 동쪽 경계는 하살에난에서 그어 스밤에 이르고
11 그 경계가 또 스밤에서 리블라로 내려가서 아인 동쪽에 이르고 또 내려가서 긴네렛 동쪽 해변에 이르고
12 그 경계가 또 요단으로 내려가서 염해에 이르나니 너희 땅의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
13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받을 땅이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아홉 지파 반 쪽에게 주라고 명령하셨나니
14 이는 르우벤 자손의 지파와 갓 자손의 지파가 함께 그들의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들의 기업을 받을 것이며 므낫세의 반쪽도 기업을 받았음이니라
15 이 두 지파와 그 반 지파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건너편 곧 해 돋는 쪽에서 그들의 기업을 받으리라
민 34:1-15 / [이스라엘이 차지할 땅]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명령을 내려 따르게 하여라. `너희가 이제 들어가 너희 몫으로 차지하고 살 가나안 땅은 다음과 같다. 3) 너희가 살 땅의 남쪽 끝은 에돔 땅과 맞닿아 있는 신 광야이다. 남쪽 경계선은 동쪽으로는 소금바다라고도 부르는 사해 끝에서 시작하여 4) 남쪽으로 돌아 내려가 아그랍빔 비탈을 지나고 신을 거쳐 가데스바네아 남쪽까지 이어진다. 또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하살아달을 지나 아스몬까지 이어지고 5) 다시 아스몬에서 돌아서 애굽 시내를 거쳐 지중해까지 이어진다. 6) 서쪽지역 경계선은 대해이다. 7) 북쪽 지역 경계선은 대해에서 시작하여 호르산으로 이어지고 8) 거기서 하맛 고갯길, 스닷, 9) 시브론을 지나 하살에난까지 이어진다. 10) 동쪽 경계선은 하살에난에서 시작하여 스밤에 이른다. 11) 스밤에서 남쪽 리블라로 이어져 아인 동쪽에 이어지고 계속 내려가서 갈릴리 바다라고도 부르는 긴네렛 호수의 동쪽에 맞닿아 있는 언덕까지 이어진다. 12) 거기서 요단강을 따라 사해까지 이어진다. 너희가 앞으로 살 땅의 경계선은 이상과 같다.' 13)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제비를 뽑아 너희 몫으로 차지할 땅이 이 같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셨다. 14)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각 씨족별로 이미 자기 몫을 차지하였다. 15) 이들은 여리고 맞은편 요단강 동쪽의 땅을 자기들 몫으로 차지하였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전에 여호와께서 그 땅의 경계를 말씀하시고 구체적인 지명을 언급하신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의도하신 뜻과 선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1-2)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무조건 선물로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어떤 자격이나 조건을 언급하신 적 없이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이스라엘은 저절로 그리고 당연하게 받는 것이고 또한 정복하면서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가나안을 정복하기도 전에 그곳을 각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하라고 지시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그 은혜의 언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신뢰와 순종뿐입니다. 그에 따르는 삶의 절제와 거룩함은 하나님 백성의 기본입니다.
너희 땅의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3-12)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약속을 받아들이기에 두려움이 컸고 현실성이 없어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존 위험에 처할 때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라고 부르짖었습니다(민 14:3). 그런데도 여호와께서는 이제 약속의 땅이 이스라엘의 기업이 될 것임을 다시한번 천명하시면서 가나안 사방의 지경을 정해주십니다. 남쪽으로는 신 광야를, 서쪽으로는 대해를, 북쪽으로는 호르 산을, 동쪽으로는 하살에난을 경계로 하는 땅이 그들이 기업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제비 뽑아 받을 땅이라(13-15) 먼저 이미 허락한 대로 요단 서편은 루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기업이라고 다시 천명합니다. 그리고 요단을 건너 정복할 가나안땅 분배는 반드시 “너희가 제비 뽑아 받을 땅이라”고 확언하십니다. 각 지파별로, 각 지파의 인구수대로 분배해야할 가나안 땅은 평지도 있고 산악지대도 있으며, 비옥한 땅과 척박한 땅, 외부로부터 안전한 땅, 물이 많은 땅 등으로 서로 보다 좋고 넓은 땅을 차지할 욕심들이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거룩 공동체가 다툼이나 논쟁에 빠지면 자멸할 수 있으므로 잠언 16장 33절처럼 제비를 뽑으라 하셨습니다.
