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년
터미널에서 겨우 잡아탄 택시는 더러웠다
삼성동 가자는 말을 듣고도,
기사는 쉽게 방향을 잡지 않더니
불붙은 담배를 창밖으로 휙 던지며
덤빌 듯이 거칠게 엑셀을 밟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욕을 하기 시작했다
삼성동에서 생선탕집을 하다가
집세가 두 배로 올라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했다
적의뿐인 그에게
삼성동까지 목숨을 내맡긴 나는
우선 그의 사투리에 묻은 고향에다
안간힘처럼 요즘 말로 코드를 맞춰보았다
그쪽이 고향인 사람과
사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속으로
이 시를 시대 풍자로 끌고 갈까
그냥 서정시로 갈까 망설이는 순간
그에게서
믿을 수 없는 한 소년이 튀어나왔다
한 해 여름 !
가난한 시골 소년이
쳐다볼 수 없는 서울 여학생을
땡볕처럼 눈부시게 쳐다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가을날
불현듯 그 여학생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마치 기적을 손에 쥔듯 떨려서
봉투를 쉽게 뜯지 못하고 있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친구 녀석이 휙 낚아채서
편지를 시퍼런 강물에 던져버렸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밤이 되면
흐르는 불빛 속을 가면서
그때 그 편지가 떠내려가던
시퍼런 급류 앞에서
속으로 통곡하는 소년을
본다고 했다
어느새 당도한 삼성동에
나는 무사히 내렸다
소년의 택시는 그 자리에서
좀체 움직일 줄 몰랐다
- 문정희 -
첫댓글 헐! 과연 기막힌...사연이네요..역시..^^
세상은 그런 수많은 곡절..비극이 넘치건만..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