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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barnabak
기독교의 두 기둥 십자가와 부활
고린도전서 15:1-11
1.
오늘 2015년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과 가정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기쁨과 감격이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요즘에 다른 종교에서 기독교를 본받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불교의 예를 보면, 예전에는 산속에 있던 사찰들이 시내로 내려옵니다.
찬송가와 비슷한 찬불가도 있고, 성가대도 있고, 설교와 비슷한 설법도 하고, 주일학교를 본받아서 불교학교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다른 종교가 기독교를 흉내 내려고 해도 단 하나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석가 탄생일은 있어도 석가 부활일은 없습니다. 부활은 오직 기독교에만 있는 줄 믿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여자들이 안식 후 첫날 새벽에 향품을 가지고 무덤을 찾아갑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이라도 발라드리려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무덤에서 돌이 옮겨졌고 무덤 안에서 예수의 시체를 볼 수 없었습니다. 이 일로 근심하게 되었을 때 천사들이 나타나 여자들에게 말을 합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성도 여러분, 기독교는 죽은 자를 찾는 종교가 아닙니다.
무덤에서 교주를 찾지 않고 무덤을 순례하지도 않습니다.
기독교는 죽은 자를 믿는 종교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고 이 시간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2.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부활에 관한 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흔히 부활장이라고 하는데 부활의 확실성, 부활의 증인들, 죽은 자의 부활, 몸의 부활 등을 언급하면서 결코 흔들리지 말고 더욱 주의 일에 힘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왜 이렇게 부활에 관한 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일까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이런 부활신앙이 없기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생겼다고 진단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고린도 교회에는 파당의 문제를 비롯한 음행의 문제 등 10여건의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들이 왜 생겼을까요?
무엇보다도 부활에 관한 믿음이 없고 신앙의 기초가 세상적인 것에 세워졌기 때문으로 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신앙의 기초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기초위에 신앙을 세워가야 합니다.
신앙의 기초가 모래위에 세워지면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날 때 넘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두 번째는, 부활신앙 자체에 많은 혼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을 갖고는 있는데 거기에 많은 의심과 혼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활할 때 몸이 부활하는 것인지 아니면 영만 부활하는 것인지,
부활의 몸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젊을 때의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인지 아니면 죽을 때의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인지,
이런 것들에 대한 의심이 있었기에 거기에 대한 답변으로 긴 편지를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부활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을 수 있고 부활자체를 확신하지 못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믿음의 반석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3.
오늘 본문 1절에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복음이 무엇인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무엇인지, 우리가 믿고 붙잡아야 할 복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복음이 아닌 것들을 복음으로 알고 믿는 자들이 있습니다.
cbs에서 방영하고 있는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서 한 목회자가 말하는 것에 큰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무슨 본문을 갖고 무슨 설교를 해도 결론은 이 세상에서 잘 사는 축복으로 귀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단순화 해 버리니까 조금 새로운 것에도 큰 관심을 갖게 되고 신천지에 쉽게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을 많이 버는 것, 잘 사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 이런 것들은 하나의 축복은 될 수 있어도 진정한 복음은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 알고 믿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2절 말씀에서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복음은 그것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 보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복음은 진정한 복음을 말합니다.
세상의 어떤 교주가 말하는 복음이 아니라 성경이 전해주고 사도들이 전해주는 진정한 복음을 믿을 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잘못된 복음은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복음에 빠지지 않고 올바른 믿음가운데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복음을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복음이 무엇입니까?
3절, 4절 말씀을 보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십자가의 죽음과 죽음에서의 부활이 진정한 복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바로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과 죽은 지 사흘 만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기독교를 지탱하는 두 기둥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죄를 씻기 위하여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고 그렇게 대신하여 죽을 만큼 죄가 없는 의로운 자도 없습니다.
