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피아의 제우스(Zeus) 신상(神像)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최고의 신 제우스를 믿었다.
제우스는 우주를 지배하는 신이며, 인간 세계를 다스리는 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제우스 신을 모신 신전을 짓고 성대한 제사(4년마다 지내는 올림픽)를 지냈다.
고대 그리스에는 아테네, 스파르타, 앨리스 등의 도시 국가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처음에는 땅의 신 크로노스와 여신 헤라를 숭배했지만 뒤에 제우스 신을 숭배하게 되어서 B.C 457년에 그리스 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쪽 앨리스 지방에 제우스 신전을 만들었고, 그 안에 '페이디아스'가 만든 제우스 상을 안치하였다.
페이디아스는 아테네 화가 카르미테스의 아들로 파르테논 신전의 정면 입구와 소벽을 조각한 당대 제일의 조각가였다.
그리스 고전전기(古典前期)의 숭고양식(崇高樣式)을 대표하는 페이디아스는 신(神)들의 상을 많이 만들어 ‘신상 제작자’로 칭송받은 사람이다.
제우스 신상과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네 여신상은 페이디아스의 2대 걸작품으로 꼽힌다.
피디아스는 8년여의 작업 끝에 제우스 상을 완성했는데, 그는 제우스의 신성함 위엄과 함께 너그러움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냈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어떤 고대인은 제우스상을 보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도, 불행과 비극에서 헤어 나지 못하는 사람도 만약 우뚝 서 있는 제우스상을 보게 된다면 고통과 절망을 잊어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고 감상을 토로했다고 한다.
대지 위에 우뚝 세워진 신전에는 양옆에 열세 개씩, 양끝에 여섯 개씩 장엄하고 무거운 도리아식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완만하게 기울어진 지붕이 덮여 있다.
이 신전의 한가운데 있는 제우스 상은 높이가 90㎝, 폭이 6.6m인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높이가 12.4m 되는 상은 거의 천장을 닿고 있다.
제우스 상은 나무로 만들어져 그 위에 보석과 흑단, 상아를 박아 장식한 금으로 만든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금으로 된 발 디딤대에 올려져 있는 양다리는 거의 예배자의 눈높이와 일치하였다.
오른손에는 황금과 상아로 만든 승리의 여신(Nike)상을 떠받치고 있으며 왼손에는 황금을 박아 장식한 지팡이(왕홀)를 쥐고 있다. 지팡이 위에는 매가 앉아 있다.
상아로 만들어진 어깨에는 꽃과 동물이 새겨진 황금의 아름다운 망토가 걸쳐져 있다.
426년에는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의 이교신전파괴령에 의해 신전이 헐리게 되었다.
게다가 522년과 551년의 지진으로 크로노스 언덕이 허물어졌고, 그라데오스 하천의 범람으로 신역은 3~5미터 아래 모래층으로 매몰되어 제우스 상은 오늘날 안타깝게도 남아 있지 않다.
제우스(Zeus)
제우스
신들 중 최고의 지배자로 '낮의 밝은 하늘'을 의미하며 천상을 지배하는 기상학적 현상(비,눈,우박,번개,우뢰)을 맡아보는 신인 동시에 인간 사회의 정치.법률.도덕 등 모든 생활을 지배했다.
신들뿐 아니라 인간은 제우스를 주인으로 섬겼다.
그러므로 제우스는 왕이고 인간의 왕들은 그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었다.
제우스는 크로노스(사투르누스)와 레아(옵스)사이에서 태어났다. 크로노스는 <시간>을 상징한다. 그리스어 크로노스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크로노스는 자식을 낳은 족족 잡아먹는 것으로 전해지는데(자신의 자식 중에 자신을 누르고 왕위를 차지하는 자가 있다는 예언때문에), 크로노스의 이러한 속성은 태어난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자체의 속성을 상징한다.
제우스의 6남매도 크로노스에게 삼켜졌다가 다시 토해진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제우스 6남매가 이로써 시간을 극복했음을 상징한다.
어머니 레아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험을 모면한 제우스는 그의 첫번째 아내 테티스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뱃속에서 그의 형제들을 토하게 한다.
형제자매와 함께 그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와 그 형제인 티탄 신속들에게 반란을 일으켜 그들을 정복하고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무한지옥에 가두어 버린다.
제우스의 무기는 천둥과 번개이고, 헤파이스토스(불카누스)가 그를 위해 만든 아이기스라는 방패도 가지고 있다.
제우스가 총애한 새는 독수리로 이 새가 제우스의 번개를 지니고 있었다.
1950년대 제우스 신전 터에서 페이디아스의 작업장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제우스 상이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히 밝혀졌다.
발굴 및 현재
제우스 신전
1755년 독일인 학자 빈켈만(John J. Winchelmann :1717 ~ 1786)이 <고대 그리스 미술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면서 고대문화에 대한 열기에 불을 당기기 시작했다.
1766년 영국인 찬들러(O. Chandler)가 빈켈만의 고대미술사와 고대시가지지(古代詩歌地誌)의 두 권의 책을 안내로 삼아 이 올림피아 유적지를 발굴하기 시작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고대 올림피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서쪽 엘리스주(州)에 있으며, 북으로 크로니온(Kronion;제우스 신의 부친 Kronos에서 유래됨) 산자락 구릉과 서쪽에 그라디오스(Gradios) 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운동경기를 마친 뒤에나 또는 연습 후 목욕이나 샤워를 이 그라디오스 강에서 했고, 또한 이 물을 끌어들여 올림피아 도시에서 목욕탕에 사용하였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위치는 이곳이 정확했다.
찬들러는 발굴에 착수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우스 신전'을 발굴하였다.
1829년 프랑스의 고고학자가 단기간 발굴에 착수하여 메도프(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 기둥, 지붕 등의 파편을 발견하였다.
그 후 50여 년이 흐른 1876년, 베를린 대학교수 E.쿠르티우스(1814~1896)의 발굴계획을 독일 정부가 승인한 후 그리스 정부도 발굴유물을 현지에 보관한다는 엄격한 단서를 붙여 허가하니 6년간에 걸친 발굴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때의 발굴작업은 현재의 유적지 규모로 발굴됨으로 그 당시의 체육시설의 건축분야와 기록동판 13,800매, 비석 400개, 조각품 등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4차 발굴은 1937∼58년(제2차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중단)에 실시되었는데, 올림피아의 전체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고, 제우스상이 있던 신전도 거의 드러나는 학술적으로 대단히 귀중한 성과를 올렸다.
1950년대 제우스 신전 터에서 페이디아스의 작업장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제우스 상이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히 밝혀졌다.
첫댓글 학교 다닐때 그리스 신화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읽은 책중에 기억에 남는것이 별로 없으니 ......기억을 새롭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실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