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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쾌서(東床快婿)
동쪽 침상의 훌륭한 사위라는 뜻으로, 이상적인 훌륭한 사위를 이르는 말이다.
東 : 동녘 동(木/4)
床 : 평상 상(广/4)
快 : 쾌할 쾌(忄/4)
婿 : 사위 서(女/9)
동진(東晉)의 대장군 치감(郗鉴)이 재색을 겸비한 딸에게 사윗감을 찾아주고자 했다. 왕승상(王丞相)의 아들들은 서로 뒤질세라 사위 후보로 나섰다.
중국 역사상 가장 주목받는 행사가 된 당시의 사위 선발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사람은 천 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동상쾌서(東床快婿)이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동진의 태위(옛날 무관의 최상위 벼슬자리)이자 나라의 기둥이었던 치감의 딸 치선(郗璿)은 외모도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재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치감은 승상 왕도(王導)의 아들들이 뛰어난 인재라는 소식을 듣고 왕족인 이들과 사돈 관계를 맺고자 했다. 왕승상 역시 이 혼사에 대해 만족했다.
어느 날 치감은 수하(手下)를 왕도 집에 보내 사윗감을 고르게 했다. 왕도는 아들들이 동쪽 행랑채에 있으니 거기로 가서 고르라고 했다.
사윗감을 고르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 씨 아들들은 자신이 선발되길 바라며 한껏 치장한 채로 품위 있게 앉아있었다.
왕도의 집에서 돌아온 수하는 치감에게 “왕 씨 집안의 아들들은 과연 모두 출중한 외모와 뛰어난 재능을 겸비하고 있었으며 사위가 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중 한 명은 마치 사윗감 선발하는 일이 없는 듯 무관심한 표정으로 태연자약하게 배를 드러낸 채 침대 위에 누워서 호떡을 먹고 있었습니다.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라고 전했다.
하지만 치감은 도리어 크게 웃으며, “그가 바로 내가 찾던 사윗감이네!”라고 외쳤다. 그 후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그가 바로 왕희지(王羲之)임을 알게 됐고 바로 딸을 그에게 시집 보냈다.
치감은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 왕희지는 훗날 우군장군(右軍將軍)이 됐고, 중국 고금의 제일가는 서성(書聖)이 됐다. 또한, 그가 쓴 난정집서(蘭亭集序)는 수백 년 동안 대대로 모사돼 왔다.
어쩌면 왕희지가 이런 비범한 사람이었기에 그의 서법도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최고의 지위를 잃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훗날 ‘배를 드러내고 동쪽 침상에 눕다’라는 뜻의 탄복동상(坦腹東床), 동상탄복(東床坦腹)이라는 성어는 ‘사위가 되는 것’ 혹은 ‘사위’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동쪽 침상의 훌륭한 사위라는 뜻의 동상쾌서(東床快婿)라는 말 역시 여기에서 유래했다.
⏹ 왕희지(王羲之)는 누구인가?
그는 기원 321년에 태어나 379년에 사망한 진나라 왕씨 가문의 명망있는 후손으로 태어납니다.
그의 자(字)는 일소(逸少), 흔히 왕우군(王右軍)이라 부르는데 이 칭호는 그가 28세에 처음 참군(參軍) 벼슬에 나아간 이래 최고 높은 직위에 오른 것이 우군(右軍) 지위였기 때문에 '왕우군', 또는 '우군장군 왕희지'라 부르게 된 것이다.
당시의 평균 나이로는 적당한 수를 누린 듯 하지만 요즘으로 보면 조금 더 살았으면 훨씬 더 훌륭한 예술적 기예를 볼 것인데 아깝습니다.
암튼 왕희지 가문의 선대는 일찌기 서진(西晉)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정치적 가문으로 그 위상은 대단했지요.
서진이 무너지면서 왕씨일가는 서진의 후예 사마 ㅇㅇ씨를 대동하고 양자강을 건너 강남으로 황급히 피남(避南). 새로운 왕국을 세우지요.
이것이 동진(東晉)입니다. 말하자면 왕희지의 부친족벌은 동진 정권의 건국 공신들로써 부와 영화를 누린 명문거족으로 자연히 왕희지 역시 그런 가문의 후광을 업고 훌륭한 서예가로써의 조건을 누리게 됩니다.
왕희지의 부친은 왕광(王曠), 조부는 왕정(王正)인데 그의 배경에 큰 구실을 한 것은 누구보다 그의 삼촌인 왕도(王導)의 힘이 컷을 것입니다.