적용: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의 경계를 반복하여 설명하신 뜻이 무엇인가요?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이 반복하여 약속하시는 것들이 무엇이며 왜, 그것이 은혜와 축복인지 열거해보세요.
자신이 세워 놓은 계획을 지키고 노력하며 살아가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앞서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앞서지 않는 이유는 그분은 신실하시고, 실수가 없으시며, 약속한 것을 반드시 성취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늘 의심하고, 조바심을 내며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 살아갑니다. 히브리서 말씀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 설 교 >
기업을 주시는 하나님
민 34:1-29 / 이정원 목사(참사랑교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가장 복되고 가치 있는 기업은 물론 우리의 본향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우리는 덧없고 곤고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나 머지않아 영원한 본향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영광스럽고 풍성한 기업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예비해두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 인생길을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기서도 우리에게 기업을 주십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기업을 주실까요? 그리고 기업을 주시는 때는 언제일까요?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이 기업을 누리며 살아야 할까요? 본문에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교훈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은 침략인가?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크신 구원으로 해방되어 가나안 땅을 향해 광야를 지나왔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정복하여 분배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1-2절)
그러나 그 땅에는 이미 여러 족속들이 자리 잡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땅을 차지하려면 그 족속들을 죽이고 몰아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차지하는 것은 침략이 아닐까요? 인간의 역사는 이러한 침략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러한 침략으로 나라의 영토와 경계가 달라져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차지한 것도 이러한 예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적어도 인간적으로 볼 때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차지한 것은 그러한 경우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대개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했던 나라들은 인간적인 욕심으로 그런 침략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가나안 땅을 정복했습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분이 창조하셨으며, 그 분이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땅을 그 선하신 뜻대로 주시는 것은 인간들이 욕심을 따라 땅을 얻기 위하여 침략한 것과는 다릅니다. 가나안 족속들의 죄가 관영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고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을 단순한 침략전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하나님께서 죄악이 관영한 가나안 족속들을 심판하시고, 그 땅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후손들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또 오늘 우리가 기업을 얻는 중요한 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정당한 기업만 얻도록 해야지, 인간의 탐욕에 따라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기업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기업 - 우리의 소망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한지 40년이 지난 후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40년의 광야생활 중에 지치고 피곤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38년 전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뼈아픈 실패를 경험했었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정복전쟁을 앞두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지금 두려운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대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경계를 보여주셨고, 그 기업을 나누는 일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셨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정복전쟁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얻을 기업에 대한 이러한 구체적인 말씀들은 지치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백성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며, 소망을 더욱 분명히 갖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기업으로 얻을 가나안 땅에 대한 경계와 그 땅의 분배에 대한 말씀은 그들이 곧 싸우게 될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확신시켜주시는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대단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나그네 인생길을 다 달려간 후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굳게 붙잡고 광야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에 빠져서 천국소망을 놓쳐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보다 분명하고 자세히 알게 될수록 우리의 소망은 확고해지며, 용기와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소망을 든든히 붙잡는 성도는 이 광야 세상에서도 용기 있고 담대하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업의 경계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기업인 가나안 땅의 경계가 상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여기 나오는 지명들 중에는 현재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기 어려운 곳들이 있어서 정확한 경계를 확정짓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강은 짐작해 볼 수는 있는데, 그 기업을 지도에 표시해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 언급된 경계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경계와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15:18에는 북편의 경계가 ‘유프라데스강까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경계는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신 것일까요?