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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마을] 여름밤 추억의 꽃게잡이 ‘홰바리’를 아십니까? | |
번호 : 689 글쓴이 : 민초 |
조회 : 121 스크랩 : 0 날짜 : 2006.09.01 02:36 |
사용자 PC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스크립트를 차단했습니다. 원본 글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펄밭을 가로타고 나간 뱃길은 조금 때나 썰물 때에도 내 허리 위로 오르는 물이 찰랑하게 차 있기 예사였다. 그런 물속에서의 꽃게잡이란 어느 놀이보다도 재미있고 신명나는 일이었다.’ 충남 보령시가 고향인 소설가 이문구는 ‘관촌수필’에서 어린 시절의 꽃게잡이를 추억한다. ‘단오 무렵이면 아낙네들이 떼지어 횃불을 켜들고 갈대밭으로 들어가 함석 물초롱과 구덕이 넘치게 갈게를 잡기도 했다.’
옛날 갯가에는 게가 지천이었다. 깊은 물에는 꽃게가, 얕은 물에는 민꽃게와 납작게가, 민물 하구에는 참게가 바글거렸다. 오늘에야 꽃게가 비싼 상품이 되었지만 20년 전만 해도 물안경만 쓰고 들어가면 아이들도 주워올 만큼 흔했다. 못 먹는 게 없어 ‘바다의 청소부’라 불리는 게는 수륙을 오가며 번성하다가 갯벌의 오염과 함께 쇠퇴했다. 게는 야행성이라 어촌에선 주로 밤에 잡았다. 어두운 밤 얕은 갯벌에서 돌아다니는 꽃게를 횃불을 비춰가며 주워 담곤 했다. 꽃게를 먼 바다까지 나가서 통발이나 유자망 그물로 잡은 지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충청도에선 ‘해루질’, 경상도에선 ‘홰바리’, 또 지역에 따라 ‘화래지’ ‘해락질’로도 불린 이 밤마실은 역사가 오랜 어촌의 납량레저다. 송진기름을 잔뜩 묻힌 ‘홰’를 밝혀들고 물 빠진 갯벌을 뒤져서 꽃게며 해삼이며 낙지며 고둥을 보이는 족족 주워 담았다. 남녘 섬이나 한적한 해변에선 이 원시적인 꽃게잡이가 아직까지도 이어진다. 다만 조명은 횃불에서 랜턴으로 바뀌었다. 게와 물고기, 밤이면 몰려나와
“휴테크예? 노는 데도 머 테크닉이 필요합니까? 우리사 여름 되모 아들하고 갯가나 찾는기 낙이지요.” 심리가 고향으로 마산 가포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정대수씨는 해마다 여름이면 가족나들이로 홰바리를 나선다. 오늘은 친구까지 동행해 6명이다. “해바리 나서모 추억이 생각나지요. 바다가 옛날맨치 깨끗치 안해서 어릴 적 잡던 양의 십분지 일도 안되지만 그래도 묵고 남을 만큼은 잡습니다. 애들도 좋아하고.” 가로등을 밝힌 건너편 방파제에도 한 패가 물속을 비쳐본다. 역시 홰바리 나온 가족이다. 방파제의 낚시꾼들이 손바닥보다 조금 큰 고등어를 낚아올리고 있다. 소금구이가 제격인 저 정도 고등어는 ‘고도리’라 부른다지? 썰물이 진행될 동안 정대수씨가 ‘홰’를 만들었다. 순면 소재의 헌 옷가지에 철사를 칭칭 감아 뭉친 다음 경유를 듬뿍 적셔 불을 붙인다. 요즘은 다 건전지 랜턴을 쓰지만 정씨는 번거로워도 횃불을 고집한다. “랜턴은 좁은 지역만 비추지만 홰는 넓게 비출 수 있어 갯것을 살피는 데 한층 유리하다”고 한다.