앞서 서진(西晉)의 말기에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이어서 5호의 침입을 계기로 영가(永嘉)의 난이 겹치자 서진은 남흉노(南匈奴; 몽고 지역의 부족국가)에게 멸망했습니다.
왕도는 서진이 망할 즈음에 왕손 사마예(司馬睿)를 업고 황급히 도강하여 망명국가를 세우니 이름하여 동진(東晉), 건국의 초석 역할을 합니다.
왕도는 도강시절 황급히 왕손을 업고 피난하였지만 서진의 최대 명필 종요(鍾繇)의 선시표를 품에 넣고 피신하였음은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이만큼 서예에 대한관심과 인식이 컷던 왕도삼촌의 지도와 당시 명필이었던 위부인(衛夫人)의 사승(師承)으로 왕희지는 어릴 적 부터 남다른 서법의 재주를 발전, 당대 최고의 명필로 승화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왕희지는 천하의 명필답게 어릴 적 부터 영특하고 남다르게 특이한 점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기록(세설신어)에 의하면 어려서 심한 발작증으로 말 더듬 증세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는 정사(正史) 진서(晉書) 80, 열전 제 50에서 '幼訥禦言, 人未之奇'라 한 것으로 증명됩니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이러한 그의 소심한 성격은 13세가 되면서 당시 군부의 실권자 周의를 만나고 부터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16세에 부인을 얻게 되는데 당시 太尉였던 치감이 문하생을 시켜 왕도의 가문에서 사윗감을 고르라고 보냅니다.
왕도는 치감의 사인에게 마침 행랑채어 놀고 있는 왕도 가문의 자제들에게 안내하는데 치감의 사인은 놀고 있는 자제들을 두루 살펴보자 다들 훌륭하여 딱히 누구를 골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치감 태위의 사인이 사윗감을 고르려 왔다는 소문에 왕가 자제들이 너도 나도 자신을 뽑냈을 것인데 오직 한사람 왕희지 만이 관심 없다는 듯이 요즘 평상에 배를 드러내놓고 누워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사인은 사실대로 주인 치감에게 결정을 짓지 못했음을 보고하자. 치감은 적임자라 하며 낙점 하니 왕희지는 곧 치감의 사위가 됩니다.
▶️ 東(동녘 동)은 ❶상형문자로 东(동)은 간자(簡字)이다. 東(동)의 옛 모양은 전대에 물건을 채워 아래 위를 묶은 모양인데, 나중에 방향의 東(동)으로 삼은 것은 해가 떠오르는 쪽의 방향이 동이므로 같은 음(音)의 말을 빈 것이다. 옛 사람은 東(동)은 動(동; 움직이다)과 같은 음(音)이며 動(동)은 봄에 만물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春(춘; 봄)은 동녘과 관계가 깊다고 결부시켰던 것이다. ❷상형문자로 東자는 ‘동쪽’이나 ‘동녘’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東자는 木(나무 목)자와 日(날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해(日)가 떠오르며 나무(木)에 걸린 모습으로 해석하곤 했었다. 그러나 갑골문이 발견된 이후에는 東자가 보따리를 꽁꽁 묶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東자의 본래 의미는 ‘묶다’나 ‘물건’이었다. 그러나 후에 방향을 나타내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동쪽’이나 ‘동녘’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다만 東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여전히 보따리와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보따리에는 곡식의 씨앗이 가득 들어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니 東자가 쓰인 重(무거울 중)자나 種(씨 종)자, 動(움직일 동)자, 量(헤아릴 량)자, 衝(찌를 충)자는 모두 곡식이 든 보따리로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東(동)은 (1)동쪽 (2)동가(東家)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동녘 ②동쪽 ③오른쪽 ④주인(主人) ⑤동쪽으로 가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서녘 서(西)이다. 용례로는 동쪽 방면을 동편(東便), 동쪽을 향함을 동향(東向), 동쪽의 땅을 동토(東土), 동쪽 지방을 동방(東方), 동쪽의 바다를 동해(東海), 어떤 지역의 동쪽 부분을 동부(東部), 동쪽으로 옮김을 동천(東遷), 동쪽으로 난 창을 동창(東窓),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동풍(東風), 동쪽에 있는 이웃을 동가(東家), 동쪽을 향함을 동향(東向), 동쪽에서 옴을 동래(東來), 동쪽 마을을 동촌(東村), 동쪽의 땅을 동토(東土), 동쪽에 있는 나라를 동방(東邦), 봄철에 농사를 지음 또는 그 농사를 동작(東作), 동쪽 방면이나 동쪽 편을 동편(東便), 동쪽 집에서 먹고 서쪽 집에서 잔다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동쪽을 묻는 데 서쪽을 대답한다는 동문서답(東問西答), 동쪽으로 뛰고 서쪽으로 뛴다는 동분서주(東奔西走), 동쪽과 서쪽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동서불변(東西不變), 동에서 번쩍 서에서 얼씬한다는 동섬서홀(東閃西忽) 등에 쓰인다.
