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와 종문을 비교해 보았을 때,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시기적으로 일련정종이 앞이고, 학회가 뒤에 해당되기 때문에 일련정종이 학회의 모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일련정종이라고 하면 닛코 상인의 정신을 이어가는 닛코문류(日興門流)를 일컫는 말입니다. 즉 올바른 대성인의 정신을 계승하여 광선유포의 정신으로 신심에 면려하는 신앙의 단체를 닛코문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700년이란 세월이 지나면서, 종문에 닛코문류의 정신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 연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의 큰 이유 하나를 들자면 일본이 봉건시대 때, 종교가 권력자의 밑에 들어가게 되면서 광선유포와 홍교를 하지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는 일본의 단가제도(檀家制度)에 원인이 있는데, 일본의 단가제도란 것은 특정 마을에 절 하나가 있으면 그 동네에 사는 사람은 그가 믿는 종파와 상관없이 무조건 그 절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고: 도쿠가와막부는 기독교를 금지하고 민중을 지배하기 위해서 ‘단가제도’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반드시 어딘가의 사원에 소속하여 절에 인별(人別:호적)을 등록한다고 하는 제도이다. ‘사청제도(寺請制度)’라고도 하며 사원이 발행하는 사청증문(단도라는 증명서, 호적등본에 해당)이 없으면 취직도 여행도 할 수 없고, 생활도 할 수 없었다.
소속 사원에서 증문(證文)의 발행을 거부당하면 ‘장부에서 제외’라고 차별되며 그것은 사회적인 말살을 의미한다. ‘따돌림’ 나아가서는 ‘사종문(邪宗門)’이란 의심을 받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는 그러한 가혹한 추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문에 주직의 권한은 절대적인 것으로 되어 단도는 오르지 승려에 종속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중들은 무엇을 했는가. 중은 신도들의 보시로 살아가게 되고, 장례식 때 불경을 독경하는 등으로 충분하여 광선유포와 홍교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가 길게 이어져, 일본의 불교라고 한다면 민중을 관리하고 민중을 감시하는 권력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기독교가 들어오지 못하게 민중을 감시하고 압박하는 종교로 변해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단가제도 속에서 승려들은 광선유포의 정신을 잊고 권위주의의 체제로 흐르게 되었고, 그러한 속에서 대성인의 정신을 이어가는 닛코문류의 정신은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닛코문류의 정신을 새롭게 부활시킨 분들이 바로 학회의 초대, 2대, 3대 회장 선생님입니다. 학회의 초창기에는 역사적인 관점과 승속일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종문에 소속되었지만 창가학회만이 닛코문류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 철저히 지켜왔던 것입니다.
마키구치선생님이 창가학회를 만드셨을 때, 종문의 내부에 법화강이라는 조직이 있었습니다만, 학회를 그러한 법화강으로 하지 않았던 것은 어디까지나 창가학회를 행자(行者)로서의 실천의 모임으로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단지 법화강의 신자(信者 – 여기서 신자라고 하는 것은 일본적인 특수한 의미를 띠고 있다. 요컨대 특히 장례식 때에 승려에게 기원을 부탁하는 수동적인 신앙자. 빌기만 하는 사람을 말한다) 로서 살아가는 방법으로는 대성인의 불법을 올바르게 실천할 수 없다고 판단하신게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창가학회를 찬탄하는 승려도 있었습니다만, 많은 승려가 학회의 방향을 탐탁치 않게 보았습니다.
전쟁 후 학회원 스스로가 자신이 합장하고 자신이 공덕을 받고 자신의 입으로 불법을 이야기하고 절복을 행하고 어서와 교학를 공부하며, 홍교도 대단하게 하자, 학회를 마음에 들지 않게 생각했던 승려들은 질투심과 반발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단가제도를 통한 봉건시대에 익숙해진 체질이 승려를 타락시켜 갔고, 이런 승려의 타락을 창가학회는 바로 잡으려고 했으나 그런 썩은 승려들의 정신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 체질이 계속 뿌리 깊게 남아 있었고, 특히 썩은 정신의 중심이 닛켄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닛코문류의 정신을 잊어버린 기존의 종문을 우리는 닛켄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닛켄은 법주가 된 후 민중을 억누름으로써 권위주의의 욕구를 만족시켰으며, 민중을 억누르려는 승려의 권위주의적인 체질을 민중은 간파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눈을 뜬 민중을 잘라버리려고 시행한 것이 닛켄의 C작전이었습니다. C작전이라고 한다면 창가학회를 CUT, 잘라낸다고 하여 C작전이라고 합니다.
1990년 12월, 닛켄종은 C작전을 감행했고 이때부터 종문문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C작전 당시, 닛켄이 썩어빠진 어느 저널리스트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학회원 20만 명만 붙으면 된다." - 여기서 20만이란 타락한 승려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숫자를 의미합니다. (20만의 학회원이 공양하는 공양금의 양을 말함)
세계에는 1천 만의 신도가 있고, 신도의 행복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법주의 자세인데 그러기는커녕, 그 20만 명만 우리 쪽에 붙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잘 생각해보면 C작전은 광선유포에서 탈락하고 타락한 중들이 첫째는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신도를 확보하는 것이고, 둘째는 돈벌이 수단으로 타락했고, 셋째 광포의 조직을 파괴한 것입니다.
