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먼저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예수가 원수를 축복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할 수 있으며
몸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당신 아버님이 늘 그렇게 하시기 때문이다.
결국 하느님을 닮는(에페5,1) 그것이 영성의 전부다.
- 리처드 로어 신부 / 위쪽으로 떨어지다 p.160.
* *
우리들의 블루스,
동석과 옥동의 아픈 이야기 중에
한라산을 오르는 장면이 있다.
평생 제주에서 살아온 엄마가 한번도 한라산에 가보지 않았다는 말에
말기암 환자인 엄마와 동행하며 산행을 한다.
평생 미워했던 엄마에게,
죽음을 앞둔 엄마에게 동석은 묻는다.
"살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
"지금, 너하고 한라산 가는 지금!"
옥동이 걸음이 늦어 카페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동석은 서둘러 백록담 설경을 담으러 가지만 입산통제로
더이상 갈 수 없어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는다.
울먹이는 소리로
"나중에.... 나중에 눈말고 꽃피면 오자. 내가 꼭 데려올께!"
동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도 안다. 나중은 없다는 것을.
* *
나중은 없다.
지금만이 내가 풀어낼 수 있는 시간이다.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베이스캠프였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하느님께로 가는 길,
하느님의 마음을 닮는 길을 가르쳐주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나중에'라고 답할 뿐이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마태11,24)
시간을 쥐고 계신 분이 그분이심을 고백한다면
오늘이 그 뜻을 기억하며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떠남은 늘 불현듯 찾아온다.
지난 6월 29일 수요일에
웨스턴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고창근 바실리오 형제님 병자성사가 있었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워하셨고,
준비되지 않은 죽음 앞에 또 당황하셨습니다.
환하게 웃으시며 병자성사를 받으시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미루지 않고
병자성사를 할 수 있어 감사했고
또 목요일, 장례 미사를 봉헌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주님, 고창근 바실리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