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기도
주님...
죽음 앞에 서는 것은 곧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요, 그 순간은 겸허히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시간이겠지요.
순간순간 주님을 잊어버리고 정욕으로 행하는 나 자신을 십자가로 가져가나이다.
정욕으로 행하게 하는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케 하옵소서.
이 종의 부정함을 아시오니 주의 보혈을 통해 다시 일어서게 하시고 나의 남은 날을 새로 정하여 주님께 다시 드리오니 이 종이 영적 나실인으로 다시 서게 하소서.
나 스스로는 불의하여 주께 나아갈 수 없사오나 오직 주의 보혈을 힘입어 나아가나이다.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민 6:1-12
제목 : 영적 나실인인 그리스도인들이 범하는 죄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4.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5.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6.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지 하지 말 것이요
7. 그의 부모 형제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말미암아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
8.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9. 누가 갑자기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면 그의 몸을 정결하게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일곱째 날에 밀 것이며
10. 여덟째 날에 산 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회막 문에 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11. 제사장은 그 하나를 속죄제물로, 하나를 번제물로 드려서 그의 시체로 말미암아 얻은 죄를 속하고 또 그는 그 날에 그의 머리를 성결하게 할 것이며
12.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 년 된 숫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물로 드릴지니라. 자기의 몸을 구별한 때에 그의 몸을 더럽혔은즉 지나간 기간은 무효니라.
* 나의 묵상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나실인의 규례이다.
나실인이란 구별됨이란 뜻으로 세상과 구별되어 온전히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자를 말한다.
그런 자는 3가지 법을 지켜야 한다.
첫째,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나 독주로 된 초도 마시지 말아야 하고 포도즙과 생포도 건포도도 먹지 말 것이다.
나실인 서원을 한 날 동안은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어떤 것, 곧 씨나 껍질도 먹어서는 안 된다.
둘째, 나실인 서원을 한 자는 그 날 동안 머리카락을 잘라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증표가 그 머리에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서원을 한 모든 날 동안 그는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자매의 시체조차 그 주검으로 인하여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자기 몸을 구별하여 드리는 모든 날 동안 그는 하나님께 거룩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 곁에서 누가 죽어서 자신을 더럽히게 되면 그는 부정하게 된 날부터 제7일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여 머리를 밀 것이며 제8일에 산비둘기 두 마리와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회막에 와서 제사장에게 주어 하나는 속죄제물로 드리고 또 하나는 번제물로 드려서 시체로 부정한 죄를 속하고 또한 그는 그 날에 자신의 머리를 성결하게 하여야 하며, 자기 몸을 구별하여 나실인의 서원을 할 날을 다시 정하여 일년 된 숫양을 속건제물로 드려야 할 것이다.
나실인으로써 몸이 더럽혀졌으면 그 지나간 날을 무효가 되어 자신을 정결케 하고 새로 정하여야 한다.
구약시대에 서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서원은 강제 규정이 아니다.
이는 일반적인 서원이나 특별한 서원이나 마찬가지다.
서원이란 하나님께 구두로 자신을 바치거나 어떤 일을 행할 것을 맹세하는 것으로 이를 행하기 위하여 그에 합당한 제물을 바치거나 어떤 일을 삼가는 총체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를 자발적으로 서원하였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신 23:22-23).
서원의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여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함이다.
따라서 서원함으로 드릴 수 있는 대상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며 집과 토지 가축 등 자신이 소유한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다.
나실인은 ‘구별되다’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나자르’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는 구별된 자, 하나님께 드려진 자, 죄에서 떠나 성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자를 의미한다.
또한 예수님이 어렸을 적 사시던 나사렛 역시 이 나자르와 동일한 어근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나실인으로써 구별된 자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삶에서도 구별됨이 나타나야 한다.
보통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구별됨이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 제사를 하지 않는 것, 욕을 하지 않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익히 알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 예수 믿는 자들은 사실 현상적으로는 점을 치거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왜 그리스도인은 점을 치거나 제사를 하지 않는가? 그리고 왜 제사를 하면 안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 10: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정말 그리스도인들이 점을 치지 않고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인가?