대성인의 생사일대사 혈맥초에서 「성안에 있는 자가 성을 파괴한다」라고 있듯이 광선유포의 성(城) 안에 있으면서 성을 파괴하려고 한다. 이것이 이체이심의 자인 것입니다. 닛켄종을 그렇게 보았을 때 닛켄종 내부의 사람들도 이체이심으로서, 각각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광선유포에 대한 마음의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승부를 내는 것입니다. 종문의 신도들에게 신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성인의 문하라고 말하면서 광선유포의 신심의 혈맥이 통하는 화합승(조직)을 파괴하는 자. 그자에 대해서 대성인은 「이체이심의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성을 지켜야 할 자가 성안에서 성을 파괴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강하게 훈계하고 계십니다.
현대의 광선유포라는 크나큰 흐름에서 본다면 닛켄종의 움직임이야 말로 실로 이체이심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결합시켜 가자는 창가학회가 만들어 온 흐름에 종문은 따라 올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만의 승려중심의 단체를 만들자, 승려가 먹을 만큼만 있으면 된다는 종문을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한 종파는 결코 일련정종(日蓮正宗)이 아니기에 닛켄종 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광포의 목적을 잊어 버리면 대성인의 제자도 닛코상인의 제자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회는 닛켄종을 엄하게 가책하고 있는 것이며, 방심을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우리들은 광포를 파괴하는 이체이심의 자를 엄하게 파절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닛켄종은 어본존을 모시고 있을 뿐, 간심인 어본존에 대한 신심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질투의 마음에서 SGI라는 광선유포의 조직을 파괴하려고 한 일, 또 어본존에 대한 신심의 공양을 자신의 사치를 위해 물처럼 쓰는 일, 매춘부와 스캔들을 일으키는 등 이러한 닛켄의 소행은 불법을 믿는 마음이 있다면 너무도 두려워 감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닛켄에게 신심이 손톱만큼도 없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신심이 없기 때문에 근행도 절복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닛켄이나 닛켄종의 승려에게 있어서 어본존이란 무엇인가. 단적으로 말하면 자신에게 법주나 승려로서의 권위를 부여하는 수단이자, 돈을 벌기 위한 장사도구입니다. 그러한 닛켄종에게 대성인의 혈맥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을 보듯 확실한 것입니다.
닛켄종에서는 법주만이 특별한 비밀의 법문을 알고 있다던가, 특별한 어떤 깨달음이 전달된다는 등의 신비적인 혈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하게 대성인의 가르침에 위배되고 있습니다.
법주란 결코 닛켄종이 말하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본래 법주는 교단의 대표자로서 광선유포에 면려하고, 어본존과 신도를 마땅히 지켜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 법주가 1천만의 신도를 자르고, 광선유포를 파괴하려고 했습니다.
법화경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들로 말하자면 어본존을 올바르게 수지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올바른 어본존을 수지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배견하는 중생의 신심이 잘못되어 있으면 전혀 공덕은 없으며, 오히려 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재 닛켄종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어본존이 올바르고, 위대하다 해도, 그것을 배견하는 사람이 日蓮 대성인, 닛코상인의 마음에 위배되어 있어서는 전혀 공덕은 없습니다.
닛켄종은 광선유포의 파괴를 꾀하고, 또 법주를 어본존과 나란히 하여 절대화 하는 등, 대성인과 닛코상인에게 위배되는 사의(邪義)를 세우고 있습니다. 완전히 방법으로 화한 까닭에 닛켄종에게는 벌의 현증밖에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닛코상인에게 적대했던 오노승의 흐름을 따르는 미노부 등의 유파와 같습니다. 오노승의 흐름을 따르는 유파의 사원에도 日蓮 대성인이 인정하신 어본존이 많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대성인이 직접 쓰신 어본존이기 때문에 어본존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러한 사원에 가서 그 어본존을 배례하거나, 또 승려가 대신 배례해 주어도 공덕은 없습니다. 그렇기는커녕 크나큰 벌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어본존이 올바르다 해도 그것을 배례하는 자의 신심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러한 사원에 참배하는 것은 방법의 자에게 공양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SGI가 대석사에 대해 참배를 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어본존은 올바르지만 절 전체가 방법으로 화해 버렸기 때문에 거기에 참배하는 일도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닛켄종의 교의는 SGI의 교의와 언뜻 보기에는 비슷해 보입니다. 부르는 제목도 배견하는 본존도 같습니다. 그러나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속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전혀 동떨어져 있다면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지극히(가장) 혼동하기 쉬운 것으로 사람들의 신심을 파괴하여 성불을 방해하려고 하는 곳에 마의 움직임이 있는 것입니다..
닛켄종은 한마디로 日蓮 대성인의 불법의 이름을 빌린 외도(外道)입니다. 언뜻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법주신앙이며 승려신앙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본존은 법주와 불이(不二)의 존체」라는 것이 닛켄종의 교의입니다..
이것은 어본존을 찬탄하고 있는 듯하여도 실은 법주와 승려의 권위를 장식하는 도구로서 어본존을 사용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본존의 진의(진정한 의의)를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법화를 찬탄한다고 해도 고로 법화의 마음을 죽인다」라는 어서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것에 비해 「만인의 성불」 「광선유포」 「일염부제총여」라는 대성인의 어본존 도현의 마음을 진심으로 믿고 실천해 온 것이 SGI인 것입니다.
우리가 닛켄종을 파절하러 갈 때, 이케다 선생님의 광선유포의 마음을 배우고 광포에 대한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하여 불행에 허덕이는 그 사람을 구제하겠다고 생각하면 상상을 초월한 지혜를 발휘하여 그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