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소울드레서 (SoulDresser) 원문보기 글쓴이: 환장의도가니탕
소울드레서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댓글 작성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주세요.
출처- 디미토리
태종 이방원
17세의 나이로 고려 말에 과거에 합격한 존나 엘리트
특히 대대로 무인집안인 이성계 집안에서 유일하게 과거에 붙은 초초엘리트 지능캐 (여기서부터 설정 끝남)
고려말 조선초 굵직한 사건에 대부분 관여했고
조선건국 1등공신
정치력 쩌는 야망충
킬방원이라 부를정도로 숙청과정에서 비정함을 보여줬으나
왕권강화라는 측면에서 이해가는 숙청이라는 반응도 만만치 않아서
까빠들끼리 토론할거리도 넘치는 캐릭터
심지어 아빠는 전쟁의 신 이성계 (수군의 전설이 이순신이라면 육군의 전설은 이성계라는 말이 있음)
아들은 우리나라 역대 넘버원 성군이라 불리는 세종대왕
젊은시절부터 노년시절까지 할얘기가 많아도 너무 많은 캐릭터
형제나 가신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었지만 역사상 역대급 아들바보였던 태종 이방원의 숨겨진 면모
대표적인 예로 조선 역사상 최고 성군인 세종이 있음
자기 아들 세종이 정치에만 매진할 수 있게 모든 환경을 조성해줌
체제정비해서 왕권강화하고 처갓집 식구들이랑 사돈네 몽둥이찜질 해서 외척 없애고 악역을 자처하며 아들을 위해 희생함
태종 이방원이 세종을 세자에 책봉하고 선위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두달
양녕을 폐하고 충녕을 세자로 책봉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선위를 통한 왕위계승을 하기로 마음을 먹음
(권력 정점에서 살아있을 때 다음 후계자에게 권력 넘겨준게 거의 세계 역사에 없을 일이라고 함)
세자 책봉 후, 한달만에 육대언들에게 선위 의사 표시
육대언들이 반대하자 한 말
'그 뜻을 드러내지 말라'
세자 책봉 후, 두달만에 세종에게 국보 전달
'호랑이를 18년동안 탔으니 그걸로 족하다'
그러면서 세종에게 남긴 명언
"이 애비가 모든 악업을 지고 갈테니 주상은 성군이 되시오"
대놓고 어화둥둥 물고 빨아서 대신들이 작작 좀 하라고 말리는데도 들은 척도 안함
이도(세종대왕 이름)만 생각하면 보고싶어서 눈물난다(ㅋㅋㅋㅋㅋ) 온갖 주접을 떤 기록까지 남아있음
원래 조선 예법상 상중에 고기가 금지인데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 이도(세종)가 2대왕 정종(방원의 친형) 승하 시에 고기를 못 먹어 고생한 거(?) 알고 자기 죽을 때는 주상께 고기 잡수시라는 유언까지 남김
그리고 그 두달 동안의 준비기간에 태종이 한 여러가지 일 중 눈길을 끄는 몇가지
1. 백성을 괴롭게 한다고 몇번 미뤄뒀던 토목 공사를 시작
'토목 공사는 백성을 괴롭게 하는 일이나 필요하다. 나 때에 끝내어 세자는 민심을 얻게 할 것이다'
훗날에도 한 말
'괴로움은 내가 감당하고 주상에게는 편한 것으로 내려주겠다'
2. 신분이 미천한 인재가 세자를 만나게 하는 것을 막지 말라
'양녕과 달리 세종은 게으르지도 않고 학문을 사랑하여
양녕과 같이 보호,단속할 필요가 없다.
세자에게 깊이 인심을 얻게 할 것이다. 전규에 얽메여 사람의 출입을 금지하지마라.