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의 영토가 유프라데스강까지 확장됨으로써 창15:18의 언약은 확실하게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처음에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기업의 경계가 거기에 미치지 못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약속하신 것 보다 좁은 땅을 주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가나안에 들어가 정착할 때는 그렇게 넓은 땅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 이상의 것을 주지는 않으십니다. 또 그들에게는 그렇게 넓은 영토를 관할할 역량이 아직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처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보다 좁은 땅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필요한 만큼, 그리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기업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필요 이상의 것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탐심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이 필요해질 때, 그리고 우리의 그릇이 커질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약속하신 것들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기업을 분배할 지도자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 얻게 될 가나안 땅에 대한 상세한 경계가 제시된 후, 이제는 그 땅을 분배할 지도자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에게 땅을 기업으로 나눌 자의 이름은 이러하니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니라”(16-17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을 분배할 지도자들은 아론의 뒤를 이은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 그리고 각 지파의 대표자들 10명이었습니다. “너희는 또 기업의 땅을 나누기 위하여 각 지파에 한 지휘관씩 택하라 그 사람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며 시므온 지파에서는 암미훗의 아들 스므엘이요 베냐민 지파에서는 기슬론의 아들 엘리닷이요 단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요글리의 아들 북기요 요셉 자손 중 므낫세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에봇의 아들 한니엘이요 에브라임 자손 자파에서는 지휘관 십단의 아들 그므엘이요 스볼론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바르낙의 아들 엘리사반이요 잇사갈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앗산의 아들 발디엘이요 아셀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슬로미의 아들 이히훗이요 납달리 자손 자파에서는 지휘관 암미훗의 아들 브다헬이니라 하셨느니라 이들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을 받게 하신 자들이니라”(18-29절)
12지파 중에서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이미 기업을 받은 르우벤과 갓 지파는 더 이상 기업을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대표자를 보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땅을 분배하기 위해 세워진 지휘관들은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 그리고 각 지파를 대표하는 10명이었습니다.
기업 분배를 위한 책임자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임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군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임명하시고 세우십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이 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도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셨고, 엘르아살과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약의 사도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직분자와 지도자가 세워지는 것도 같은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기업 분배를 위해 각지파별로 세워진 지휘관들과 38년 전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에 보냈던 정탐꾼들을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이름의 의미를 비교해보십시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정탐꾼들의 이름에서는 육체적이고 강한 이미지가 보입니다. 그러나 기업 분배를 위해 세워진 지휘관들의 이름들은 거의 하나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과 육체를 버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자신과 육체를 버리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분배하는 데는 제비뽑기라는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서 제비뽑기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나타냈으며, 그 결과는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러한 제비뽑기 방식이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고 유치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직하게 사용하기만 한다면 가장 공평하고 훌륭한 방법이 바로 제비뽑기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간사한 욕심과 술수가 개입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도 이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기업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제비뽑기로 처리했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원리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가 얻는 모든 기업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만을 정당하게 받도록 해야 합니다. 탐욕을 좇아 불의하고 공의롭지 못한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장차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본향 하늘에 우리를 위해 예비해두신 기업을 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얼마든지 주실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준비되는 대로, 그리고 우리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더 풍성한 기업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가운데 충성을 다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업을 맘껏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가나안의 복을 얻는 길
민수기 34장 1-29절 / 이한규 목사
< 인생 3막 비전을 가지라 >
필자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91년 여름에 뉴욕 엘머스트의 한 아파트에서 처음 교회를 개척했다. 그때 매주 10명 내외가 예배에 참석했지만 핸디캡이 많았다. 싱글이었고 가족도 없었고 영주권도 없었고 가진 재정도 없었고 헌신적인 교인도 없었다. 교인 대부분이 어렵게 사는 초신자들이었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은 계속 한국으로 돌아와 C&MA(기독교선교연맹) 사역을 일으키라는 비전을 주셨다. 마침내 한국에 돌아와 1992년 겨울에 인천에서 처음 C&MA 교회를 개척했다.
인천에서 교회를 섬길 때 역사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C&MA의 자매 교단이던 성결 교단의 몇몇 목사들과 교제했는데 그들이 종종 말했다. “이 목사님의 목회 스타일은 서울 강남이나 분당 같은 신도시에 맞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C&MA를 힘 있게 일으키려면 거기서 교회를 새로 개척해보십시오.” 처음에는 그 말을 흘려들었지만 그 후 누군가의 강력한 비전 도전으로 1998년 여름에 분당의 월세 집에서 교회를 새로 개척했다. 앞으로 2031년이 되면 만 40년의 교회 사역을 끝내고 은퇴할 것이다.