또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분도 예수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한 자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자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이 중요하고 가장 기본적인 기독교의 복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시고 다른 이단 사설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4.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몇 가지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경대로 살아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살아나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이 그저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 아니고 오랜 세월 하나님의 의해 계획되었고,
오래 동안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되었고, 준비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불화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 인간을 구원할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 그리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 이 모든 것들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신 구원자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우리가 그 부활하신 주님을 믿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속에 이루어 진 줄 믿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싶어서 내 마음대로 믿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에서 믿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역사 속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는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놀라운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고, 부활을 믿는 자가 되었고, 부활의 축복 속에 참여할 자가 되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5.
두 번째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셨다는 말씀은 부활의 확실성과 역사성을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은 누가 만들어내고 꾸며내고 지어낸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와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일어난 분명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증거 할 수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 무덤에 장사지냈던 적대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숨기기 위해 여러 가지 모략을 꾸미기도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고,
여자들이 환상을 보았다고도 했고,
완전히 죽지 않은 자를 장사하여 선선한 무덤에서 깨어났다는 기절 설을 제기하기도 했고,
최근에 다빈치코드에서는 빌라도와 예수가 짜고 십자가에 죽인 척 했다가 몰래 빼돌려 프랑스로 도망가게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런 예들은 다 거짓 이론들에 불과합니다.
이런 이단 사상들이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나왔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뒤집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사실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수없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 겁 많은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시체를 도적질해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많은 매를 맞고 창에 찔리고 수의에 싸여 있던 사람이 어떻게 수의를 풀고 그 돌을 치우고 나올 수 있겠으며 군병들에게 발견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군병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확인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고 거짓에 기초한 종교라면 어떻게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유지될 수 있었겠습니까?
거짓에 기초한 종교가 이렇게 번성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부활을 증거 한 예는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많은 증인들을 갖고 있었던 너무나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기에 그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가 오늘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거짓 믿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전설에 불과한 이야기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누가 꾸며낸 이야기를 믿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자가 될 수밖에 없고 사람들이나 하나님께 거짓증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한 사실위에 세워진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거짓 증인이 아니고 가장 불쌍한 자가 아니고 가장 행복한 자요 가장 축복받은 자인 줄 믿습니다.
6.
세 번째로, 특별히 바울에게 보여 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셨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요 살아 있다는 것은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명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부활하신 주님이 이 땅에 40일 동안 계실 때 만났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에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육체를 가지고 계신 주님을 만났지만 바울은 이미 육체를 갖고 있지 않은 주님을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이 바울의 만남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지금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육체로 계신 주님만 만나는 것이 아니고 영으로도 주님을 만날 수 있고,
보지 않고 만지지 않고도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지금도 어디서든지 얼마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만약 바울의 부활경험이 없었다면 우리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 살아 있었던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살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이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부활의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으로 음성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또한 자신이 주님을 만난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고 기독교를 반대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울을 예수님은 먼저 만나주셨습니다.
바울에게는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가 만나주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부활을 믿고 그 주님을 구세주로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그 부활이 믿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7.
부활의 주님을 만난 바울은 그 은혜가 헛되지 않게 살았습니다.
바울에게 임한 은혜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한 것으로 증거 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58절)
부활의 은혜를 주신 것이 감사해서 열심히 수고해야 되겠지만,
또한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확신하기에 우리는 더 많이 수고하고 봉사해야 할 줄 믿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부활의 은혜를 허락해주셨고 부활이 있기에 너희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들은 바로 이것을 바라보고 신앙생활 하라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더 높은 것을, 더 가치 있는 것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만 바라보고 그래서 누가 더 잘 났느냐 누가 더 높으냐, 그런 하찮은 것들에 몰두하고 싸움이나 하지 말고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고 더 열심히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부활의 사실을 믿는 성도들은 인생의 방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돈을 주셨습니까? 청춘을 주셨습니까? 재능을 주셨습니까?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까?
영원히 이어질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가치 전환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가슴을 비우고 잘못된 신앙, 잘못된 신앙의 기초나 방향을 잘라내고 온전한 신앙으로 그 방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부활의 신앙을 확인하고 영원히 이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쓰임 받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소망을 실제적으로 체험하고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