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오봉산/2014.3.8.
구들장이 뭔지 아시나요? 구들장이란 온돌에서 방고래 위를 덮은 얇고 넓은 돌이죠. 구들장은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면 돌이 데워져서 밤새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온돌에서 구들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구들장은 운모석이 제일 좋다고 하는데 얇고 넓은 돌을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랫목은 좀 두꺼운 구들장을 깔고 윗목은 더 얇은 구들장을 깝니다. 그래서 아랫목은 온기가 오래가죠.
어릴적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랫목에 밥그릇을 묻어 놓고 점심때 꺼내먹으면 아직도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났었지요. 비라도 추적추적 오는 날이면 그 아랫목에 배를 깔고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거기다 볶은 콩이라도 한 바가지 담아 놓고 씹는다면 금상첨화였죠.
오늘은 구들장을 맘껏 구할 수 있는 산으로 갔습니다. 바로 보성에 있는 오봉산입니다. 오봉산은 보성군 득량면에 위치하는 산으로 비교적 낮은 산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바위 절벽과 기암괴석이 많은 상당히 괜찮은 산이 었습니다.
득량남초등학교 정문에서 왼쪽으로 꺽어 올라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날씨는 굿입니다. 다소 바람이 불긴 했지만 산행하기엔 오히려 좋았죠.
〈물건을 살까 말까 망설여 질 때는 사지마라!, 여행을 떠날까 말까 망설여 질 때는 떠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망설이다 산 물건은 후회하기 쉽상이지만, 망설이다 떠난 여행은 백프로 만족한다는 이야기죠. 산행을 갈까 말까 망설이던 회원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나 산행에 동참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산우회 사상 최고로 많은 회원이 참여를 한 것 같았습니다.
산행길은 비교적 부드러웠습니다. 입구에서 오봉산까지는 5.4km의 거리입니다. 산행길 왼쪽으로는 쭉 깍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천연 요새를 방불케 합니다. 그리고 저 멀리 득량들판과 득량만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요. 산행길 오른쪽은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해평저수지가 조망됩니다.
산행길 중간 중간에 돌탑이 있습니다. 정교하게 공들여 쌓은 돌탑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이 산은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구들장하기 좋은 돌들이 지천으로 깔렸습니다. 이 구들장하기 좋은 운모암으로 쌓은 돌탑은 오봉산의 또 다른 볼거리입니다. 돌탑은 예사로운 솜씨가 아닌데다 돌탑을 쌓은 사람의 정성이 엿보이는 그야말로 명물이었습니다. '공든 탑이 무느지랴'라는 속담이 있듯이 이 돌탑들은 태풍이, 천둥 번개가 몰아쳐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등에 땀이 조금 베일 즈음에 조새바위에 닿았습니다. 조새바위라고 하길래 우리는 바위에서 새의 형상을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건 새의 부리고 이건 새의 눈같다고 지어내어 말했죠. 그러나 순천에서 온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야!, 그래 진짜 조새를 닮았다니께."
"정말 그렇군, 이쪽이 손잡이야."
옆에서 듣는 나는 무척이나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조새가 뭡니까?"
"조새는 말이여, 굴을 까는 도구랑께요."
아, 그렇군요. 조새는 날아다니는 새가 아니었습니다. 어촌에서 굴을 깔 때 쓰는 연장이었던 것이죠. 어쨌거나 조새같이 생긴 조새바위를 지나서 전망이 좋은 바위에 앉아 좀 쉬어가기로 합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절벽아래로 광활하게 펼쳐진 득량간척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 들판을 바라보고 '춘자'님께서 한마디 합니다.
"저~쪽에 길에서 도랑까지 모두 우리 논이라는 걸 아시나요?"
농담인 줄 뻔히 알면서도 대꾸를 안해 줄 수가 없죠. 엄청 부럽다는 말투로 되묻습니다.
"그런데,저 논에 뭘 심어 놓았나요?"
".............."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하셨어요? 저기 푸르게 자라는 식물이 뭘 심어 놓은 겁니까? 주인이니 당연히 알아야 할 것 아닌가요?
'춘자'님이 갑자기 생각난 듯 대답합니다.
"보리요."
이런, 뭘 알고 뻥을 쳐야죠. 보성과 강진 지역에는 한우 사육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겨울 논에는 대부분 소를 먹이는 풀을 심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춘자님이 보리라고 대답하여 뻥임이 들통난 거죠. 득량이라는 지명은 곡식을 많이 거두어 들인다는 뜻의 득량(得糧)에 유래한다고 합니다. '간척된 넓은 들에서 많은 양식을 얻는다' 뭐 이런 뜻 되겠습니다. 일설에는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때 이곳에서 군량미를 얻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등에 땀도 식었으니 우리는 다시 출발합니다. 조새바위에서 30분쯤이나 걸었을까 싶을 즈음에 오늘의 하이라이트 칼바위가 보입니다. 협곡에는 많이 바위들이 엉켜있고 직벽의 바위벽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었죠. 이런 풍광을 보고 '좀'님께서 한 마디 합니다.
"야, 마치 그랜드캐년에 온 느낌이야!"
그랜드캐년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자랑하는 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랜드캐년에 갔다 오셨군요?"
"아니요. 사진으로만 보았죠. 그랜드캐년에 가보고 싶어요."
"아, 그렇군요. 저는 갔다 온줄 알았죠."