눈으로 보이는 현상적으로는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의미상으로는 대부분 이런 죄를 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삼상 15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삼상 15:22-23)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행동으로 직접 점을 치러 점집에 가거나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절을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 자신은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다고 확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짜 점을 치고 우상을 섬기는 죄는 그것을 행위로 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불순종이다.
거역하는 것 곧 불순종은 점치는 죄와 같다.
완고한 것은 밀어내다 짓누르다는 뜻으로 교만함과 뻔뻔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런 완고함은 곧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요즘 그리스도인들이 현상적으로는 점을 치거나 귀신에게 제사하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의 중심으로는 이런 죄에 다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또한 내 뜻이 아닌 주의 뜻을 이러는 것인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로는 순종하나 정작 어렵고 힘든 일에는 순종하지 않거나 내 뜻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양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온전한 나실인이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그 의미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지없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온전한 나실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나 이런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완전한 나실인 되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넘어졌을지라도 그분을 힘입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온전한 나실인 되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일 것이다.
나실인으로 오신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셨다.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심지어 십자가를 지시는 것까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신 것이다.
(막 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 아버지의 품속에서부터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복종하신 것이다.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자요, 그분을 닮아가는 자이다.
물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써 완전한 삶을 살 수는 없다할지라도 한 걸음 한 걸음씩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그분을 닮아가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본분이다.
따라가고 닮는다는 것은 나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나의 생명이 아담의 생명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으로 바뀔 때 가능하다.
이는 곧 거듭남인데 땅에서 난 생명이 이제는 위로부터 태어난 생명, 아들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때 비로소 참된 나실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 영적 나실인이다.
그런데 나는 전혀 그 의미를 알지 못하였다.
그저 점을 치거나 귀신에게 절하지 않는 것으로 영적 나실인의 책임을 다한 것인 양 나는 나의 의로 살아왔고 내 뜻을 주님의 뜻보다 앞세우며 살아왔던 지극히 불순종하고 완고한 자였음을 고백한다.
이런 나는 사울과 같이 폐위되고 죽어야 마땅한 자이다.
이런 나에게 합당한 것은 오직 주님의 심판이다.
그런데 이 심판이 나에게 임하였고 나는 이 심판을 통하여 다시 살게 되었다.
어제도 몇몇 성도들과 만나서 담소를 나누면서 이런 고백을 하였다.
내가 복음을 알기 전까지는 정말 삐치기도 잘 하고, 화도 잘 내는 사람이었는데, 복음을 알고 아들의 생명이 내게 들어오니까 화를 내는 횟수가 급격히 줄고 잘 삐치지도 않는다고 말이다.
정말이지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고, 전에는 아내에 대한 서운함이 순간순간 있어서 삐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서운함도 삐침도 거의 없다.
이는 내가 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생명이 바뀌니까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에 100%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아들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옴으로 나는 점점 그분을 따라가며 또한 닮아가는 자가 된 것이다.
물론 이는 비근한 예이지만, 우리의 모든 삶에 아들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때 우리는 진정한 영적 나실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삶 위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므로 우리를 늘 언제나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은혜를 날마다 누리게 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은 나의 생명입니다.
나를 나 되게 하시며, 나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고, 또한 주님의 신부로써 정결하게 하심을 믿나이다.
당신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왔을 때 나는 이미 당신의 온전한 신부가 되었나이다.
비록 고멜과 같이 순간순간 넘어지고 자빠질지라도 날 위하여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혈을 힘입어 다시 일어나오니 그런 팔레시아가 주의 생명 안에서 날마다 흘러넘치게 하소서.
오늘부터 복음생명캠프가 시작되오니 주께서 함께하시고 사탄의 궤계는 온전히 막아주시며 이곳에 참석하는 이들이 오직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복음이 잘 들려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