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구성으로봐서 사실, 명작으로 남을만한 스릴러물의 긴장감에 도달하지는 못하지만(예컨데, 충격적 반전의 대명사인 "유쥬얼 서스펙트"나 "메멘토"등..), 그래도 우리 고유의 시대를 배경으로 개연성있고 설득력있는 스릴러물을 꽤나 짜임새 좋게 엮어냈다는데에서(게다가, 재미있다는 점에서!) 아주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전에, 유행처럼 '한국형 블럭버스터'라고 떠들어대던 한국영화 스릴러물들이 한결같이 비슷비슷한 소재에 무리한 구성, 허명과 주가만 높은 배우들, 엉망인 각본, 쓸데없는 피바다 등을 뿌려대며 돈몰이만 해댔다면, 이 "혈의 누"는 질적으로 한국영화가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케이스라고 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특수효과 떡칠은 헐리우드를 쫓아가지는 못한다고 해도, 이제는 다양한 쟝르와 다양한 시대, 그리고 우리 고유의 소재라는 흥미높은 요소들을 통일성있게 엮어낼만한 역량있는 감독과 각본가들이 존재한다는 뜻이겠죠.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1808년, 유명한 제지소가 위치한 고도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풀어내는 과정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특히, 최근에 발견된 자료인, 조선관아의 수사기법 등을 적용시키면서, 아무리 옛시대인 조선이라고 해도 나름대로의 과학과 방법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참 신선했습니다.
식민사관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이제까지, 우리의 역사를 설득력있게 그려내기 위한 영화인들의 인식이 많이 부족했고, 특히 자세한 면면을 알아보기 위한 자료적 고증과 논증의 단계가 부족했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조선시대에 관아에 잡혀간다'는 것은 정말로 끔찍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만 인식합니다. 논리도 없고, 과학도 없고, 그저 매질과 고문만 해대며 "이실직고하지 못할까!"만 외쳐대는 수령들만 봐왔던 탓이겠죠.
하지만, 조선시대라고 해서 사람들이 바보였겠습니까? 논리가 없었을까요? 사고방식의 차이와 인권에 대한 다른 생각으로 인해 오늘날에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방식을 일부 썼을 수도 있으나, 당시의 사람도 사람입니다. 논리도 있고 이성도 있으며, 사건을 해결해온 경험이 있고 직관력과 관찰력도 분명히 있을겁니다.
삼국시대와 같은 무력짱의 영토정복도, 고려시대의 화려함도 없었기에, 뭔가 하나같이 굴욕적이고 사대적이며 치욕스럽기만한 선비들만 그득했던 졸렬한 시대라고 생각하기 일쑤인 조선시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사람이 살았으니까요. 사람은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특히, 영화를 잘 살려주는 것은 차승원이 맡은 '이 군관'의 배역. 나날이 괜찮아지는 차승원의 연기도 좋았거니와, 이 캐릭터 자체의 성격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혹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장미의 이름'과 많이 비교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입니다. 역시 연쇄살인사건을 조사하는 '윌리엄 수사'의 모습이 겹치겠죠. 하지만, '이 군관'은 '윌리엄 수사'와는 분명히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윌리엄 수사'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매력이 있으나, 어느 면에서는 당시의 시대적 기준에서 너무나도 탈피했기에, 어느 면에서는 '중세에 떨어진 근대인이란 말인가?'하는 생각도 들게 만듭니다만.. '이 군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군계일학으로 냉철하고 지성적이면서도, 당시의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생각, 강박관념, 그리고 선과 악을 모두 지닌, 정말로 그 당시의 사람입니다. 윌리엄 수사처럼 붕 뜬 존재가 아니란 것이죠.
한편으로는 민본주의적인 생각을 깊게 지니고 있으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신봉하고, 미신이나 주술을 혐오하는 현실주의적인 군관료/수사관의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부검을 집도하면서 깊이 생각하는 모습에서는 현대의 법의학자와 같은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군관은 또한, 화가 날 때는 고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당당한 이상주의가 현실의 장벽에 부딛혔을 때 갈등하기도 하며, 수사가 풀리지 않으면 역시, 태형과 매질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사는 어떠한 내부의 악도 보여주지 않는, 마치 전지한 초월적 존재처럼 그려졌기에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다면, '혈의 누'의 이 군관은 자신의 장점을 모두 지녔으면서도, 역시 그 시대의 약점을 모두 지닌 인물이기에 한층 그 설득력이 큽니다. 개인적으로는 윌리엄 수사라는 캐릭터 보다 이 군관이라는 캐릭터가 훨씬 생생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멋지죠.