세자를 만나보고 싶어하는 인재가 있다면 초야의 미천한 신분이라도 만날 수 있게 하라'
태종이 넘겨준 인재들 중 황희. 장영실. 박자청. 김인. 윤득홍. 전흥. 하영 등은 모두 얼자 출신이거나 노비 출신
태종 픽으로 시작하여 세종 시대 오랜 기간 활약한 인재들
3. 세종의 장점은 뽐낼 자리 마련하고 아직 경험이 없는 분야는 자신을 보조하게 함
서연에서 세종의 학문에 대한 사랑을 널리 늘어놓은 후 10일 뒤 바로 세자의 첫 서연 자리를 마련했지만 군사지휘에 있어선 세자의 경호를 강화하고 의용위를 새로 설치하여 감무(왕을 도와 직무를 봄)하게 함.
후에 선위하고도 병권은 태종이 잡고 있지만 일은 태종이 하되 병조의 신하들 역시 두명을 제외하곤 전부 세종의 조회에 참석하게 하는 등 세종에게 힘을 실어줌
태종이 상왕이 된 후, 의식대로 병조의 조회를 받은 것은 단 한번
'주상이 어려 아직 군무에 경험이 없어 내가 잠시 맡고 있는 것이나 경험이 쌓이면 넘겨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내가 주상에게 군무에 대해 경험을 주었다면 어찌 주상이 지금껏 못하겠는가? 다만 동궁에 양녕이 있어 경험을 쌓게 하지 못했다'
태종이 상왕으로 있은 것은 총 4년
선위 직후, 군권은 내가 관리하고 국가의 중대사는 가신의 하나로 같이 참여하겠다 선언했으나
2년이 지난쯤엔
내가 늙었으니 얼른 세종이 정사를 다 보는 것이 효도다 언급하기도
그외 실록에 기록된 세종을 향한 애틋한 태종 이방원의 어록들
1. 세종은 비대하니 내가 끌고다니며 사냥을 하겠다(?)
2. 세종은 어진 왕이 될 것이다. 성심성의껏 보좌하라
주나라의 문왕같은 왕이 될 것이다(유교에서 가장 칭송받는 왕)
문화와 태평을 지킬 왕이다
3.우리 부자 간과 같은 일은 역대로 없었는데 작은아버지에게 자랑 못하는 것이 한이다
4.흉년이 왔으니 방물과 전은 세종한테만 올려라
5. 세종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 주상이 안움직이면 안움직일 것이고 움직이면 움직일 것이다
6. 심히 사랑하노라
7. 주상이 번거로운 것은 아나 항상 보고싶어 부른 것이니 비난하는 신하들이 있어도 어쩔수없다
8. 정종의 승하로 육식을 끊자
수척해지는 것 역시 불효이니 고기를 먹어라
9. 자식이 왕이 되어, 그 아비가 되어 누리게 되니 너무 행복하다( 왕의 아들이자 왕이셨던 분이..?)
이리 효심이 넘치니 근심이 없다
10. 원래도 너가 현명한줄은 알고 있었으나 훨씬 잘해나가는구나
11. 나라를 맡김에 이토록 사람을 잘 얻었으니 나같이 걱정없이 노닐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일 것이다. 역대에 중국에서도 부자간의 사이가 진실로 이런 경우는 없었고 고려에서도 부자간의 사이에 비평할 만한 것이 있었는데 나같은 경우는 천하에 없었는듯 하여 행복하다.
12. 매일 보고싶지만 참는다
13. 또한 주상은 힘드니 매일 오지 말라
14. 왕후를 간병하는 세종에게 대비의 병이 걱정되나 끼니를 잘 챙겨먹어 늙은 나에게 효도하라
안먹으려는 세종에게 같이 식사하게 함
15. 주상같은 임금은 얻기 어려우니 슬픔에 몸이 상하지 않게 잘 보필해라
(자매품 내가 죽어도 고기는 먹여라도 있음)
16. 어릴때부터 고기없이는 밥을 먹지 못했는데 초상 후에 고기를 이리 오래 끊다니 어찌 안이쁘겠는가
(그래도 몸 상하지 않게 먹여라)
17. 내가 여러날 어디 놀러가면 (세종이) 내 생각이 날텐데 어찌하나
또 태종이 나이 40세에 얻은 막둥이였던 성녕대군은
태종이 대궐에 끼고 다니면서 애가 다컸는데도 독립을 못하게 하고 계속 끼고 물고빨고다님
나중에 홍역 걸려 죽게되자 대성통곡하며 3일간 울고불고 난리남
태종이 자기 자식한테 쏟아붓는 애정의 10분의1을 처남이나 사돈 , 가신들에게 베풀었으면 역사가 달라졌을거라는 우스갯 소리도 나옴
+그외 백성에게도 따뜻했던 태종 이방원 일화
1 ) 어린애들이 공에다가 이방원, 충녕대군, 양녕대군의 이름을 붙이고 차고 놀다가 잡혀옴. 그것도 궁궐 앞에서!