필자는 은퇴 후인 2032년부터 어떤 사역을 할 것인지에 대해 종종 기도한다. 아마 그때는 문서선교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 이제까지 필자는 설교 초청을 받으면 대부분 사양했다.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집필을 하면서 <성경전권강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데도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32년부터는 설교 초청에도 응하고 미국의 C&MA 교회를 돌면서 비전 도전을 할 생각이다.
그때는 <성경전권강해>을 완성한 상태이고 매주 설교 준비를 할 필요가 없기에 영문 설교 준비를 넉넉히 할 수 있다. 그렇게 미국의 C&MA 교회들을 중심으로 문서선교 비전을 도전하면서 <월새기 영어판> 사역을 추진할 것이다. 그때부터 주님이 재림하시지 않는다면 다시 새로운 40년의 가나안 비전을 펼칠 것이다. 그러면 110세에 이 땅의 비전이 끝난다. 물론 그 전에 천국에 갈 수도 있다. 그때까지 비전을 잃지 않을 것이다.
살면서 가끔 친구나 동지나 후원자를 잃는다. 때로는 내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은 잃어도 거룩하고 찬란한 비전만은 천국에 갈 때까지 잃지 말라. 또한 나이가 들어 몸이 약해지고 적응력과 기억력도 떨어져도 마음과 비전은 약해지지 말라. 언젠가 놀라운 인생 반전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그 역사가 천국에서는 당연히 시작되지만 이 땅에서도 시작되도록 기도하며 준비하라.
모세에게 애굽 왕궁에서 지내던 40년의 세월은 인생 1막이었고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 목자로 훈련받던 40년의 세월은 인생 2막이었고 가나안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던 40년의 세월은 인생 3막이었다. 내게 주어진 가나안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 3막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살라. 천국에 갈 때까지 천국 비전과 천국 상급을 사모하며 남은 시간을 불꽃처럼 살라. 내가 하지 못하면 내 제자나 후대가 하도록 좀 더 선한 영향력을 남기기에 힘쓰라.
< 가나안의 복을 얻는 길 >
가나안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다가 도중에 포기하지 말라. 가나안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으라. 가나안의 복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
본 장에는 가나안 정복 전쟁으로 얻을 가나안 땅의 사방 지경(2-15절)과 땅 분할을 위해 제비 뽑을 때 선택된 각 지파의 지휘관 명단이 나온다(16-29절). 그렇게 가나안 땅의 사방 지경과 땅 분배를 위한 지휘관까지 지정한 것은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의 소유가 될 것이고 그 땅의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란 뜻이다. 그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으면 그 약속을 굳게 믿으라.
성경에는 하나님의 무수한 약속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거룩한 만남, 필요한 환경, 필요한 기회를 이미 준비해 놓으셨다. 하나님을 변함없이 신뢰하고 최선의 땀을 흘리면 가장 적절한 때에 그 준비된 것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계획하고 준비해 놓으신 복을 얻어 누리라. 내가 복 받을 믿음과 자격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나의 믿음과 자격과 생각 이상으로 넘치게 부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과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자기 분야에서 일하면 얼마든지 성공적으로 살 수 있다. 하나님은 그런 복을 이미 계획하고 약속하셨다. 미래에 대해 너무 염려하지 말라. 억지로 어떤 축복을 얻겠다고 안달하지도 말라.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알맞고 합당한 가나안의 복이 약속되고 준비되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잃지 않고 계속 꿈꾸고 준비하면 그 약속된 복을 실체화될 것이다.
2.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전체 지경은 원주민을 멸절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해서 가나안 정복 전쟁 때는 얻지 못했고 다윗과 솔로몬 때에야 약속된 지경에 가깝게 얻을 수 있었다. 불순종은 약속된 복을 늦추거나 축소시킨다. 물론 가나안 원주민을 멸절시키라는 구약 성경 말씀대로 실천한다면서 인종청소를 합리화하면 안 된다. 구약 성경의 어떤 사건은 영적인 교훈을 위해 주어진 사건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는 그 말씀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잘 분별하라. 내면에서 생기는 어떤 일을 하라는 감동도 진짜 하나님의 뜻인지 잘 분별하라. 어떤 여자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자살하란 음성을 주셨다고 한다. 그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빙자한 사탄의 음성이다. 마음속에 생기는 어떤 음성을 무조건 따르기보다 그 음성이 성경 말씀과 성경 원리에 맞는지를 먼저 알라. 잘못된 순종은 큰 해를 끼친다.
