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삼월에
봄이 예년보다 이르게 닿은 삼월 다섯째 월요일이다. 코로나로 신학기 출발이 늦추어져 창원에 머물고 있다. 내일은 근무지 거제로 건너가 개학을 대비한 적응기를 가져야겠다. 당국에서는 학교 문을 마냥 닫아 놓을 수 없어 당분간 온라인 개학으로 비대면 수업을 해야 되지 싶다. 쌍방향 실시간 원격수업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갑자기 닥친 새로운 변화로 현기증이 날 정도다.
코로나로 예기치 않게 창원에서 보내는 마지막이 될 평일이지 싶다. 이른 시각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번개시장에서 김밥을 두 줄 마련 둔덕행 76번 농어촌버스를 탔다. 교외로 나가 인적이 드문 임도를 걸어볼 셈이다. 버스는 어시장과 댓거리를 둘러 밤밭고개를 넘어 진동으로 갔다. 환승장에 들렸다가 진전 면소재지를 지나 진전천을 따라 올라 일암과 대정을 지나 산골로 들었다.
올봄 지기와 둔덕 오실골에서 머위를 캐서 미산령을 넘어 함안 군북으로 나간 적이 두 차례 있다. 오봉산에서 건너온 낙남정맥이 여항산과 서북산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임시 수도 부산을 방어한 최후 전선으로 적과 치열한 교전이 있었던 험준한 산세다. 전쟁이 끝나고 육십 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산등선 곳곳엔 그 당시 파 놓은 참호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인적 드문 길을 즐겨 걷는 나에겐 미산령 임도가 적격이었다. 골옥방에서 이십여 분 머문 버스를 둔덕에서 나를 내려주고 되돌아갔다. 오곡재로 오르다가 오실골 입구 지난번 캤던 머위 자리를 살피니 현지인인 듯 한 할머니가 새로 돋아난 머위를 캐고 있었다. 일 주 사이에 비가 왔고 날씨 따뜻해 머위 순은 왕성하게 자라났다. 나는 산언덕 검불 속에서 머위와 달래는 몇 줌 캤다.
오곡재를 향해 오르다가 갈림길에서 미산령 방향으로 들었다.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아까 캔 머위와 달래를 가렸다. 일부 머위는 줄기가 굵어져 껍질을 까야 했다. 김밥을 한 줄 꺼내 곡차 안주로 삼아 잔을 비우면서 몇몇 지인에게 안부를 겸한 봄 향기가 묻어난 사진을 보냈다. 내일이면 코로나로 흐트러졌던 일상이 본래 대로 되돌아갈 즈음이라고 했다.
배낭을 추슬러 미산령을 향해 오르니 길섶에는 산괴불주머니가 노란 꽃을 탑처럼 쌓아 층층이 피었다. 해발 고도가 높아선지 뫼제비꽃과 남산제비꽃도 볼 수 있었다. 볕이 바른 자리엔 어김없이 양지꽃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계곡에 물이 흘러오는 기슭에서 귀한 산나물인 어수리를 보기도 했다. 산나물 맛이 좋아 임금님 수라상에 오를 만큼 유명세를 타 ‘어수리’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산허리를 돌아가는 임도를 따라가니 수중 갱신 지구가 나왔다. 우거진 잡목을 잘라내고 삼림 경영을 위한 임도를 개설하고 어린 나무들을 심어 가꾸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피니 헛개나무였다. 그 면적이 넓어 여항산 남사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V자로 겹겹이 골을 이루어 남으로 뻗쳤다. 그 바깥 어디쯤이 거제의 계룡산이나 앵산인 듯했다.
미산령에 닿아 정자에 올라 여항산과 둔덕 골짜기를 한 번 더 조망했다. 배낭을 풀어 남겨둔 김밥과 곡차를 마저 들었다. 식후 나아갈 방향은 북사면 비탈로 내려섰다. 경사가 가팔라 우회하는 임도를 다시 만들어두었다. 산사태가 난 비탈은 사방사업으로 보강해 두기도 했다. 생강나무꽃은 저물고 두릅 순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솔잎 부엽토에는 솜나물이 하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너럭바위가 펼쳐진 계곡으로 내려가 손과 얼굴을 씻고 양손을 짚고 엎디어 석간수를 받아 마셨다. 오염원이 없는 청정 계곡이라 웬만한 약수터나 샘물보다 더 깨끗했다. 가부좌 자세로 앉아 한동안 명상에 잠겼다가 일어났다. 남은 임도를 나가니 미산마을이었다. 동구 밖 길섶에서 달래를 몇 줌 캐 보탰다. 가을이면 곶감으로 유명한 파수마을을 거쳐 봉성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20.03.30
![](https://t1.daumcdn.net/cfile/cafe/99969F3E5E82784313)
![](https://t1.daumcdn.net/cfile/cafe/997222395E82784F13)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41F3C5E82785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