당시 조선 조정은 건국 초기인지라 가뜩이나 불안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피휘까지 하던 시절인데 아무리 어린이라 한들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
부모까지 끌려와서 개작살을 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음
하지만 태종은 '애들이 뭘 알겠냐? 법이란게 어린애들 죽이려고 만든 게 아니다.' 라며 그냥 넘어가버림
혹시나 이후에도 문제가 생길 걸 염려해서 '어명'까지 내려 '두번 다시 이 일을 언급하지 말라' 고 못까지 박음
2 ) 조서라는 관리가 친구를 궁궐로 불러 하룻밤을 재움
다음날 아침 조서의 친구는 처음 보는 궐 안이 신기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그만 '태종의 침전' 까지 들어감
전제정 사회 체제에 왕의 침전에 들어간다는 건 암살을 시도했다는 걸로 받아들여져 극형을 처하는게 마땅하지만 태종은 '모르고 들어 왔다잖냐. 본인도 얼마나 놀랐겠냐. 다른 신하들이 알게 되면 죽여야 하네마네 시끄러울테니 몰래 내보내라' 며 조용히 친구를 궐 밖으로 빼 줌
( 왕이 몰래 내보냈는데도 이 일화가 알려진 계기도 웃긴데 당시에 태종을 스토커 수준으로 따라다니던 사관 덕분이었음 )
3 ) 손귀생이라는 시골 사람이 한양 구경을 하다가 궐 안까지 들어옴
당시 순금사에서 손귀생에게 곤장 80대 형을 내렸는데 그냥 죽으라는 소리였음
그 말을 들은 태종은 '시골 사람이 구경하다가 모르고 들어 왔다잖냐, 죽일 필요까지 있냐' 며 조서의 친구 예를 들어가며 방면함
4 ) 조운선 34척이 침몰하는 대형 사고가 일어나 천 여명이 죽음
당시 생존한 조운선 선원 중 하나가 도망치다 붙잡혔는데 당시 시대상을 생각하면 살아 남은 생존자에게 원망과 책임을 뒤집어 씌워 죽여도 이상하지 않았음
하지만 태종은 '내 책임이다. 요즘처럼 날씨가 안 좋으면 배를 띄우지 말았어야 하는데 띄운 내 잘못이다. 내가 백성보고 죽으라고 한 거야 ' 라며 아무 책임을 묻지 않음
또한 '쌀은 아깝지 않지만 사람 죽은게 너무 안타깝고 불쌍하다, 나도 이런데 부모와 가족들을 오죽하겠냐' 며 조운선이 아닌 소와 말을 통해 쌀을 운반을 하라는 명을 내림
당시 육로고 쌀을 운반하는 건 너무도 많은 비용이 든다며 대신들이 반대 했지만 '소나 말이 죽는게 사람 죽는 것보다야 낫다' 며 밀어 붙임
+원문에 첨부된 댓글들 몇개 (반응이 아니라 정보성댓글...? 이니까 괜찮겠지...?)