사이비 교주의 거짓 예언에 미혹되지 말라. 거짓 예언은 현재의 사려 깊은 순종을 약화시킨다. 순종하지 않아도 미래가 똑같이 펼쳐진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힘써 순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예언을 내세운 거짓 예언에 속지 않도록 주의하라. 현재 매 순간의 순종이 정교한 예언보다 중요하다. 기도하는 핵심 이유도 말씀대로 순종할 힘을 얻기 위한 것이지 미래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를 알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보여 주소서.”라는 기도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복된 기도다.
3. 교조주의에 빠지지 말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의 경계가 아브라함의 횃불 언약이 언급된 창세기 15장 18절에는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로 간단히 묘사되지만 본문에는 각 성읍의 이름까지 언급하며 땅의 경계를 세세히 설정해 주셨다. 그처럼 하나님의 본질적인 약속은 같아도 계시의 내용은 점차 발전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 구약과 신약은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가치는 동등하지만 신약은 구약보다 더 발전적이고 구체적으로 계시된 말씀이다.
성경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절대적인 법으로써 본질적인 면에서 말씀의 바탕이 같다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말씀에 대한 해석이나 적용이 점진적으로 달라질 수는 있다. 그러므로 성경 자구 하나하나에 매달려 남을 얽매는 율법주의나 교조주의를 삼가라. 더 나아가 특별한 상황에서만 적용될 말씀으로 남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영성을 자랑하면 마치 욥을 위로하러 왔다가 정죄한 욥의 세 친구처럼 비정한 사람이 된다. 고난당하는 자 앞에서 함부로 고난을 해석하기보다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훨씬 복된 자세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따지며 쉽게 충고하고 설교하기에 인간관계는 더 얽히고 그 과정에서 고난당하는 자들은 더 고난당한다. 결국 욥의 고난이 주는 깊은 메시지는 인간의 연약성과 하나님의 위대성에 대한 깨달음이 고난을 극복하게 하고 정죄로 무너진 인간관계를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그처럼 인생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이 위대성을 깨달아 순탄할 때는 최대한 겸손하고 어려울 때는 최대한 용기를 내라.
4. 세밀하게 계획을 세우라
본문 3-12절까지는 가나안의 동서남북 경계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아홉 지파 반에게 제비 뽑아 받게 하라고 명령하셨고 그 외에 두 지파 반은 요단 강 동편 땅을 기업으로 받게 하셨다(13-15절). 그때 땅을 기업으로 나눌 자로 아론의 셋째 아들인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모세의 후계자인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지정하셨고 기업의 땅을 나누기 위해 각 지파마다 한 명의 지휘관을 택하게 하셨다(16-18절).
왜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대한 상세한 지경의 한계를 정하시고 땅을 분배하는 지휘관까지 지명하셨는가? 공동체의 비전아 잘 성취되게 하고 비전 성취 후에 혼란이 없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이 복을 약속하셨어도 “믿습니다.”라고 소리치면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아가지 말고 세밀한 계획을 하고 나아가라. 계획을 잘 세울수록 비전 성취와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계획이 없으면 시간과 재정과 크게 낭비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과 지혜롭게 잘 계획하는 것을 겸비하라.
계획을 세울 때는 두 가지를 주의하라. 첫째,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라. 중요하지 않은 일에 너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면 시간을 허비하면서 정작 크고 중요한 일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무리하게 계획을 세우지 말라. 무리하게 계획하고 추진한 것이 실패로 끝나면 리더십과 자신감을 잃기 때문이다. 지혜롭게 계획해야 좋은 인생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계획이 없는 삶은 작전이 없이 전쟁처럼 결국 패배한다.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서도 중요한 일을 잘 분별하고 세심하게 계획해서 가나안의 비전을 이뤄내라.