▶️ 床(평상 상)은 ❶형성문자로 牀(상)의 속자(俗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엄 호(广; 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한층 더 높다는 뜻을 나타내는 牀(상)의 생략형인 木(목)으로 이루어졌다. 집안의 한층 더 높은 것, 마루, 또는 침대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床자는 '평상'이나 '마루'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床자는 广(집 엄)자와 木(나무 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본래 '평상'이라는 뜻은 牀(평상 상)자가 쓰였었고 床자는 속자(俗字)였다. 爿(나뭇조각 장)자는 생긴 모습이 마치 평상을 세워 그린 것과도 같아서 갑골문에서부터 '침대'나 '평상'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소전에서는 여기에 木자가 더해지면서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뜻을 전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본래는 牀자가 '평상'이라는 뜻으로 쓰였었지만, 해서에서부터는 속자였던 床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床(상)은 (1)밥상, 책상(冊床), 평상(平床) 따위의 통틀어 일컬음 (2)소반(小盤) 등의 뜻으로 ①평상(平床) ②상, 소반 ③마루 ④우물 난간(欄干) ⑤기물(器物)을 세는 단위 ⑥상 위에서 졸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반찬과 함께 상에 차려서 한 상씩 따로 파는 밥을 상반(床飯), 음식을 차려 놓은 상을 덮는 보자기를 상보(床褓), 관가 등에서 밥상을 나르고 잔심부름하는 아이를 상노(床奴), 음식상을 장만하여 갖춤을 상배(床排), 음식상의 끝이라는 뜻으로 연회석의 맨 끄트머리를 상초(床杪), 평상에 앉아서 하는 이야기를 상화(床話), 모판 흙을 상토(床土), 묘상에 씨를 뿌림을 상파(床播), 자리의 위에 일어나 앉았다는 뜻으로 병이 회복 되었음을 상상(床上), 책을 읽거나 글씨를 쓰는 데 받치고 쓰는 상을 책상(冊床), 병을 치료하거나 병의 예방 등을 연구하기 위해 실제로 환자를 접하는 것을 임상(臨床), 인공적으로 다습게 해서 식물을 기르는 설비를 온상(溫床), 하천의 바닥을 하상(河床), 잠을 깨어 자리에서 일어남을 기상(起床), 한 몫으로 혼자 먹게 차린 음식상을 독상(獨床), 마주 앉아서 서로 마주 보며 식사하는 일을 겸상(兼床), 손님을 대접하려고 차린 밥상을 객상(客床), 음식상을 물림을 퇴상(退床), 바다 밑바닥을 해상(海床), 길의 윗바닥을 도상(道床), 같은 침상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각기 딴 생각을 함을 이르는 말 또는 비유적으로 같은 입장의 일인데도 목표가 저마다 다름을 일컫는 말을 동상이몽(同床異夢), 글만 읽고 세상 물정에는 어두운 사람을 일컫는 말을 책상퇴물(冊床退物), 몸이 쇠약해서 침상에 기대어 몸을 지탱함을 일컫는 말을 계골지상(鷄骨之床),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죽은 사람은 장사지내지 못함을 일컫는 말을 적시재상(積屍在床) 등에 쓰인다.
