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 속에서
최 병 창
같이 웃을 수만 있다면
지구나 태양이나 달을 보고 둥글다며
불어오는 찬바람에
싱거운 답을 할 수도 있겠지만
굴러다니는 미소가 그래서인지 저마다 동글동글한 제 모양들이 아니라서
도저히 너라고는 답할 수 없었네
해가 뜨는가 싶더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네
이제는 누군가의 표적이나 대상도 아니고 어느 집안의 볼품없는 골동품인가
싶더니 더불어 해가 지는 노을 녘만 희미해졌네
만천하에 드러난 오늘 하루동안은 무엇을 하였던가
연이은 부고 소식을 받고도 술 한잔 거나하게 마신 적이 없노라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을바람 속을 취한 척 떠다닌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둠을 혼자서 까맣게 견뎌내야 하는 일
토닥토닥 노을빛이 이슥하다 해도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는 것
이라며 가을처럼 불어오는 그리움보다 더 아늑한 자리가 어디 있겠느냐
반문도 해보지만 그렇게 만나질 못하고 풀어질 때까지 한나절을 눈 빠지게
기다린다는 것은 오직 유일한 가을바람 탓이었네
버텨내기 힘든 세월이 또 하루를 넘어가네
이 무슨 황망한 망발인지 눈감으면 소리 없이 지나는 세월 앞에 그 세월
이기는 장사가 따로 없듯 불어오는 바람 앞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가을바람의 무게가 아무리 가볍다거나 무겁다 할지라도.
< 2023.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