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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전작경(磨磚作鏡)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든다는 뜻으로, 실천을 중시하라는 의미의 말이다.
磨 : 갈 마(石/11)
磚 : 벽돌 전(石/11)
作 : 지을 작(亻/5)
鏡 : 거울 경(金/11)
출전 : 오등회원(五燈會元)
磨磚作鏡不爲難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지
忽地生光照大千
홀연히 빛이 나와 온 세상을 비추리라.
堪笑坐禪求佛者
우스워라, 좌선하며 부처를 찾는 자여,
至今牛上更加鞭
지금까지 채찍으로 소만 때리고 있구나.
불인요원(佛印了元) 선사가 마경대(磨鏡臺)의 설화를 두고 지은 시다.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가 좌선을 열심히 하고 있는 마조도일(馬祖道一)에게 물었다. “스님은 좌선을 해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
마조가 말했다.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회양선사는 곧 벽돌을 가져와 마조 곁에서 갈았다. 이것을 보고 마조가 물었다. “벽돌을 갈아서 어쩌려 하십니까?”
“거울을 만들려 하오.”
“벽돌을 간다고 어떻게 거울이 되겠습니까?”
“벽돌을 갈아 거울이 되지 못한다면 좌선하여 어떻게 부처가 되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가 수레를 끌고 가다가 가지 않는다면 수레를 때려야 하겠는가, 소를 때려야 하겠는가?”
회양선사의 가르침을 듣고 마조는 곧바로 깨달음을 얻었다.
마명보살의 대장엄경론에 이 수레와 벽돌 갈기의 비유가 나온다.
몸을 괴롭힌다고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겠는가? 소가 수레를 끌고 가는데 수레가 멈추었다면 수레를 채찍질해야 하겠는가? 소를 채찍질해야 하겠는가? 마땅히 소를 채찍질해야 수레가 움직이리니, 마치 몸은 수레와 같고 마음은 소와 같다.
이는 어떤 사람이 기왓장이나 돌을 사자에게 던지면 영리한 사자는 사람을 향해 쫓아오겠지만 어리석은 개는 기왓장과 돌을 쫓아가는 것과 같다.
앉아서 하는 좌선만이 선이 아니다. 행주좌와(行住坐臥; 걷고 머물고 앉는 것 눕는 것 등 동작의 네 가지 근본), 어묵동정(語黙動靜; 말과 침묵 움직임 중지)이 모두 선이 아닌 것이 없다.
일상의 평상심이 불도(佛道)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중생 곁으로 나아가 죽어가는 중생을 살려내는 것이 참 부처가 아닐까?
한산자시집(寒山子詩集)
蒸砂擬作飯(증사의작반)
臨渴始掘井(임갈시굴정)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 하고, 목이 말라서야 우물을 파기 시작하네.
用力磨碌磚(용력마록전)
那堪將作鏡(나감장작경)
애써 벽돌을 갈아 본들, 어찌 거울을 만들 수 있겠는가?
佛說元平等(불설원평등)
總有眞如性(총유진여성)
부처님 말씀에는 “원래 평등하여, 모두 진여의 참 성품이 있다”고 하네.
但自審思量(단자심사량)
不用閒爭競(불용한쟁경)
다만 스스로 헤아려 생각하면 찾을 수 있는데, 부질없이 밖으로 찾아 다툴 필요 없네.
음란하며 선을 닦는 건 모래 쪄서 밥 짓는 것과 같고, 살생하며 선을 닦는 건 귀 막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
(해설)
이 시는 5언율시로서 선구나 선의 일화 또는 경전의 내용을 인용 용사(用事)한 전형적인 선전시(禪典詩)이다.
전반부(1,2연)에서는 모래를 쩌서 밥을 지을려고 하고, 목이 말라서야 우물을 파기 시작하고,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는 어리석고 잘못된 수행자를 경전이나 선어록을 인용하여 시화(詩化)하였다.
고전을 많이 습득한 박식한 면모는 보이나 시문학적 측면에서 보면 창조성이 결여된 작품이다. 한시의 기초가 되는 압운(押韻)은 되어 있다.
후반부(3,4연)에서는 본래 자성이 청정하여 중생과 부처가 차별이 없는 진여불성을 완전하게 구족(具足) 되었음으로 부질없이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하지 말고 스스로 마음 안에서 찾으라는 시법시(示法詩)이다.
