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탯줄 - 거가대교에서
황외순
찰싸닥,
손때 매운 그 소리를 따라가면
갓 태어난 핏덩이 해 배밀이가 한창이다
어둠을 죄 밀어내며
수평선 기어오른다
비릿한 젖 냄새에 목젖이 내리는 아침
만나고픈 열망하나 닫힌 문을 열었는가
섬과 섬 힘주어 잇는
탯줄이 꿈틀댄다
당겨진 거리보다 한 발 앞선 조바심을
여짓대던 해조음이 다 전하지 못했어도
짠물 밴 시간을 걸러
마주 앉은 저 물길
<심사평 - 팽팽한 긴장감과 신선한 비유 빛나>
340여 편의 작품을 앞에 놓고 가슴 두근거렸다. 어느 가인이 태어나 3장 6구 민족의
가락에 걸어야 할 영혼의 노래를 숙명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또한 그 울림이 얼마나
깊고 클 것인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 비상의 몸짓으로, 서투르다 해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음성으로 노래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젊고 건강한
시인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쉽게 보이지 않았다.
인내심을 가지고 '침묵의 무늬' '봄, 우포' '땀나무' '춘향목의 전의' '세한도 앞에서'
'그녀는 임신중' '탯줄' 등을 가려내었다. 그리고 다시 곰곰이 읽으면서 지나치게 정
적이거나 어두운 작품, 새로운 발견의 눈을 보여주지 못하는 작품, 지나치게 산문적
인 작품, 기성시인의 어투가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 등을 제외했다.
결국, 김종연의 '그녀는 임신 중', 김종두의 '세한도 앞에서', 황외순의 '탯줄'이 남게
되었다. 세 편은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현실을 시화해보려는 김종연의 몸부림은
가치 있는 시도이고, 세필로 그려나간 김종두의 세한도는 오랜 공정의 결실임이 분명
하다. 그러나 언어의 품격이나 소재의 진부함이 끝내 마지막 낙점을 가로막았다.
거론한 작품에 비해 당선작은 팽팽한 긴장감과 신선한 비유가 확연히 빛났다. 꿈과
희망을 내장(內藏)한 개안(開眼)의 풍경이야말로 새해 아침에 어울리는 가락이기도
했다. 더 많은 노력으로 대성하기를 빌 뿐이다. 심사위원 이우걸
<경남신문>
바람의 뼈
- 불일암
유 선 철
단순한 무대는 화려하고 장엄했다
오롯한 발자취, 죽음마저 연주였다
고요는 달빛을 풀어
그의 뜰 쓸고 갔다
모서리 동그마니 묵언에 든 나무 의자
그 아래 하얀 뼈가, 말씀이 묻혀 있다
망초꽃 흔들어놓은
바람이 거기 있다
●1959년 경북 김천 출생 ●경북대 일반사회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김천중앙중 교사 ●중앙시조백일장 2009년 1월 장원
<심사평>
임진년 새해를 맞아 또 한 사람의 촉망되는 신인을 배출시키기 위해 우린 신중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은 치열한 습작과정을 통해 일정부분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정제되지 않은 자연서정과 영탄, 설익은 관조를 드러내는 작품들이
많아 군계일학의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남는다.
결심에서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송인재의 ‘그 동전, 은유의 무게’, 구애영의 ‘유빙(流氷)을
바라보며’, 최승관의 ‘바다, 그 두려운 갈망’, 유선철의 ‘바람의 뼈’ 등 4편이었다.
‘그 동전, 은유의 무게’는 첫째 둘째 수에선 형식 속에서 담담히 서정을 풀어가는 솜씨에 눈길이
갔는데, 셋째 넷째 수에 오면서 절제를 잃고 감정과잉을 낳아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함께한
응모작들 역시 그런 약점을 드러내는데 이런 부분을 보완한다면 좋은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으
리라 여겨진다.