가나안 땅의 경계
민 34:1-15 / 구성교회
초등학교 때 학교 책상은 나무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짝과 함께 쓰는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꽤 넓었죠. 그런데 거의 모든 책상에는 가운데 ‘선’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혼자 넓게 쓰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고, 옆 친구가 내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이 그린 것이기도 하죠. 특히 남자, 여자가 같은 책상을 쓰게 되면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이상하게 선을 그어놓고 서로 넘어가지 않기로 약속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자기 ‘영역’을 중요하게 여기며 성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내 영역을 소유하고 지킨다는 것이 좋은 의미가 될까요?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한 번 스스로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니 내 것이라고 우길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 너무 깊이 물들어 있다 보니 많이 소유해야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며 왜 경계를 나누셨을까요? 그냥 알아서 살라고 하던지, 아니면 굳이 12지파를 나누기보다는 지파끼리 적당히 섞여 살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데 말이죠. 하나님이 12지파의 땅을 분배하시며 경계를 설정하신 이유를 생각해보니 어쩌면 인구가 많은 지파가 적은 지파의 땅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거나, 힘이 센(ex. 장자) 사람이 약한 사람의 땅을 빼앗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의 경계를 남쪽(3~5절)부터 시작하여 시계 방향으로 서쪽(6절), 북쪽(7~9절), 동쪽(10~12절) 순으로 말씀합니다. 경계가 자세히 묘사된 것으로 볼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될 땅을 아주 자세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에게도 땅을 나눠주라고 말씀하시며 분쟁이 일어날 원인을 제거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두 지파 반에게 땅을 주라고 말씀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툼을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내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때부터 나의 삶과 나의 모든 것이 주님 것이라는 고백에서 벗어나 내 것은 내 것이고 주님 것도 내 것이라는 탐욕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나의 삶에 크고 작은 경계를 설정해 놓으셨습니다. 만약 이것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끊임없는 불평과 원망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내 상황에 맞는 경계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이 주신 것을 기쁘게 받아들여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는 데 노력하고, 주님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더욱 아름답게 세워가는 하나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미리 가보는 성지순례-예수님의 발자취
미리 가보는 성지순례-예수님의 발자취 (1)
[본지가 매년 주최하는 세계한인목회자세미나가 2013년에는 이스라엘에서 개최된다. 2013년 4월 9일(화)부터 종래와 같이 3박4일간의 세미나를 마치고 12일(금) 오전부터 시작되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성지순례가 시작된다. 이에 본지는 이번 호부터 매 호마다 ‘미리 가보는 성지순례-예수님의 발자취’를 소개하며 세미나 참석자들의 이해를 돕고 독자들에게도 예수님의 사역현장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이 원고는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학장 장영춘 목사) 2012년 가을학기 특강 “성경의 역사와 지리”(강의자 김주경 목사)를 수강한 학생들의 연구조사 보고서에서 발췌했음을 밝힌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애독을 바란다. [편집자주]]
성경지리는 성경 신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로 지형지리, 역사지리, 신학적 지리로 구분된다. 이스라엘 땅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해주는 시청각 자료가 되는 셈이다.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위치는 1)고대(4,000년 전) 근동(영국 기준)과 애굽의 문명의 교량적 위치 2)사막과 바다의 중간지대 3)홍해, 지중해, 흑해, 카스피안해, 페르시아만 5대 바다의 중심지 4)강들의 중간지역(유브라데스 2,700km, 티그리스 1,900km, 나일강 6,632km) 5)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3대륙의 교차점으로 볼 수 있다.