1구;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 하고(蒸砂擬作飯)는 어리석은 수행을 가리킨다. 모래를 백년을 삶는다고 밥이 되겠는가? 이 말의 출처는 '능엄경'이다.
若不斷淫 修禪定者,
如蒸沙石 欲成其飯.
經百千劫 只名熱沙.
음란한 마음을 끊지 않고 선정 수행을 하는 것은,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 백천 겁을 삶아도 뜨거운 모래일 뿐이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는 근본 4계율을 잘 지켜야 참선 수행이 성취됨을 다음과 같이 '능엄경'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음란하면서 선을 닦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것과 같고, 살생하면서 선을 닦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다.
도둑질하면서 선을 닦는 것은 새는 물동이가 가득 차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거짓말을 하면서 선을 닦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드는 것과 같다.
이런 것은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라도 모두 악마의 도를 이룰 뿐이다.
초발심자경문 가운데 원효대사의 '발심수행장'에는 다음과 같이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비유를 설하고 있다.
有智人所行 蒸米作飯,
無智人所行 蒸沙作飯.
지혜있는 사람의 행위는 쌀을 쪄서 밥을 만드는 것과 같고, 지혜가 없는 사람의 소행은 모래를 쪄서 밥을 만드는 것과 같다.
2구; 목 마른 뒤에 우물을 판다는 비유는 준비 없이 갑자기 일을 당하여 허둥지둥 하는 태도를 뜻한다. 이 또한 어리석은 수행자이다.
3구와 4구; 애써 벽돌을 간다고 어찌 거울을 만들 수 있겠는가(用力磨碌磚 那堪將作鏡)는 유명한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드는 비유(磨磚成鏡)을 용사한 시구이다.
⏹ 마전성경(磨磚成鏡)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든다는 뜻으로, 형식보다 실천을 중시하라는 의미의 말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난관을 뚫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 되지 않을 일이 없다. 노력을 기울이면 성공이 눈앞에 온다는 교훈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한다.
관련 속담, 격언이나 성어도 부지기수로 많다. 90세 되는 노인이 마을 앞뒤에 있는 큰 산을 삽으로 파서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나, 자유분방한 시선 이백(李白)이 젊은 시절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위침(磨斧爲針) 이야기를 한 할머니에게서 듣고 대오각성 했다는 이야기는 특히 유명하다.
그런데 벽돌을 갈아(磨磚) 거울을 만든다고(成鏡) 하는 이 말은 더 쉬울 듯한데 나타내는 뜻이 전혀 달라 의외다. 선종(禪宗)의 통사인 불교서적 '오등회원(五燈會元)'에 실린 이야기를 먼저 보자.
당(唐)나라의 선승 남악회양(南嶽懷讓)이 좌선을 하고 있는 사문 마조도일(馬祖道一)에게 무엇 때문에 열심인지 물었다.
도일이 부처가 되기 위해서라고 하자 회양은 벽돌을 집어와 바위 위에 대고 갈기 시작했다. 무엇 하려 벽돌을 가느냐고 여쭈니 거울을 만든다고 했다. 벽돌이 어떻게 거울이 되느냐고 하자 좌선하여 부처가 어찌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소가 수레를 끌고 가다 멈춘다면 수레를 때려야 하는지 소를 때려야 하는지 비유하며 깨우쳤다. 몸은 수레와 같고 마음은 소와 같은데 일정한 형상이 아닌 부처가 되기 위해 좌선에만 집착한다면 이치를 통달하지 못한다는 가르침이었다. 형식보다는 실천을 중시하여 중생 곁으로 가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보람도 없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증사성반(蒸沙成飯),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 하는 것에 비유한 말도 있다.
당대(唐代)의 기승으로만 알려져 있고 생존 연대가 구구한 한산(寒山)의 시집에 문구가 나온다.
蒸砂擬作飯, 臨渴始掘井.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 하고, 목이 마르자 비로소 샘을 파네
用力磨碌磚, 那堪將作鏡.
아무리 애써 기왓장을 갈아도, 어찌 거울을 만들 수 있겠는가.
안으로 헤아려 생각하고 부질없이 밖으로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고 가르친다.
신라의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지은 불교입문서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有智人所行, 蒸米作飯.
無智人所行, 蒸沙作飯.
지혜있는 사람은 쌀을 쪄서 밥을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모래로 밥을 만드는 것과 같다.