특히, 마지막의 장면에서.. 피를 요구하는 분노한 민중 앞에서, 과학인지 미신인지, 저주인지 우연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이는 극도의 혼란스러운 모습은 정말 설득력 있습니다.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냉정하고 냉철한 모습으로 고개를 흔들며 시대의 어리석음을 탓하겠죠. 마치, 자신은 그 시대의 사람이 아닌양 말입니다.
조연급 캐릭터들의 연기도 좋았고,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 배우 최종원의 연기도 적당한 선에서 코믹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절도를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좋았습니다. 또, 조선시대의 노동자들의 삶, 그들의 믿음, 미신, 정열, 폭력성 등등에 대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죠.
옥의 티가 있다면,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의 드라마적인 긴장도가 아무래도, 서양영화들에 비해서는 조금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실, '범인이 누구냐?!'를 알아맞추기 어려운 영화는 아니거든요. "유쥬얼 서스펙트"나 "메멘토" 같은 경우에는, 그 이전에 스포일러 없이 영화를 봤다면, 조마조마하면서 보다가 드디어 범인의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 정말 폐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며 "헉스!!!"할 만큼 충격적인 반전이었지만, 아무래도 이런 맛이 조금 떨어진다는 것이죠.
흥미는 있었지만 별 기대를 안한 "혈의 누".. 큰 기대를 하고 본 "킹덤 오브 헤븐"..
첫댓글 앗차, 김대승 감독이군요. 강우석은 프로덕션 쪽이었나 봅니다. 실수 실수
그런데 문제는 이 카페에서 혈의누를 볼 수 있는 회원분이 반도 안된다는 사실...;;(아닐려나?)
어떤분들이 혈의누 범인이 차승원이라는데 진짠가요?? 제 친구들은 아니라던데 보니까..;;
그런 것을 물어보시면 안돼요! 그것은 유쥬얼 서스펙트 개봉관 밖에서 "대머리가 범인이다!"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혈의 누"가 심의등급이 그렇게 높은거야요? 전혀 몰랐네..)
18세라지요. 본 사람 평으로는 '내장이 흘러나오는 장면'이 있더라는... 전 고어라면 경악하는 관계로 말입니다;;
거열형 장면 땜에 그런건가.. -.-; 그래도 외국의 고어-호러 영화 처럼 쓸데없이 뜬금없이 엄청난 고기조각들이 튀어나오는 고어는 아니에요. 꼭 필요한 장면들에만 적절한 수준으로 나오는 정도인데..
영화를 본 사람으로써 한 마디 하자면 범인은 차승원이 절대 아닙니다. 사건 수사하는 수사관이 연쇄살인자라니, 말이 되나요? ^ ^ ~ 어쨌든 오랜만에 잘 만든 한국 영화였습니다.
그래도.. 거열형이면 저로써는 '도망다녀야 할 영화'수준이죠.. (크헝~)
장미의 이름 영화로는 절대 비추천. 더럽게 재미없음. 윌리엄수사(숀코너리...007)와 주인공 빼고는 모두 얼굴이 거지떼 수준 ㅡㅡ; ps. 혈의누 보고싶으나 18세인 관계로 OTL(게다가 잔인한 장면이라면 한번 더 OTL)
재밋겠네요. 한번 꼭 봐야겠습니다^^
혈의누 재미있습니다.... 거북스러운 장면이 많긴 하지만..... 진짜 3개의 반전을 느낄수 있습니다.
예고편을 보고 기대하고 있던 영화.
내용이해하는데 스토리전개가 조금 부실한 점이 있습니다만.. 몇몇 행동이나 대화등은 오히려 혼란을 주기도 하더군요. 머 그리 대단하달것 까진 없는거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