나 역시 그랜드캐년을 사진으로만 보았지만, 말을 듣고 보니 협곡에 바위벽이 어우러져 정말 그랜드캐년이 연상되었습니다. 칼바위는 날카롭다는 의미에서 칼바위이지 칼처럼 생기지는 않았죠. 오히려 쟁기의 보습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자는 독이 올라 대가리를 치켜든 코브라 같다고하는 이도 있습니다.
우리는 칼바위 부근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몇 무더기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가져온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우리 일행에는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이도 한 명 있었는데, 이 아이가 또 명랑합니다. 점심을 먹는 내내 아이 때문에 웃음꽃이 핍니다. 특히 '헌'님께서 아주 귀한 복분자주를 가져오셔서 작은 잔에 한잔씩 돌렸습니다. 그런데 순서를 지키지 않는 바람에 아이의 아빠를 걸러서 다른 사람에게 먼저 잔을 주자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빠는 왜 안 주세요?"
그래, 니가 효자다. 귀한 복분자주를 아빠를 빼고 주면 안되지.
점심을 먹고 이제 오봉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해발 320m의 정상에는 작은 정상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후미조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여기서 우리는 오봉산에 대한 전설을 하나 만들어 냅니다.
"왜, 오봉산인지 아세요?"
"글세, 봉우리가 다섯개라서 그런것 아닌가?"
"노노, 그게 아닙니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오봉산 산신령님이 다방에 커피를 한잔 시켰습니다. 다방 아가씨는 산 꼭대기라고 해서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 오봉산 정상까지 배달을 온 것이죠. 물론 보자기에 오봉을 깔고 커피통을 싸서 왔겠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상에서 커피를 마시던 산신령님이 다방 아가씨한테 빠져버린 겁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두 사람은 커피잔과 오봉을 산 위에 그대로 두고 손을 잡고 놀러 갔습니다. 실큰 놀고 돌아와 보니 오봉이 온데 간데 없습니다. 그 사이에 땔감을 구하러 온 마을사람들이 산위에 있는 오봉을 이상하게 여겨 마을로 가져갔던 것이죠. 그리고는 마을에서는 산 정상에 오봉이 있는 사실을 가지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마을이 풍년이 들것이라는 사람도 있고 왜구의 침략이 있을것이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답니다. 어쨋던 그리하야 산 이름을 오봉산이라 불러던 것이지요. 오토바이를 타고 오다가 하도 털털거리는 바람에 티스푼을 흘렸는데 그게 바로 칼바위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칼바위가 사실 칼 처럼 생긴것이 아니라 스푼처럼 생긴 것은 이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죠.ㅋㅋㅋ
이렇게 오봉산에 대한 전설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리고 전체가 정상석 주변에 모여 출석 인증샷을 박았습니다. 정상에 너무 오래 머무러면 안되는 법이죠. 이제 정상에서부터 산행종점인 해평저수지까지는 쭉 내리막길입니다. 중간에 용추폭포가 있어서 들리고는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총 10,5km의 거리를 4시간정도 걸렸습니다. 바람이 살살 부는 날씨가 쉬고 있으면 춥고 걸어가면 덥고 그랬던 날씨였습니다. 오봉산은 그 규모가 좀 더 큰 산이었다면 주면에 있는 팔영산이나 천관산 못지 않는 훌륭한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갔습니다.
산행은 언제나 행복을 충전해 줍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산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사실 산을 좋아하는사람은 되기 쉽지만 산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진정한 산꾼은 산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산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꾸준히 심신을 닦아야하겠습니다.
회원님,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다음 산행까지 건강하시고 4월달에 뵙겠습니다. 그리고 회장님과 총무님 산행 준비에 고생 많았습니다. <끝>
▲ 정교하게 쌓은 돌탑<저 멀리 보이는 것은 해평저수지>
▲ '공든 탑이 무너지랴'속담을 연상시키는 돌탑
▲ 조새바위
▲ 광활한 득량 들판(간척지)
▲ 조양마을과 득량만
▲ 천연요새와도 같은 깍아지른 절벽
▲ 달콤한 휴식시간
▲ 오봉산의 하이라이트 칼바위와 버선바위
▲ 산행 중간 중간 볼 수 있는 정교한 돌탑
▲ 오봉산(320m) 정상에서의 인증샷
▲ 용추폭포보다는 그 옆의 이끼폭포가 더 아름답다.
▲ 용추폭포에서의 인증샷
* 개인사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역시 우리부회장님 최고! 산행하기도 힘든데 매번 산행후기 감사합니다.
아휴~ 정말 재미있습니다. 특히 급조(?)한 오봉산 유래가~ ㅋㅋㅋ ^^*~
전 감기몸살로 가진 못했습니다만 안나님의 산행후기로 함께한 듯 오봉산의 전경이 눈에 선합니다.
많은 회원님들의 참석으로 가슴 뿌듯한 산행 이었습니다.
매번 기다려지는 산행후기...우리 산우회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산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부회장님 굿~~~임다. ㅠㅠ
부회장님 산행기 사실적이면서도 조금은 가공된듯한 오봉산 전설등 정말 멋져버려요. 모두들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안나푸르나님 아니 울 부회장님 산행후기 정말 재밌게 그리고 그날의 산행을 생생하고 현장감있게 묘사했슴다
사진도 언제 그렇게 정교하게 찍어서 올려놨는지...
앞으로 회원님들 참여가 더욱 많아져서 활발한 산우회가 될것같은 예감이 듭니다
우리회원님들 매번 참여해서 건강도 챙기고 우의도 돈독히 하면서 행복도 설계합시다 . 홧팅!
산행후기와 사진 좋습니다. 부회장님의 수고가 여러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