▶️ 快(쾌할 쾌)는 ❶형성문자로 음(音)을 나타내는 夬(결, 쾌)와 마음에(心) 걸림이 없고 밝고 상쾌한 느낌이라는 뜻이 합(合)하여 '즐겁다'를 뜻한다. 제방의 일부분이 깎여 떨어져 나가 물이 흘러나감을 決(결)이라고 함과 같이 마음에 걸림이 없이 밝고 상쾌한 모양이 快(쾌)이다. 快(쾌)와 決(결)은 옛날 음(音)이 비슷하고, 의미도 관계가 있었다. ❷회의문자로 快자는 ‘시원하다’나 ‘상쾌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원하다’라는 것은 마음의 불편함이 없어 ‘기분이 좋다’라는 뜻이다. 快자는 心자와 夬(터놓을 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夬자는 활시위를 당겼다 놓는다는 뜻으로 ‘터놓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터놓다’라는 뜻을 가진 夬자에 心자가 결합한 快자는 ‘마음을 터놓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즉 마음이 홀가분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快(쾌)는 (1)감정의 근본 방향을 지속하여 나가려는 상태(狀態) (2)쾌감(快感) 등의 뜻으로, ①쾌(快)하다(마음이 유쾌하다), 상쾌(爽快)하다 ②시원하다 ③빠르다, 날래다 ④즐겁다, 기뻐하다 ⑤즐기다, 좋아하다 ⑥잘 들다, 날카롭다 ⑦병세가 좋아지다 ⑧방종(放縱)하다 ⑨제멋대로 하다, 방자(放恣)하다 ⑩바르다, 정당하다 ⑪오로지, 결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뽕나무 상(桑), 시원할 상(爽)이다. 용례로는 통쾌한 거사나 행동을 쾌거(快擧), 기분이 좋고 즐거움을 쾌락(快樂), 마음씨나 성질 또는 행동이 씩씩하고 활발함을 쾌활(快活), 금품을 마땅히 쓸 자리에 시원스럽게 내놓는 것을 쾌척(快擲), 심신에 적합하여 기분이 썩 좋음을 쾌적(快適), 쾌히 승낙함을 쾌락(快諾), 통쾌한 승리를 쾌승(快勝), 하늘이 상쾌하도록 맑게 갬을 쾌청(快晴), 상쾌하고 즐거운 느낌을 쾌감(快感), 병이나 상처가 깨끗이 나음을 쾌유(快癒), 건강이 완전히 회복됨을 쾌복(快服), 병이 완전히 나음을 쾌차(快差), 속도가 매우 빠름을 쾌속(快速), 아주 컨디션이 좋음을 쾌조(快調), 마음먹은 대로 잘되어 만족스럽게 여김을 쾌재(快哉), 시원스럽게 잘 닫는 말을 쾌마(快馬), 마음에 기쁘고도 통쾌함을 흔쾌(欣快), 마음이나 기분이 흐뭇하고 좋은 상태에 있음을 유쾌(愉快), 마음이 아주 시원하고 거뜬함을 상쾌(爽快), 밝고 말끔함으로 말이나 글 따위의 조리가 명백하여 듣기에 마음이 시원함을 명쾌(明快), 무슨 일이 못마땅하여 기분이 좋지 않음을 불쾌(不快), 아주 유쾌함으로 불평이나 불만스럽게 여기던 일이 뜻대로 잘 풀릴 때에 마음이 매우 상쾌함을 통쾌(痛快), 기분이 가볍하고 유쾌함을 경쾌(輕快), 병이 완전하게 나음을 완쾌(完快), 헝클어진 삼을 잘 드는 칼로 자른다는 뜻으로 복잡하게 얽힌 사물이나 비꼬인 문제들을 솜씨 있고 바르게 처리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쾌도난마(快刀亂麻), 기세 좋은 송아지는 이따금 제가 끄는 수레를 깨뜨린다는 뜻으로 장차 큰 일을 하려는 젊은 이는 스스로를 경계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쾌독파거(快犢破車), 쾌락이 오래 지속되어 도중에 그치지 않음을 쾌락불퇴(快樂不退), 쾌활한 사람의 시원스러운 행동을 쾌인쾌사(快人快事), 빨리 걸으면 걸음걸이가 고르지 않다는 뜻으로 일을 급히 서두르면 결과가 소루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쾌행무호보(快行無好步) 등에 쓰인다.
▶️ 婿(사위 서)는 형성문자로 壻(서)의 속자(俗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계집 녀(女; 여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胥(서)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婿(서)는 ①사위(딸의 남편을 이르는 말) ②남편(男便) ③벗(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 ④사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두 사람 이상의 남자 사이에 있어서 그 사람들의 아내들이 서로 자매 간 임으로 하여 맺어지는 관계의 일컬음 또는 그런 관계에 있는 사람을 동서(同婿), 사위를 삼음을 작서(作婿), 사위를 맞아 들임을 납서(納婿), 조카 사위를 질서(姪婿), 귀여운 사위를 교서(嬌婿), 첩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사위를 얼서(孼婿), 데릴 사위를 췌서(贅婿), 남을 높이어 그의 사위를 이르는 말을 영서(令婿), 장인과 사위를 옹서(翁婿), 동쪽 침상의 훌륭한 사위라는 말을 동상쾌서(東床快婿)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