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경기도 버스터미널 시리즈의 마지막 무대가 올랐다.
그 무대는 바로 북한강을 낀 가평이라는 곳이다.
가평에 있는 터미널 중 가장 먼저 발길을 돌린 곳은 청평이었다.
청평은 경춘선의 중간 지점으로 수많은 MT촌이 밀집한 곳이자,
수려한 계곡과 호수를 끼고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들 찾는 지점이다.
또한 현리, 설악 방면으로 가는 입구이기도 해서 예로부터 붐비는 지역이다.
이러한 입지 때문에 일찌감치 가평의 2인자로 자리매김을 하였고,
덕분에 1965년이라는 아주 이른 시기에 버스터미널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경춘선 전철화 및 춘천 가는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청평에 오는 버스 노선이 급감하고 수요가 줄어드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이미 2008년에도 가평을 쭉 둘러본 적이 있었기에,
기차가 다니던 가평과 전철이 다니는 가평의 모습을 대비해보고 싶었다.
강산이 한 번 바뀔 시간이 지나 비교 체험을 해보는 순간,
그 여정의 첫 번째가 바로 청평이다.
가평은 개인적으로 추억이 많은 곳이다.
10년 전 무렵에 뻔질나게 여행을 왔던 곳이자 현재 머물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선 상의 이유로 양평과 함께 경기도 일정에서 제외되어,
가장 늦게서야 카메라를 들고 이곳을 찾게 되었다.
청평은 스무 살 무렵에는 정말 자주 찾던 곳이었지만 마을에 들어온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현재는 일적으로 오가는 지역을 '여행'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예전 스무 살의 파릇파릇한 추억이 떠오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청평터미널 주변은 청평 최고의 번화가로,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한 게 없이 한결같은 모습이다.
좁고 긴 마을길 너머로 높다란 산이 펼쳐지는 풍경.
마치 강원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수도권의 일반적인 느낌은 아니다.
청평터미널도 예전과 똑같은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현재 머무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터미널이면서도,
자가용을 이용하다 보니 좀처럼 올 기회가 없었기에 오랜만의 만남이 더욱 반가웠다.
한때 여기서 쉼 없이 버스를 타고 내리던 과거가 생각난다.
그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는데,
청평터미널 시설은 하나도 변한 게 없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에 괜히 싱숭생숭하다.
청평터미널은 1965년부터 벌써 54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지금의 시설은 2004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건물을 새로 지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도로와 주차장을 분리하는 조그마한 승차장 역시
이 시기에 지어져 지금까지 영업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푸른색 가림막이 드리워진 조그마한 승차장은 청평터미널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다.
거의 대부분의 차량들이 이곳에서 승객을 싣고 내려주기 때문이다.
도로벽에 간판을 달아 서울 방면, 춘천 방면으로 구분을 하고는 있지만,
어차피 홈이 하나뿐이라 큰 의미는 없다.
한때 청평의 간판 노선이었던 1330번이 살아있던 시절,
하루도 빠짐없이 분주했던 정비소는 1330번이 사라졌어도 여전히 바빠 보인다.
1330번 지선을 비롯하여 몇몇 관광버스들도 여기서 정비를 받는 것 같아 보였다.
주차장 구석에 있는 정비소는 원래 잘 눈에 띄지 않는 법이지만,
청평은 워낙 눈에 잘 띄는 위치에 있어 괜히 이곳을 보니 옛날 생각이 또 난다.
예나 지금이나 건물 앞 주차장에는 여러 대의 버스가 주차를 하고 있다.
현리, 설악, 쁘띠프랑스 등등 주변으로 가는 버스의 밀집지이자,
과거 진흥고속 + 가평군의 간판 버스였던 1330번의 주박지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터미널의 겉모습은 그대로지만 속으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경춘선 개통 이후 1330번 본선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싸고 빠름'을 무기로 했던 버스가 '더 싸고 빠른' 경춘선 전철 개통으로,
10~15분 간격으로 다니던 노선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1330번은 단순한 광역버스 노선이 아니었다.