준비 없이 일에 부닥친 뒤에야 허둥지둥 대책을 세워봐야 성사되기 어렵다. 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뒷전인 채 겉보기만 화려하게 꾸며 일을 하려 해도 잘 될 리가 없다. 그러다가 배가 산으로 가는데 자꾸 변명만 늘어놓는다.
▶️ 磨(갈 마)는 ❶형성문자로 礳(마)는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돌 석(石; 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문지르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麻(마)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磨자는 '갈다'나 '닳다', '문지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磨자는 石(돌 석)자와 麻(삼 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麻자는 삼베옷의 원료인 '삼'을 그늘에 말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삼을 수확하면 물에 쪄낸 후에 선선한 곳에 말렸다가 두드려 실을 얻는다. 磨자는 바로 그러한 과정을 표현한 글자로 마를 두드리던 돌과 마를 함께 그려 '돌을 문지르다' 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磨(마)는 돌을 문질러 갈다, 전(轉)하여 갈다의 뜻으로, ①돌을 갈다(단단한 물건에 대고 문지르거나 단단한 물건 사이에 넣어 으깨다) ②닳다, 닳아 없어지다 ③문지르다 ④고생하다 ⑤연자방아로 찧다 ⑥고생 ⑦연자(硏子)방아(연자매를 쓰는 방아) ⑧맷돌(곡식을 가는 데 쓰는 기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없을 무(亡), 사라질 소(消), 꺼질 멸(滅)이다. 용례로는 마찰되는 부분이 닳아서 작아지거나 없어짐을 마모(磨耗), 갈리어서 닳아 없어짐을 마멸(磨滅), 굵은 물건을 갈아서 부스러 뜨림을 마쇄(磨碎), 돌이나 쇠붙이 따위를 갈고 닦음을 마연(磨硏), 옥이나 돌이나 쇠붙이 따위를 갈아서 광을 냄 또는 그 빛을 마광(磨光), 벼루에 먹을 갊을 마묵(磨墨), 맷돌로 돌로 된 물건을 반드럽게 하려고 갊을 마석(磨石), 쇠붙이 따위를 가는 데에 쓰이는 모래를 마분(磨紛), 서로 쓸리어 닳음을 마손(磨損), 석벽을 쪼아 갈아서 글자나 그림을 새김을 마애(磨崖), 갈고 닦음으로 노력을 거듭하여 정신이나 학문이나 기술을 닦음을 연마(硏磨), 부서져서 없어지지 아니함을 불마(不磨), 학문이나 기술을 갈고 닦음을 강마(講磨), 닳아서 줄어듦이나 덜 닳게 함을 감마(減磨), 절구로 곡식을 빻거나 찧으며 떡을 치기도 하는 기구를 구마(臼磨), 깎이고 갈림으로 갈아서 적게 함을 삭마(削磨), 옥 따위를 갈고 닦음으로 수행하여 학문이나 기예나 정신 따위를 향상 시킴을 탁마(琢磨),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라는 뜻으로 학문이나 인격을 갈고 닦는다는 말을 절마(切磨),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도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있는 인내로 성공하고야 만다는 말을 마부위침(磨斧爲針),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라는 뜻으로 학문이나 인격을 갈고 닦음을 일컫는 말을 절차탁마(切磋琢磨), 때를 벗기고 닦아 광채를 낸다는 뜻으로 사람의 결점을 고치고 장점을 발휘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괄구마광(刮垢磨光), 쇠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정성을 다하여 노력하면 아무리 힘든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말을 철저마침(鐵杵磨鍼), 닳아서 없어지는 세월이라는 뜻으로 하는 일없이 헛되이 세월만 보냄을 이르는 말을 소마세월(消磨歲月) 등에 쓰인다.
▶️ 磚(벽돌 전, 둥근 모양 타)은 형성문자로 甎(전)의 속자(俗字), 甎(전)은 본자(本字), 砖(전)은 간자(簡字), 塼(전)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돌 석(石; 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專(전)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磚(전)은 동양 건축 용재의 하나인 벽돌이나 타일과 비슷하며 흙을 구워 방형 또는 장방형으로 넓적하게 만들며, 건축물 또는 분묘 따위의 벽이나 바닥 등에 쓰인다. 그 모양과 무늬가 여러 가지이며, 수법(手法)이 우수하다. 모양에 따라 대방전(大方甎), 공전(空甎), 문전(文甎) 따위가 있다. 낙랑(樂浪) 시대의 고분(古墳)과 건축물에서 많이 출토(出土) 되었다. 중국에서는 주대(周代)에 시작되어 한대(漢代)에 발달했다. 그래서 磚(전, 타)은 ①벽돌 ②바닥에 까는 벽돌, 그리고 ⓐ둥근 모양(타)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벽돌로 시멘트와 모래를 버무려 틀에 박아 건조한 네모진 건축 재료를 전석(磚石), 벽돌과 기와를 전와(磚瓦), 벽돌로 쌓은 벽을 전벽(磚壁), 고분의 벽이 벽돌로 축조된 것을 전곽(磚槨), 무늬를 놓아 만든 벽돌을 인전(印磚), 네모진 벽돌을 방전(方磚), 구멍을 뚫어 만든 벽돌을 혈전(穴磚), 옛날의 벽돌과 기와를 고전(古磚),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든다는 뜻으로 실천을 중시하라는 말을 마전작경(磨磚作鏡) 등에 쓰인다.
