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쉴레 Egon Schiele(1890~1918)】 "나무, Four Trees, 1917"
【에곤 쉴레 Egon Schiele(1890~1918)】 "나무, Four Trees, 1917"
Four Trees, 1917
Egon Schiele(1890~1918)
인체의 왜곡과 독특한 구도와 색채의 마술사, 20세기 오스트리아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에곤 쉴레 Egon Schiele(1890~1918)
1890년 오스트리아 동북부 툴른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툴른시 역장으로 일했는데, 실레의 스케치북을 불태워 버릴 정도로 아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싫어했다. 학창 시절 실레는 부끄럼 많고 내성적이었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으로부터 미술 공부를 계속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여동생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에는 누드화도 있었다.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한 이후 삼촌의 도움으로 1906년 비엔나의 예술공예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전통적인 학풍을 띤 비엔나 미술학교로 진학했다.
1907년 그가 평소 존경했던 구스타프 클림트를 처음 만났다. 유럽 미술계의 변방이었던 오스트리아에서는 유럽 미술의 흐름을 체감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실레는 클림트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았다. 실레보다 스물여덟 살이 많았던 클림트는 예술적으로 실레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했는데 그림 구매, 모델 섭외, 후원자 연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실레를 후원해 주었다. 두 사람은 평생 가깝게 지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성격이랄까? 아니면 그림에 대한 자신 만의 해석일까? 인체의 왜곡, 독특한 구도와 색채가 특징인 심리적이고 에로틱한 주제의 초상화와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나무를 보자.
네 겹의 낮은 구릉이 있고
두 번째 언덕에 날씬 하지만 매우 단단해 보이는 줄기의 네 그루의 나무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자생한다는 느낌 보다는 일부로 가져다 꽂아 놓은 느낌이다.
기존의 상처투성이 이거나 마치 부패한 피부빛, 샌드페퍼질 당한 것 같은
그의 인체 그림들과는 사뭇 다르지만 전체 화면의 질감 표현은 흡사하다.
그의 표현 스타일인 모양이다.
겹겹의 구름들은,밀려드는 관객마냥, 너울거리고
곧 산 뒤로 넘어갈 듯한 햇살이 공연의 휘날레를 장식하듯 무대를 물들인다.
아마 저녁 무렵 풍경같다.
네 그루의 나무는 모두 피빛으로 단풍들었고
두 번째 나무는 이미 절정을 넘어 에너지 저장의 수순에 들었거나
모태 약골이라 초라한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세 그루의 나무는 사회 주류의 모습이고, 키는 가장 큰 두 번째 나무가
기존 예술계의 정형화된 인체 미학이나 보수성에 저항한 예술계의 이단아인
쉴레의 자기 투사로 보인다. 구름들을 물들인 선명한 태양이
(외설로 치부됨에도 불구하고, 하단참조) 보수적 가식적 세상을 비웃듯
자신의 작품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에 충만한 강한 나르시시스트의 경향의 쉴레를 비호하는 듯 하다.
많은 가을 풍경들이 있지만이 그림이 독창적으로 보여 특히 좋다.
조금은 그로테스크한 인체 묘사로 초창기에는 친구요 스승 클림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왜곡 화법을 창조하며 청출어람의 평가를 받은 쉴레가 풍경화를 그리니
추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다양한 느낌과 의문 부호를 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