최대 8개의 지선을 거느리며 가평군 전 지역을 커버하는 공영버스로,
가평 그 자체를 상징하는 노선이었다.
아직 지선이 남아있다고는 하나 가장 중요한 핵심 본선이 폐지되고,
남은 지선들 또한 존재감을 크게 상실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왠지 모를 허무함이 든다.
생각을 잠시 잊고 좁디좁은 대합실로 들어온다.
언제 리모델링을 했는지 화사한 조명과 깔끔한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다.
리모델링 전에는 대낮에도 제법 어두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TV 밑에 달린 LCD 전광판이 적적한 내부를 화려하게 채워준다.
대합실이 깔끔해지면서 생긴 결정적인 변화가 있다.
바로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켰던 매표소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너무 오랜만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앞에 보이는 문 너머로 매표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사람이 표를 파는 공간이 싹 사라지고 몇몇 자판기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매표 기능이 정지된 것은 아니라서,
사람이 철수한 대신 기계 두 대가 아직까지 표를 발권해주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직접 주는 손맛은 기계가 깔끔하게 뽑아주는 맛과 비교할 수 없다.
수익성이라는 명분 아래 매표소가 점점 사라져가는 게 옳은 것인지
가끔은 회의감이 들 때가 있는데, 바로 여기서도 그러한 감정을 느낀다.
이전에 양평에서 시간표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양평과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변화를 겪은 청평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10년 2개월 전(2008년 11월) 시간표와 비교를 해보기로 했다.
가장 수요가 많은 동서울행부터 살펴보자면, 39회 → 26회로 횟수가 1/3이 감소했다.
20~30분 간격에서 40~50분으로 늘어나긴 했으나 생각보다는 선방했다.
아마도 화천-춘천 간 시외버스가 동서울로 연장되면서 이득을 본 점이 있었으리라.
반면에 2008년 당시에 30분 간격(27회)으로 운행되던 상봉행은 폐지되었다.
경춘선이 하필 상봉까지 가는 바람에 제대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상봉터미널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은 춘천행의 폐지가 결정타였다고 생각하기에,
시간표를 보면서 가장 씁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 외 노선 중 횟수가 줄어든 노선은
안양-인천 18 → 14회, 수원 12 → 4회, 안산 11 → 9회, 고양 10 → 6회, 평택 10 → 3회이며,
그대로인 노선은 천안(6회), 늘어난 노선은 공항리무진 8 → 15회이다.
폐지된 노선은 강남(6 → 0), 성남(3 → 0), 부천(11 → 0), 김포(4 → 0), 철원(17 → 0), 전곡(2 → 0), 광주(1 → 0)행이 있다.
전체적으로 시외버스의 변화를 살펴보니, 다행히 양평만큼 극적으로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때 동서울행과 쌍벽을 이루었던 상봉행의 폐지를 비롯하여
한 손에 꼽기도 부족할 만큼 수많은 노선들을 이제는 볼 수 없으며,
남아있는 노선도 지속적인 감회가 되고 있는 추세이다.
당장 2019년이 되면서 수원, 고양행이 급격하게 줄어 폐지 위기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반면에 가평군 관내를 잇는 시내버스는 숫자가 많아졌다.
1330번이 위축되면서 그 자리를 일반시내버스가 꿰찼기 때문이다.
다만 1330번 시리즈를 포함한다면 전체적으로 비슷한 편인데,
관광지에 한해서 차편이 크게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설악 방면은 10년 전에는 일반 8회, 좌석 22회가 다녔으나 지금은 일반 29회가 다닌다.
아침고요수목원은 8회에서 19회로, 쁘띠프랑스는 아예 노선이 중간에 신설되었다.
설악면으로 가는 길에 청평호, 유명산 및 각종 리조트가 밀집된 것을 생각하면,
관광객이 다니는 길은 이전보다 훨씬 가기가 편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청평역이 외곽으로 옮기면서 청평을 연결하는 셔틀버스가 생겼다는 점이다.
짧게는 5분, 길게는 50분 이상 들쑥날쑥 배차가 벌어지지만,
전체적으로 열차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추어 자주 운행을 하는 것 같았다.