▶️ 作(지을 작, 저주 저, 만들 주)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㑅(작)의 본자(本字), 做(주)는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乍(사, 작)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作자는 ‘짓다’나 ‘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作자는 人(사람 인)자와 乍(잠깐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乍자는 옷깃에 바느질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짓다’나 ‘만들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옷깃에 바느질하는 것은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작업하기가 쉬웠었는지 乍자는 후에 ‘잠깐’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소전에서는 여기에 人자를 더한 作자가 ‘만들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作(작)은 (1)작품(作品) 제작(製作), 저작(著作)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작황(作況)이나 또는 농사(農事)의 뜻으로 나타내는 말 (3)작전(作戰) 등의 뜻으로 ①짓다, 만들다 ②창작(創作)하다 ③일하다, 노동(勞動)하다 ④행하다, 행동하다 ⑤부리다, ~하게 하다 ⑥일어나다 ⑦일으키다 ⑧이르다(어떤 정도나 범위에 미치다),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⑨비롯하다 ⑩삼다, 임명하다 ⑪닮다 ⑫농사(農事) ⑬일, 사업(事業), 공사(工事) ⑭저작(著作), 작품(作品) 그리고 저주 저의 경우는 ⓐ저주(詛呪)(저) ⓑ저주하다(저) 그리고 만들 주의 경우는 ㉠만들다(=做)(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을 찬(撰), 지을 조(造), 지을 제(製)이다. 용례로는 기계의 운동 부분의 움직임을 작동(作動), 사물 또는 사람의 이름을 지음을 작명(作名), 서로 헤어짐을 작별(作別), 만든 물품을 작품(作品), 문학이나 예술의 창작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작가(作家), 일을 결정함을 작정(作定), 마음을 단단히 먹음을 작심(作心), 싸움을 진행하는 방법을 세움을 작전(作戰), 악곡을 창작함을 작곡(作曲), 글을 지음 또는 그 글을 작문(作文), 일터에서 연장이나 기계를 가지고 일을 함을 작업(作業), 농작의 잘 되고 잘못된 상황을 작황(作況), 움직이게 되는 힘을 작용(作用), 무리를 이룸을 작당(作黨), 처음으로 함을 시작(始作), 재료를 가지고 물건을 만듦을 제작(製作), 물건을 지어서 만듦이나 일부러 무엇과 비슷하게 만듦을 조작(造作), 기계 등을 움직이어 작업함을 조작(操作), 떨쳐서 일으킴 또는 일어남을 진작(振作),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는 일 또는 그 움직임을 동작(動作), 토지를 갈아서 농작물을 심음을 경작(耕作), 썩 잘된 글이나 작품을 걸작(傑作), 처음으로 만듦을 창작(創作), 사람은 마음을 먹기에 따라 광인도 될 수 있고 성인도 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작광작성(作狂作聖), 의견이 서로 달라서 일을 결정하지 못함을 일컫는 말을 작사도방(作舍道傍), 의리로써 형제 관계를 맺음 또는 그 형제를 일컫는 말을 작의형제(作義兄弟), 마음 먹은 지 삼일이 못간다는 뜻으로 결심이 얼마 되지 않아 흐지부지 된다는 말을 작심삼일(作心三日), 끊임없이 힘써 함을 이르는 말을 작지불이(作之不已),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 있게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을 마부작침(磨斧作針),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를 자기가 받음을 일컫는 말을 자작자수(自作自受), 낡은 것을 바꾸어 새 것으로 만듦을 일컫는 말을 환부작신(換腐作新),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게 뒤에서 일을 꾸밈을 일컫는 말을 이면공작(裏面工作), 옛일에 구애됨이 없이 모범이 될 만한 일을 자기부터 처음으로 만들어 냄을 이르는 말을 자아작고(自我作古), 남의 의견이나 주장을 제쳐놓고 제 마음대로 처리하거나 방자하게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회빈작주(回賓作主) 등에 쓰인다.