-심지어 자기 힘있고 정정할때 왕도 물려줌 그래서 대신들이 세종에게 반대하고 할때마다 그거 견제도 해주고 힘실어주고 왕 욕심으로 자기형제들 죽였다는 소리 듣지만 그렇다면 죽을때까지 선위 안했을텐데 미련없이 버리고 성군되라며 아들에게 물려줌
-저렇게 칼같고 불같은 태종도 어쩔줄 모르게했던게 사관 ㅋㅋㅋ 태종이 말에서 떨어졌나 했는데 사관이 그걸 기록 하고 있었고 태종이 창피하니까 기록하지 말라고 했는데 왕께서 기록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기록해버림 ㅋㅋㅋ
-그리고 동복형제들도 절대 안건드림ㅋㅋㅋㅋ끝까지 지켜줌 방간이한테도 안죽일거라고 마음 놓으라고 편지보낸뒤에 상왕되고나서도 신하들에게 죽이라 언급하지 말라고 계속 방어함
공신들은...좀 애매한게 죽일놈은 죽였고 지켜줄 애들은 상왕되서도 끝까지 방어하며 지켜줌..그 기준은 태종만 알겠지만? 물론 죽이라는걸 계속 살려준거고 이미 유배는 보내버린 후였..(사실 보면 조선시대엔 신하들이 더 죽이라 난리임 물론 태종은 정치적 능력이 뛰어나서 그걸 잘 이용한 왕이기도 하지만) 물론 세종때까지 잘 산 공신들도 많은데 주로 다들 조용조용 살았는지 직책 대비 별로 안유명함;별개없음
외척은...증말 강씨를 싫어했나봄ㅋㅋㅋㅋ몇번이고 외척 조심해라 언급하고 내가 봐온게 있어서 걱정된다 언급하다 결국 킬ㅋㅋㅋ방석방번이는 처들도 나름 챙겨주고 군호 칭호도 줬다 제사도 지내줬다 이러는데 강씨한테는 그런 언급도 안보이는걸로 보아..분노가 강씨에게 몰빵한듯 방석방번이한테는 미안해하는 언급도 보임
그리고 태종은 의술 지식도 뛰어났는데 그래서 의원의 의도가 아닌 실수로 벌어진 일에는 너그러히 풀어준 일화도 있음 하루는 지어준 약재를 먹고 구토까지했지만 죽이려 그랬겠냐 살려주고 약 먼저 먹어야 했던 신하도 내가 먼저 먹으라 안했다 내 실수다하고 용서해줬다 함 성녕대군때도 담당 의원 둘도 죽이라는거 살려줬다 풀어주긴 한걸로ㅇㅇ
-진짜 인물 자체가 각종 스토리와 매력을 몰빵한 캐릭터임ㅋㅋㅋㅋㅋㅋ 엄청난 능력캐에 칼같은 냉정함에 카리스마 쩌는 인물인데 내 가족, 내 핏줄엔 따수운 남자... 본인만큼이나 카리스마있는 부인과의 애증의 관계ㅋㅋㅋㅋㅋ
-태종이 사냥을 좋아했는데 세종한테도 같이 하자고 해도 안하니까 삐졌다는 일화도 많음
-원경왕후랑 관계도 서사 오지잖아ㅋㅋㅋㅋㅋ 부인 처가 숙청해서 원수급이고 원경왕후 성격도 장난 아니라 둘이 맨날 으르렁 거렸는데 그와중에 둘사이에서 애는 많이 낳음 심지어 늦둥이도 낳음...그리고 둘이 맨날 싸워도 아들들 관한 일은 의견일치함
(+저 늦둥이가 위의 사진속 태종이 그렇게나 물고빨았다는 늦둥이인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녕대군 진짜 늦둥이에 몸도 약해서 엄청 끼고살았지...장가보내면 대군도 다 궐에서 출가하는게 법도인데 그런거 무시하고 그냥 궐안에 집 만들어주고 거기서 살게했음 ㅋㅋㅋㅋ 죽어라 싸워대던 원경왕후와도 성녕대군 문제에 한해서만큼은 의견차이가 없었을 정도. 그러다 성녕대군이 일찍 죽으니까 그 부인한테는 대부인이란 칭호까지 줬고 잘 해줬다함(군 부인은 보통 부부인임)
