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境界人
김일호
가을을 부르는 하늘은
비우고 또 비워낸 공허함으로
유유자적 저토록 아름다운데
아직 남은 여름 볕에 녹아
벽 안에 갇힌 채
창밖을 엿보는 나는 지금
무엇이 되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이도 저도
좌도 우도 아닌
여름과 가을의 중간쯤에
마냥 우두커니 서서
가야 할 길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네
숲은 가만있자 하는데
소문 없이 불쑥 찾아온 바람이
사정없이 흔들어대는
가을로 가는 길
목소리 큰 새들만 보이는
경계의 세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채 식지 않았는데
비겁한 구경꾼으로 바라만 보며
허허실실 웃자 하니 서럽고
울분에 울자 하니 더 힘만 드네
길고양이
어두운 길목에서나
이슬에 젖은 풀숲에서나
너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마주치면
내 마음이 고프다
하필이면
내 주머니에 든 것 없고
내 손에 쥔 것 없을 때
그래서 줄 것은 마음뿐일 때
속죄인 처럼 미안하다
반신반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멀리도 가까이도 아닌
한두 걸음 뒤에서
애절하게 부르는 너의 음성이
어찌 그리 새 소리보다 작으냐
곤할 때 지친 몸 누일
쪽방 하나라도 있는지
배고프면 달려가 먹고
갈증이 마르면 달려가 마실 수 있는
플라스틱 그 밥그릇
큰 새들에게 빼앗기지는 않았는지
물어볼 수도 없고
대답할 수도 없는 거리에서
너를 마주할 때마다 몹시
내 마음만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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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호
1952년 경남 김해 출생, 전)세종문협회장, 전)세종문학(연기문학)회장, 전)소금꽃시문학회장, 전)세종시인협회장, 백수문학회장, 한국문협회원, 제11회 연기군민대상수상, 국민훈장목련장수훈, 시집<노을에 젖다>
詩作노트
스스로 작가나 시인이라고 내세운 적 없다. 타인이 그렇게 불러주는 것조차 부끄럽다. 어제가 그랬듯이 어쩌면 오늘이나 내일도 불길한 예감을 감춘 채 숨만 쉬며 살아야 할지 모른다. 많은 작가들이 앞다투듯 쏟아내는 자랑은 차고도 넘친다. 그러나 세상 길은 왜 그렇게도 어둡고 텅 비어있는지 까닭을 모르겠다. 이쯤에서 펜을 접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