▶️ 鏡(거울 경)은 ❶형성문자로 镜(경)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쇠 금(金; 광물, 금속, 날붙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竟(경)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竟(경)은 지경(地境), 鏡(경)은 옛 음(音)이 景(경; 그늘, 물건의 모양)과 같으며 뚜렷하게 비치는 일, 옛날엔 竟(경)이라 썼으나 나중에 동(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金(쇠금변)을 붙였다. ❷회의문자로 鏡자는 '거울'이나 '비추다', '거울로 삼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鏡자는 金(쇠 금)자와 竟(다할 경)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竟자는 '다하다'나 '마침내'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고대에서는 청동의 한쪽 면을 매끄럽게 갈아 거울로 사용했다. 鏡자에 金자가 쓰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거울은 사물을 비추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鏡자에는 '(사물을)비추다'나 '거울로 삼다(본보기로 하다)'와 같은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鏡(경)은 (1)렌즈나 그 밖의 물리적 원리로 물체를 관찰할 수 있게 만든 광학용 기구임을 나타내는 말 (2)안경(眼鏡)을 나타내는 말 (3)거울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거울 ②모범(模範) ③본보기 ④안경(眼鏡) ⑤광명(光明) ⑥길, 밝은 길 ⑦달, 명월(明月) ⑧못, 수면(水面) ⑨선모(旋毛: 가마) ⑩거울삼다, 본받다 ⑪비추다 ⑫비추어 보다 ⑬밝히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거울 감(鑑), 거울 감(鑒)이다. 용례로는 거울을 버티어 세우고 그 아래에 화장품 등을 넣는 서랍을 갖추어 만든 가구를 경가(鏡架), 지나날 잘못을 거울로 삼아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경계를 경계(鏡戒), 거울의 비치는 면을 경면(鏡面), 거울을 달아 세운 화장대의 한가지를 경대(鏡臺), 오목 거울 또는 볼록 거울의 연장면이 이루는 구의 중심을 경심(鏡心), 거울에 비치는 형상을 경영(鏡影), 눈을 보호하거나 시력을 돕기 위해 쓰는 기구를 안경(眼鏡), 기둥이나 벽에 걸 수 있게 된 거울을 괘경(掛鏡), 맑은 거울을 명경(明鏡), 구리를 재료로 하여서 만든 거울을 동경(銅鏡), 보배롭고 귀중한 거울을 보경(寶鏡), 얼굴이나 겨우 비춰 볼 만한 작은 거울을 면경(面鏡), 병원균 따위를 현미경으로 검사함을 검경(檢鏡), 얼음과 같이 맑고 밝은 달을 빙경(氷鏡), 달과 같이 밝은 마음을 심경(心鏡), 깨어진 거울로 이지러진 달을 비유하는 말 또는 부부의 금실이 좋지 않아 이혼하게 되는 일을 파경(破鏡), 붉은빛으로 빛나는 거울이라는 뜻으로 솟는 해를 비유한 말을 홍경(紅鏡), 거울 속의 꽃이나 물에 비친 달이라는 뜻으로 눈에 보이나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을 경화수월(鏡花水月), 거울 속의 미인이라는 뜻으로 실속이 없는 일이나 실속보다는 겉치레 뿐인 사람을 경중미인(鏡中美人),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이라는 뜻으로 사념이 전혀 없는 깨끗한 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명경지수(明鏡止水), 밝은 거울은 몇 번이나 사람의 얼굴을 비춰도 피로하지 않음을 이름을 명경불피(明鏡不疲), 진나라 거울이 높이 걸려 있다는 뜻으로 사리에 밝거나 판결이 공정함을 일컫는 말을 진경고현(秦鏡高懸), 깨진 거울이 다시 둥근 모습을 되찾음으로 생 이별한 부부가 다시 결합한 것을 이르는 말을 파경중원(破鏡重圓), 부부 사이의 영원한 이별을 서러워 하는 탄식을 일컫는 말을 파경지탄(破鏡之歎), 옥 같이 아름답고 거울 같이 맑은 얼굴을 일컫는 말을 옥모경안(玉貌鏡顔)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