또 하나의 변화는 가평시티투어가 생겼다는 점이다.
가평의 유명 관광지를 한 바퀴씩 도는 시티투어가 청평역에도 들어오는데,
양방향 모두 시간표가 작성되어 있어 이용하기 편하게 안내하고 있다.
시간표를 살펴보니, 관광지로 가는 시내버스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양평만큼 엄청나게 감소한 것은 아니었어도 확실히 눈에 띄는 변화였으며,
청평역을 비롯해 관광지 버스가 늘어났음에도 장거리 버스가 철퇴를 맞았다는 사실로 보아,
이 지역에서 경춘선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지는 다시금 깨달았다.
전철 개통 전까지 청평터미널을 든든히 받쳐주던 노선은 크게 세 개가 있었다.
그중 두 개(상봉, 1330)는 전철이 개통하자마자 쓸려나갔으며,
오로지 하나(동서울)만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간신히 돌아가는 모양새이다.
알맹이가 쏙 빠지고 껍데기만 남은 청평터미널은 10년 전과는 너무 많이 바뀌었다.
겉모습만 보고 섣불리 싱숭생숭함을 느꼈던 감정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순간 또다른 생각의 파도에 휩쓸려 다른 의미로 복잡해져 있었다.
첫댓글 2003년인가.. 아침고요수목원가려고 상봉 현리행탑승ㅡ임초리하차 5키로쯤걸어서 갔는데 아예 도로가뚫렸군요. 너무 오랜얘긴지..
맥시멈님의 글을보며 요즘 과연 버스가 철도를 이길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속도는 어쩔수없으니 최근 입지를 넓히는 프리미엄 급 편의성일지.. 철도,버스 공생하길바라지만 철도가 들어서는 라인의 버스운영이 힘들어짐이 안타까워 끄적여봅니다.
그러고보니 지금 현리에 들어가는 시외버스 노선들도 다 사라졌네요... 요금체계를 조정하면 좀 괜찮아질까 모르겠습니다. 경춘선 쪽은 말도 안 되는 국도요율 때문에 차이가 너무 많이 나니까요. 그런데 내일부터 또 요금이 인상되죠. 글쎄요... 지금 남아있는 노선이 잘 버틸려나요...
사실 경춘선이 ITX-청춘이 180km/h까지 낼 수 있는 선형이지만 요금은 일반전철이 다니고 그에 해당되는 부분만 받아서 특혜성이 높아서 버스가 이길 수 없는 구조입니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이었다면 KTX만 다녀서 비용면에서 버스가 유리해서 더 잘 살아남았을 겁니다. 강릉선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요.
민자고속도로 노선은 통행료를 더 받듯이 철도도 신설 노선에는 건설비를 감안하여 추가 요금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일인승무 철도는 도로와는 다른 운영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민자처럼 올려받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실제로 SRT를 개통하면서 회사를 나누어 놓은 것만으로도 상당한 불편이 야기되고 있지요. 이 문제는 여기서 토론할 내용은 아닌 것 같네요. ㅎㅎ
생각보다 청평 지역 내에서 움직이는 시내버스 노선들은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는 모양입니다. 양평보다 군내버스 배차가 더 촘촘한 것 같네요. 장거리 노선들은 아무래도 경춘선의 영향을 피할 수 없겠지만 군내를 운행하는 노선들은 철도 승객과 지역 관광지를 이어주는 역할을 잘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저도 대학생 때 청평이나 대성리로 엠티를 갈때면 광역버스를 주로 이용했는데 요즘은 거의 다 전철로 가는 것 같더군요. 1330번 노선도 사라지고 대성리발 765번 노선도 없어지는 등 경춘선 전철과 ITX의 영향력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경춘가도에서 출발하는 청량리행 광역버스들이 저 정도로 초토화되다시피 할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전철 개통 이후 청평역을 중심으로 교통 체계가 잡혔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시내버스는 예전보다 더 촘촘해지고, 특히 관광연계가 편해진 것을 보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