-나 진짜 이방원 사랑해... 너무 사랑해서 역사서 읽다 진짜로 눈물흘림ㅠㅠ 천재고, 냉혈한데, 따뜻하고, 귀여워... 조선왕 중에 유일하게 과거합격자인데(고려시절) 과거 시험 당시 동기 중에 최연소임. 그래서 신하들이랑 말싸움해도 절대 안져. 사람 죽이는 기준도 확고해. 본인이 생각했을 때 장차 조선에 걸림돌 되는 사람만 죽였어. 걸림돌 아니라고 생각하면 남들이 다 죽이라고 해도 살려둠. 실제로 이방원판단은 적중했고 아들인 세종은 성군이 되어 딱 정치만 해도 되는 환경 속에서 꽃피움. 킬방원이라고 하지만!!!! 동서고금 이방원처럼 죽인 사람이 없었다. 이방원 처럼 칼로 피보고 왕 된 사람은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이면 죽여버리고, 사람 죽인 숫자도 많음. 이방원은 아님ㅋㅋ 간언하고 귀찮게 해도 되도록이면 살렸고(실제로 이 기능을 정착시킨 왕이 태종임) 사람도 많이 안 죽임. 대신 자기 왕 되는데 도움 준 사람들, 외척, 이복형제 등을 죽여서 임팩트가 쎈 거. 결단력 쩌는 사람임.
-아버지 위해서, 조선 건국 위해서 정몽주를 죽였는데(실제로 3개월만에 건국 성공함), 돌아오는 건 개국공신 명단에도 없는 거. 아버지가 사랑하는 계모의 아주 어린 동복 동생을 세자 책봉함. 26살에 얼마나 배신감 느꼈을지. 그래도 아버지 이성계 돌아가실 때까지 효도하고 사랑함. 이쁨받고싶어하고ㅠㅠ.... 이것만 생각하면 방원맘 맘 쓰라림
-킬방원이면서 눈물 많은 것도 하... 넘 좋잖아요. 아버지 이성계가 전쟁의 신이고 한 번도 싸움에서 져본 적 없다는데, 결국 아들은 못 이기고 떠난 것도 발림. 그 패배가 너무 쓰라려 보였음. 이방원이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와 낳은 자식을 죽인 거니까. 여말선초에 걸출한 인물들이 너무너무 많은데 그 시대의 최종 승자인 것도 발림.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생각하면 제 눈깔도 마르지 않네요...
-실제로 조선왕 중에서 ‘자의’로 왕에서 물러나고 아들에게 양위해준 유일한 왕! 나머지는 쫓겨나거나 죽어서 아들에게 양위함. 태종 이방원은 세종대왕에게 세자 책봉하고 얼마 안 있어서 바로 상왕으로 물러남. 세종에게 모든 걸 양위한 이후 군권만 딱 쥐고 세종대왕한테 방해될 놈들 본인이 숙청(세종 손에 피 안 묻힌다고). 나머지 여생은 세종대왕 왕권 유지에 힘쓰다, 세종대왕님이 알아서 잘하실 사람이란 거 누구보다 잘 알아서 행복해함. 아들부심 뿜뿜. 말년엔 사냥하고 쉬었어.
-왕위물려주고 초기에 세종부인인 소헌왕후집도 외척세력 못설치게 한다고 역적누명?씌워서 킬시켰는데, 그때 신하들이 왕후도 죄인의 자식이니까 폐위해야되는거 아니냐고 막 몰아부쳤는데 며느리는 죄가없다고 다 쳐내고 막아주고 이뻐해줌.. 자기사람의 바운더리가 굉장히좁고 쳐내는 자신만의 기준이 확고하고 잔인하면서도 따뜻한 면이있는 굉장히 입체적인 사람임
-조선500년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생각해 조선이 망한 이유가 외척이었던거 생각하면 태종의 결단이 없었음 세종의 태평성대도 없었지 세계 역사를 봐도 망하는 왕조는 외척들이 개입해서 개판 만든 역사니까 그리고 지도자의 조건은 냉철한 판단과 카리스마라 생각해서 그 조건에 가장 부합되는 인물이기도 하고
캬 재밌다
방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