‘유빙(流氷)을 바라보며’는 적절한 비유를 차용해 와 결빙의 퍼즐처럼 뻗어나가는 심상들에 근접
시키려 했으나 시조 특유의 축약과 가락을 잃고 있어 이 또한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맨 마지막까지 거론된 작품으로는 ‘바다, 그 두려운 갈망’과 ‘바람의 뼈’였다. 앞의 작품은 보내온
작품들이 모두 일정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보를 자유롭게 다룰 줄 아는 장점에
눈길이 갔다. 그러나 적확한 이미지를 얻지 못함으로써 주제를 선명히 드러내는 데 실패하고 있어
손을 들어주지 못했다.
이에 비해 ‘바람의 뼈’는 시조가 필연적으로 가져야 하는 함축과 가락을 안으로 잘 갈무리하고
있어 안정적으로 정형률을 다스리는 힘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신춘문예용 작품이 아닌 자신의
시를 창작하고 있어 신뢰를 갖게 한다. 이런 안정감은 반대로 날선 시대를 향한 시대정신을 담
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런 당부를 빌면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민다. 한국
시조단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대성하기를 바라며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 하순희·이달균>
<서울신문>
연암, 강 건너 길을 묻다
김종두
차마 떠나지 못하는 빈 배 돌려보내고
낯선 시간 마주보며 갓끈을 고치는 연암,
은어 떼 고운 등빛에 야윈 땅을 맡긴다.
근심이 불을 켜는 낯선 세상 왼 무르팍,
벌레처럼 달라붙은 때아닌 눈발 앞에
싣고 온 꿈을 무리고 놓친 길을 묻는다.
내일로 가는 길은 갈수록 더 캄캄해
속으로 끓는 불길 바람 불러 잠재우면
산과 들, 열하熱河를 향해 낮게낮게
엎드린다.
■ 약력
1960년 경북 청도 출생. 경북대 대학원졸업(국어교육 전공), 대구 심인고 국어교사
<심사평>
세련된 감각적 재단 돋보여
서사의 능란함과 새로운 화법을 찾으려는 탐색이 두드러진 해였다. 무게 있는 제재를 골라
그 본질에 낱낱이 접근하는 심도와 짜임새 좋은 남다른 전개를 보임으로써 사색과 습작의
치열함을 짐작하게 만든다.
다만 안전하게 당선작에 오르려 번뜩이는 시도 대신 부드러운 변주만을 구사한 작품들도 있어
그 솜씨의 잠재력에 아쉬움을 느낀다.
올해 시조 부문은 양적으로 늘어난 응모 편수만큼이나 질적인 진화 또한 돋보여 신진들의 필력에
대한 설렘을 갖게 한다. 고전적 원형과 현대적 미학을 동시에 이루어야 하는 시조에서 이처럼 적극
적인 관심은 장르의 신선한 동력이 될 것이다.
당선작은 김종두의 ‘연암, 강 건너 길을 묻다’이다. 시조의 본질을 지키면서 감각의 세련된 재단으로
수려한 완성도를 확보했다. 주제로 정한 시점이 과거이나 박제된 이야기로 흐르지 않고 동시대와
교감할 수 있도록 생기를 불어넣은 형상화가 뛰어났다. 기승전결에서도 매끈한 흐름으로 긴 호흡의
이야기를 탄탄하게 직조하여 주시할 만한 정점에 이르렀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장윤정의 ‘물의 사원 짓다’, 박성규의 ‘별을 쓸다’, 강송화 '교각이 된 금강송’, 방승길의 ‘서해 낙조’이다. 저마다의 솔깃함으로 매료시키는 수작들이었으나 전개에서 표출된 작법의 출중함에 비해 흐릿해진 종장이 안타깝다. 또한 전반적으로 서술에 몰입하여 서정이 다소 희석된 듯하다.