정씨 일행을 따라 천천히 물속으로 한발씩 내디뎠다. 물결이 종아리를 어루만진다. 허벅지까지 물에 잠기자 냉장고 속에 들어온 것 같다. 후끈거리던 열기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물속을 비춰보는데 내 눈에는 어른어른 조개껍데기만 비친다. 초등학생 애란이와 효석이는 들어가자마자 게와 고둥을 연방 주워올렸다. 물결에 파래가 나풀거려서 게가 보이지 않는데 어린 ‘홰바리 고참’들은 잘도 찾아낸다. 아이들이 그럴진대 정대수씨의 솜씨는 신기에 가까웠다. 횃불을 한 바퀴 스윽 돌린 다음 갈퀴로 파래를 긁어올리면 영락없이 게가 파닥거렸다. 40년 짠물 밴 경력이 여실하다. 전리품으로 즉석요리 별미 마침내, 나도 한 마리 발견했다! 돌 틈에 등딱지를 바짝 붙이고 있으니 돌인 줄 알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그 완벽한 보호색에 감탄하며 호흡을 가다듬는데 구름 사이로 적함을 발견한 폭격기 조종사처럼 심장이 쿵쾅거렸다. 녀석은 나보다 먼저 나를 발견한 게 분명했다. 일단 위장술로 위기를 넘기려는 시도가 무위에 그쳤다고 판단한 것인지 태도를 돌변해 집게발을 치켜들고 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수면에서 바닥까지는 약 70㎝. 랜턴 불빛을 정조준한 채 오른팔을 신속히 찔러넣었다. 찬물이 단숨에 어깨까지 적셨지만 손바닥은 허전했다. 다시 랜턴을 비추자 게는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나로서는 모처럼 발견한 게를 포기하고 새 자리를 탐색할 맘이 없었다. 꼼짝 않고 서서 놈이 다시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물이 빠지자 제법 멀리까지 전진할 수 있었다. 간조(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진 시점)에 임박할수록 더 많은 게가 시야에 나타났다. 내 눈이 이미 놈들을 식별하는 데 익숙해진지도 모른다. 서춘식씨가 비명을 지르더니 낙지를 손등에 칭칭 감아 들어올린다. 김성종씨는 “오늘 따라 게 씨알이 잘다”며 해삼 줍기에 열중했다. 작년 여름부터 심리 밤 꽃게잡이가 입소문을 타면서 홰바리 객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이제 그만 가자”는 말에 시계를 보니 밤 1시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3시간이 훌쩍 흘렀다. 방파제로 올라오니 으슬으슬 춥다. 이것 참 한여름에 소름이 웬말이람. 김성종씨가 “가을에도 게가 잘 잡히지만 추워서 못한다”고 했다. 각각 잡은 게를 모아보니 얼추 100마리가 넘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자주 먹던 꽃게와는 조금 다르다. 나중에 알았지만 녀석의 이름은 민꽃게였다. 꽃게와 같은 과(科)로 덩치는 작아도 성질이 사납단다. 오색 다채로운 꽃게에 비해 흑갈색을 띤다. 이곳 경상도에선 ‘돌게’, 충청도에선 ‘바카지’로 불린다. 간장게장을 담가도 맛있고 특히 된장찌개를 끓이면 게 중 으뜸이라고 한다. 해변의 요리는 풀코스로 이어졌다. 삶은 게 수십 마리를 먹어치우자 고둥 삶은 물에 살짝 데친 낙지와 내가 주운 해삼들이(재빠른 게와 달리 정지상태에 가까운 해삼은 나의 좋은 공격목표가 됐다) 토막토막 서빙됐다. 소주 몇 잔을 들이켰더니 젖은 몸이 어느덧 훈훈해졌다. 메인디시는 게, 새우, 홍합, 소라가 잡다하게 들어간 해물잡탕찌개! “오늘에야 진짜 바다를 만났다”고 감격해하자 마산시민들은 ‘불쌍한 서울시민’의 잔에 연거푸 술을 채웠다. 밀물이 잡혔는지 파도소리가 철썩철썩 씩씩해졌다.
서·남해안서 가능… 랜턴, 면장갑, 운동화면 준비 끝 여름철 홰바리(해루질)는 우리나라 남해와 서해안 전역에서 즐길 수 있다. 늘 파도가 이는 동해안은 힘들다. 물이 일렁여서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남해안과 서해안도 강한 바람으로 파도가 이는 날에는 게를 잡기 어렵다. 준비물은 랜턴, 면장갑(게의 집게발에 대비해 2~3켤레 겹쳐 낀다), 운동화(슬리퍼를 신으면 돌과 굴껍데기에 다치기 쉽다)가 전부다. 썰물이 많이 빠지는 음력 15일과 30일 전후의 사리물때를 고르면 더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 갯벌이 많이 드러나는 간조 전후에 물에 들어가는데, 남해동부 연안에선 사리물때의 간조가 이슥한 자정 무렵이라는 것을 참고하기 바란다.
최근 들어 이 횃불 꽃게잡이가 도시민에게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안면도와 고군산군도, 거제도에 해루질을 홈스테이 상품으로 만든 마을도 생겼고 서울에서 해루질 체험관광단을 모집하는 여행사도 생겼다. 그러나 그런 북적북적한 체험관광을 이용하지 않고도 가족끼리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해변이 더 많다. 가까이는 서해 당진 서산 앞의 작은 유인도에서부터 보령, 군산, 격포 해변, 멀리 남해의 거제, 통영, 고성, 여수, 고흥, 강진, 완도, 진도에 이르기까지 손때 묻지 않은 홰바리 장소가 도처에 널려 있다. 물이 깨끗하고 모래와 돌이 섞인 갯벌을 찾으면 된다. 특히 민꽃게는 가을에 더 잘 잡힌다. 올 추석, 바닷가 고향을 찾는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홰바리 추억만들기, 어떨까. 2005.08.15. 1867호 /허만갑 주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