성경적 근거는 에스겔5:5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 두어 열방으로 둘러있게 하였거늘”이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나타내는 신4:31, 신28:58, 68, 대하36:15-20 등으로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지리적 개관
1. 명칭
1)가나안=보라색, 낮은 땅(창10:19, 민34:2) 2)이스라엘(창32:28, 창35:10) 3)유대(다), 시온(Zion) 4)시리아(Roman province of Syria palaestine) 5)팔레스타인(창21:32) 6)①약속의 땅(창12:7) ②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3:8) ③이스라엘 땅(삼상13:19) ④이스라엘 자손의 땅(수11:22) 7)①거룩한 땅(슥2:12) ②아름다운 땅(겔20:6, 15) 2. 경계
1)동(요단계곡/시리아 사막) 2)서(지중해) 3)남(남방/네게브) 4)북(헬몬산 2,814m) * 성경적 근거 민 34:1-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 너희 남방은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니 너희 남편 경계는 동편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돌아서 아그랍빔 언덕 남편에 이르고 신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 남방에 이르고 또 하살아달을 지나 아스몬에 이르고 아스몬에서 돌아서 애굽 시내를 지나 바다까지 이르느니라 서편경계는 대해가 경계가 되나니 이는 너희의 서편 경계니라 북편 경계는 이러하니 대해에서부터 호르산까지 긋고 호르산에서 그어 하맛 어귀에 이르러 스닷에 미치고 그 경계가 또 시브론을 지나 하살에난에 미치나니 이는 너희 북편 경계니라 너희의 동편 경계는 하살에난에서 그어 스밤에 이르고 그 경계가 또 스밤에서 리블라로 내려가서 아인 동편에 이르고 또 내려가서 긴네렛 동편 해변에 미치고 그 경계가 또 요단으로 내려가서 염해에 미치나니 너희 땅의 사방경계가 이러하니라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얻을 땅이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라고 명하셨나니 이는 르우벤 자손의 지파와 갓 자손의 지파가 함께 그들의 종족대로 그 기업을 받았고 므낫세의 반 지파도 기업을 받았음이라 이 두 지파와 반 지파가 여리고 맞은편 요단 건너편 곧 해 돋는 편에서 그 기업을 받았느니라”
3. 이스라엘 지형/지역 구분
(240km x 75km, 420km) *4 수직지역 분할(n/s longitudinal zone)
1)해안평야(The coastal Plain)
해안평야의 경계는 남쪽의 애굽강에서 북쪽의 로쉬-하니크라 혹은 두로의 사닥다리까지 이르는 약 300km 거리의 지역으로서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로 오늘날 2/3의 성지인구가 거주하는 가장 비옥한 지역으로써 중앙산지의 석회암이 풍화된 ‘테라로사’(붉은 땅)가 빗물에 씻겨 내려와서 비옥한 충적토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강우량이 많을 뿐 아니라 산지에서 내려오는 강들로 인하여 풍부한 물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여건은 좋은 농경지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샤론평야와 같은 쓸모없는 늪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당시 세계의 양대 문명의 중심지였던 바벨론과 애굽을 육상으로 연결시켜주는 가교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양쪽으로부터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형적인 특징이 해안선이 내륙의 산지와 평행선을 이루는 일자해안이라서 바다로 진출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특별히 신앙적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은 가나안 땅이었으므로 그들은 바다에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따라서 항구개발에 별로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게다가 배를 타고 이 땅에서 멀어지면 하나님의 낯으로부터 멀어지는 줄로 생각했다(요나서).
또한 지형적으로 두개의 산인 지중해 쪽으로 돌출되어 있는 갈멜산과 로쉬-하니크라와 세 개의 인 갈멜산 아래쪽의 악어강, 아벡에서 발원하여 욥바 근처를 흐르는 야르코강, 그리고 해안 평야의 남쪽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애굽강에 의하여 악고평야, 돌평야, 샤론평야, 블레셋평야의 네 개의 평야로 구분된다. 기후를 살펴보면 이집트의 건기 아열대 기후와 북쪽 레바논의 습기 아열대 기후가 교차되는 지역이므로 서쪽으로 갈수록 강우량이 많아짐을 볼 수 있고, 강우량과 더불어 이슬이 내리는 날수가 연중 200일이 넘으며, 이 이슬비는 이스라엘 여름철의 농작물 작황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지역의 경제를 살펴보면 바다와 관련해 일반적으로 항구의 입지 조건으로 부적합하지만 욥바나 도르 등은 고대로부터 물자 수송 및 여행객들의 해상교통의 편이 제공돼 아스글론과 아스돗은 어업이 발달했다. 소금에 절인 고기 수출로 유명했으며 이 지역 해안의 조개껍질에서 두루의 자주색 염료라 불리우는 염료가 재취되는데 그 영향으로 이 지역에는 일찍부터 옷감 직조업이 발달됐다. 농업과 관련해서는 해안을 따라 발달한 모래 언덕으로 인해 농업이 불가능했지만 모래 언덕과 산지 사이사이에 비옥한 충적토 지역이 형성됐다. 불레셋 평야는 곡식 생산에 적합하지만 샤론평야의 경우 많은 늪지대와 울창한 삼림으로 농업의 발달이 어려운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