신춘문예를 위한 어떤 공식은 없다. 정답을 찾듯이 쓰기보다 압도적인 작법을 스스로 만들어 낼 퍼덕이는 창의성을 기대해 본다. <한분순, 이근배 시인>
<영주일보>
아바타 한 켤레
문제완
잠이 깬 새벽녘에 물끄러미 바라보니
현관 쪽 신발들이 제 멋대로 잠들었다
고단한 입을 벌리고 코를 고는 시늉이다
늘 그렇게 아옹다옹 하루를 부대끼다
저들도 가족이라 저녁에 모여들어도
서로가 지나 온 길을 묻는 법 절대 없다
오고 가는 내 모든 길 묵묵히 따르느라
굽도 닳고 끈도 풀린 가여운 내 아바타여
부푸는 밤공기를 안고 나처럼 누웠구나
전남 순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제8회 광주광역시 시인협회 백일장 장원
제12회 공무원문예대전 시조 최우수상 수상
근무처 : 화순 능주우체국(국장)
<심사평>
서정의 진경과 흥미로운 상상력
여전히 시가 ‘금’이 되지 않는 오늘의 시대에도 신춘문예를 서성대는 영혼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물질이 해결하지 못하는 상당한 부분을 문학이 위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영주신춘문예 역시 예년에 비해 작품의 양과 질이 부쩍 늘었음을 밝힌다.
사유는 서정의 살이요, 서정은 사유의 힘줄이라서 우리 몸속에 거부감 없이 들어와
말의 개념을 정당화하고 언어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이번 심사도 주제의 밀도와 짙은
서정성에 바탕을 둔 작품을 눈여겨보며 인생의 애환을 통해 서정의 진경을 얼마만큼
담아냈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진주와 남강, 비봉산의 가을 정경을 팔검무로 묘사, 시조의 장과 장을 퉁소가락처럼
뽑아낸 김재길의<새벼리 戀歌>, 하루 종일 우리의 정신과 몸을 고스란히 이끌고
다니는 신발이야기를 풀어낸 문제완의<아바타 한 켤레>, 섬 島를 악보의 음표, 으뜸
음자리와 높은음자리 ‘도’로 빗대어 다시 어머니의 무량한 사랑으로 거듭 앉힌 서상규
의 <섬의 수의>, 폐지를 수거하여 생계를 꾸려가는 초로의 사내를 통해 연민과 암울한
현실 세태를 짚어낸 이우식의<빙벽氷壁>, 낡았으나 비루치 않고 해졌으나 허술치 않은
섬마을의 풍경을 담담하게 관조의 자세로 엮어낸 천유철의 <섬마을 여행길>, 지병으로
병원을 오가는 환자의 투병기록 속에 혈육의 애틋함을 진솔하게 녹여낸 허은호의 <햇살
한때>가 최종으로 올랐다.(가나다 순)
작품들이 보여주는 각각의 개성과 고른 호흡으로 심사에 상당한 고심이 있었음을 밝힌다.
그 중, 끝까지 따라와 선자들의 심금心琴을 튕긴 문제완의 <아바타 한 켤레>를 맨 윗자리에
놓았다.
온종일 주인의 행적을 낱낱이 알고 있으면서도 ‘서로가 지나온 길을 묻는 법 절대 없다’는
아바타의 단호한 내면세계를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사물의 실체를 바탕으로 하되
견고한 현실 감각과 자기심화과정에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아울러 함께 투고된 다른 작품
에서 보여준 일관성과 서정의 힘도 한 몫을 했다. 어딘가 불편함을 주는 시가 마침내 시의
영토를 확장한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다량의 조미료 맛이 아닌, 토속적인 맛을 낸 작품이
시조의 미래를 지켜 가리라 믿는다.
당선자에게 다함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내며 최종에 오른 다섯 분께도 거경궁리居敬窮理의
자세로 용의 해를 열어가길 바란다.
심사위원 이승은(글). 강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